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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에게 열 받아 조현아한테 화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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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에게 열 받아 조현아한테 화풀이?" [정희준의 어퍼컷]'조현아 현상'의 불편한 진실
만약 여자가 아닌 남자가 월경을 하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분명 월경은 자랑거리가 되고 부러움의 대상이 될 것이다. 소년들이 초경을 하면 파티가 열릴 것이다. 남자들은 자기가 얼마나 오래 월경을 하는지 자랑할 것이고 누구의 생리량이 더 많은지 따질 것이다. 과거엔 공수부대 출신과 해병대 출신이 어디가 더 센지를 증명하기 위해 술 마시다 말고 결투를 벌여 사람이 죽기도 했다지만 이제 남자들은 누구의 생리량이 더 많으냐를 가지고 목숨을 걸 것이다.

매달 '새로운 피'로 거듭나는 남성들이 보기엔 죽을 때까지 더러운 피를 몸에 지니고 살아야만 하는 여성들은 불결한 집단이다. 따라서 생리는 고결하고 거룩한 것이다. 특히 고통과 함께하기에 남성다움의 절정이자 정수가 된다. 그래서 남성이 여성을 무시할 때 가장 자주 하는 말이 바로 이거다. "생리도 못 해본 것들이."

이렇게 해서 생리는 남성들의 자부심이 되었고 나아가 생리는 남성들의 권리가 되었다. 당연히 생리대는 모든 남성들에게 무상으로 공급된다. 대학에서 남학생들에게는 한 달 한 번 결석이 무조건 보장된다. 생리불순은 무제한 응급실 이용이 가능하다. 국립 월경불순연구소가 생겼고 암이나 심장마비보다 생리통에 더 많은 연구비가 투입된다.

그렇다. 남자는 위대하다. 그들이 하면 그게 곧 기준이고 법이 된다.(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저서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Outrageous acts and everyday rebellions)>(이현정 옮김, 현실문화 펴냄)의 내용에 조금 덧붙여봤다.)

그가 남자였다면

조현아 파문이 한국사회 모든 쟁점을 덮어버릴 정도가 됐다. 정윤회도, 문고리 3인방도, 4자방(게이트?)도, 새정치민주연합의 전당대회도 '땅콩' 하나를 당해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활주로에서 이동 중인 비행기를 돌려 사무장을 내리게 한 것을 두고 우리는 '금수저 물고 태어난 재벌3세의 슈퍼갑질'이라며 대한항공마저 분쇄할 분위기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증이 하나 생긴다. 만약 조현아가 남자였다면?

SK그룹 창업자인 최종현의 조카이자 현 회장인 최태원의 사촌 동생인 최철원은 2010년 회사 합병 때 고용 승계 문제로 항의하던 노동자를 사무실에서 직접 야구방망이로 두들겨 패고 맷값 2000만 원을 던져준 일이 있었다. '충격적'이라는 척도에서는 조현아나 최철원이나 막상막하다.

평소에도 직원들을 구타하고 협박했다는 최철원은 이 사건 이전에도 층간소음을 항의하는 이웃을 협박하고 멱살잡이까지 한 적이 있다는 사실까지 밝혀졌다. 그것도 장정 3명을 거느리고 야구방망이를 직접 든 채 이웃을 찾아가서는 문을 열어준 외국인을 다짜고짜 멱살을 잡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이 바람에 공포를 느낀 그 가족은 서둘러 이사가기까지 했다. 조현아와 최철원, 누가 더 나쁜 인간인가?

그런데 당시 검찰에 출두하는 최철원의 모습과 조현아가 검찰에 가는 장면은 너무도 판이하게 다르다. 최철원은 고개 들고 당당하게 걸어 들어갔다. 기자들도 포토라인을 지켰고 대표로 두 명이 다가가 마이크를 내밀어 그에게 질문했다.

이번에 조현아가 검찰에 출두하는 모습을 봤다. 아수라장이었다. 그런데 생경한 장면이 나의 눈을 잡아끌었다. 내 눈엔 여성 기자들이 동원된 것처럼 보였다. 이는 최철원 때처럼 질서를 지킬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질서를 지켜 거리를 두고 질문을 할 거였으면 평소처럼 남자 기자였어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여기자들은 '들개처럼' 달려들었다. 그들은 한 여성을 가로막았고 붙잡았고 밀쳤다. 혼란 속 한 시민은 조현아의 목덜미를 잡기까지 했다. 연쇄살인범이나 유아강간범이 붙잡혔을 때 이 정도였는지 모르겠다. 조현아는 호송하는 여성 수사관들의 뒤에 숨으려는 것인지 품에 안기려는 것인지 도망갈 곳을 찾는 듯했다. 그러나 도망갈 곳은 없었다.

▲ 검찰에 출두한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 연합뉴스

우리는 도대체 무엇에 분노하는 것인가

300여 명이 탄 국제선 항공기를 돌리고 안전을 책임진 사무장을 무릎 꿇리고 결국 내리게 한 것은 '슈퍼갑질' 맞다. 조현아 사건은 애초부터 한국사회의 모든 현안과 쟁점을 휩쓸어 버릴 사건이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는 거국적으로 조현아 물어뜯기, 대한항공 두들겨 패기에 뛰어들었다. 왜 그랬을까? 재벌에 대한 반감? 재벌 2세도 아닌 3세라서? 정말 재벌 3세의 슈퍼갑질 때문에 온 국민이 합심해서 조현아를 비난하고 조롱하는가.

그 정도 가지고 이 사건에 대한 전 국민적 몰입과 공분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조현아에게 화풀이를 해대고 있을까. 간단하다. 조현아가 '재벌'하고도, 바로 '여자'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좋은 재벌'은 없다. 비자금, 횡령, 탈세, 배임은 기본이다. 얼마나 덜 나쁘냐만 따질 수 있는 부류가 바로 재벌들이다. 그 나쁜 재벌들의 총수나 가족이 검찰에 출두할 때 이런 아수라장은 없었고 재벌이 구속되면 세간에서는 '그래도 경제를 살려야 하는데'하며 동정론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조현아는 그 경우와는 정확하게 반대다.

최철원 때와의 비교 외에도 조현아의 아버지 조양호 회장과의 비교도 가능하다. 조 회장은 1999년 세무조사에서 탈루소득 1조895억 원, 추징금 5416억 원이라는, 당시로서는 사상 최고의 탈루액과 추징액을 기록한 인물이다. 죄질이 아주 나쁜 경우였다. 그러나 지금 같은 전 국민적 공분을 몰고 오지도 않았고 조현아처럼 '올해의 인물'급 축에 들지도 못했다.

한 법조인은 이미 구속된 조현아의 죄는 구속할 사안이 아니라고 한다. 검찰은 증거인멸의 가능성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사실 확인이 이미 다 끝난 상황인데 새롭게 증거를 따질 것도 아니고 또 도주의 가능성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불구속수사가 원칙인 요즘 조현아에 대한 구속은 쇼를 하겠다는 의미 아니겠냐고 말한다.

또 다른 법조인은 변호사는 물론이고 판검사들 사이에서도 조현아 구속은 잘못됐다는 의견이 우세하다고 한다. 그는 조현아가 너무 가혹하게 당하고 있다면서 법리적으로 봤을 때 이번 사건은 몇백만 원의 벌금형 정도로 끝날 사안인데 이상한 방향으로 갔다고 한다.

그는 검찰이야 사건을 키우려고 할 수도 있지만 설사 그랬더라도 법원에서 이 구속영장을 기각했어야 했는데 아마도 담당 판사가 여론의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발부한 게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또 그는 지금 분위기로는 예를 들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정도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하면서 그렇게 되더라도 문제라고 한다. 사람이 밉긴 하지만 법리적으론 벌금형 정도라는 것이다.

만만한 상대 그 이름은 여자

최근 벌어지는 일들을 엮어 보면 우리 사회는 여성들에게 가혹하다. 특히 '여성 지도자'에 대해서는 터럭만큼의 관용도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 서울시향의 박현정 대표가 막말 논란 끝에 사퇴했다. 한번 생각해보자. 만약 그가 남자였다면 그 정도(?)의 언행이 그렇게 문제가 됐겠는가.

지난해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의원은 최초의 (교섭단체) 여성 원내대표였고 비상대책위원장이었으나 결국 5개월 만에 하차했다. 같은 당 의원들이 '같은 당 사람 맞나' 싶을 정도로 매정하고 야비하게 몰아붙여 결국 끌어내렸다. 남자 대표였다면 그랬을까. 아니다. 과거엔 자기 이름 숨기고 비판했다. 야당 대표가 이제까지 그렇게 많이 바뀌었지만 이때처럼 이름 내놓고 비난하지는 않았다.

윤진숙 해양수산부 전 장관이 한동안 세간의 화제였다. 말실수를 꽤 했다. 그러나 그의 실수나 잘못이 '국민오락'의 소재가 될 정도의 것은 전혀 아니었다. 혀를 차게 만드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다른 비리 장관이나 무능 장관, 뻔뻔스런 장관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다. 문화부 장관을 지낸 유인촌은 국회에서 기자들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하기까지 했지만 그냥 넘어갔다. 그럼에도 우리는 윤진숙을 열심히, 신나게 조롱했다. 왜 그랬을까. 혹시 그에게서 비쳤던 '아줌마 이미지' 때문은 아니었을까. 우리 안에 껌처럼 붙어있던 '아줌마 무시' 성향이 오랜만에 활화산처럼 타오른 것 아니었을까.

조현아를 포함해 위의 여성들에겐 공통되는 점이 하나 있다. 지도자였던 그들에 대한 인신공격은 모욕적이었고 물러나는 과정은 치욕적이었다는 점이다.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에서 한 구절을 인용해본다.

"기성체제는 자신에게 도전하는 모든 사람들을 처벌하여 체제를 유지하려 한다. 특히 여성들의 저항은 가장 근본적인 사회 구조에 타격을 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처벌은 처절하다. 성역할 구분은 기존 질서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조현아를 재벌3세라는 프레임을 내세워 비판하지만 사실 그건 가짜다. 조현아 비난의 동력은 그가 여성이라는 사실에서 시작됐다. 우리 사회에서 된장남은 보기 힘들지만 된장녀는 찾기 쉽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조현아조차 남성들의 카르텔에서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실수했을 경우 이에 대한 벌은 가혹하기만 하다.

여성에게 더 가혹한 여성들?

"여성들이 자신을 존중할 줄 모르는 것은 여성들 서로를 끌어내리며, 자매애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기도 하다. 사회의 기대에 순응하는 여성들은 순응하지 않는 여성들을 경계한다. 그들은 속으로 '저 시끄럽고 여자답지 못한 여자들이 우리 모두에게 해를 끼칠 꺼야'라고 생각한다."(<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중에서)

지난 연말 모임에서 만난 한 교수는 조현아 사건을 지켜보며 자신이 평소 SNS상에서 페미니스트라 생각했던 지인들이 더 조현아를 공격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의 (주류) 페미니즘은 '좋은 여성,' '나쁜 여성'을 구분하는 건 아닌가 싶다. 특히 남성들이 비난하는 여성은 보호해 줄 생각을 하지 않는 듯하다.

그래서 남성들이 비난하는 여성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남성 사무장을 무릎 꿇린 조현아가 그랬고 위에 언급된 세 여성지도자들도 그랬지만 1998년 차범근 감독의 아내인 오은미 씨도 그런 사례였다. 그때 여성계는 여성계가 입게 될 타격만 걱정했다. 말 잘하고 당당한 여성이었던 오은미를 돕기 위해 나섰던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한국의 여성주의는 남성들에게 길들어 있는 것 아닌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글을 한 번 더 인용해 볼까 한다.

"예전에 내가 갖고 있었던 남성우월주의적 편견을 생각해 보면, 그 편견 안에는 여성에 대한 경멸, 심지어 나 자신에 대한 경멸이 밑바닥에 깔려 있었던 것 같다. 이것이야말로 사회에서 하등인간 취급을 받는 사람들이 겪는 가장 가혹한 처벌이라 할 수 있다. 사회는 우리를 세뇌하여 우리 스스로 열등하다고 믿게 만든다. 설사 우리가 사회에서 어느 정도 성공한다 해도 자신은 다른 여자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여자들과 어울리지 않으려 한다."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우리

'조현아 현상'에는 그가 여자라는 점과 똑똑한 여성들이 그를 더욱 매몰차게 비난한다는 점 외에 하나가 더 있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우리들의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물론 조현아가 재벌집 사람에 부사장이었으니 약자라는 내 말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자인 데다가 아직 젊은 사람이고 또 대한항공도 재벌치고는 (특히 언론에게는) 만만한 재벌이다. (조현아가 삼성가의 3세였다면?) 우리가 비난할 수 있는 유명인 중엔 상대적으로 약자다.

조현아 구속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변호사는 '조현아 현상'을 한마디로 설명한다.

"박근혜한테 열 받은 사람들이 조현아한테 화풀이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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