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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에서 서피랑까지, 웃음을 디자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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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에서 서피랑까지, 웃음을 디자인하라 [마을주의자]<20> 통영 푸른통영21추진협의회 '마을디자이너' 윤미숙
의제21이나 어젠다21(Agenda21)이라는 단어는 낯설다. 1992년 6월 UNCED(환경과개발에관한유엔회의)에서 채택된 ‘지속가능발전의 실현을 위한 행동지침’이라는 의미다. 물, 대기, 토양, 해양, 산림, 생물종 등 자연자원의 보전과 관리를 위한 지침뿐 아니라, 빈곤퇴치, 건강, 인간정주, 소비행태의 변화 등 사회경제적 이슈까지 폭넓게 다룬다. 사회 각계각층의 광범위한 관심과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파트너쉽과 거버넌스를 유난히 강조한다. 이렇게 설명을 들어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지방의제21이라는 말은 더욱 그렇다. 말그대로 의제21을 지역차원에서 추진하는 지속가능발전지역행동계획을 뜻한다. 의제21 제28장에서 각국 정부가 지역차원의 행동으로 ‘지방의제21’ 추진을 권고하면서 시작됐다. 국가의 환경보전은 지역차원에서 먼저 실천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먹고사는 것에 바쁜 일반시민에게 얼른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남의 일 같다.

하지만 통영의 사정은 좀 다르다. 어느덧 시민의 일상 속에 파고 들어왔다. 통영 지방의제21의 지속발전가능 도시재생프로젝트가 눈에 띄는 성과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동피랑 벽화마을, 연대도 에코아일랜드, 강구안 푸른골목만들기, 서피랑에 이르기까지. 특히 강구안 푸른골목만들기는 2014년도 지속가능발전공모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우리나라에서 지방의제21을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 도시라는 인증서다. 푸른통영21추진협의회 등 민간의 힘이 컸다. 그리고 윤미숙 푸른통영21 추진협의회 사무국장의 공이 적지 않다.

▲ 연대도 에코아일랜드 비지터센터 ⓒ정기석

지방을 '지역의 색깔'에 맞게 설계하는 마을디자이너

"지역의 고유한 색깔을 잘 찾아내는 게 시작이라고 봐요. 그러니까 통영에는 통영만의 색깔이 있는거죠. 그리고 '참여'와 '자치'가 중요해요. 행정, 의회, 기업, 시민단체, 노동자, 농민, 전문가, 여성, 청소년 등 지역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죠. 만나서 서로 얼굴을 맞대고 토론하고, 합의하고, 책임을 분담하는 파트너쉽과 거버넌스가 필요해요. 지방의제21은 21세기형 참여자치운동이자 사회개혁운동이라고 할 수 있어요."

윤미숙 국장(52)은 '지방의제 21'은 어느 개인이나 단체가 독자적으로 꾸려나가는 운동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20여년 넘게 지역 일에 잔뼈가 굵은 그녀도 요즘 ‘나는 정말 마을디자이너인가’ 하는 질문을 자주 하고 있다. 일은 하면 할수록 힘들다. ‘수백 년 이상 된 마을에 대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나’하는 자조에 빠지기도 한다. 변화에 대해 완강한 고집을 부리는 주민들, 수평적이고 유기적인 퍄트너쉽이 원활하지 않은 '갑' 행정은 여전히 힘겨운 상대다. 2006년 지역 일에 뛰어들면서 품었던 '자발적 마을일꾼'으로서 초심을 거듭 다져보지만 '시민들의 참여와 자치'가 아직 부족한 지역현장은 아직 숙제가 산적하다.

윤 국장은 하는 일이 많다. 거의 혼자 할 수도 없고 혼자 해서도 안 되는 일들이다. 우선 통영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해 교육하고 기획하고 실현하는 일들을 총괄한다. 아직 지방의제21을 잘 모르는 불특정 다수 시민을 대상으로 인문학 교실도 매년 열고 있다. 교육과 학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NGO에서 일할 때 네거티브 전략이 신물 났어요. 그런데 지방의제 일은 달랐어요. 더 창의적이고 진취적이고 생산적이랄까. 힘은 들지만 나름대로 만족해요. 특히 공무원, 주민들과 협업을 하면서 중간에서 민간인 신분으로 조율하는 입장에 설 때, 존재감과 보람을 느껴요. 내가 통영이라는 지역에 필요한 사람이구나 하는 그런 뿌듯한 성취감 같은 거죠."
윤 국장은 통영이라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면서 전국에서 섬이 두 번째로 많다는 지역특성에 주목했다. 섬은 개발대상으로 하기에 공간이 지나치게 작고 망가지기 쉬운 예민한 생태계라는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사람이 손을 대는 일은 최소한으로 하고, 섬만이 갖는 문화와 마을살이, 생태적 환경들을 잘 엮어서 스토리텔링을 상품화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그대로 계획을 세웠다. 닫힌 문화를 외부인에게 여는 조건으로 주민들 삶이 활기차고 행복해질 수 있기를 소망했다. 그리고 지역경제까지 살아날 수 있는 마을로 디자인했다. 그곳이 '연대도'다.

디자인 컨셉은 '에코 아일랜드(eco island)'였다. 탄소제로의 섬으로 에너지전환의 좋은 사례를 만들고 싶었다. 대안에너지와 대안에너지 체험마을을 목표로 태양광발전, 지열, 패시브하우스, 에코체험센터, 걷는 길 등을 조성했다. 내친 김에 마을기업까지 만들었다. 섬에서 나는 야생초차와 나물장아찌를 만들어 파는 '할매공방'이다. 마을 '할매' 30여명이 취업해 일하고 있다. 마을공동체사업의 본질에 맞게 공동작업, 공동분배 원칙을 지킨다. '욕쟁이 할매'들과 교육하고 소통한지 2년, 물리적 사업 2년, 운영 3년차, 벌써 7년이 흘렀다. 아직 2%쯤은 욕하는 할매가 남아있지만, 이 정도면 애초 계획대로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자평이다. 섬에 많았던 빈집이 사라졌고 섬을 떠났던 주민들이 다시 돌아오는 경지가 되었다.

마을이 아닌, 마을의 삶을 설계하는 '마을디자이너'

▲ 2014지속가능발전공모대상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강구안 푸른골목만들기'. ⓒ정기석
"'통영의 몽마르트르' 동피랑마을은 두 번째로 기획한 마을이죠. 아직 진행형이라 할 일이 많아요. 2007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일을 벌이고 있는 셈이죠. 물론 혼자 한 일이 아니에요. 공무원과 위원들도 그렇고, 특히 지역의 젊은 문화인들의 힘이 컸어요. 저는 다만 이렇게 가는 것이 어떤가 하고 설득하고 제시하는 역할을 할 뿐이죠. 물론 제 성격상 기획만 하고 내버려 두지 않아요. 현장으로 나가 닥치는 대로 민원을 받아 해결하고, 온갖 잔심부름까지 가리지 않아요. 몸이 고된 일이에요."

윤 국장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동피랑마을 역시 공동수입, 공동분배의 사회적 경제 원칙을 잊지 않는다. 큰 문제없이 잘 유지되고 있다. 동피랑 생활협동조합을 통해 들어오는 수익금은 주민들이 일용할 양식, 수도요금, 그리고 선진지 견학 등에 요긴하게 쓰인다. 특히 벽화라는 주제가 도시 빈민가 재생모델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마을을 떠날 수 없는 원주민들의 열렬한 지지와 협조가 바탕이 되었다. 주민만족도 설문조사에서 동피랑마을의 삶이 만족스럽다는 답변이 85%를 넘는다.
2012년에는 세 번째 기획으로 강구안 푸른골목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작품의 창의성과 완성도가 높은 편이다. 2014년 지속가능발전공모대상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실무주역인 윤 국장은 공로상을 받았다. 한때 통영 도심의 명동이었던 강구안 뒷골목을 재생하려는 노력과 성과를 충분히 평가받은 셈이다. 담배꽁초와 쓰레기가 널렸던 골목 어귀는 화분과 의자로, 어두운 골목은 태양광 가로등으로 밝아졌다.

"백석의 시, 작가들의 수제 간판들, 프랑스 환경조각팀의 물고기 조형, 그리고 윤이상의 자전거 악보. 강구안 뒷골목에는 문화와 예술의 꽃이 폈어요. 음습한 뒷골목에서 통영의 새로운 명소로 부활했어요. 격주 토요일마다 벼룩시장도 열고 있어요. 아직 주민들의 절반은 냉소적이지만 나머지는 적극적으로 협조해줘요. 절반이나 말이죠."
주민의 힘을 믿고 주민의 힘으로 일하는 마을디자이너 윤 국장. 쉴 틈도 없이 또 서피랑마을 만들기를 포트폴리오에 추가하고 있다. 통영 미륵도에 잠든 박경리 작가의 고향 명정동를 되살리는 일이다. 이름하여 '서피랑 99계단 프로젝트'. 집창촌이 있었던 99계단을 중심으로 우울하고 가난한 도심지 산동네 서피랑을 문화와 예술로 치유하고 위로하겠다는 것이다. 5년짜리 프로젝트다. 욕지도 자부포마을 프로젝트도 이어진다. 근대어업의 발상지라는 의미가 있는 어촌마을이다. 아예 마을기업부터 만들고 시작한다. '섬 할매 바리스타 커피가게'는 방송을 타더니 벌써 입소문이 났다. 장사가 잘 되고 있다.

▲ 동피랑 마을 벽화를 배경으로 윤미숙 사무국장. ⓒ정기석

윤 국장 자신도 섬사람이다. 거제도 산골에서 태어났다. 가난했다. 학교를 마음 편하게 다니지 못할 정도로. 지역신문 기자, 환경운동NGO에서 각각 십 년 정도 일했다. 푸른통영21에서 일한 지도 10년이 다 되었으니, 지역의 민생 현장에서 지역전문가로 30여 년의 청춘을 다 보냈다. '거제도의 야생화', '웃어라, 섬'을 지은 작가이기도 하다. 마흔에 늦게 결혼해 거제 둔덕의 산골에 살림터를 잡고 귀촌인으로서 자급자족의 삶을 지향하고 있다. 통영도, 거제도… 어서 자급자족하는 지역으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물론 지속가능한 발전이라야 한다. 그러면 '일에서 벗어나 뒹굴거리며 책이나 읽고 여기저기 여행 삼아 구경삼아 싸돌아다니고 싶은' 개인의 소망을 실천해볼 욕심이다. 좌우명은 '하루에 몇 번 웃는가'란다. 진정한 행복은 '자주, 많이 웃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생각한 대로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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