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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도 김무성도 말하지 않은 개헌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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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도 김무성도 말하지 않은 개헌의 진실 [서리풀 논평] 새로운 헌법의 조건
새로운 헌법의 조건

헌법은 보통 사람의 일상생활과 멀다. 아니 다들 그렇다고 생각한다. 조지 버나드 쇼의 말마따나 "굶어죽을 지경만 아니라면 시민들은 미련할 정도로 형이상학적"이지만, 그래도 헌법까지 마음을 쓰는 이는 적다.

그런 헌법을 바꾸자는 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다. 대통령과 여당, 야당 사이에 벌어지는 현실 정치가 복잡하더라도 개헌 논의가 없어질 것 같지는 않다. 이들 사이에 걸려 있는 정치적 이해가 질기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아직은 개헌 논의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시끄럽다. 본론에 들어가지 못한 셈이다. 최근에는 여당 대표가 분위기를 띄었고 대통령이 말리는 모양새다. 여론과 언론의 논조도 한 가지로 정리되지 않는다.

논의하자는 쪽은 지금 권력 구조가 가진 문제점을 불러낸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심하다는 명분이 앞에 있다. 이 논리를 따르면 권력 구조 가운데서도 5년 단임의 대통령제를 어떻게 고칠 것인가를 중심에 놓아야 한다.

개헌 논의를 반대하는 쪽도 이유가 분명하다. 권력 구조에만 초점을 맞추는 개헌이 국민의 현실 이해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정략에 따른 개헌이라면 그들만의 거래와 야합일 뿐 보통 사람들의 삶과는 무관하다. 정 권력 구조의 폐해가 관심이라면, 다른 제도, 예를 들면 선거법부터 바꾸라고 반박한다.

어느 쪽임을 나눠야 한다면, 우리는 개헌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두 해 안에 결론을 보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고 싶어도 불가능하다. 그래도 논의를 시작하자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실용적 이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과제가 헌법과 연결되어 있다.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답답한 문제에 물꼬를 틔우자면 헌법 개정만큼 좋은 계기가 있을까.

'경제 민주화' 논의를 상기하자. 지난번 대통령 선거에서 불이 붙었다가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중소기업과 골목길 상권 이슈에서 알 수 있듯이 필요는 그 때나 지금이나 완강한 현실이고 생활이다. 헌법의 뒷받침이 튼튼했다면 그토록 무력했을까 싶다.

선거법도 비슷하다. 이것만 고쳐도 많은 것이 나아진다는 데에 동의한다. 그러나 정치인의 사활이 걸린 이 법을 변경할 동력을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헌법 개정을 이야기해야 (결과와 무관하게) 비로소 선거법도 '조금' 바꿀 힘이 생긴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실용적 관점에서 개헌을 말하는 이유다.

두 말할 것 없이 실용을 넘는 본질의 요구가 더 중요하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1988년부터 지속된 현재의 헌법 체계는 새로운 조건에서 새롭게 구성되어야 한다. 사실 우리는 권력 구조보다는 기본권에 관심이 더 크다.

30년 전과 사회 경제적 조건이 얼마나 달라졌나 하는 것을 구구절절 말해야 할까. 그 때는 있지도 않았거나 이론으로만 존재했던 말 몇 가지를 열거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청년 실업, 양극화, 비정규직, 고령화와 저출산, 보편 복지, 결혼 이주와 외국인 고용, 그리고 인터넷과 스마트폰, 카톡. 이 정도면 '비교 불가능'의 근거로 충분치 않을까.

기본권 가운데에 우선 자유권적 기본권부터 보자. 최근 인터넷과 카톡 감청을 둘러싼 논란은 헌법의 가치에 직접 연결된다. 빅 데이터나 신용 정보, 의료 정보 같은 것들도 기본권이 무엇인가를 다시 묻고 있다. 이것 말고도 할 말이 더 있지만, 이 정도로 해둔다.

다음은 사회권적 기본권이다. 현행 헌법의 사회권에 대한 가장 큰 비판은 선언에 지나지 않는 조항이 많고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가는 사회 보장·사회 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헌법 제34조 2항)나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헌법 제36조 3항)와 같은 조항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노력하여야 한다" "노력할 의무를 진다" 또는 "보호를 받는다" 식으로 규정하는 한, 헌법은 실질적 힘을 갖기 어렵다. '노력'이라는 말이 법률 용어로 가당키나 한지 묻고 싶다.

헌법의 이론으로도 해야 할 말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다. 이 주제를 다룬 한 논문의 내용 일부를 인용하는 것으로 비판을 대신하는 것이 좋겠다.

"사회적 기본권과 관련된 (…) 헌법소원 역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비롯한 사회적 기본권 전반에 대하여 인정되는 이른바 '광범위한 입법 재량'으로 인해 기본권 보장의 실효적 수단으로는 작동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헌법재판소 창설 이래 사회적 기본권의 침해를 이유로 한 입법 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을 인용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는 데에서도 암시되는 바가 있다."

"권리로서의 사회적 기본권의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규명 작업 없이 광범위한 입법 재량론에 입각하여 사회적 기본권의 구체적 권리성을 사실상 형해화시킨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다. 모든 기본권 향유의 전제가 된다고 볼 수 있는 최저 생활 보장 기준에 대한 사법 심사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의 구체적 권리성은 실질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헌법상 사회적 기본권 보장의 취지는 사실상 몰각될 것이다." (김복기, '사회적 기본권의 법적 성격'. <사회보장법연구>, 3권 1호, 2014년)

길고 좀 어렵지만, 결론은 대강 이렇다.

- 현재 헌법은 사회권 보장을 국가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 그런데 법을 만들었다면(입법) 의무를 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다(위헌은 아니다).
- 그 법에서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는 헌법이 상관할 수 없다.
- 법이 아무리 추상적이고 선언적이어도 더 책임을 묻기 어렵다.

그렇다면 구체적 권리는 어디서 근거를 찾아야 할까. 헌법의 기본권은 여기에서 막힌다.

헌법 조항이 추상적이어도 해석을 통해 권리를 구체화할 수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만들어진 이후 "사회적 기본의 침해를 이유로 한 입법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을 인용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고 하지 않은가. 가능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결국 헌법에서 더 상세하고 명확하게 권리를 정하는 방법이 남는다. 이렇게 나아간 대표적 국가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최근에 새로 헌법을 만들었고 기본권에 관한 한 모두들 헌법 선진국이라 부른다.

그들이 만든 헌법에서 건강권이라 할 수 있는 세 가지를 보자. 첫째는 모든 사람이 보건의료 서비스(생식보건과 응급의료 포함)를 받을 수 있는 권리이고, 둘째는 어린이들이 기초 보건 서비스를 제공받을 권리이다. 여기에 더해서, 형무소 수감자를 비롯한 수용인이 국가 부담으로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포함되었다.

큰 차이가 없는 듯 보이지만 헌법에 좀 더 상세하게 규정했다는 것(그 작은 차이!)이 크다. 사회권에서 뜨거운 논쟁거리인, 국가의 책임을 엄격하게 규정한 부분은 그 의미가 더욱 중요하다. 바로 다음과 같은 헌법 27조 2항.

"국가는 이들 권리의 점진적 실현을 위해, 가능한 자원 범위 안에서, 합당한 법률적 수단과 다른 수단을 마련하여야 한다." (☞관련 자료 : )

이는 단순히 선언적 조항이 아니다. 국가는 책임을 무한정 미룰 수 없으며, 가능한 한 신속하게 권리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요구한다(인권 논의에서는 보통 '림버그 원칙'이라 부른다). 국제 사회의 기본권 논의와 실천을 반영했다는 것도 중요하다.

이에 기초한 헌법소원과 판결, 정책 변화가 일어난 것, 즉 실제로 작동했다는 것을 주목하라. 2002년 TAC이라는 에이즈 운동 단체가 헌법 조항을 근거로 위헌 소송을 낸 것이 대표적인 예다. 정부가 일부 산모에게만 에이즈 예방약을 공급했는데 이것이 위헌 판결을 받았고 정책은 바뀌었다. (☞관련 자료 : ))

우리는 개헌 논의를 통해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다시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건강권은 상세하게 그리고 명확하게 규정되어야 한다. 국가의 의무도 당연히 따라간다.

물론, 건강권에 그치지 않는다. 소득, 교육, 고용, 노동조건, 환경, 주거…. 기본권마다 더 자세한 권리의 목록을 포함해야 하고, 국가의 책임을 분명히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조건과 환경이 바뀌었으니, 권리의 '최저' '기본' 또는 '적정'의 수준도 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

한 가지를 보탠다. 기본권의 관점에서 개헌을 생각했지만, 권력 구조는 할 말이 없어서 빼놓은 것이 아니다.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 권력 구조의 일차적 기능이라고 본다면 그 중요성이 덜하다고 할 수 없다. 특히 헌법이 보장하는 참여와 민주적 통제의 구조와 기능을 강조하고 싶다.

앞으로 개헌 논의가 어디로 갈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꼭 이 때가 아니라도 개헌과 그를 위한 논의는 피할 수 없다. 사회권적 기본권을 '현대화' 해야 하는 것도 확실하다. 새 헌법의 비전을 보면서 기본권을 착실하게 준비하고 논의해야 개헌의 참 뜻이 산다.
<프레시안>은 시민건강증진연구소가 매주 한 차례 발표하는 '서리풀 논평'을 동시 게재합니다. (사)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비영리 독립 연구기관으로서,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의 싱크탱크이자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연구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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