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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새누리당이 먼저 낚아챌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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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새누리당이 먼저 낚아챌 것" [프레시안 조합원 교육]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기본소득(Basic income). 사회 구성원 전체에게 조건 없이 일정한 돈을 준다는 개념이다. <녹색평론>과 일부 진보정당이 오래 전부터 주장했다. 그래서 어떤 이들에겐 익숙하지만, 여전히 잘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기본소득 개념에 익숙한 이들 역시 이런저런 오해 혹은 의문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관련 논의와 토론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던 탓일 게다.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의 10월 조합원 교육은 이런 오해와 의문을 상당 부분 해소하는 자리였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 직접 강연자로 나섰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선도적으로 기본소득 개념을 소개했던 이의 강연답게, 청중의 반응도 진지했다.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가톨릭청년회관 바실리오 홀에서 진행된 강연은 정원 70명을 다 채운 채로 진행됐다. 이어진 술자리에서 오간 대화도 흥미로웠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프레시안(손문상)

"기본소득, 사실은 '시민 배당금'!"

이름만 제대로 붙여도 개념에 대한 오해가 확 줄어드는 일을 자주 본다. '기본소득' 역시 마찬가지다. 한자어 '기본소득'은 영어 표현 베이직 인컴(Basic income)을 번역한 것이다. 그보다는 '시민배당금'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는 게 김 발행인의 생각이다. '기본소득' 개념의 실질에 더 정확하게 부합한다는 것.

"용어 갖고 까다롭게 굴고 싶지 않아서 기본소득이라고 부르긴 한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가장 좋은 표현은 '시민 배당금'이라고 봤다. 소득이라고 하면, 흔히 노동의 대가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반면 '배당금'이라고 하면, 당연히 받아야 하는 권리가 된다. 노동 여부와 무관하게, 사회 구성원이라면 당연히 받아야 하는 기본소득은 '배당금' 개념이다. 이는 역사가 깊은 개념이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에도 나온다. 정치 팸플릿 <상식>으로 미국 독립전쟁에 대단한 사상적 영향을 미쳤던 토머스 페인. 그가 말년에 쓴 책 가운데 <토지분배의 정의>가 있다. 여기에 '시민 배당금' 개념의 핵심 논리가 담겨 있다.

그의 생각은 미경작 상태의 토지는 '인류의 공유재산'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토지에 대한 소유권은 토지 그 자체가 아니라 토지를 경작한 부분에만 한정된다. 따라서 토지 소유자는 기초 지대를 사회에 지불할 의무가 있다. 그 지대를 모아 기금을 만들자는 게 토머스 페인의 생각이다. 그 돈으로 21세가 되는 청년들에게 정액의 일시금을, 또한 50세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남은 인생 동안 매년 얼마간의 돈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득이라는 표현을 쓰니까 고정관념을 깨기가 참 힘들다. 왜 일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돈을 주느냐는 반발이 늘 따라다닌다. 권리 개념인 배당금이라는 표현을 쓰면 이런 문제가 없다."

성장 불가능 시대, 그리고 기본소득

이런 설명에서 중요한 의문 하나가 쉽게 풀린다. 생태주의 매체 <녹색평론>이, 그리고 인문학자인 김 발행인이 왜 '기본소득'이라는 돈 이야기에 천착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경제 성장의 원천인 자연 자원이 '인류의 공유재산'이라는 게 기본소득 개념의 뿌리다. 기업이나 정부가 자원을 소비해서 얻은 이익을 소수에게 넘기는 일은,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공유재산을 부정하는 셈이 된다. 공유재산을 그대로 두면서 거기서 나온 이익을 사회 전체로 '배당'한다는 '기본소득' 개념은, 그 대척점에 있다.

생태주의자가 돈 이야기에 열을 올리게 된 이유 하나가 이 대목에서 풀린다.

신자유주의 모델은 물론이고, 유럽식 복지국가 모델 역시 경제성장 없이는 작동할 수 없다. 그리고 경제성장은 인류의 공유재산인 자연자원, 특히 석유를 대량 소비하는 데 의존했다. 소수 주주의 이익을 위해 자원을 마구 캐낸 기업, 그리고 이들과 결탁한 정치권력을 통제하는 데는 복지국가 역시 성공하지 못했다. 아니 공범 노릇을 했다. 김 발행인은 스웨덴의 대표적인 가구기업 이케아를 예로 들었다. 이케아가 만드는 가구는 스웨덴 목재를 쓰는 게 아니다. 열대 삼림을 마구 베어내 가구를 만든다. 이런 식으로 성공한 기업의 이윤에 의지해 작동하는 복지국가. 그게 옳은지 여부를 떠나, 지속가능한 모델이 아니라는 게 김 발행인의 생각이다. 석유를 포함한 자연자원의 한계는 명확하다는 것.

경제성장이 더 이상 불가능한 시대, 마구잡이식 자원 소비를 용납할 수 없는 시대에 어울리는 경제사상이 기본소득이다.

좌파-우파 구분이 모호해진 이유

기본소득에 대한 논란 가운데 하나가 이념적 정체성이다. 요컨대 좌파-우파 진영 가운데 어디에 속하는지가 애매하다. 일본과 유럽 등에선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우파가 등장했다. 전통적인 복지 전달 체계를 무력화한다며 기본소득에 반발하는 좌파도 있다. 그런데 김 발행인의 시각에선 이런 모호한 상황이 당연한 일이다.

"석유 고갈과 함께, 석유에 의지했던 경제성장 역시 막을 내리고 있다. 따라서 기존의 사고 방식은 버려야 한다. 성장 시대의 관성에 따른 정치 제도 역시 바뀌어야 한다. 기존의 좌파, 우파 구분이 의미가 없어졌다. 1990년대 초 소련이 망한 뒤엔, 좌파나 우파가 단독으로 집권한 사례가 거의 없다. 대부분 연정 방식이다. 정당 간 차이 역시 사라졌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을 보라. 정책 차이가 거의 없다. 사실상 미국은 중국보다 더한 일당독재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월스트리트당, 일당 독재라는 게다.

좌파, 우파 구분이 무의미해진 현상. 경제성장 시대의 정치 시스템으로 경제성장 불능시대에 대응하려니 혼란이 온다. 전통적인 좌파, 우파 구분은 경제성장 시대의 산물이다. 경제성장의 과실을 나누는 방식으로 이념이 갈렸다. 특권층에게 주로 분배하면 우파, 서민 중심으로 나눠주면 좌파였다. 그런데 성장 자체가 안 되면, 그래서 성장의 과실이 사라지면, 전통적인 이념 구분이 의미가 없다. 우파도, 좌파도 자기편에게 나눠줄 떡이 없으니까."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프레시안(손문상)

"우파가 기본소득 지지할 수 있다"

노동 없이는 소득도 없다는 생각은 경제성장 시대의 산물이다. 원하면 누구나 일자리를 얻을 수 있던 시대엔 노동 없이 소득을 얻으려는 발상이 비난 받았다. 그러나 일자리 자체가 턱없이 부족한 시대엔 생각이 달라져야 한다. 노동과 무관한 소득, 보편적 권리로서의 소득이라는 기본소득 개념이 성장 시대의 종말과 맞물리는 것은 그래서다.

"지방대학 인문학 계열 학과 취업률이 0%라는 보도를 봤다. 머지않아 서울 지역 대학 역시 취업문이 닫힐 게다. 너도나도 자영업에 뛰어드는데, 사실 반(半)실업자인 경우가 많다. 커피를 너무나 사랑해서 카페를 차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그래서 나는 우파가 기본소득을 지지할 수 있다고 본다. 나눠줄 떡이 있어야 힘을 갖는다는 걸 우파가 더 잘 안다. 그런데 떡이 없다. 고용 문제가 해결 안 돼서 시장에 돈이 안 돌면, 공황으로 간다. 이것도 우파가 잘 안다. 내가 새누리당이 기본소득 아이디어를 낚아챌 수 있다고 보는 건 그래서다. 물론 그들은 집권하고 나면 말이 바뀌겠지만.

반면, 정규직 노조는 기본소득에 별 관심이 없다. 자칫하면 자기네 소득을 줄일 수 있다고 보는 게다. 게다가 야당은 부자도 아닌데 몸조심을 한다."

미국 알래스카 주, 기본소득 도입 후 빈부격차 대폭 완화

기본소득은 현실과 동떨어진 구상이 아니다. 실제로 적용된 지역이 있다. 대표적인 게 미국 알래스카 주다. 알래스카 주민이면, 누구나 배당금 형식으로 기본소득을 받는다. 석유라는 공동의 자산에서 나온 수익을 주민 전체에게 공평하게 나눈다는 개념이다.

알래스카 주정부는 석유에서 나오는 수입의 4분의 1 이상을 '영구기금'(Permanent Fund)이라는 이름으로 적립하고 있다. 1976년 주헌법을 개정해서 설치한 기금인데, 이 돈이 기본소득의 재원이다. 나눠주는 돈의 액수는 기금 운용상황에 따라 매년 바뀐다. 보통 1인당 1000~3000달러다. 4인 가족의 경우, 이 숫자에 곱하기 4를 하게 된다. 기본적인 생활비가 상당히 보전된다. 알래스카는 현재 실업률과 빈부격차가 미국에서 가장 낮은 지역으로 꼽힌다. 기본소득 덕분이다.

▲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프레시안(손문상)

'노예노동'이 사라진다…"노동 중심 사회에서 활동 중심 사회로"

김 발행인은 기본소득을 얼마로 정하느냐에 따라 사회가 대폭 바뀔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본소득이 넉넉하게 보장된다면, '노예노동'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우리 사회는 굶주림으로 협박해서 더러운 일을 시켜왔다. 그 일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걸 안 하면 굶어 죽으니까 일을 했던 게다. 자유인의 사회가 아니다.

노예노동이 사라지면, 노동 중심 사회에서 활동 중심 사회로 바뀐다. 먹고살 걱정이 없는데 누가 일을 하겠느냐는 반론이 있다. 그렇지 않다. 사람은 지루한 걸 못 견딘다. 의미 있는 활동을 하게 돼 있다.

어떤 좌파는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시장경제가 강화되는 것 아니냐며 반발한다. 돈이 풀린다는 점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시장이 아니다. 시장이 없는 사회, 그건 북한 같은 곳이다. 자유로운 교환이 일어나는 시장은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동일시하는 건 잘못이다. 상품이 돼서는 안 될 것까지 상품으로 만드는 게 자본주의 시장이다. 예컨대 사람, 돈, 토지 등은 상품이 되면 안 된다. 그런데 자본주의 시장에선 이것들을 상품으로 만든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문제다. 반면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인간을 상품화하는 일이 줄어든다."

"기본소득 재원, '이자 없는 돈' 발행해서 해결하자"

이쯤에서 강연은 가장 관심이 뜨거운 문제, 즉 재원 조달 방안으로 향했다. 기본소득 재원 조달의 한 방식은 앞서 소개했다. 알래스카 방식이다. 국유재산에서 나온 수입을 시민 수대로 나누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식은 모든 사회가 채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김종철 발행인은 더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이자 없는 돈'을 발행해서 기본소득 재원으로 삼자는 게다.

여기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우리는 흔히 '정부가 시장에 돈을 푼다'라는 말을 쓴다. 하지만 이는 한국조폐공사가 찍어낸 돈을 그냥 시장에 쏟아 붓는다는 뜻이 아니다. 중앙은행이 공급한 돈은 이른바 은행의 신용창조 활동을 통해 시중에 공급된다. 은행을 매개로 빌리고 빌려주는 관계를 통해서만 돈이 공급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반드시 이자가 붙는다. 따라서 시중에 풀린 총 대출 금액은 총 상환 금액보다 늘 적다. 총 이자만큼의 차이가 생기는데, 문제는 이자에 해당하는 돈은 은행이 공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경제가 계속 성장하고, 통화량이 늘어나지 않으면 은행은 망할 수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김 발행인은 '이자 붙은 돈'을 유통시키는 은행 시스템 자체가 경제성장을 강요한다고 본다. 동시에 경제가 성장을 멈춘다면 은행 시스템 자체가 위기를 겪는다고 본다.

▲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프레시안(손문상)


돈이 권력이 된 이유?…"돈도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떨어져야!"

성장 시대 이후의 대안인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이자 없는 돈'을 활용하자는 건 이런 맥락이다. '이자 없는 돈'의 대표적인 사례가 지역 화폐다.

"우리 사회에서 돈은 권력이다. 이유가 있다. 다른 재화는 모두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줄어든다. 썩거나 퇴화한다. 하지만 돈은 시간이 지나면 이자가 붙는다. 오히려 가치가 늘어난다. 돈의 권력성이 여기서 생긴다. 돈은 '교환수단'으로만 써야 한다. 그러자면, 돈도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떨어지게끔 해야 한다. 실비오 게젤이라는 사람이 낸 아이디어인데, 실제로 적용된 사례가 있다.

대공황 당시인 1932년, 오스트리아의 소도시 뵈르글에서 이뤄진 실험이었다. 심각한 불황 탓에 이 도시엔 실업자가 넘치고 세수(稅收)는 격감했으며, 재정은 파탄 상태였다. 그래서 시의회는 '노동증서'라는 형태의 지폐를 찍기로 했다. 일종의 지역 화폐다. 이 돈을 공무원 급여 지급과 공공사업에 쓰니까, 금세 경제가 살아났다. 비결은 '노동증서'에 첨부하도록 돼 있는 스탬프였다. 이 증서는 효력을 유지하려면 매달 초에 액면가의 1%에 해당하는 스탬프를 사서 첨부해야 했다. 다시 말해, 한 달에 1%씩 가치가 감소하는 지폐이기 때문에 소지자는 그 돈을 빨리 쓰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구조였다. 당연히 화폐 유통이 빨라지고 소비가 활성화된다."

뵈르글의 실험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중앙정부의 개입 때문이다. 그래서 잊혀진 시도가 됐다. 하지만 지역 공동체에선 얼마든지 해볼 수 있는 시도다. 이른바 '노화 화폐' 또는 '감가 화폐' 방식, 즉 가치가 점점 줄어들게끔 설계된 화폐로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것. 김종철 발행인은 한국의 지방자치단체장 가운데서도 이런 실험에 도전하는 사례가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대안은 결국 더 많은 민주주의

강연이 끝난 뒤 간단한 질의응답이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술자리까지 다양한 대화가 오갔다. 기본소득 주장이 나올 때마다 늘 나오는 질문, '인플레이션 위험'도 거론됐다. 기본소득이 지급돼도, 인플레이션으로 화폐 가치가 줄어들면 큰 효과가 없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다. 이에 대해 김 발행인은 기본소득이 가계부채를 상쇄하는 면이 있다고 대답했다. 부채 증가에 제동이 걸린다면, 인플레이션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경제가 세계화 된 상황에서 특정 국가만 기본소득을 도입한다면, 경쟁에서 밀릴 수 있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었다. 이에 대해 김 발행인은 이미 경쟁에서 앞서 있는 나라, 즉 선진국에서 기본소득을 먼저 도입할 가능성이 크고, 한국은 뒤따라 갈 것이라고 대답했다. 실제로 국민소득 도입 논의는 스위스 등 선진국에서 더 활발하다.

이날 김 발행인의 강연은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서 마무리됐다. 그럼에도 강연 참가자들의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기색은 없었다. 강연 이후 쏟아진 다양한 질문은 기본소득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확인시켜 줬다. 확실히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은 최근 몇 년 사이 대폭 높아졌다. 그러나 '신기한 주장', '좋지만 현실에서 구현될 리는 없는 대안' 수준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더 많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넘어서야 할까. 김 발행인이 강연 내내 여러 차례 힘주어 말한 단어들에 답이 있다. '정치적 의지', 그리고 '민주주의'.

▲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프레시안(손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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