메인화면으로
'밤엔 자자' 탄압한 유성기업, 259일 땅 못 밟은 노동자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밤엔 자자' 탄압한 유성기업, 259일 땅 못 밟은 노동자

[현장] 유성지회 고공 농성 해제…이정훈 지회장, 들것에 누워 땅으로

"건강한 모습으로 내려와 마이크도 잡고 인사도 나누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죄송합니다. 빨리 체력을 회복하겠습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데, 가만히 있지 맙시다. 이를 악물고 반격합시다."

259일의 시간을 철탑에서 보낸 그는 제 목소리로 말하지 못했다. 대신 동료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 보내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노조 파괴 책임자 처벌'이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로 농성을 해제하게 된 데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는 뜻이 거듭 적혔다.

이정훈(49) 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지회장이 충북 옥천나들목 광고탑에서 농성을 시작한 건 지난해 10월 13일. 함께 올랐던 홍종인 아산지회장이 지난 2월 교섭과 현장 투쟁을 강화하기 위해 내려온 후엔 줄곧 22미터 높이 고공 농성장에서 혼자 농성을 벌였다.

허리 디스크 악화…들것에 누워 259일 만에 땅으로

그는 마침 농성 해제일에 생일을 맞은 부인 한영희(48) 씨에게도 메시지를 남겼다. 결혼기념일에 고공 농성을 시작한 야속한 남편임에도 꾸준히 그를 응원했던 아내다. 그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오랜만에 불러보는 이름 영희 씨, 고마워. 사랑해"라고 했다.

메시지를 다 읽은 동료가 "이제 내려옵니다"라고 외치자 소방대원 3명이 탄 크레인이 서서히 그를 향해 움직였다. 광고탑 아래로 몰려든 300여 명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응원의 함성을 지르고 또 질렀다.

대원들이 농성장에 도착해 그의 상태를 확인하고, 온몸을 들것에 꽁꽁 묶어 크레인으로 옮기는 데 걸린 시간은 40분. 제 발로 내려올 수 있다면 훨씬 빨리 크레인에 탈 수 있었겠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다. 허리 디스크가 악화할 대로 악화한 터였다.

▲ 28일 낮, 259일에 걸친 고공 농성을 마치고 땅으로 내려온 이정훈 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지회장. ⓒ미디어충청(정운)

유성지회는 농성 해제 이유로 이 지회장의 건강 악화를 들었다. "지난 13일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고 큰소리로 불러도 좀처럼 대답이 없어 의료진을 올려보냈고, '체력이 감퇴하고 근력이 떨어져 허리 디스크가 악화되었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에도 전화가 계속 연결되지 않아 다급하게 보건의료노동조합 조합원(간호사)이 크레인을 타고 올라 수액을 공급하기도 했다. 이번 주 초 농성장을 방문한 전문의는 "탈수성 열 탈진, 고혈압, 소화 장애, 허리 디스크 악화로 농성을 유지하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낮 12시 30분께, 뙤약볕을 받으며 땅으로 내려온 이 지회장은 눈을 껌뻑거릴 뿐, 눈시울을 붉히며 한쪽 손을 부여잡는 아내를 보고도 한마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형 고생했어요'라고 외치는 동료들 사이를 지나 그는 곧바로 구급차에 실려 충북대병원으로 옮겨졌다.

이 지회장은 병원에서 필요한 치료를 받은 후 경찰에 자진 출두할 계획이다. 청주지방법원은 지난 4월 이 지회장을 상대로 집회·시위에관한법률 위반과 공유재산·물품관리법 위반 혐의로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밤에는 잠 좀 자자'는데, 노조 파괴 전문 업체에 13억

유성기업은 자동차 부품을 만들어 현대·기아차 등 완성차 회사에 납품하는 중견 기업이다.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회사였지만, 지난 2011년 공격적인 직장 폐쇄를 단행하며 단방에 신문 지면에 이름을 올렸다.

직장 폐쇄는 '밤에는 잠 좀 자자'는 구호를 내걸었던 유성지회 파업에 대한 대응이었다. 주간연속교대제를 요구하는 파업 2시간 만에 유성은 용역 깡패를 동원한 직장 폐쇄를 단행했고, 이 과정에서 지회 조합원 한 명이 두개골이 함몰되는 일까지 있었다.

파업 및 직장 폐쇄 약 두 달 만인 2011년 7월에는 어용 성격을 강하게 띤 제2 노조(유성노조)가 설립돼 노노 갈등은 극에 달하고 있다. 지난 17일에는 "유성노조 안 모 위원장이 지회 조합원을 상대로 전기 충격기를 사용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 관련 기사 보기 : "유성기업 노조, 전기충격기로 금속노조원 집단 폭행")

▲ 소방대원들이 28일 오전 크레인을 타고 이 지회장의 농성장이 있는 옥천나들목 광고탑 위로 올라가고 있다. ⓒ미디어충청(정운)

지회를 비롯한 노동계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유성이 13억 원을 제공한 '노조 파괴' 전문 법인 창조컨설팅의 자문과 무관하지 않다며, 유시영 유성 사장 등에 대한 구속을 요구하고 있다. (☞ 관련 기사 보기 : '노조파괴' 창조컨설팅에 82억 입금한 기업들은?)

금속노조는 이달 초, 창조컨설팅에 자문한 유성기업·보쉬전장·콘티넨탈오토보티브 등의 사업주를 무더기 무혐의 또는 불기소 처분한 검찰에 반발해 대전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한 상태다.

홍종인 지회장은 최근 있었던 유성노조(제2 노조)의 사업장 내 전기 충격기 사용과 검찰의 지회 간부 4명에 대한 구속 시도를 언급하며 "왜 이러겠나. 민주노조를 말살하고 와해해도 그에 대한 법적인 조치(처벌)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