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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오월'은 '정치적으로' 불편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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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오월'은 '정치적으로' 불편할 수밖에 없다" [기고] 달콤한 이슬의 민중미학을 담은 걸개그림
지금 광주에서는 1980년대 이후 거의 잊혔던 걸개그림이 다시 그려지고 있다. 민주화를 열망하던 민중의 거대한 외침과 더불어 광장에 나부꼈던 걸개그림이 작가와 시민의 협동창작으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 초, 첫 걸개그림이 탄생했을 때 그것은 감로도(甘霖圖)의 회화미학과 괘불탱화(掛佛幀畵)의 의례형식을 창조적으로 전승한 것이었다. 감로도는 "지옥 아귀도에 빠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부처에게 설법을 듣는 불화"이고, 괘불탱화는 "법당 밖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거행할 때 걸어 놓는 탱화"이다. 더 간단하게 말해 감로도는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불화고, 사찰 마당에 거는 탱화가 괘불탱화다. 걸개그림이라는 말은 '거는 그림'이라는 '괘화(掛畵)'를 풀어쓴 것이다.

▲ '세월오월' 부분도. ⓒ홍성담과 시각매체연구회

광장에 거는 걸개그림

감로도나 괘불탱화 같은 불화(佛畵)는 법당이나 사찰에 거는 것이지만, 걸개그림은 마당에 거는 것이요, 광장에 거는 것이다. 불화가 종교적 신심(信心)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그림이라면, 걸개그림은 민중의 해원과 공동체적 신명을 위해서 거는 그림이다. 또한 불화는 불교의 경전과 이치에 따른 서사에 바탕을 두고 탄생했기에 전통이 오래됐을 뿐 아니라 화법의 구성과 채색방법이 하나의 율법을 이루지만, 걸개 그림은 그림이 탄생하는 시대와 현실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처음엔 걸개그림도 감로도의 상중하단의 상징적 회화구성과 의미를 차용하기도 했으나, 점차 등장인물과 내용을 당대적 인물과 서사로 채워 새로운 민중적 감로도, 민중적 괘불탱화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멕시코 혁명 벽화에서 걸개그림의 회화적 혁명성을 찾아볼 수도 있지만, 사실 세계 미술사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광장형' 걸개그림의 미적 형식은 민중미술이 성취한 탁월한 위대성이기도 하다.

이 시대의 감로도 '세월오월'

'세월오월'은 이 시대의 감로도(甘露圖)다. 아귀도에 빠져서 먹지 못하는 고통을 당하는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목련존자는 온갖 음식을 부처에게 공양했다. 이로부터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음식공양의 절차를 그린 불화가 탄생했는데, 그것이 감로도다. 이 감로도의 서사구성은 '세월오월'의 서사적 구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귀도에 빠져서 먹지 못하는 고통을 당하고 있는 어머니"는 20세기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해서 당도한 지금 여기의 민중적 현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광주 시민의 다양한 의견개진과 작가의 주장이 한데 어울려 있는 '세월오월'은 아귀도와 같은 이 세상에서 고통을 당하는 민중들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재구성했다. 특히 이 그림은 감로도의 하단을 구성하는 아귀상, 지옥상, 윤회중생을 압축적으로 또 현대미술의 미학으로 재창조했다. 야스쿠니의 망령에 홀린 일본 아베 총리에서 MB정부의 4대강 파괴, 촛불 어머니들, 5·18 영웅 혼령들의 밥 짓기,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 집회, 제주 강정, 김기춘 대원군과 박정희의 혼령을 뒤집어쓴 박근혜 대통령, 어버이연합의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 초상 불태우기, 그리고 진도 팽목항의 슬픔까지 콜라주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런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나서는 목련존자는 누구인가? '세월오월'은 시민군 청년과 바리데기 처녀를 내세운다.

사천왕으로 묘사된 청년과 처녀는 음양을 이루며, 오행을 나타내는 오방색의 중심을 양분해 침몰한 세월호를 들어 올린다. 이처럼 '우물신화'에 바탕을 둔 그림은 대응과 저항의 실천 주체로 구성된 그림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세월호는 세월호만의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밝혀지고 있듯이 숱한 한국사의 어두운 이면들이 얽히고설켜서 끝내 참혹한 침몰의 학살로 이어진 권력과 욕망과 망상의 실체였다. 우리는 그 실체의 낱낱을 규명하기 위한 시민투쟁에 나서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진심을 다해 소망해야 하는 것은 씻김과 해원의 마당굿이다. 세월호의 아이들이 그림처럼 우물의 흰 빛으로 다시 태어나 은하수를 헤엄치는 미르가 되기 위해서라도.

걸개그림의 세 가지 특징과 '세월오월'

1980년대 열사의 죽음 선두에 섰던 걸개그림은 미학적 정치성을 뛰어넘어 공동체적 영성의 연대를 만들어 냈다. 이유가 뭘까. 그것은 걸개그림이 가진 독특한 성질에서 비롯됐다. 걸개그림이 가진 몇 가지 주요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걸개그림은 공동창작에 의해 기획되고 제작된다. '세월오월'이 광주비엔날레 20주년 기념 특별프로젝트로 기획됐을 때부터 홍성담과 시각매체연구회는 이미 그들이 수십 년 전부터 그래 왔듯이, 공동창작과 협동창작을 바탕에 두고 출발했다. 특히 시민참여 공개모집을 통해 '시민과 함께 그리는 걸개그림 2014'를 내세워 광주 정신의 확장을 꾀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걸개그림은 과거가 아니라 바로 이 시대 현실에서 다시 태어나야 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일방적 작가주의 미학이 아니라 열린 민중적 미의식을 수용하는 활사개공(活私開公, 나를 살리고 모두를 여는)의 민중미학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이들은 안내용 전단을 시작으로 시민참여형 걸개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렸다.

"광주비엔날레 20주년 기념 특별프로젝트 걸개그림은 5월 항쟁(민주화운동)과 그 이후의 진상규명투쟁, 1987년 시민항쟁을 거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중요한 사건을 주 내용으로 담을 예정입니다. 그 전 과정을 다양한 영역의 예술가들과 광주시민이 함께 제작방향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고, 강연을 통한 교육 및 제작에 직접적인 참여를 하게 됩니다." - '걸개그림제작 시민참여 공개모집 안내문' 중에서

걸개그림은 공동창작과 협동창작을 통해 미술은 한 개인의 예술 역량에 따른 고유한 창작물이라는 관점을 해체했다. 천재형 근대 예술가론을 여지없이 해체해버린 것이다. 이런 창작방법론은 지금 공동체 예술론의 한 지류라고 할 수 있는 '파견미술', '예술행동 앗싸라비아', '팝아티스트 협동조합'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이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은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다.

걸개그림의 두 번째 특징은 현장 미술로, 현장성이 생명이라는 사실이다. 마당에, 광장에 내걸리지 않는 걸개그림은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 걸개그림의 소통은 오직 그림이 광장에 내걸렸을 때 발생한다. 걸개그림은 시각 이미지로 광장에 섰을 때만 회화미학의 '청각성'을 발산하고 회복한다. 즉, 걸개그림은 여타의 회화와 달리 '감상용'이 아니라 '외침용'이며, 시민과 더불어 해원(解寃)의 소리를 모아서 발언하는 민중적 법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걸개그림의 현장성은 장소 특정성이 아니라, 공간 귀속성이라 할 수 있다. '특정 장소에 대한 외침'이 아니라, '특정 공간에서의 외침'이기 때문이다.

'세월오월'은 광주시립미술관 외벽에 걸리는 것을 전제로 제작됐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광주시립미술관이라는 공간에서의 외침을 기본적으로 전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더 넓게 생각해보면, 이 그림은 미술관이 아니라 광주라는 도시가 외침의 공간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그들은 광주라는 도시 전체를 하나의 '광장'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광주가 '평화와 인권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걸개그림의 외침이 광주뿐 아니라, 아시아로 세계로 울려 퍼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새벽 종소리처럼 울려서 자각하지 못하는 뭇 생명, 즉 중생을 일깨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특징은 걸개그림의 외침이 프로파간다(propaganda)라는 사실이다. 프로파간다를 나쁘게 오독하거나 변질시켜서 단순한 선전 효과로만 해석하는 건 잘못이다. 파시즘이나 독재의 선전물처럼 인식하는 것은 더욱 나쁜 해석이다. 프로파간다의 본래 의미는 신심을 다해 타인에게 어떤 것의 존재와 효능, 주장 따위를 설명하며 동의를 구하는 것을 말한다. 신심을 가진 한 사람이 이방인 사회에서 어떤 존재에 대해 신심을 다해 설교하며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걸개그림은 왜 프로파간다여야 할까? 앞서 언급했듯 걸개그림은 그 자체로 미학적 완성을 성취할 수 없다. 걸개그림의 미학적 가치는 그것이 더 많은 민중과 더불어 하나의 외침을 만들어 낼 때 비로소 완성되는 공동체적 미학을 가졌다. 그 외침의 확장성을 프로파간다라고 말할 수 있다.

'세월오월'이 시민의 참여로 완성되고 다시 시민의 품인 광장에 섰을 때 그림은 비로소 미학적 생명성을 획득할 뿐만 아니라, '타자적 관계'의 공동체성으로 확장될 수 있다. 홍성담과 시각매체연구회 작가들은 80년 5월 광주를 겪고 난 뒤, 그해 7월 전남 나주 남평의 한적한 드들강변에서 미술 진혼굿을 펼친 바 있다. '세월오월'의 걸개그림 작업은 바로 이 진혼굿의 연장선에 있다고 봐야 한다. 한마디로, '세월오월' 또한 미술 진혼굿인 것이다. 이 미술 진혼굿은 한 판 신명 나는 탈춤과 다르지 않다. 그들끼리의 진혼굿이 아니라, 시민 모두와 함께 추는 걸개그림 춤이기 때문이다.

풍자는 절망과 분노에 찬 민중의 해원 풀이다!

예부터 탈춤은 풍자와 해학으로 가득했다. 담시 '오적(五賊)'을 쓴 시인 김지하는 '풍자냐 자살이냐' 하고 묻기도 했는데, 풍자 미학이 없는 탈춤이란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굿을 하는 무당은 인간이 아니라 신이어서 굿하는 순간만큼은 그 누구도 상하 귀천을 따질 수 없다. 탈춤을 추는 광대도 민중의 이야기를 담아서 추는 춤이기에 설령 임금이라 할지라도 풍자의 해학을 폐하지 않았다. 굿을 해 귀신의 원한과 인간의 슬픔을 달래듯, 광대도 탈춤으로 민중의 절망과 분노, 억압을 풀었다. 그렇게 풀 수 있는 시간을 둠으로써 세계는 조화를 이루고 삶의 진정성을 회복했다. 위대한 성군 시대일수록 민중의 이런 해원 풀이는 더 많이 용납됐고, 가뭄과 질병이 만연한 시대에는 임금이 자신의 부덕의 소치를 하늘에 고함으로써 백성의 어려움을 구하고자 했다. 따라서 풍자와 해학이 없는 시대는 독재다.

'세월오월'의 미학은 감로도와 괘불탱화에서 왔으나, 현대 미술로서 그 핵심은 풍자와 해학에 있다. '세월오월'에 새겨진 낱낱의 세목들이 '정치적으로'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풍자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문을 장식하는 숱한 만평과 카툰이 일상의 사건을 풍자하듯이 '세월오월'도 지금 이 시대를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꼬집고 질타하고 비틀어서 풍자를 던질 때 민중은 해학의 해원 풀이라는 독특한 마음의 상태에 이른다. 즉, 굿과 탈춤, 걸개그림이라는 대체미학을 통해 분노를 내려놓고 절망을 내려놓는 것이다. 이런 해원의 미학을 알지 못한 채 그림의 세부를 문제 삼아 이러쿵저러쿵하며, 그러니까 인격 모독이라는 식으로 트집을 잡는 것은 문화적 무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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