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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세금 낭비로 얻은 여의도연구소의 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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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엉뚱한 세금 낭비로 얻은 여의도연구소의 명성 [조성복의 '독일에서 살아보니'] 독일의 정당 ⑪ 정당관련 정치재단
얼마 전 진보진영에 정책이 부재하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논란이 됐었다. 2014년 6.4 지방선거 이후, 특히 7.30 재보궐선거 참패 후 야권의 진로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이 문제가 소위 진보에 가까운 현재의 야권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반대편에 있는 보수적 정부나 여당이라고 해서 얼마나 다르겠는가.

우리 정당들은 의무적으로 정당연구소를 두고 있지만, 정작 그 연구소들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간단히 말해 정당연구소의 당위적 과제들이 정당이나 그 정당 출신 정치인들의 이해관계와 항상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정당연구소는 장기적이고 거시적 관점에서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찾아내고 이를 해결하는 대안들을 모색해야 한다. 반면에 정당이나 정치인들은 매번 눈앞의 선거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그러한 입장과는 괴리가 있을 수 있다.

여기서는 "정당과 정당연구소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는가?" 또 "정당연구소에 대한 지원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하는 문제들을 독일의 사례에 비추어 생각해 보겠다.

기민당(CDU) 관련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Konrad-Adenauer-Stiftung; KAS)이나 사민당(SPD)의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Friedrich-Ebert-Stiftung; FES, 1925년 설립) 등은 우리에게도 비교적 많이 알려진 독일의 대표적인 정당 관련 정치재단들이다. 또한 기사당(CSU)은 '한스 자이들 재단'(HSS, 1964년 설립), 자민당(FDP)은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FNS, 1958년 설립), 녹색당은 '하인리히 뵐 재단'(HBS, 1996년 설립), 좌파당은 '로자 룩셈부르크 재단'(RLS, 1990년 설립)과 협력하고 있다.

▲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 ⓒ조성복

이들은 주로 국가보조금에 의해 운영되는데, 이를 받기 위해서는 관련 정당이 세 차례 연속으로 연방하원에서 5% 이상의 의석을 유지해야 한다. 위에서 하인리히 뵐 재단이나 로자 룩셈부르크 재단의 설립시기가 다른 재단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은 것은 녹색당이나 좌파당이 80년대 이후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연방차원이 아닌 특정 주에서만 활동하는 정당 친화적 정치재단들도 다수 존재한다. 예를 들어 CDU와 가까우며 주로 노드라인-베스트팔렌 주에서 활동하는 '카알 아놀드(Karl Arnold) 재단'이 그것이다. 이 재단은 2차 대전 이후 이 주의 첫 번째 주지사였던 카알 아놀드를 기념하여 1959년에 설립되었다. 이처럼 지역 단위 재단들의 활동이 활발한 것은 지방분권이 정착하여 주 정부의 재정이 잘 확보되기 때문이다.

비록 정치재단은 아니지만 독일노총(DGB)의 결정으로 1977년 설립된 '한스 뵈클러 재단'(Hans-Böckler-Stiftung)도 유명하다. 이 재단의 주요 수입원은 노조대표자들 중심의 기부금과 연방정부의 지원이다. 1995년 '경제사회연구소'(WSI)를 연구기관으로 흡수, 통합하면서 경제 및 노사관계 분야에서 나름의 권위와 함께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실제로 쾰른에는 한스 뵈클러 광장이 있고, 같은 이름의 지하철역도 존재한다.

정치재단들은 각각 관련 정당의 정치적 노선이나 관점을 직간접적으로 홍보하면서 긴밀한 협력관계에 놓여있기는 하지만, 법적으로나 조직적으로 완전히 독립된 기구이다. 이들의 공식적 과제는 시민 정치교육, 정치인 육성을 위한 장학지원, 후진국 협력 등이다. 이를 위해 일부 재단들은 주로 후진국 및 개발도상국에 해외사무소를 두고 있다.

이들의 재정은 대부분 연방내무부, 연방대외협력부, 외무부의 예산으로 충당되고 있으며, 일부는 기부금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국고지원은 연간 수천억 원에 달하는데, 2000년 약 3억 유로(약 4000억 원)에서 2011년 약 4억 2300만 유로(약 5700억 원)로 증가하였다. 이는 모체가 되는 정당들에 대한 국고보조금보다 3배 이상 많은 액수이다. 우리가 제대로 된 정당연구소를 갖고자 한다면, 현재보다 훨씬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KAS는 원래 1955년 '기독민주교육협회'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으나, 1964년부터 초대 수상 '콘라드 아네나워'이름을 가져왔다. 이 재단은 연방차원에서 2개의 교육센터와 16개 지부를 두고 활동하고 있으며, 10개 주요부서에 총 560명이 근무하고 있다. 수입의 95% 이상을 국고보조금으로 충당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60%가량은 프로젝트에 기초하여 지원을 받고 있다. 그밖에 행사참가비 등을 포함한 자체수입과 기부금이 있는데, 각각 3%와 1%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다.
이 재단은 기독민주운동을 연구·정리하고, 정치교육과 유럽통일에 힘쓰고 있으며, 예술과 문화를 후원하고, 우수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다른 정치재단들과 마찬가지로 기민당을 위한 싱크탱크로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회에 필요한 정책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자신의 활동분야를 남동유럽,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지역으로 나누어 약 80개의 해외지부를 두고, 각국의 민주주의 발전, 인권보호, 법치국가의 달성 등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120개 국가에서 200여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기독교 성격의 정당이나 유관기관들을 후원하고 있다. 이 재단의 국제부는 해외지부의 정보들을 취합하고 연구하여 외교정책, 개발도상국 협력, 다른 나라에 대한 정보 등을 포함하는 다양한 자료집이나 출판물들을 발간하고 있다.

아데나워 재단의 대표는 1955년부터 현재까지 약 60년 동안 불과 8번 바뀌었을 뿐이다. 이 밖에도 지방언론의 발전을 위해 1980년부터 '독일 지방저널리스트상'을 시상하고 있으며, 1993년부터는 'KAS 문학상'을, 2002년부터는 독일의 경제시스템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데 공헌한 이들에게 '사회적 시장경제상'을 수여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개정된 정당법 제27조에 따라 2004년 처음으로 정당연구소를 설치하게 되었으나, 독일의 정치재단들의 활동과는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의 '여의도연구소'는 각종 선거에 대비한 여론조사 결과의 정확성으로 그 명성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행태로 국민의 세금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는 셈이다. 그 여론조사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선거에 나갈 후보자들이나 정당관계자들이지, 일반 국민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2010년 여의도연구원이 아네나워 재단과 업무제휴를 맺었다고 하는데, 이를 통해 과연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궁금하다. 독일에 있을 때 KAS이 출마자들을 위한 여론조사를 한다는 얘기는 전혀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민주정책연구원'은 이보다 더 열악하다. 연구소 인원의 다수가 정당업무에 전용되고 있다고 하기도 하고, 연구원의 채용 자체가 계파 간 나눠먹기라는 소문도 있기 때문이다. 또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그 존재감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그밖에 다른 소수 정당들의 연구소들도 별반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도 정당의 여러 가지 활동이나 행사에 동원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정당연구소가 정당활동에 동원되지 않는다. 양자 간에 협력은 하지만 분명하게 서로 독립된 기관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리의 경우에는 정당연구소가 형식적인 독립기관일 뿐 실제로는 정당과의 경계가 모호한 상태이고, 그래서 마치 정당의 하부기관처럼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중장기적인 정책대안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당과 정당연구소 사이의 종속관계는 양자 관계를 규정하는 제도적 장치들에 허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연구소의 인사와 조직 면에서 실질적인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는 규정이 부재하고, 연구소의 재정이 정당의 국고보조금 총량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이다.

원래 규정에는 정당연구소를 정당과 독립된 별도법인으로 설립하도록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연구소의 인사와 재정이 정당에 심각하게 종속되어 있다. 그동안 상황을 돌아보면 보통 당 대표가 정당연구소의 이사장을 겸직하고, 연구소장은 주로 자기당의 국회의원이나 또는 당 대표와 가까운 사람이 맡아 왔다. 따라서 연구소가 정당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이마저도 수시로 바뀌어왔기 때문에 연구활동의 안정성이나 연속성을 확보할 수 없었다.

한국의 정당연구소에 대한 지원액은 2012년 기준 약 340억 원에 불과하다. 이는 정당에 대한 전체지원액 1020억 원의 약 30%에 해당하는 것으로, 정책개발을 위해 정당보조금의 일정액을 반드시 정당연구소에 사용하도록 정해놓은 정치자금법 제28조를 따른 것이다. 그나마 이것이라도 온전히 정책연구에만 사용되면 좋을 텐데, 그마저도 다른 형태로 전용되고 있는 것이 우리 정치권의 현실이다.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 총액의 30%를 지원하는 기존의 방식을 독일처럼 국회에 진출한 정당 관련 연구소들에게 프로젝트 베이스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는 선거결과에 따라 액수가 바뀌는 정당의 국고보조금과는 별개로 책정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정당연구소가 선거에 동원되는 일도 줄어들 것이고, 프로젝트에 기반을 두어 지원을 받기 때문에 어떤 정책들을 연구할 것인지를 먼저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정당연구소의 정책역량이 강화될 것이 분명하다.

정당연구소의 프로젝트는 기존 행정부처에 속한 국책연구소들의 식상한 연구물들보다는 훨씬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현장의 경험으로부터 보다 피부에 와 닿는 정책들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것은 많은 국책연구소들이 의무적으로 생산해내는 수많은 발간물들의 주제들을 훑어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그것들이 경우에 따라서는 필요한 연구이기도 하겠지만, 많은 부분 우리 사회의 긴박한 상황이나 쟁점과는 동떨어진, 연구를 위한 연구들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정당연구소를 살려야 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정책정당이나 이를 위한 정당연구소를 만들고자 한다면, 먼저 정당과 정당연구소 사이의 종속관계를 단절해야 한다. 이들이 특정 사상이나 이념을 공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인원충원 등 조직이나 재정문제, 또 그 역할에서는 서로를 확실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위에 언급한 대로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들을 시급하게 마련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정당연구소 본연의 기능이 되살아나고, 그동안 비판받아온 정당의 정책 부재에 대한 우려도 해소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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