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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미녀 응원단과 박근혜 정부의 콤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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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미녀 응원단과 박근혜 정부의 콤플렉스 [한반도 브리핑] 인천 아시안게임, 우리는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인천 아시안게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북한의 참여는 불투명하다. 최근의 남북실무접촉은 결렬되었다. 북한은 회담 내용을 공개하면서, 남쪽을 비판하고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결렬의 책임은 누구에 있을까? 양측의 설명을 종합적으로 들어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만 우리는 주최국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현재의 결렬이 마지막이라고 보지 않는다. 북한이 아시안게임 참여 의지가 있기 때문에, 회담을 얼마든지 재개할 수 있다. 다만 이번 실무접촉에서 보여준 우리측의 협상 행태는 문제가 적지 않다.

형식집착과 전략부재

박근혜 정부의 남북 협상 행태는 일관성이 있다. 일종의 '콤플렉스' 혹은 자신감 결여다. 일반적인 협상에서 강자는 형식에 집착하지 않는다. 형식적인 의전에 매달리는 것은 대체로 약자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보장받기 위해서다. 작년 남북 장관급 회담의 결렬 이유는 '회담대표의 격'이었다. 당시 청와대는 형식이 내용을 결정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적이 있다.
이번 실무접촉에서도 우리 측은 '국제관례'라는 형식을 앞세웠다. 응원단 체류 비용을 국제관례대로 자비부담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비용문제를 꺼내지도 않았다고 밝힌 북한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러한 주장은 작년 회담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의 인천 아시안게임 참가 관련 남북 대표단은 1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실무적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접촉을 가졌지만 어떤 합의도 이루지 못했다. ⓒ통일부

사실 국제관례라는 표현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남북관계를 국가 간 관계와 동일하게 인식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국내적으로는 통일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통일논리를 앞세우면서, 실질적으로는 일반적 의미의 두 개의 국가논리를 강조한다면 앞뒤가 안 맞다.

국제관례를 앞세우면 대형 인공기를 흔들지 말아야 한다는 우리 측 요구의 근거도 사라진다. 상대측 응원단이 자신들의 국기를 흔드는 응원행위를 주최 측이 금지하는 것이 국제관례에 맞는가? 형식에 집착하다 보면, 스스로 모순에 빠진다. 자신의 논리가 일관성이 없으면, 협상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누가 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이러한 협상 행태는 왜 반복되는가? 협상의 목표와 전략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왜 협상을 하는지, 협상에서 무엇을 얻어낼 것인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 내용의 부재가 형식에 대한 집착으로 그것이 관계를 악화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우선적으로 정부는 현재의 정세에서 인천 아시안 게임의 북한 참여에 대한 기본 입장이 있어야 한다. 드레스덴 선언만 하더라도 최소한 인도적 지원은 하겠다는 것이고, 교류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국내적으로 통일준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인천에서 국제 체육경기가 열리고, 북한이 참여하겠다는 것이다. 최소한 북한 선수단의 참여를 막을 명분이 없다. 응원단도 마찬가지다. 다른 나라에서 열린 국제 체육경기에 북한식 집단 응원을 금지한 사례를 들어보지 못했다.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을 비롯해 국제체육행사에서의 남북협력과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의 북한 참여 등 경험이 적지 않다. 실무적인 문제들은 과거의 관례를 참고로 해서, 개선해 나가면 될 일이다.

그리고 북한은 현재의 정세에서 응원단 파견이 갖는 다양한 파급효과를 고려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우리 사회는 성숙하다. 북한의 미녀응원단이 온다고 해서, 우리 국민들이 체육교류의 의미와 남북관계의 현실을 혼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그 정도 수준은 넘어섰다. 그런데 아마도 옛날 냉전 시기의 경쟁에 익숙한 집권층의 눈에는 불안한가 보다. 남북관계의 역량격차와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성숙한 시민의식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체육교류의 의미

남북관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것이 체육교류다. 남북한 최초의 체육 회담은 1963년 1월 24일 스위스 로잔의 IOC 본부 사무실에서 열렸다. 1964년 도쿄 올림픽 단일팀 구성이 목적이었다. 당시 남북한은 아리랑을 단가로 하기로 쉽게 합의했다. 깃발에 대한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아, 몇 달 후 국제올림픽 위원회(IOC)가 올림픽 표식 밑에 영문으로 KOREA 표시를 중재안으로 제시했고, 남북한 모두 이에 동의했다. 상상이 되는가? 1960년대 중반에 그런 합의를 했다는 것을. 그리고 5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그때보다 후퇴했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1970년대와 1980년대에도 체육회담은 간헐적으로 이루어졌고, 마침내 1989년 3월 9일부터 1990년 2월 7일까지 열린 체육회담(9차례의 본회의와 6차례의 실무접촉)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한반도기라는 것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1991년 4월 영화 <코리아>의 배경이 된 세계탁구선수권 대회에서 남북단일팀이 우승을 했고, 아리랑이 울리고, 한반도기가 게양되었다.

그리고 2000년 시드니,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단일팀을 구성하지 못했지만, 남북한은 개·폐회식에서 공동입장을 했다.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아리랑이 울릴 때, 관중석의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서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왜 그런 줄 아는가? 화해와 평화가 바로 올림픽 정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아시안 게임은 바로 인천에서 열린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은 북한이 불참했고,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은 알다시피 남북한이 개·폐회식에서 동시 입장을 했고, 북한의 응원단이 내려왔고, 한반도기를 앞세운 공동응원이 이루어졌다. 과연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인천에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이번 실무접촉에서 보여준 정부의 태도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표면적으로 보면 북한이 오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태도다. 선수단이 오더라도, 그야말로 경색된 관계를 국제사회에 보여주어도 상관없다는 뜻이다. 정부는 일관성 있게 북한에 대한 고압적 태도를 드러내는 것을 남북회담의 가장 우선적인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국내정치적인 이득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지켜보고 있다. 탈냉전의 시대에 탈 분단을 기대하고 응원하는 아시아 국가들에게, 한반도가 냉전의 한가운데 있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을까? 국내외적으로 통일을 앞세우면서, 체육교류 자체를 부정한다면, 그래서 정부의 말과 행동이, 안과 겉이 다르다는 점을 드러낼 필요가 있을까? 그러고도 국격을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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