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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인은 늘어나지만 먹고 살 길 없는 농촌, 대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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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귀농인은 늘어나지만 먹고 살 길 없는 농촌, 대안은? [마을주의자]<15 >거창 두레누리살림터 '마을목사' 유성일
농촌은 대체 조용하다. 마을에 사는 많지 않고 사건, 사고도 별로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촌 마을의 풍광은 한마디로 고즈넉하다, 그런 마을 한쪽에 자리 잡은 작은 교회는 보기에 인상적일 수밖에 없다. 도시의 크고 화려한 건축양식의 교회건축물에 익숙한 처지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작은 교회 하나로 농촌마을은 더욱 평화롭고 상서로운 공간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관찰자로 하여금 바로 이런 궁금증과 호기심을 유발한다.

"신도는 몇 명이나 될까, 목사는 어떻게 먹고살까."

본디 사람과 세상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민간인이라 그럴 것이다. 더러 참지 못하고 불쑥 교회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교회 안을 찬찬히 살펴보면 거룩함이나 엄숙함 같은 상투적인 종교시설의 기운조차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저 마을 안의 일반 농가주택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의 현장 같은 모습을 띠고 있다. 거기서 일하고 사는 목사는 좀처럼 농부와 구별되지 않는다. 행색이나 표정이 마을 속에 충분히 녹아들어 있다. 종교의 비장함으로부터 스스로 무장 해제돼 있다.

그래서 그런지, 농촌에서는 마을 만들기나 협동조합 같은 마을공동체사업에도 목사가 앞장서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믿음을 가진 데다 공부도 많이 한 성직자가 공동체사업의 책임을 지고 있으니 보기에 좋다. 신도든 아니든 마을주민으로서는 더욱 믿음이 간다. 게다가 성직자의 특성상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자세는 공동체 구성원인 일반 농민에게 백 마디 말보다 더한 설득력과 통솔력을 발휘한다. 적어도 농촌의 작은 마을에서는 굳이 교회와 민가, 종교와 생활의 경계를 구분 지을 필요가 없어 보인다. 목사와 농부의 삶 동선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목사는 곧 농부인 것이다.

농사짓는 교회, 갈릴리교회

▲ 유성일 목사. ©정기석
거창 오계리 묵동마을에도 작은 농촌교회가 있다. 1986년에 세운 갈릴리교회다. 원주민 마을에서 좀 떨어진 두레누리살림터 안에 황토벽돌로 지은 생태건축물이다, 얼핏 십자가나 간판만 없다면 여느 귀농인의 농가주택처럼 보인다. 이곳을 세우고 꾸리고 있는 유성일 목사(60)는 농촌목회를 시작한 지 30년이 넘었다.

그런데 여전히 마을 공부, 사람 공부, 세상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하면 할수록 더 어렵다는 표정이다. 그러면서도 농촌 현장에서 한발도 물러날 생각이 없다. 지금도 신도가 별로 없어 보이는 교회보다는 마을에, 논밭에, 그리고 지역사회에 머무르는 시간이 더 많다.

"아무래도 마을공부를 다시 시작해야겠어요. 마을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지인들과 연찬이든, 수련이든 더 진지하고 치열하게 공부하고 싶어요. 농촌이 어려워지니 마을공동체를 세우고 꾸리는 일도 더 힘겨워지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럴수록 초심으로 돌아가, 공부하고 단련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스스로 다그치고 있습니다."

유 목사는 마을공동체가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미 나름대로는 마을공동체로 가는 현실적 시도를 다양하게 하고 있다. 특히 농촌에 사람이 들어와 살 수 있도록 하는 데 관심과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기독교대한감리회 농촌선교훈련원과 귀농학교를 운영하기도 했다. 매주 5일간, 장장 4개월 동안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는 ‘지독한’ 교육과정이었다. 끝까지 버티고 남은 교육생은 단 2명이었다.

"의욕이 컸어요. 귀농의 뜻만 헤아리고 정신교육만 받고 돌아가는 건 크게 도움이 안 된다고 봤어요. 귀농학교를 마치면 바로 귀농해서 마을주민으로 살 수 있을 정도로, 제대로 교육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기간이 길다 보니 교육생들이 몸도 마음도 지치고 동기부여도 떨어지더라고요. 무엇보다 실제로 마을에 내려와 ‘생활할 수 있는 기술’을 가르치는 게 마땅치 않았어요. 그 부분부터 다시 공부해서 다시 학교를 열려고 해요."

아닌 게 아니라, 최근 수년 동안 귀농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이른 시일 안에 은퇴를 피할 수 없는 베이비붐 세대만 700만 명에 달한다. 이들은 어차피 도시에서는 마땅히 할 일이 없으니 농촌으로 눈을 돌린다. ‘인생2모작’을 설계해보려는 수요는 이토록 넘친다. 문제는 '농촌에서 무엇을 해서 먹고살 것인가'에 달려있다. 설사 먹고 사는 원초적인 문제를 해결하다 해도 ' 도대체, 왜 지역에, 농촌에 내려와 살려 하는지'에 대해 자신을 설득할 수 있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 어쨌든 사람이 없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오늘날의 농촌으로서는 '도시민의 귀농행렬'은 기회이자 위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농촌에서 먹고 살 수 있는 법'을 제대로 가르치는 곳은 없다. 단기속성 코스로 농사 기술이나 농촌의 가치를 가르치는 곳은 넘쳐나지만, 농촌에서 지속할 수 있는 삶을 영위하는 법을 깨우치는 학교는 없다. 어디로 귀농하는 게 좋은지도 알 수 없다. 부동산업자, 건축업자가 귀농컨설턴트 행세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농촌도 준비가 부족하다. 정책만 있고 실천은 없다. 도시의 귀농예정자들보다 농촌에서 먼저 귀농인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마을 부지를 사서 집만 생태적으로 근사하게 지어놓는다고 귀농의 생활이 보장되는 게 아니다.

"귀농의 기술보다 생활의 기술이 더 절실하겠지요. 적정기술, 협동조합 등 농촌에서 소용되는 실용적인 교과과정을 개발할 필요가 있어요. 그게 귀농학교든, 마을학교든 이름은 중요치 않다고 봐요. 이럴 때 농촌의 사정을 잘 아는 농촌교회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고요. ‘귀농인을 위한 생활목회’라고나 할까, 젊은 목사들부터 교회 건물 크기나 신도숫자에 미련을 두지 말고, 농민으로, 마을주민으로 살려는 '농촌목사'로서 자꾸 귀농했으면 좋겠어요."

유 목사는 이런 귀농학교나 마을학교에 대한 기대가 크다. 도시교회와 농촌교회가 손을 잡고 귀농에 뜻이 있는 평신도들을 교육하기를 바란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도농교류와 도농상생의 유기적 네트워크가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마침내 농촌교회는 교회의 경제적 자립을 이루고, 농촌 마을공동체의 사회경제적인 발전과 성장까지 챙길 수 있다는 것이다.

지속할 수 있는 마을공동체, 두레누리 살림터

▲ 두레누리살림터. ©정기석
유 목사는 원주민은 물론 귀농인과 더불어 어울려 사는 공동체 마을을 만들고 싶다. 물론 지금도 장애우와 함께 살아가는 ‘두레누리살림터’를 꾸리고 있다. 바로 그 위쪽에 적당한 마을 터까지 이미 마련해놓고 있다. 사람만 오면 된다.

"농촌에서 자유와 안식 그리고 건강과 생명이 나온다"는 게 유 목사의 지론이다. 하지만 “이미 농촌도 도시화가 돼서 진정한 농촌은 남아있지 않은데, 우리가 원한다면 진정한 농촌을 건설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 생각과 믿음을 직접 실천하고 실증할 수 있는 농촌마을공동체를 이루고 싶은 소망이다. '두레누리 마을'의 청사진은 당연히 생태적이고 공동체적이다. 친환경적인 농사와 건축을 통해 식량과 에너지는 자급한다. 교육 자치를 실현하는 문화예술영성공동체로 발전한다. 10가구 남짓이 모여 '영성, 나와 우리의 공동체 마을'이라는 대안적 삶의 터전을 가꾼다는 계획이다. 물론 이 모든 일을 유 목사 혼자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할 수도 없는 일이다. 특히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을 지내다 최근 예수살기 총무를 맡은 양재성 목사와 수시로 머리를 맞댄다.

"수만 년, 수천 년을 이어온 지속할 수 있는 자연부락이 무너지고 있어요 일제에 의하여 한바탕 부서진 마을이 산업화, 도시화로 인한 이농현상으로 완전히 무너지고 있는 거죠. 농촌은 인구의 급감은 물론 소득의 감소로 인해 점점 살기 어렵고, 농촌의 해체는 지속 가능했던 마을 공동체의 붕괴를 의미해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 곳에서 일어나는 마을 공동체 구성은 희망을 주고 있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요? 그것이 우리의 최대 과제죠. 의식주의 자급, 지속 가능 에너지의 자급이 없이는 지속가능한 마을을 만들 수 없어요. 지속 가능한 에너지의 개발과 생명의 먹을거리, 친자연적인 주거시설, 천연소재를 쓴 의류 등 지속 가능한 삶은 내 생각에서부터 시작되는 거죠."

두 목사는 이렇게 나눔과 섬김의 밥상공동체, 원시 기독교공동체, 생태영성 공동체 등의 가치와 비전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 마을로 가는 길의 믿음직한 도반이자 동지라 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생태영성을 기반으로 한 지역순환 마을을 지향해요. 개발을 최소화하고 자신이 살 집은 직접 전문가와 함께 생태적으로 건축할거고요. 생태순환농업을 기반으로 자급자족하는 마을이 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죠. 작은 단위의 지속 가능한 마을과 도시생활자들의 연대로 교육과 문화, 삶의 방식을 공유하게 됩니다. 먹을거리와 에너지를 자급하고 장기적으로는 의식주 전체를 자급자족한다는 당찬 각오지요."

또 두레누리 마을은 마을 이름에 걸맞게 두레정신을 실천하는 공동체 마을이다. 기독교적인 가치인 하나님 사랑, 자연사랑, 인간 사랑을 중심으로 영성과 교육, 농사와 문화가 녹아든 마을이다. 이때 마을의 산업과 문화는 협동과 조화를 지향한다. 협동조합이나 마을기업 같은 협동사회경제가 마을의 산업과 경제를 이룬다. 무엇보다 유 목사는 신뢰를 기반으로 교육하는 마을을 진정으로 원한다. 마을 전체구성원을 배려하되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 마을이다. 지속적 교육을 실시할 마을학교를 운영하고 추후 전문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한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두레누리 마을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연대하는 마을이다. 너와 내가 따로 없다. 같은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단체를 찾아 연대하여 '우리'의 경험을 공유하고 협력을 교류한다. 종교, 지역, 이념쯤은 훌쩍 뛰어넘는 협동과 연대의 대동 사회를 꿈꾼다.

"마을이 살아야 지역이 살고 지역주민도 산다. 영적인 귀향을 하지 않으면 인류는 지구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다만, 마을로 가는 길은 생명평화의 길이라야 한다. 예수는 그 생명평화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사랑의 삶을 추구했다."

유 목사가 늘 가슴에 품고 있는 말이다.

※ 지난 [마을주의자]<14>는 직접 인터뷰에 의존하기보다, 주로 당사자의 발표, 토론 내용을 필자가 관찰자의 입장에서 주관적으로 청취하고 정리하고, 당사자의 해외농촌연수보고서, 타 매체 인터뷰기사(행복중심생협연합, 농어민신문) 등도 일부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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