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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부과체계 개선안, 형평 부과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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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선안, 형평 부과 맞나? [기고] 소득 예외 조항, 저소득층 정액 보험료 도입에 반대한다
국민이 부담하는 보험료 부과 방식이 대폭 손질될 모양이다. 지난 9월 11일 보건복지부 산하 기획단(건강보험료부과체계 개선기획단)이 건강보험료 부과 방식 변경의 기본 방향을 발표하였다. 보건복지부를 포함하여 학계, 연구기관 등 전문가들이 11차례 회의해 나온 결과라고 하는데, 주요 내용은 이렇다. 첫째, 가능한 범위 내에서 보험료 부과 대상 소득을 확대하되 퇴직, 양도 소득과 상속·증여 소득은 제외한다. 둘째, 소득 이외의 부과 요소인 성, 연령, 자동차, 재산 등에 대해서는 축소·조정하여 부과하되, 소득이 없는 지역가입자에게는 정액의 최저 보험료를 부과한다. 셋째, 소득 있는 피부양자에 대한 인정 기준 강화를 위해 세부집행 방안 마련을 건의한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둘러싼 논쟁

건강보험료는 잘사는 사람은 잘사는 만큼, 그리고 상대적으로 어려운 사람은 어려운 만큼 '개인'이나 '세대'의 경제적 능력에 맞게 부담하면 된다. 보험료 부담은 '형평 부과'가 원칙이고, 이는 사회 연대성에 기초하여 국민을 강제 가입시키는 건강보험의 운영 원리이기도 하다.

1977년 의료보험 제도가 처음 도입된 이래로 지금까지 건강보험은 직장과 지역 가입자를 대상으로 이원화된 부과 방식을 적용해 왔다. 직장 가입자의 보험료는 근로 소득을 중심으로 보험료를 부과해 왔으나, 근로 소득 외에 다른 소득에 대한 보험료 부과가 쟁점이 되어 왔다. 지역 가입자의 보험료는 직장과 달리 세대 단위 부과 방식이면서 소득 파악이 어려운 관계로 과세 소득 외에 재산, 자동차, 성, 연령 등을 기준으로 경제적 능력을 추정하여 부과하고 있다. 지역가입자의 보험료는 부과 기준의 합리성과 소득 추정의 신뢰성 등의 이유로 논란이 되어 왔다.

우리나라 의료보험 관리 조직은 2000년부터 단일 조직으로 합쳐지고, 2003년부터는 보험 재정도 단일체계에서 관리했는데, 보험료 부과체계가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비판은 특히 건강보험 통합을 반대해 온 학자 및 관료들의 주된 명분이 되어왔다. 건강보험 통합은 단일 보험료 부과를 전제로 하만 실제로 이는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지역의 자영자는 소득을 하향 신고하는 경향이 있고, 개인 신고 소득이 아닌 제삼자가 평가한 보험료 부담 능력 수준은 당사자가 수용하지 않는 속성이 있어, 소득과 재산에 대한 보험료 부과가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소득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지역 보험료를 책정하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건강보험을 통합했던 주된 이유는 직장 근로자와 영세한 지역주민 간의 통합 관리로 위험 분산과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과체계가 단일화되지 않자, 보험료 산정방식뿐만 아니라 재정 통합에 대한 위헌 소송이 수차례 제기됐다. 이처럼 건강보험 부과체계에 대한 논란은 그 범위가 형평 부과의 쟁점을 넘어선다. 건강보험 통합을 비판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는 입장에서는 재정 통합 자체가 부과체계 모순을 낳은 원흉이기 때문이다.

▲ 경만호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과 김종대 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등은 2009년 "건강보험 재정 통합으로 직장 가입자의 평등권과 재산권이 침해됐다"며 현행 건강보험 제도에 헌법 소원을 청구했다가 2012년 5월 기각당했다. 헌재는 "건강보험 재정 통합은 사회 연대와 소득 재분배 기능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판단했다. 시민단체들은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를 개편해 건강보험 재정과 부과 체계를 완전히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프레시안(김윤나영)

따라서 어떤 관점에서 부과체계를 바라보는가에 따라 접근 방법이나 파급 효과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 통합을 반대하는 쪽에서는 건강보험의 단일 부과체계 개편을 통해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을 이루어내고, 건강보험 운영의 효율성을 위해 단일 보험자 운영 방식을 해체하고 다보험자 방식의 경쟁 원리를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정부는 어떤 의도로 부과체계를 개편하려고 할까? 최근 서민증세로 일관하는 정부의 태도를 볼 때, 복지 재정인 건강보험 재원조달의 책임을 가급적 고자산가보다는 서민 중심으로 편중시키고 정부 책임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재원조달 구조를 고착화할 공산이 크다. 또, 건강보험의 실천적 영역인 보장성 확대를 주된 골격으로 운영 구조를 개혁하기보다는, 징수 영역의 형평 부과와 연계하여 보험료 수입 확충을 부각할 수도 있다. 향후 간접세에 건강보험 재정용 목적세를 신설하는 등 간접 세목을 신설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정부의 부과체계 개선방향, 기득권층의 무임승차 허용

건강보험료 부과가 능력에 비례한 누진성을 강조하는 것이라면, 근로자 개인이나 세대의 경제적 능력에 비례해서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은 당연한 원리이다. 따라서 소득뿐만이 아니라 재산을 포함한 소득 증대에 기여하는 총자산에 보험료를 부과해야 한다. 소득과 재산을 분리하고 경제적 능력을 소득 기준으로만 판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소득은 경제적 능력과 자산을 반영하는 대리변수라고 보아야지, 가입자의 경제적 능력을 모두 반영하는 절대적 기준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가계 자산 중 금융자산이나 부동산 비중이 높은 경우라면 재산 과세에 대한 부과 요소를 배제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런데 이번 정부의 개선 방향은 '소득 기준'을 강조하면서도 소득 반영의 예외를 두었다. 퇴직 소득, 양도 소득, 상속 및 증여 소득은 모두 배제하였는데, 퇴직 소득, 양도 소득은 일회성 소득이라는 이유로, 상속·증여 소득은 재산의 개념이 강하다는 이유에서다. 문제는 부과 대상에서 제외한 소득 범주는 모두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파생되는 소득이고, 고자산가의 재산으로부터 증대된 소득인데, 이를 제외하고 보험료의 형평 부과를 언급하는 것은 누가 보아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는 부담 능력이 충분함에도 무임승차하는 가입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보험료 부과체계를 보완·조정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고소득층과 기득권층의 건강보험 무임승차를 인정하고 서민들에게는 모든 소득에 보험료를 부과하겠다는 것이 부과체계 개선의 대안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저소득층 정액보험료 도입, 사회보장 역할 망각한 잘못된 대안

물론 현재 지역가입자 부과체계에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같은 지역가입자라도 과세 소득 500만 원을 기준으로 보험료 부과 방식이 이원화된다. 500만 원 초과 세대는 소득, 재산, 자동차를 부과 요소로 삼는다. 반면에 500만 원 이하 세대는 재산, 자동차 외에 평가 소득을 반영하는데, 여기에는 성, 연령, 재산, 자동차 등을 고려한 복잡한 계산 방식이 적용된다. 과세 소득이 500만 원 이하인 지역가입자는 전체 지역가입자의 약 82%인데, 이들의 평가 소득을 실제 근로 유무와 관계없이 성, 연령만으로 추정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 또, 이들에게는 재산, 자동차가 다시 부과 요소로 반영되어 이중부과 논란도 제기되어 왔다.

정부는 과세 소득 500만 원 이하인 사람들에게 적용했던 '평가 소득' 대신 정액의 최저 보험료 부과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것이 정당한지는 따져 보아야 한다. 평가 소득이 적용되어온 세대는 대부분 저소득층이고 보험료 지불 능력이 없는 사람들로 보아야 한다. 실제 건강보험 자격유지자 중 6개월 이상 체납한 세대는 지역가입자의 10.1%인 152만 세대에 이르고, 여기에는 생계형 체납자 약 104만세대가 속한 것으로 보고된다. 2012년 기준 지역가입자 중 12.1%는 평균보험료 1만5000원 미만 세대로 이들 또한 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이다.

정액 보험료는 소득 역진성을 초래하는 대표적인 부과 방식으로 지역 가입자의 상당수가 영세한 자영업자이거나 저소득층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적용해서는 안 되는 부과방식이다. 문제는 이들 계층은 공공부조의 영역에 포함돼야 할 대상인데도, 이를 방치하는 데 있다. 의료보장 인구 중 의료급여 수급권자는 점차 축소되어 약 2.8%에 불과하다. 정부가 책임은 계속 방기하면서 정작 수급권자 혜택을 받아야 할 사람들을 건강보험권에 남겨두고 일정액의 보험료를 내라고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럼에도 건강보험의 운영원리 안에서 소득이 없는 사람들의 의료보장을 담보하겠다면, 이는 건강보험 재정에 투입되는 국고 부담으로 해결하는 것이 순서다. 국고 부담은 2006년까지 지역 재정 지원 목적으로 쓰였으나 재정 건전화 특별법 만료로 2007년부터 총 재정에 지원하는 형태로 변화되었는데, 이 국고 부담의 쓰임새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지역 재정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되, 지역의 저소득층 및 소득 없는 사람들의 보험료 지원 목적으로 국한하거나, 아니면 더 나아가 급여비 본인부담을 지원해야 한다.

건강보험 재원조달의 공정성 다시 논의해야

정부 개혁안은 보험료 부담의 소득 기준을 강화한다면서 고자산가에게 특혜를 주는 방식으로 소득 부과 요소를 완화했다. 또 지역가입자 부과체계를 개선한다면서 평가 소득, 재산 부과 요소를 완화하는 대신 역진적인 정액 보험료로 대체하였다. 물론, 경제적 능력과 비례하지 못하는 부과 요소들은 정리해야 한다. 소득이나 재산이 늘어나는 것보다 실제 보험료 증가가 못 미치는 현행 부과체계도 개선해야 한다. 소득은 30배 증가했는데 소득부과 점수는 고작 5배 증가에 그치고 재산은 3000배 증가했는데 재산 부과 점수가 67배에 그쳤다면, 이를 누진적인 부과체계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문제는 정부의 개선 방향이 이러한 부과체계의 모순점을 해결한다고 하면서 서민부담을 상대적으로 강화하는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소득 기준을 강화한다면서 고소득층의 무임승차를 인정했고, 지역 가입자에게 재산 부과를 하는 것이 문제라고 하면서 저소득층에게 굳이 기여책임을 다시 부과하는 것은 온당한 방법이 아니다. 의료급여 확대나 지역 재정의 국고 부담 지원 등 정부 책임은 전혀 거론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더군다나 보험료 수입이 늘어나도 건강보험 보장성과 귀결되지 않는 상태임을 감안할 때, 정부의 정책 방향을 동의할 국민은 많지 않다. 기여를 했으니 혜택을 받는 것은 당연한데 국민이 기여한 것에 비해 급여 혜택은 너무나 협소하다. 지난 5년간 추이를 보더라도 보험료 수입은 연평균 10% 증가했으나 급여율 증가는 7%에 그쳤고, 동일 기간 건강보험 보장성도 약 62%로 답보 상태임을 감안하면 보험료 수입이 급여 혜택으로 연계되는 부분은 매우 제한적이다. 전체적으로 건강보험의 재원 조달과 보장성과 연계된 재정 배분이 공정하지가 않다. 이러한 가운데 서민 부담만 가중시키는 부과체계 개선 방향은 올바른 대안이 아니며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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