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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조삼모사 "월 3만 원 줄 테니, 추위와 싸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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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조삼모사 "월 3만 원 줄 테니, 추위와 싸워봐!" [초록發光] 정부의 에너지 복지, 기초연금의 데자뷰
올겨울은 평년에 비해 포근할 거라더니, 12월 초입의 날씨를 보니 그렇지 않을까봐 걱정이다. 추워야 할 겨울이 따뜻한 것은 생태계의 큰 문제다. 하지만 난방을 제대로 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층에게 예년보다 추운 겨울은 재앙이다.

올해도 지난주부터 수은주가 내려간 이번 주 사이에 에너지 복지 기사가 수도 없이 쏟아졌다. 에너지복지기금이 조성된다는 소식부터 재생 가능 에너지로 에너지 복지를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물론이고, 연탄 기부, 강추위에 괴로워하는 저소득층의 단상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다양해진 기사 내용은 분명 우리 사회가 에너지 빈곤에 대한 관심을 늘려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매년 저소득층의 동사(凍死) 소식이나 연탄가스 중독 사망 소식이 적잖이 계속되고 있다. 에너지 사용 여부가 생존의 문제까지 접근했다는 증거다.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했는지 적극적으로 에너지 복지에 힘쓰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2015년부터 에너지 바우처 제도를 도입할 예정인데, 내용을 보면 정말 안쓰럽기까지 하다. 지난 9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예산안을 보면, 중위 소득 40% 이하인 노인과 아동·장애인 등 90만 가구를 대상으로 월평균 3만원 어치(12~2월 총 10만 원)의 에너지를 쓸 수 있는 쿠폰이 지급될 예정이다.

두 달 연탄 값밖에 안 되는 돈으로 어떻게 3~4개월에 걸친 겨울을 나라는 건지도 알 수 없지만, 그나마도 현재 저소득층, 차상위 계층에 가구당 16만9000원 상당의 연탄 쿠폰을 지급하는 연탄 쿠폰 지급 제도에서 대폭 축소한 것이다. 에너지 복지를 하겠다고 생색을 냈지만 오히려 연탄을 사용하는 가장 어려운 계층은 지원금이 줄어든 셈이다. 기초 노령 연금 20만원을 지급하기 위해 다른 연금을 삭감했던 연금 사태의 데자뷰다.

연탄이 아닌 다른 연료를 사용하는 가정은 더 힘들다. 별도의 보조금이 없는 도시가스나 LPG, 등유, 전력으로 난방을 하는 가정들에게 3만 원의 지원금은 에너지 사용량이 높은 겨울철에 큰 보탬이 되지 않는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가 서울시의 의뢰를 받아 서울시내 1000세대를 대상으로 진행한 '서울시 에너지 빈곤 실태 조사'를 보면 그런 아쉬움은 확신이 된다.

조사에 따르면 저소득층 가구 1000가구 중 자가 거주자는 8%, 전세 거주자는 23%, 보증부 월세 22%, 월세 거주자는 33%, 공공 임대 주택 거주자는 14%로 나타났다. 전체의 55%가 매월 거주 비용을 지출하는 월세/보증부 월세 거주자로 나타났다. 이는 매월 (월세에 들어가는) 고정 비용 지출 비중이 높기 때문에 겨울철에 난방비를 지출하는 게 상대적으로 더 부담스럽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조사 대상자의 52%는 1980년대에 지어진 집에 살고 있었고, 그 이전 시기까지 합치면 76%가 건축된 지 25년 이상 된 집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 노후화로 인해 단열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에너지 비용이 없어서 문제지만, 에너지 비용이 있더라도 집이 너무 낡아 난방 효과가 높지 않은 게 문제다.

에너지 복지는 보편적 복지 문제와는 결이 약간 다르다. 에너지를 기본권으로 봤을 때, 그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은 당연히 보편성을 기반으로 해야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모두에게 연료비를 똑같이 나눠주는 형태로 해결점을 찾기에는 에너지 빈곤이 일어나는 원인이 너무 복잡하다.

에너지 빈곤의 원인은 수도 없이 많지만, 크게는 낮은 소득, 높은 에너지 비용, 주택 에너지의 비효율성이 꼽힌다. 따라서 에너지 바우처 제도가 낮은 소득의 문제에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주택 에너지 비효율성을 해결하지 않으면 에너지 빈곤을 벗어나기 어렵다. 겨울철 긴급 지원 문제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저소득층 주택의 단열 개선을 지원하는 것이 근본책인 것이다.

게다가 날이 갈수록 가속화되고 있는 에너지나 기후 변화의 위기를 감안하면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방식의 에너지 복지 제도는 더욱 설득력이 없다. 우리나라는 1차 에너지 소비 기준으로 세계 8~9위의 에너지 소비 대국이다.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미국과 호주(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등을 제외하면 선진국을 넘어선지 오래고, 온실 기체 배출량은 세계 7위로 올라섰다.

또 지난 서울 G20 정상 회의에서 각국은 화석연료 보조금을 점진적으로 철폐하기로 했기 때문에 약간의 에너지 보조금으로는 연료 비용을 감당하기에는 어림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보조금 방식으로 에너지 복지 시책을 만드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그것도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사실상 보조금을 줄여가면서까지 말이다.

그런 점에서 시민단체인 한국주거복지협회가 진행하고 있는 '희망의 집수리' 사업은 에너지 복지를 위한 좋은 본보기가 된다.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약 300만 원 정도의 집수리 비용을 들여 단열 공사를 지원을 할 경우 적게는 10%대, 많게는 30~50%대의 에너지 절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기에 집수리 공사기 때문에 항구적이지는 않더라도 10~20년 정도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서 투입 비용 대비 사회적 효과도 높게 나타나고 있다. 서비스를 지원받은 대상 가구들의 만족도도 매우 높다. 이렇게 효과가 검증된 사업을 제쳐두고 정부가 에너지 공급 위주로 에너지 복지 대책을 퇴행시키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수용하기 어렵다.

물론 연탄을 후원하거나 연료비를 지원하는 것 역시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정부는 시민단체가 아니다. 정부는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국가 차원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의무를 진다. 그런 의무를 포기하고 '내 갈 길만 간다'는 식으로 고집을 부린다면 그 누가 정부를 신뢰하고 협력하겠는가.

이미 날이 상당히 추워졌다. 연료비 부족으로 인해 또 다시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하려면 정부가 시급히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추위는 그대들의 복지부동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거기에 덧붙여 그대들의 퇴행적 조삼모사도.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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