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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류 정치', 정치참여 진입장벽을 없애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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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류 정치', 정치참여 진입장벽을 없애려면… [조성복의 '독일에서 살아보니'] 독일의 정당 ⑩ 정치자금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을 일상에서 뒤집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정치를 하고자 하는데 돈이 없다면, 당사자인 본인은 물론 그 주변 사람들도 곤란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기성 정치인이나 정치에 나서는 사람들을 보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은 정치를 하지 말라는 뜻일까?

혹시 가난하더라도 선거에서 승리하면 그러한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우리 정치는 당선이 되더라도 돈 들어가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관련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정당시스템이 거의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지역에서 발생하는 경조사 등을 끊임없이 챙겨야 하고, 여러 단체들의 행사에도 적절히 인사를 해야 한다. 이런 일들을 무시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정치문화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많은 정치인들이 재산의 많고 적음을 떠나 주변의 이권들로부터 초연하기가 쉽지 않다. 종종 공익이 사익으로 바뀌게 되는 순간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런데 정치가 원래 공익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국가가 나서서 제도적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는 없는 것일까?

그러한 시스템을 갖춘 좋은 사례가 바로 독일이다. 손쉬운 정당의 설립, 지역 정당의 인정, 충분한 국고보조금, 선거공영제 등 다양한 제도들이 구비되어 있어서 누구든지 어렵지 않게 정치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정치권이 개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치에 대한 국가의 과감한 투자는 과거 합법적으로 등장하였던 나치에 대한 경험에서 국민들에 대한 정치 및 민주주의 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한 가지 체험을 소개한다.

쾰른대학에서 공부할 때의 일이다. 정치시스템 과목이었는데, 개인적인 자리에서 그 세미나 전임강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독일에서 대학교수와 연방하원의원(우리의 국회의원) 가운데 어떤 자리가 더 나은가? 당신이라면 어떤 자리를 원하는가?"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딱히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자신이라면 교수 자리를 택하겠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진입장벽의 측면에서 볼 때 교수직이 더 어렵지 않을까"하는 뉘앙스였다(독일에서 교수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하겠다). 즉, 정치에 대한 진입 장벽이 높지 않다는 얘기였다. 한국에서는 총장을 하다가도 국회의원 자리가 있으면 달려간다고 하는데, 이것은 독일과 달리 정치에 대한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이 아닐까?

독일 기본법 21조 1항은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기여한다. 그러한 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그 내부규정은 반드시 민주적 기본원칙을 따라야 한다. 정당은 그 자금의 수입과 지출, 재산에 대해서 반드시 공개적으로 소명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인 사항들은 1967년에 제정된 정당법에 나와 있으며, 그 기본정신은 큰 틀에서 정당들이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그 활동에 제약을 받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정당의 수입에는 당원들의 당비납부, 개인 및 기업들의 기부금(후원금), 선출직 의원들에 의한 기여금, 국고보조금, 기타 정당행사에 의한 자체수입 등이 있다. 정당제도가 잘 발달한 독일에서는 정치자금 관련 주요 내용은 주로 정당의 자금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국제비교를 보면, 독일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먼저 정당의 전체수입에서 당비에 의한 부분이 상대적으로 많고, 기부금 비율은 비교적 낮다. 또 공공의 지원에는 다양한 방법들이 존재하는데, 직접지원의 형태인 국고보조금(과거 선거비용충당금)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간접적 형태에는 라디오나 텔레비전의 공영방송을 통한 선거운동 무료홍보, 지방자치단체에 의한 선거현수막 게시, 원내교섭단체 활동에 대한 지원 등이 있다. 또한 당비, 소액기부금, 선출직 기여금 등에 대해서는 그 납부자들에게 세제혜택이 주어진다. 득표율 5%를 넘는 정당은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기 때문에 연방의회에 진입한 정당은 모두 이러한 혜택을 보게 된다.

정당의 수입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규칙적인 당비납부액은 정당별로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전체 수입의 약 25%에 달한다. 국고보조금은 30% 내외를 차지한다. 개인이나 법인에 의한 기부금은 15% 정도 되는데, 그 액수에 대한 제한은 없다. 기부금의 일정액에 대해서는 세제혜택이 주어지며, 기부금을 받은 정당은 그 기부금 액수에 비례하여 추가적으로 국고지원을 받을 수 있다. 자기 당 출신 선출직 의원들이 당에 내는 기여금도 10~20%에 이른다. 그밖에 정당행사, 바자회 등 자체활동에 의한 수입도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정당법 18조에 따라 자격이 되는 정당들은 매년 국고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그 보조금 액수를 결정하는 것은 "각 정당이 사회에 얼마나 뿌리를 내리고 있느냐"이며, 이는 각종 선거에서의 득표율에 따라 결정된다. 또한 당비, 선출직 기여금, 기부금 등도 중요하다. 그 총액의 일정비율을 보조금으로 받기 때문이다.

동법 18조 2항에 의거하여 정당들에 대한 연간 국고보조금은 그 총액에 대해 '절대상한선'을 두고 있다. 2011년에는 1억 4190만 유로, 2012년에는 1억 5080만 유로(약 2200억 원)로 매년 조금씩 인상된 액수가 법으로 정해졌다. 그러나 2013년부터는 물가지수에 따라 연동되도록 했는데, 총액의 70%까지는 소비자물가에 따라, 30%까지는 정당 종사자들의 급여인상에 따라 조정하도록 하였다.

18조 3항에 따라 개별정당이 받는 연간 국고보조금은 최근 선거에서 그들이 받은 득표수(보다 정확하게 유권자의 정당투표에 의한 득표수) 곱하기 0.70유로(약 1000원)이다. 단, 득표수가 400만 표 미만일 경우에는 득표수 곱하기 0.85유로를 하게 된다. 이는 우리와는 반대로 군소 정당들을 좀 더 배려한 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무소속일 경우에는 자기가 득표한 수에 0.70유로(또는 0.85유로)를 곱한 금액을 받게 된다. 이 외에도 각 정당은 앞에서 말한 당비, 선출직 기여금, 적법한 기부금 수입 등의 총액에 대해서 각 1유로당 0.38유로(약 550원)를 추가적으로 받는다. 이러한 금액산정 시 개인의 기부금은 1인당 3300유로까지만 계산된다.

이와 같은 국고보조금은 전국단위의 연방의회 또는 유럽연합의회 선거에서 최소한 0.5% 이상을 득표한 정당에게, 또 지방단위의 주 의회 선거에서는 1% 이상을 득표한 정당에게만 지급된다. 이러한 낮은 득표율 기준은 위에서와 마찬가지로 군소 정당들의 정치활동을 보다 장려하는 제도적 장치라고 하겠다.

▲ 표1. 2008년 독일 정당들의 수입현황 (단위 : 천 유로, 연방의회 자료 참조) ⓒ조성복

<표1>을 보면 기민당과 사민당의 당비수입은 연간 4000만 유로를 훨씬 넘는 것을 알 수 있다. 양당의 당원 수가 40여만 명임을 감안할 때, 그들 대부분이 월 10유로 정도의 당비를 내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다른 소수당의 경우도 비슷하다. 녹색당과 좌파당의 당원 수가 약 6만 명 정도임을 감안할 때, 물론 좌파당의 당비수입이 다소 많기는 하지만 당원들이 매월 일정액의 당비를 내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처럼 독일 정당의 당원들은 대부분 소위 '진성당원'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좌파당은 전체 수입에서 당비의 비율이 다른 당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고, 녹색당은 선출직 의원들의 기여금 비율이 매우 높은 편이다. 자민당 및 기사당은 개인 및 기업의 기부금 비율이 나머지 당들에 비해 월등하게 높다. 그와 반대로 사민당, 녹색당, 좌파당은 기부금 비율이 낮은 편이며, 특히 기업 기부금 비율은 현저하게 낮다. 반면에 사민당은 행사 등 기타수입의 비율이 다른 당들에 비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표2>의 정당별 지출내역은 대체로 서로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표에서 기사당의 선거운동 지출비율이 특별히 높은 이유는 2008년에 바이에른 주 의회 선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 표2. 2008년 독일 정당들의 지출현황 (단위 : 천 유로, 연방의회 자료 참조) ⓒ조성복

그 밖에도 원내교섭단체에 대한 국고지원이 있는데, 이는 공식적으로는 정당예산에 들어가지 않지만, 원외 활동에도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정당의 간접적 수입원으로 볼 수 있다. 그 총액은 2012년 기준 약 1억 9000만 유로에 달한다. 이외에 정당과 가까운 정치재단들에 대한 국고지원이 있다. 이 지원금은 점점 더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2011년 기준 약 4억 2300억 유로로 정당들에 대한 직접 지원금보다 약 3배 가까이 많은 액수이다.

한국의 경우, 2012년 기준 전체 정당의 수입총액은 약 3000억 원 정도이며, 이 가운데 국고보조금은 약 1020억 원으로 집계되었다. 그 가운데 대부분을 거대 정당들이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각각 200만 명이 넘는 당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 대부분은 거품이며, 실제 당비를 내는 숫자는 10%에도 훨씬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반면에 소수 정당들은 비록 당원들의 숫자는 적지만 당비를 내는 비율은 50%를 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독일은 가능한 한 다수의 정당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직/간접적인 지원을 하고, 특히 군소 정당들을 배려하는 등의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갖추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의 그것은 대단히 취약할 뿐만 아니라, 그마저도 거대 양당에만 집중되고 있다. 그러한 양당체제가 유지되는 이유는 기존 정치권이 자신들의 기득권에만 안주하려는 경향 때문이며, 그 핵심에는 '소선거구 단순다수제' 선거제도가 자리하고 있다.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볼 때 우리 정치권이 다른 분야와 비교하여 한참 뒤처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회갈등을 해소하는 정치권 본연의 역할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에 분노하고 혐오감만 표출해서는 곤란하다. 정치권이 문제이기 때문에 이를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은 더욱 큰 잘못이다. 정치 자체를 축소시켜서는 우리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반대로 정치를 보다 더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갈등을 안고 있는 사회의 다양한 세력들이 정치권으로 들어와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국가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청년, 비정규직, 노인, 환경주의자, 사회적 약자 등 여러 집단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비례대표제를 대폭 확대하는 선거제도의 개혁과 분권형 대통령제 같은 새로운 정치체제를 모색하는 것이다.

7.30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양당의 후보들이 나와서 한쪽은 "안정된 과반의석을 만들어 달라", 다른 쪽은 "세월호 정권을 심판해 달라"고 호소하지만 크게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 어느 쪽이 된들 우리사회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따라서 여야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위에 언급한 비전(정당제도 개혁, 비례대표제 확대, 정치체제 개혁 등)을 제시하고 앞장서 실천하는 정치인이나 정당이 결국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게 되는 시기가 곧 도래할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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