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제69차 유엔(UN) 총회 기조연설에서 '세계 요가의 날' 제정을 촉구하는 기조연설을 진행했다. 그런데 그 근거가 마뜩찮다. 인도 전통 문화를 홍보하는 거야 그렇다고 쳐도 요가를 널리 알리고 싶은 이유가 '기후변화'라니.
모디 총리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생활양식의 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동의한다.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는 것이 가장 청정한 에너지라고 언급했다. 동의한다. 따라서 자연을 존중해야 하고 이를 구현하는 방법으로는 요가가 제격이라는 것이다. 아, 여기서 동의 못하겠다.
모두가 알다시피 요가는 명상과, 스트레칭 등을 통한 인도 고유의 심신 수련 방법을 뜻한다. 요가를 하면 생활습관이 바뀌고 의식을 깨울 수 있다고 하는데, 심신 수련으로서 요가의 순기능을 인정하지만 이건 기후 변화가 일어나는 원인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인식이다.
요가를 하는 데는 에너지를 쓰지 않지만, 작금의 요가는 학원에서 배워야 하고, 학원은 화려할수록 수강생이 몰리며,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배우는 게 아니라 몸매 관리에 집중하고 있어 합일로 인한 에너지 소비 감소 효과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상품화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일 테다. 즉, 기후 변화는 개인적 욕심을 제어하는 것보다는 에너지를 소비할 수밖에 없는 사회 시스템에서 비롯된다는 걸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환경주의자가 알아야 할 자본주의의 모든 것>(황정규 옮김, 삼화 펴냄)을 집필한 존 벨라미 포스터가 환경 문제는 "인간의 탐욕이나 기업들이 도덕적으로 부족해서 일어난 게 아니라 우리의 생산과 분배 체제의 내적 본성과 논리 속에 생태 파괴 속성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어렵다"고 갈파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요가가 기후 변화를 해결할 것 같으면 왜 인도는 세계 3위 온실 기체 배출국이 되었는가.
우리는 요새 말로 '웃픈' 이 연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혹자는 말꼬투리 잡기에 불과하다고 불만스럽게 얘기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니다. 그렇지 않다. 모디 총리가 기후 변화 문제를 진정성 있게 우려하고 있다 치더라도, 온실 기체 다배출국인 인도의 기후 변화 대응 정책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유엔 총회에 앞서 열린 기후 변화 정상회의에도 불참했다. 모디 총리는 인도의 경제 부흥을 공약으로 당선된 인물이고, 총리로 입각하자마자 각종 친 기업적 정책을 쏟아낸 바 있다. 경제 성장을 지상 목표로 걸고 있고, 그것이 온실 기체 배출 증가율을 높일 것이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테다. 요가 홍보가 주 목적이었다고 치더라도 이는 전형적인 물 타기에 불과하다. 사회 작동 원리로 인한 기후 변화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기후 변화에 대한 인도정부의 무관심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이는 비단 인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온실 기체 배출량 세계 1위는 중국이고, 10위 안에는 인도(3위), 러시아(4위), 이란(7위), 한국(8위) 등 이른바 개발도상국이 5개국이나 포진해있다. 그간 시민 사회 등은 선진국 책임론을 강하게 주장했다. 기후 변화에 영향을 주는 온실 기체 누적 배출량 중 서구 선진국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70%를 넘기 때문이었다. 선진국들은 거기에 걸맞은 노력을 보여주지 않았고 그 비판은 정당했다.
하지만 이젠 조심스럽더라도 누군가는 얘기를 꺼내야 한다. 미국을 제외한 서구 선진국들의 온실 기체 배출량이 보합세를 보이거나 조금이라도 줄고 있는 반면, 브릭스(BRICs) 국가들처럼 대국 범주에 포함될 수 있는 개발도상국들의 온실 기체 배출량은 연 수%에서 수십%씩 증가했거나 증가하고 있다. 선진국들이 예상하고 있는 시나리오가 아니더라도 향후 온실 기체 배출은 개발도상국 국가들이 주도할 것이라는 건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때문에 다소 불편하더라도 개발도상국을 거론하지 않고 기후 변화를 논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대국에 속하는 개발도상국들과 군소 도서 국가들과 같은 최저 개발국가들의 상황은 많이 다르다. 중국과 인도 역시 기후 변화에 취약한 것은 마찬가지지만 기후 변화 피해에 대응할 수 있는 여력에서는 최저 개발 국가들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기후 변화의 최대 피해자는 최저 개발 국가들이다. 기후 변화 대응에서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는 건 그런 국가들의 입장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개발도상국 협상 그룹이었던 'G77/China'가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는 점은 이러한 현상을 대변한다. 또 한 국가 내에서도 기후 불평등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기후 정의의 관점에서 선진국 책임론은 전체의 목표가 아닌 하나의 목표일뿐이다. 중국과 인도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야 할 시기다.
그러나 문제는 중국과 인도 등이 가해자의 면모가 강해지고 있다 해도 여전히 기후 변화의 피해자라는 사실에 있다. 따라서 온실 기체에 대해 선진국 수준의 책임을 지라고 강제할 수도 없고, 경제 성장을 제어하라고 명령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인도 총리의 바람대로 전 세계인이 요가를 활용한다고 해도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만 하는 경제 성장이 폭주를 멈추지 않는다면 기후 변화 대응은 요원하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결국 방법은 하나다. 온실 기체를 배출할 수밖에 없는 선진국의 에너지 집약적 발전 방식이 아니라 대안 발전 방식을 찾아 체제를 전환하는 것뿐이다. 물론 그것은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가는 것과 마찬가지일지 몰라도 사실 길이 그것뿐이라면 더 이상의 방법은 없다는 게 가장 명징한 사실 아닌가.
그 길이 무엇인지는 사실 누구도 잘 알지 못한다. 몇몇 학자나 시민 사회가 부분적으로 대안을 제시하고는 있지만, 담론 수준에서의 검토이거나 매우 작은 규모의 실험에 국한되어 있다. 게다가 개인의 변화를 사회의 변화로 치환하려는, 좀 과장되게 말해 요가와 같은 시도들도 적지 않다. 현 체제 내에서 온실 기체를 줄이려는 노력보다 사회 시스템의 변화가 무엇일지를 생각하는 것이 더 시급한 문제다. 그렇다면 이제 개인적 변화가 기후 변화 해결의 근본책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그만 두자. 우리에겐 시간이 많지 않다.
작은 것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충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바로 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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