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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도 '돈'으로 보이는 중독자들!

[서리풀 논평] 주술이 된 서비스 산업과 경제 성장

주술이 된 서비스 산업과 경제 성장

"돈이 도네요···고마워요, 프란치스코"

내로라하는 일간지가 8월 14일 경제면 제일 머리에 뽑은 헤드라인이다. 브라질 방문 때는 5389억 원, 호주(오스트레일리아) 방문 때는 2400억 원의 경제 효과가 있었다고 친절하게 계산해 놓았다.

교황은 이미 "주가 지수가 2포인트 떨어진 것은 뉴스가 되는데, 늙은 노숙인이 밖에서 죽는 것이 어떻게 뉴스가 되지 않을 수 있는가"라고 했던 적이 있다. 여기에 아주 딱 맞는 기사. 이 사실을 알면 교황이 인용할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황당했지만 우연히 나온 기사는 아닐 것이다. 온 세상이 끝 모를 경제와 성장 논리에 완전히 지배당한 결과가 아닐까. 경제학자 칼 폴라니가 말한 '악마의 맷돌' 그리고 많은 종교가 말하는 우상 숭배가 저절로 떠오른다. 경제와 산업이야 그렇다 치고, 정부, 언론, 학계 어느 곳 할 것 없이 이것 한 가지로 돌아가는 것이 가감 없는 현실이다.

ⓒ 중앙일보

지난 12일 정부가 내놓은 '서비스 산업 투자 활성화' 대책도 그런 맥락에서는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보건의료, 관광, 콘텐츠, 교육, 금융, 물류, 소프트웨어 등 7개 유망 서비스 산업이 또 등장했다.

골자는 한 가지뿐, 단순하다. "돈 버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한다"는 선언. 카지노, 복합 리조트, 홈 쇼핑 채널에다 '모범' 사례까지, 시시콜콜 참 자세하기도 하다. 보통 사람들의 삶은 없고 노골적인 편들기란 점에서 정책 목표의 편파성도 비슷한 예가 드물다.

의료야 핵심 중 핵심이니 빠질 리가 만무하다. 의료법인 자법인, 투자 개방형 외국 병원, 의료 기관 해외 진출과 환자 유치, 메디텔 활성화 등을 총동원했다. 여기에다 이번에는 용감하게 한 발 더 나갔다.

줄기세포와 유전자 치료제의 임상 시험 조건을 풀고 신의료 기술을 조기에 적용하도록 '제한적 의료 기술' 선정을 완화하겠단다. 환자의 안전은 어디에도 없다. 의과 대학에 기술지주회사를 설립할 수 있게 하고, 의료 정보도 더 잘 '활용'할 수 있게 할 모양이다.

한 가지 한 가지 조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정책을 관통하는 정책 기조가 문제라고 주장하려 한다. 그리고 그 기조의 특징은 '절대화'라는 데에 있다는 것도. 그 유명한 막스 베버 식으로 말해 아예 '주술화' 또는 '재(再)주술화'라고 부르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우선, (정책 차원에서) 서비스 산업을 절대화하는 분위기부터 짚어야 할 것 같다. 지금 한국에서 서비스 산업은 '부국강병'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신화화와 물신화가 따로 없다. 서비스 산업만 잘 되면 마치 한국 경제가 벌떡 일어나고 팍팍한 살림이 단번에 펴질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전혀 증명된 바 없다. 의료와 교육을 이런 식으로 '소비'하는 국가가 어디 있는지 사례를 들어보시라. 맨날 미국, 홍콩, 싱가포르 예를 들지만, 편리한 대로 조각만 떼어 오는 일은 이제 그만 하길.

차분하고 건전한 판단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발전국가, 고도성장, 반도체와 포니의 유산이다. "이봐, 해봤어?"와 "(반도체) 우리도 할 수 있어"는 여전히 익숙하다. 30년도 더 지난 이 말은 '불굴의 도전 정신'이란 이름으로 아직도 질기게 작동한다.

무엇이 과장되어 있고 대안이 무엇인지, 우리도 조금은 할 말이 있지만 생략한다. 다만 물질적 삶의 전망을 만들고 있지 못한 정치와 정부의 책임이 무겁다는 것을 지적해 둔다. 서비스 산업 '대망론'은 1997~98년 경제위기 때 시작했지만, 기본 틀은 한 발자국도 못 나갔다. 명백한 정치의 실패요 정책의 실패다.

다음으로 말해야 할 것은 숫자와 지표의 절대화. 현대 자본주의 국가에서 숫자가 갖는 엄청난 권력은 두말 할 것도 없다. 영국의 사회학자 니콜라스 로즈는 아예 "숫자를 통한 통치(governing by numbers)"라고 했던가.

진작부터 그랬던 것이지만, 정부의 경제 정책에는 막상 구체적인 '사람'이 없다. 서비스 산업이 경제를 살리고 내수를 활성화한다고 한다. 그리고 일자리를 늘릴 것이라고 보탠다. 그러나 껍데기인 숫자만 있을 뿐이다.

여기에는 누가 부담하고 누가 소비하는지, 또 혜택은 누가 보는지가 없다. 일자리라고 하지만 그것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은폐된다. 더욱 심각해지는 소득 양극화에는 일언반구 말이 없는 상태에서 내수는 어떻게 활성화하는가, 그렇게 된들 또 누구를 위한 것인가. 서비스 산업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일자리가 과연 '좋은' 일자리일까.

눈에 보이느니 숫자요 퍼센트일 뿐이다. 아무래도 정부는 내용과 실질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따는 총량 지표로서의 경제 성장률, 일자리 개수 몇 퍼센트 증가 말고 무슨 관심이 있을까.

국민 총생산 몇 퍼센트 증가가 얼마나 알맹이 없는 소린가는 이제 전 세계가 공유한다. 도박도 무기도 환경오염과 의료 사고도 모두 국민 총생산액에 잡힌다. 평범한 사람의 삶의 질과 행복을 나타내지 못한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 숫자에 명운을 건다.

이제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경제와 성장의 절대화가 자리 잡고 있다. 말하기도 새삼스럽긴 하다. 하루 이틀된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러나 이 정부 들어 모든 것의 경제화 경향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워낙 큰 문제가 많아 주목을 받지도 못한 채 지나갔지만, 박근혜 정부의 2기 내각에 중요한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바로 정부 전체가 경제를 (거의) 유일한 목표로 삼게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 말썽 많은 인사가 이를 잘 보여준다.

새 내각의 고용노동부 차관은 경제학을 전공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원 출신이다. 평소 과도한 고용 보호를 축소해야 한다는 소신을 가졌다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다. 그리고 과학 정책을 다루는 미래창조과학부 1차관에도 기획재정부 2차관이 옮겨 갔다. 노동 정책과 과학 정책의 경제화 기반을 충실하게 갖춘 셈이다.

사실 2기 내각 이전부터 이런 기조는 시작되었다. 잘 아는 대로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책 연구원의 경제학자 출신이다. 그리고 교육부의 차관도 교육계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산업인력 개발을 전공했다.

국방부 산하 방위사업청의 청장에 경제 관료가 임명된 것은 벌써 지난 정부의 일이다(같은 사람이 국방부 차관을 지냈다). 방위사업청의 비전(☞)에는 이런 것도 들어 있다. "방산수출 인프라 강화", "방산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지원". 바야흐로 국방 정책의 경제화.

경제 부처와 사회 부처의 구분이 없는 것은 물론 국방도 경제 부처에서 멀지 않다. 이제 완성된 셈이다. 정부와 내각과 정책의 전면적인 경제화-이건 정부가 대놓고 내세우고 있는 것이긴 하다.

주술처럼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경제와 성장률과 서비스 산업. 문제는 명확하고 어디로 가야할 지도 분명하지만 전망은 어둡다. 뿌리가 깊고 모두가 조금씩은 보태고 있기 때문이다. 금방 잘 해결되지 않을 게 뻔하다.

그래도, 절대화된 물신들(우상)에 대한 끈질긴 저항이 필요하지 않을까. 종교 지도자인 교황이 내내 하는 이야기도 여기서 그리 멀지 않다. "고삐 풀린 자본주의가 새로운 독재자로 등장했다. 지도자들은 빈곤과 불평등에 맞서 싸워야 한다."

한 가지 방법은 구체적인 데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서비스산업 투자 활성화 정책을 찬찬히 뜯어보는 성찰에서 출발해야 한다. '상대화' 또는 '탈주술화'라고 해도 좋다. 정책이 달성하려는 목표가 무엇인지, 그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누가 부담과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지.

고단하고 짜증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사회 보통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해하고 해석하는 작업을 피할 수 없다. 결국 그것이 사람과 삶을 되찾고 새로운 사회관계를 재구축하는 일의 기초인 한에는.

<프레시안>은 시민건강증진연구소가 매주 한 차례 발표하는 '서리풀 논평'을 동시 게재합니다. (사)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비영리 독립 연구기관으로서,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의 싱크탱크이자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연구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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