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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공부하고, 아이들은 노는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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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어른들은 공부하고, 아이들은 노는 곳은? [마을주의자]<17> 시흥 평생교육실천협의회 '마을평생교육사' 이규선
도시에서 살 만큼 산 도시민이 적지 않다. 저마다 고향을 떠나 객지 난민 노릇을 감당한 지 많은 세월이 흘렀다. 본격적으로 자의 반 타의 반 은퇴기에 접어들었다.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만 700만 명이다. 직장도 그만두고 자녀도 부모 품을 떠나 독립했다. 도시에서 더 살아가 이유와 명분이 희미해져 간다. 도시에서 '난민'처럼 계속 떠돌아야 하나. 아니면 정처를 찾아 귀향이나 귀농을 해야 하나. 이해득실을 곰곰이 따져보게 된다.

하지만 '농촌마을'로 막상 내려가자니 불안하다. 두렵다. 최소한 무작정 귀농이나 무모한 하방은 피하고 싶다. 마을에서 살아가는 방법도 잘 모른다. 엄두가 나지 않는다. 농사를 지어 먹고 살 수 있나. 먹고 사는 원초적 고민도 그렇지만, 도시에서 그나마 본인 몫으로 붙잡고 있던 사회적 역할이 사라질까 걱정이 깊다. 세상으로부터, 사람들로부터 이대로 잊히고 싶지는 않다. 마을로 내려가고 싶어도 도시민은 답답하고 막막하다.

그래서 도시민도 마을에 대해, 농촌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할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도시의 마을활동가 또는 운동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도시 속에서, 도시민과 더욱 부대끼며 '마을 만들기'며, '사회적 경제' 같은 공동체사업을 실천해야 한다. 마을로 내려가기 전에 '마을'과 '공동체'를 충분히 체화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이렇게 농촌마을로 언젠가 내려가든, 아니면 도시에서 계속 살든 상관없다. 마을을 아는 도시민이 많아지는 게 도시로서나, 농촌으로서나 바람직하다. 소비하는 도시와 생산하는 농촌은 어차피 공생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농촌을 살리자면, 아무래도 사람과 에너지가 더 많은 도시부터 먼저 살리는 게 도농상생의 효과적인 전략적 해법일 수 있다.

경기도 시흥시에는 도시형 마을공동체사업이 활발하다. 농촌마을만큼 인본주의, 공동체성 자원과 프로그램이 다채롭고 풍부해서 인상적이다. 어른은 마을에서 공부하고 아이들은 마을에서 노는 평생학습마을의 새로운 모델이다. 평생교육실천협의회 이규선(58) 회장이 도시민의 '마을공동체 회귀 본능'을 일깨운 성과다.

▲ 한국가스공사 연수원을 리모델링한 시흥시 평생학습메카 'ABC행복학습센터'. ⓒ정기석

도시의 마을도 낭만적인 공동체가 되었으면
"시흥시는 마을공동체 만들기 활동을 잘 해보려고 노력 중인 지자체라고 할 수 있어요. 시흥시에서 하는 마을리더 교육을 주로 맡아 하면서 느낀 점이에요. 3선째인 단체장부터 복음자리 빈민공동체 경험이 있으니 그럴만하다는 생각이죠. 하지만 마을 속으로 들어가 보면 특별히 각성한 리더가 많고 마을 주민은 별로 보이지 않아요. 도시라는 생활공간에서 마주치는 엄연한 현실이에요. 마을 리더는 처음에는 개인적인 이해관계로 참여해요. 그러다 서서히 공적인 삶의 가치를 인식해가죠. 마침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발을 깊이 들여놓게 되는 과정을 거쳐요. 그러면 쉽게 발을 빼기 어렵게 되는 거죠. 뭐, 그런 정도가 도시마을공동체에서 리더나 활동가들이 만들어지는 일반적인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기다릴 줄 아는 인내력이 필요한 작업이죠."
이 회장은 도시에서 하는 마을공동체 활동이 쉽지 않다는 점을 인정한다. 아무리 이타적이고 희생적인 선한 의식으로 무장돼 있다고 해도, 마을리더나 활동가들은 자칫 방심하면 지치거나 방향과 목표의식을 잃을 수 있다. 무엇보다 생업을 뒷전으로 하고 마을공동체 일에 집중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마을활동가에게는 무엇보다 주변의 응원과 격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실은 물론 어렵고 미래는 불투명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낭만적인 비전까지 제시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게 마을공동체 사업판에서 이 회장 본인에게 주어진 역할이자 사명이라고 믿는다. 기본적으로 마을공동체는 개별화된 삶보다는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정왕동 마을만들기 교육을 맡아 하고 있어요. 국토부의 도시재생 지원사업으로 진행하는 천지인 마을만들기 사업이죠. 그런데 이 마을은 여느 도시 마을과 좀 달라요. 주민구성이 이색적이죠. 주변의 시화공단에서 일하는 다문화이주민들과 원주민들이 혼재된 마을이에요. 1인 가구, 단기체류자도 많고. 아무래도 주민이 마을의 주인이라는 정주의식과 시민정신이 결여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그런지 쓰레기 무단투기로 골머리를 앓고 있죠. 원주민과 다문화 이주민 사이에 반목과 갈등으로 비화하지나 않을까 늘 노심초사예요. 더도 덜도 말고 '쓰레기 청소'만 잘 되어도 좋을 텐데 말이죠."

이 회장은 요즘 '쓰레기'에 집중하고 있다. 정왕동 마을주민들도 쓰레기 얘기만 나오면 예민해진다. 아무쪼록 쓰레기를 비롯한 개인의 요구들을 돈 말고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고 싶다.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협력하며 해결하는 사례를 만들어보고 싶은 것이다.

"이 쓰레기는 단순한 청소의 문제가 아니에요. 주민 말고도 복잡다단한 이해관계인들이 얽혀있어요. 가령 거주자 대신 쓰레기를 처리하는 청소대행업, 주인을 대신해서 주택임대업무를 맡은 주택관리업, 그리고 현재의 불합리한 부동산임대업 구조를 유지하려는 부동산업, 재활용쓰레기를 순환시키는 자원재생업 등이 모두 '쓰레기' 이해관계인이죠. 지금 주민과 사회적 경제방법으로 숙제를 풀어 보려고 노력 중이에요. 함께 모여 '마을인문학' 마을학교에서 공부도 하고 '우리 마을 생활쓰레기 이야기 포럼도 열고."

평생학습마을 사업은 일자리가 아닌 사람이 목적

▲ 평생교육실천협의회 이규선 회장. ⓒ정기석
'숨 쉬는 모든 이가 평생학습으로 자기완성의 기쁨을 맛보게 하는 것'. 이 회장이 이끄는 평생교육실천협의회의 사명이다. 이 회장은 평생교육사다. 44세에 방송대에 입학, 교육학을 공부해 한국평생교육사협회 초대회장까지 지냈다. 평생학습을 통한 마을 만들기 사업에 본격적으로 투신한 건 2012년부터다. 협의회 사무실을 두고 있는 시흥시의 평생교육프로그램으로 마을만들기 교육을 시작하면서부터다.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 공모사업에 선정된 게 직접적 계기죠. 물론 그전부터 시흥시의 평생학습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었죠. 참이슬마을이 첫 번째 프로젝트였어요. 일종의 '아파트 단위의 평생학습 마을 공동체'라고 할 수 있어요. 일본에서도 견학을 와 배워갔을 정도로 선도적인 사례로 자부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사람’에 초점을 맞추고 사업의 중심에 둔 게 주효했다고 자평해요. 마을만들기는 결국 사람이 하는 거니까요. 참이슬마을을 시작으로 시흥의 5개 마을에서 3년 동안 평생학습마을사업을 진행했어요. 그 과정에서 북카페, 농산물 도농직거래, 허브텃밭 등 마을주민들의 자발적이고 창의적 아이디어들이 사업화됐지요."
그런데 이 사업은 올해 말로 종료된다. 내년부터는 진흥원과 지자체로부터 절반씩 지원받던 사업비를 더 받지 못하게 됐다. 그러니까 올해 안으로 마을공동체사업의 자생구조를 스스로 갖추어야 한다는 말이다. 진흥원 등 지원기관에서는 이제 '일자리 사업'으로 연결해 자생구조를 마련하라는 주문이다. 하지만 이 회장 생각은 다르다.

"일자리 창출, 못 한다고 했어요. 이 평생학습 마을공동체사업의 공적인 목표를 일자리 창출에 놓고 갈 수 없다는 생각이거든요. 지금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일자리 창출' 구호가 지상과제처럼 난무하고 있지만, 마을공동체사업까지 일자리 창출로 연결시키는 건 억지스럽고 무리라다는 생각입니다. 만일 일자리 창출이 최고의 선으로 인정되는 순간, 평생학습은 경제의 하위개념으로 물러나게 되니까요. 평생학습을, 마을 만들기를, 마을공동체를 돈의 논리에 휘둘리게 할 수는 없어요."

이 회장의 마을평생학습 사업전략 또는 철학은 곧 '돈(결과)'보다 '사람(과정)'이다. 그래서 마을주민의 참여가 마을 만들기 설계의 기본원칙이다. 마을 코디네이터 선발 등을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와 마을 리더에게서 추천받았다. 함께 일할 마을 사람이 자기 일처럼 책임감을 가지고 후보자를 찾도록 했다. 이렇게 하자 마을 만들기는 남의 일이 아닌 마을주민의 일이 되었다. 상부 행정이나 외부 전문가가 해주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5개 마을마다 마을학교를 만든 것도 이 회장의 차별화된 마을 만들기 전략이었다. 마을 안에 정해진 공간과 거점이 없으면 마을주민이 모이기 힘들다는 생각이었다. 아파트단지마다 공간을 설정하고, 그 공간에 학교라는 명칭과 의미를 부여했다. 그리고 마을 주민 가운데 교장 선생님을 모셨다. 아무래도 직함을 가지면 마을 일에 더 관심을 가질 것으로 믿었다. 코디네이터는 교장 밑에 두었다. 다분히 의도된 것이다. 여느 학교나 직장처럼 마을공동체 사업조직도 공적인 위계를 정한 것이다. 마을 일도 직장업무처럼 진지하고 체계적으로 수행하게 한 것이다.

마을학교 강사는 따로 구하지 않았다. 마을주민 가운데 강사 요원을 발굴하고 양성했다. 교육 목적도 처음부터 ‘공동체성 회복’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마을학교의 목표는 그저 ‘마을에서 아이들이 잘 놀게 하자’는 게 전부였다. 그래서 전래놀이와 생태놀이를 주로 강의했다. 교육은 성공적이었다. 학원을 빼먹고 마을학교로 발길을 돌리는 아이들이 늘어갔다. 따분하게 배우는 게 목적이 아니라 즐겁고 신이 나게 노는 게 교육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마을학교는 어른은 공부하고, 아이들은 놀면서 위로도 받고 치유도 됐다.
지금 이 회장의 숙제는 평생학습마을의 자생구조를 실현하는 것이다. 마을주민들과 더불어 다양한 사업을 통한 지속가능성을 치열하게 타진하고 모색하고 있다. 놀이방 아이들 이유식, 유기농 한과제조 등 마을기업, 협동조합 설립도 준비하고 있다. 다른 마을끼리 서로 협동하고 연대해서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지역공동체 네트워크도 구상 중이다. 시흥시의 마을 주민은 어느새 '남의 고민'을 '우리의 고민'처럼 함께 공유하고 공감하는 사이가 됐다. 이렇게만 하면 자생구조는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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