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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문제는 '배출권 거래제' 그 자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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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문제는 '배출권 거래제' 그 자체야! [초록發光] 배출권 거래제를 거부하라
강도 사건을 일으킨 두 명의 공범이 있었다. 범인을 체포한 검사는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두 사람을 서로 다른 취조실에 격리시킨 후 다음과 같이 조건을 걸었다. '둘 모두 자백을 하면 각각 5년 형', '둘 모두 자백하지 않으면 각각 1년 형', '한 명만 자백하면 자백한 사람은 석방하고, 자백하지 않은 사람은 10년 형' 죄수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둘 모두 자백하지 않고 1년형을 받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그리고 가장 바보 같은 짓이 둘 모두 자백을 해서 3년씩을 교도소에서 지내는 것이다. 하지만, 죄수는 다른 죄수가 침묵했을 경우 자백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자백을 했더라도 자신이 자백을 하지 않으면 5년 형을 받기 때문에 그 경우에도 자백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

다른 죄수 역시 마찬가지다. 결과 둘 모두 자백을 해서 3년 형을 받는 것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최악의 결과가 도출되는 것이다. 두 죄수가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더라도 결과는 똑같아진다. 서로 간 신뢰가 없기 때문에 개인 행위자는 자백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깨고 자백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행동하는 경우 모두에게 가장 안 좋은 결과가 나온다. 따라서 외부 행위자의 개입이 필요하다. 이것이 게임 이론 사례로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다.

이명박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배출권 거래제가 박근혜 정부 들어 죄수의 딜레마에 빠졌다. 정홍원 국무총리와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배출권 거래제 시행 시기 유보를 공식적으로 요구한데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힘을 실어주면서 추진 부처인 환경부가 진퇴양난에 처했다. 이대로라면 2015년 시행은커녕 배출권 거래제가 시행도 못해보고 사라져버릴 수 있다고 고심할 게 분명하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대통령에 총리까지 반대하고 있는 사항을 무턱대고 추진할 수도 없다. '노여움'을 살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관계자 경질은 물론이고 법안을 바꿔 유명무실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차라리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와의 협상을 통해 명맥만 이어놓는 게 현실적일지도 모른다는 탄식이 나온다.

이런 딜레마는 배출권 거래제 당사자인 기업도 마찬가지다. 이미 기업들 반발로 시행 시기가 한차례 연기됐음에도, 법으로 규정된 제도마저 또 거부하면서 기업들이 법 위에 서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워졌다.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환경부가 제도 시행을 강행할 경우 환경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다.

때문에 기업 역시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방패막이로 나서 시행 시기나 배출 전망치를 조정해 금전적 피해가 없기를 바라고 있는 게 분명하다. 정부가 관계 부처 의견 조정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미 한차례 연기로 인해 누더기가 되어 있던 배출권 거래제는 이제 쓰지도 못할 걸레짝이 되어버릴 예정이다.

국회에서 법으로 만들어놓은 사안을 기업들이 거부하고, 그걸 정부가 두 차례나 연기하고 완화해주는 웃기지도 않은 이 상황은 참 당황스럽다. 시장 제도를 통한 온실 기체 감축 효과를 믿지 못하는 나로서야 어쩌면 배출권 거래제 시행 연기가 반가운 소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녹색 흉내라도 내려던 이명박 정부와 달리 아주 대놓고 녹색을 거부하는 박근혜 정부의 태도에는 부아가 치밀다 못해 절망감마저 생긴다. 환경부 편에 서서 기업의 초법적 망상, 정부의 막가파식 정책 변경에 대해 항의하고 싶어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점은 따로 있다. 과연 배출권 거래 시장이라는 취조실에 갇혀 아등바등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이미 온실 기체 시장을 7년째 유지하고 있는 유럽에서조차 배출권 거래제는 실패한 정책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의 배출권 가격은 22일 현재 6유로에 불과하다. 며칠 전에는 5.6유로까지 떨어지기도 했고, 2013년에는 3유로까지 떨어졌다.

▲ 탄소 배출권(Certified Emission Reduction, CER) 가격 변동 추이. ⓒcarbonequities.co.uk

최고 30유로까지 올랐던 배출권 가격이 바닥에서 도저히 올라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EU 의회가 배출권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 몇 차례나 배출권 공급 과잉을 줄이는 백로딩(back-loading) 정책을 썼는데도 벌어진 일이다. 그 정도로 가격이 떨어지면 기업들은 굳이 온실 기체를 직접 줄일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온실 기체 감축 인프라 구축이 멀어지는 것이다. EU 의회는 수차례 백로딩을 거부하기까지 했다. 시장을 회생시킬 필요가 있느냐는 자문이다. 혹자는 유럽의 경기 침체 때문이라고 하겠지만 배출권이 과잉 할당됐다는 것까지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만큼 만들기도 지키기도 어려운 것이 배출권 거래 시장이다.

그렇다면 그 게임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우리는 더욱 단순한 방법으로 온실 기체를 줄일 수 있다. 각 기업에게 어느 시기까지 어느 정도를 줄이라고 강제하는 직접 규제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대기 오염물질이나 수질 오염물질 등은 다 직접 규제를 시행하면서도 유독 온실 기체만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해 기업들에게 편의를 봐주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하다못해 탄소세를 도입해 단계적으로 강화하면 온실 기체 저감 효과와 기업들의 대응 능력 강화를 동시에 도모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배출권 거래 시장이라는 함정에 빠져 온실 기체 감축이라는 대명제를 저버리는 주객 전도 현상. 이것이 배출권 거래제가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다. 판 자체를 뒤엎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사족 하나. 배출권 거래제 시행 유보를 주장하는 정부는 그나마 애교스러울 정도다.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으로 대비되는 기업들의 행태는 도저히 두 눈 뜨고 못 봐주겠다. 전경련은 배출권 거래제 시행 전면 재검토를 요청하면서, "초과 배출량이 2억7500만 톤에 이르기 때문에 이를 배출권 가격으로 환산하면 6조 원가량"될 거라고 엄살을 부린다.

2010년 EU 배출권 평균 가격인 톤당 2만1000원을 곱했을 때 나온 계산이란다. 그런데 왜 2010년 가격을 곱하는 거지? 배출권 가격이 계속 떨어져 지금은 톤당 6100원인데. 게다가"배출권 거래제로 인한 기업 추가 부담이 2015∼2017년 3년간 최대 27조5000억 원"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이 수치가 어떻게 도출된 것인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과징금 10만 원을 부과 받았을 경우라고 한다. 지금 장난하나.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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