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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왜 최동열 기륭 회장을 고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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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우린 왜 최동열 기륭 회장을 고발하나 [기고] "기륭 노조가 '최악질'?…역사 앞에 '영광'"
'무노조 경영'을 눈에 흙이 들어가도 지키겠다는 삼성이 왜 노동조합이 유해한 것인지, 만약에 노조가 있다면 어떤 집행부가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내부 교육을 했다. 그때 노조가 유해한 사례로 든 것이 기륭전자 노조였다. 바람직한 모습으로 든 건 현 현대자동차 노조 이경훈 집행부였다. 그때 삼성의 교육에서 기륭전자 김소연을 이렇게 표현한다.

“외부세력이 와서 다해줍니다. 부르스 난리치고 그 중에 주동했던 사람. 누굴까요? 이 양반이죠. 김소연 분회장이라고. 저 사람을 민주노총 금속노조에서 심습니다. 말 그대로 위장취업. '너 기륭전자에 가서 한건 제대로 해. 내가 앞으로 넌 챙겨줄게.' 왜? 당에서 시키는 모든 것을 합니다. 당에서 시켰으니까. 왜, 무슨 당? 민주노동당. 민주노동당, 그 실체를 조금 있다가 말씀드릴게요. 저 분이 가서 굉장한 일을 합니다. 여러분들의 큰 언니 역할을 하죠. 말 그대로 아마 30대 중반이었는데 큰 언니 역할을 합니다. 거기서 힘든 언니들 다 고생이 많다. 소주 한잔 사줄게. 비정규직이다. 월급이 한 달에 한 130, 190만 원 받고. 2005년 사실 그 때 최저임금이 90만원 대였으니까. 그 정도 받았을 거에요, 그거 밖에 못 받던 시기에 한 달에 평균 500만 원 이상 씁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쓸 수 있을까요? 금속노조랑 민주노총에서 대주니까. 술 사줘, 모든 경조사에 다 참석합니다. 결혼할 때 30만 원씩 내고, 그 다음에 뭐 또 누가 돌아가시면 50만 원. 내가 널 도와줄게 하면서 울고 불고. 그 다음에 저 언니 저 오늘 아퍼 가지고… 내가 대신 일할게 너 가 쉬어….”

물론 단 한 글자, 한 마디에도 진실은 없다. 100% 소설이다. 참으로 악의적인데, 그게 바로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부정하는, 그러니깐 위헌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저들은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위헌적인 것이 그들의 상식이다. 그들의 상식은 정의를 부정한다. 자본이나 기득권층의 특성은 사람에 대한 믿음의 부재다. 뭔 일이 있으면 배후가 있다고 믿는다. 한 사람의 자존감 자주성에 대한 고민은 없다. 그래서 배후만 제거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는다. 배후만 없으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주면 주는 대로 일하는 기계가 아니면 머슴 노예쯤 되는 노동자들이라 믿는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세뇌된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 때 64만 원 받았다. 잔업 철야 열심히 해야 100만 원 전후, 자본가들이 버스 전철 값을 모르듯 삼성의 저 강사는 최저임금도 모르면서 악을 쓰고 있다. 이런 사실과 진실이 없는 저주가, 노동자들을 인간 존엄을 기초로 생각하고 생활하는 존재가 아니라 사탄이 아니면 좀비로 만들겠다는 것이 현재 자본가들의 생각이고 이 생각을 그대로 보호하는 것이 현실 정치다.

애초 견결한 중견 제조업체인 기륭전자가 망조가 든 것은 이른바 무슨 컨설팅 회사가 회사를 인수한 후부터다. 이들의 컨설팅은 건실한 제조업체를 금융자본의 먹잇감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들은 이것을 선진 경영기법이라 했다. 불법 파견 비정규직으로 현장을 채우다가 공장은 해외로 이전하며 정리해고를 한다. 공장의 운영보다 국가 산업 공단으로 거의 공짜로 얻었던 공장 부지를 수천 수만 배 오른 가격으로 매각하고 거기에 아파트나 아니면 아파트형 공장이라도 세워 또 이득을 내는 것이 자본주의적으로는 천배 만배 지혜로운 선진 경영기법이다. 기륭전자 최동열은 이런 선진기법의 옥동자다. 기륭전자 돈으로 기륭전자를 매수하고, 공장부지, 기륭사옥을 매각하며 법인 회사 재산을 사유화 해버린다. 80억 원대의 사옥을 실질적으로 60억 원대에 판다. 20억 원의 실종과 선진 경영 기법은 어떤 관계란 말인가? 이른바 선진경영기법이라 탈을 쓴 금융 주주 사기 자본가들의 전형적인 행태를 보여 준 기륭전자의 종말은 생산적인 제조업체를 거덜 내고, 1000억 원대 자본의 기륭을 6400만 원짜리 유령기업으로 만들었다.

기륭전자 노조의 투쟁은 눈물겹다. 그들이 함께 걸어 온 10년은 치열했다. 불법파견을 노동부와 검찰로부터 확인했지만 그 결과는 조합원 전원 해고였다. 당시 노무현 정권은 불법 파견의 희생자 기륭노동자들에게 일 년짜리 도급 하청 회사로 취직을 권했다. 이를 거부하자 법원은 1심, 2심, 대법원까지 해고가 정당하다고 했다. 그 이유는 놀랍게 불법 파견에 대한 보호 법률이 없다는 것이다. 파견 노동은 원청회사에겐 부릴 권리만 주고 파견 노동자에겐 부림을 당할 의무만 강제하는 제도다. 근대법은 권리와 의무가 병행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한쪽은 의무만 한쪽은 권리만 있다면 그 관계는 노예와 주인의 관계다. 간접고용은 현대판 노예제도라는 말이다. 법 제도 정치도 외면한 상태에서도 기륭노동자들은 투쟁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의 포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예노동에 굴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섯 번의 고공농성, 94일의 단식, 삭발, 구속, 죽는 것 빼곤 다해봤다는 기륭투쟁은 죽음보다 아프고 또 아픈 과정이었다. 최은미라는 조합원이 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이 친구가 서울시청광장 조명탑에 올랐다. 너무 무서워 눈물을 줄줄 흘리며 동지가를 부르며 올랐다. 그 절벽 같고 칠흑 같은 공포에 맞서 한발 한발 오르는 그 마음을 생각하면 지금도 내 마음은 울컥한다.

기륭 투쟁의 특징은 법 제도에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을 돌파한 것이다. 그 방식이 사회적 합의였다. 법의 사각지대 또는 법으로부터 아예 배제된 영역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근거로 투쟁하는 것이 바로 저항의 권리다.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정리해고 노동자들이 자기의 잘못과 무관하게 인간적 존엄으로부터 추방당하고 배제당할 때 이에 대한 투쟁은 법을 넘어서는 영역, 법률이 아니라 헌법, 헌법을 넘어 인간 존엄의 원초적 근거에 뿌리박은 투쟁일 수밖에 없다. 이 투쟁이야말로 인류가 보다 더 인간다운 세상으로 가는 원동력이다. 그래서 사회적 타결(합의)은 노사 간의 자율로 풀지 못한 문제, 법이라는 이름으로 풀 수 없었던 문제를 사회(정치)적으로 풀고, 사회적으로 강제했다는 의미다. 기존의 것, 기존의 법 질서로 풀지 못한 것을 푸는, 기존의 질서가 그은 선을 넘는 전향적 방향에서의 사회적 진보, 진전을 의미한다.

사회적으로 강제했다는 것은 자율과 법을 넘어서는 책임을 타결 당사자들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약속과 과정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과 도덕감마저 없다면 우리 사회의 허구적이지만 암묵적인 전제인 사회적 계약이 깨진다. 약속은 상호적이기 때문에 구속적이다. 신뢰관계가 무너졌다는 것은 합의가 깨졌다는 것이다. 사회적 계약으로 형성된 법에 구속될 의무가 파기됐다는 의미다. 이럴 경우 구성원들은 사회계약이 아니라 자기의 생존과 행복을 위해 자연법(권리)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되찾게 된다. 이런 권리 의무관계가 없다면 그것은 아직 국가와 시민의 관계가 전제 군주적 질서를 깨지 못했음을 말한다. 이것이 사회계약론의 전제다. 그래서 계약을 위반한 정부는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이 민주주의 공화국의 헌법정신으로 저항권 사상이 나왔다. 하물며 약속을 깨는 기업이랴?

최동열 기륭전자 대표는 민주공화국의 기초인 사회적 계약을 깬 자다. 이에 대해 배임을 넘어 사기죄를 묻는 것은 그가 처음부터 계약을 기망으로 맺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기륭전자 노조의 투쟁은 (불법) 파견노동, 비정규직의 고통을 전면으로 제기했고, 법 제도의 사각지대의 설움을 사회적 연대로 극복하며 우리사회에 비정규직 문제해결을 요구한 역사적인 투쟁이다. 그리고 그 결과 노사 합의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합의했다. 이 합의는 대한민국이 아직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는 실날 같은 희망이다. 하지만 최동열 기륭회장은 이 희망을 끊은 반사회적 범죄를 서슴없이 저질렀다. 애초부터 우리 직원이 아니라며 기망행위를 증거했고 무엇보다 야반도주를 하며 최소한의 사회적 체면과 염치도 저버렸다. 동업자들의 제보로 도주해서 다시 차린 사무실을 확인했지만 그는 또 다시 어디론가 도망쳤다. 도대체 우리는 이런 인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한단 말인가. '도망의 천재' 최동열의 궁극의 도망을 막기 위해 담당인 박승희 검사에게 최동열의 출국금지와 신속한 조사 구속을 요구하고 있지만 대답은 없다.

기륭전자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온전히 사회적 연대의 과정이었다. 광우병 촛불시민들이 ‘함께 맞는 비’를 결성해 도왔고, 이후 기륭전자 연대투쟁의 경험과 성과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네트워크', '희망버스' 운동까지로 이어졌다. 연대는 지금의 내가 희망의 미래를 미리 사는 과정이다. 기륭전자 투쟁은 가장 아름다운 연대 투쟁의 하나다. 기륭 투쟁은 문화 예술가들의 민중 현장 지향 흐름과 만났고 종교 시민 단체들과 하나 되었다. 단언컨대 그들은 이미 200% 승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마지막이 남았다. 기륭전자 노동자는 투쟁의 결과로 복직했지만 단 하루 치 월급도 받지 못했다. 그저 눈앞에서 회사가 사라지고 대표가 도주하는 억장 무너지는 모습을 확인했을 뿐이다. 회사는 망해도 사장은 잘 사는 아주 익숙하지만 그 과정은 사기질에 다름아니다. 과거엔 하나의 회사가 사라져도 공장과 일거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사주가 바뀌더라도 공장과 일터는 남았다. 하지만 1997년 IMF 이후 공장을 없애고 일자리를 없애는 것이 주주들의 또는 금융사기 자본들의 이익이 되면서 서슴없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막장의 인간관계, 최저임금만 있는 현장을 만나게 되었고, 지금 그 모든 ‘적폐’가 총동원된 세월호 참사를 겪고 있다.

최동열 기륭전자 회장에 대해 사기죄로 사회적 고발 운동을 하는 것은 단지 이 건이 기륭전자 한 회사의 비극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체 자본가들의 비인간적 경영을 중단시키지 못한다면 우리의 모든 처지가 세월호에 갇힌 승객들의 처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묻기도 한다. 한 사람을 구속시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우리는 말한다. 최동열의 구속은 돈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의 세상으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최동열 기륭전자 회장을 끝내 응징하는 것은 전체 자본가들의 인간 없는 파렴치한 경영 행태에 대해 분명한 공동체적 경고를 해나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우리가 이 길을 포기하는 것은 우리가 또 다른 범죄의 방조자가 된다는 것을.

삼성에게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최악질'이라고 선정된 것은 인간 앞에서 역사 앞에서 영광스런 선정이라 우린 믿는다. 그만큼 기륭투쟁은 자본가들에게 존재 자체로 경고가 되었다. 최동열의 구속은 기륭노동자들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역사적 선택이 될 것이다. 생명줄을 쥐고 돈과 시간과 사람 간의 이간으로 사람을 가장 치욕스런 노예로 만드는 정리해고 비정규직 세상에 결코 굴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을 묻고 책임을 지게 하는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투쟁이 바로 역사의 길이다. 이 길에 우리 모두 함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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