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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대침체 주범인가 미국 부활 일등 공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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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대침체 주범인가 미국 부활 일등 공신인가 [인터뷰] 박영철 전 원광대 교수의 월스트리트 진단
지난 5∼6년간 미국 금융시장의 상징이며 심장인 월스트리트는 곧잘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와 심각한 경기 침체를 유발한 주범으로 지목됐다. 가장 대표적인 비난의 대상은 월스트리트(Wall Street)의 대형 회사 대표(CEO)들의 눈먼 탐욕, 아무도 그 파장을 알지 못하는 신형 파생상품(Derivatives)을 무분별하게 발행한 투자 기관, 이들 파생상품에 턱없이 높은 거짓 순위와 평가를 남발한 미국 3대 신용 평가사의 부도덕성 등이다.

다행히도, 거대 공룡이 되어가고 있는 월스트리트에 대한 근원적인 경제적 '존립 이유'에 대한 회의론이 최근 대두하고 있다. 하나는, 미국의 소득 양극화를 악화시키는 주범이 월스트리트라는 주장이다. 다른 하나는 월스트리트가 유능한 인재들을 흡수할 뿐, 인재 활용의 효율성이 낮아 그들이 미국 경제에 긍정적인 공헌을 하지 못하게 한다는 주장이다.

소득 양극화 현상의 심각성과 함께 금융 산업과 실물경제의 '괴리'라는 특이한 현상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최적의 자원 배분 원칙'과 '효율성 극대화' 테스트에서 낙제점을 받는 월스트리트의 실상이 부각되면서, 월스트리트의 경제적 위상을 축소해야 한다는 개혁론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등장했다.

월스트리트 문제에 대해 박영철 전 원광대 경제학부 국제경제학 교수의 분석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이메일을 통해 1월 중순부터 2월 초까지 이뤄졌다. 아래는 박 전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월스트리트와 메인스트리트

전희경 : '월스트리트는 미국 경제에 득인가 실인가‘라는 이번 인터뷰 주제가 매우 도전적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미국의 월스트리트는 세계 금융시장의 심장으로 미국 경제의 견인차 구실을 한다는 생각을 하는 많은 미국인에게는 의아하게 들릴 겁니다.

박영철 : 좋은 지적입니다. 2007년 9월 미국의 4위 대형 투자은행인 리먼브라더스(Lehmann Brothers)의 파산 선고로 촉발된 세계 금융 위기와 그 이후 대침체의 주범이 월스트리트라는 비난에 반대하는 의견이 당시에는 절대 소수였습니다. 그런데 세계 선진국 중 유일하게 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공식적인 대침체를 벗어난 요즘에는 이 같은 미국 경제 회복의 일등 공신도 월스트리트라는 평가에 적잖은 경제 전문가가 동의하는 현실입니다. 하지만 최근 6∼7년간 미국 경제 전문가들이 진지하게 월스트리트의 자원 배분과 효율성, 공정한 소득 분배 역할에 대해 깊은 회의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전희경 : 우선 월스트리트가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해주십시오.

박영철 :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미국 뉴욕시 맨해튼 남쪽 끝 증권거래소 등이 있는 지역을 말합니다. 또 하나는 경제적으로 금융시장, 대형 금융기관, 대기업, 고위 임원(CEO, CFO, Hedge Fund Managers) 등을 총괄하는 금융 투자 공동체를 말합니다. 이 금융 투자 공동체의 사무실이 반드시 월스트리트에 소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금융 투자 결정을 집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전희경 : 월스트리트에 대비해 비유적으로 메인스트리트(Main Street)라는 단어도 사용되는데 그 경제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박영철 : 간단히 말하면, 월스트리트는 대형 금융 경제이고 메인스트리트는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는 '소매 실물경제'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두 경제 모델의 대조적인 현상, 예를 들면 이 둘 간의 '비동조'(Decoupling) 현상이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깊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전희경 : 경제학 시간에 '금융시장은 실물경제의 보조 역할을 한다'고 배웠는데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말씀인가요?

박영철 : 그렇습니다. 이 두 모델이 상호 보완적이라기보다는 금융 위주의 독점적인 운영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심지어 한 모델에 좋은 것은 다른 모델에 나쁘다고까지 하는 실정입니다. <표 1>을 보십시오. 두 경제 모델이 추구하는 목적, 가치, 이해관계, 투자 형태 등에서 극적으로 상이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표 1> 월스트리트와 메인스트리트 비교

(출처 : //www.neweconomyworkinggroup.org)


전희경 : 같은 나라에 존재하는 두 경제 모델이 이처럼 대조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데요?

박영철 : 가장 대조적인 네 가지 경우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 경제 행위의 동기가 거의 극과 극입니다. 월스트리트에서는 돈을 투자해 돈을 버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돈으로 하여금 '일하여' 돈을 벌게 하는 것입니다. 메인스트리트에서는 인간의 삶을 유지하고 존속하는 것이 경제 행위의 동기입니다. 둘, 경제 행위의 본질이 월스트리트에서는 재벌의 부를 늘려주는 돈놀이입니다. 이와 달리 메인스트리트에서는 우리 삶에 직접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것입니다. 셋, 월스트리트에서는 투자 목적이 재벌 이익의 극대화인 것에 반해 메인스트리트에서는 사회 공동체의 이익 증대가 투자의 목적입니다. 넷, 월스트리트의 '취업계수'와 '취업유발계수'가 전체 산업 평균에 크게 뒤떨어져 고용 창출 효과가 미미합니다.

전희경 : 지금까지 두 모델의 본질을 비유적으로 말씀하신 것이지요? 현실이 실제 그런가요?

박영철 : 비유적으로 말씀드렸지만, 현실도 거의 비슷합니다. 예술 분야에서는 '인식이 현실이다'라고 하는데, 경제에서도 통하는 진리입니다. 월스트리트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경제의 금융화와 증권화가 초래한 재앙

전희경 : 그런데 왜 최근까지는 월스트리트에 관한 부정적인 인식이 별로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박영철 : 좋은 지적입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월스트리트의 경제적 위상이 실물경제보다 급격히 팽창한 것은 최근 현상이라는 사실입니다. 월스트리트의 급속한 경제적 성장은 1990년대에 시작된 경제의 금융화와 2000년대 초반에 급속히 개발된 금융 상품의 대대적인 증권화로 인해 가능해진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월스트리트의 부정적인 경제적 영향에 대한 경제 전문가들의 깊은 연구가 최근에야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전희경 : 경제의 금융화와 증권화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박영철 : 경제의 금융화는 한 나라의 경제에서 금융 산업의 비중이 크게 확대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즉 금융 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확대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재화의 생산이나 교역보다는 금융 상품과 금융 거래를 통한 이윤 창출의 기회와 규모가 커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지난 20여 년간 금융화 현상이 미국과 영국을 선두로 급격히 확산된 이유는 1) 세계화 현상, 특히 국제 자본 이동의 자유화, 2) 은행에 대한 규제 해제, 3) IT 기술 진보로 인한 새로운 금융 상품(특히 뮤추얼펀드와 파생상품 등)과 금융 기법의 개발이라고 봅니다. 강조할 사항은 미국의 경우 미국 의회가 월스트리트의 새로운 금융 기법 개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수행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미국 정계, 특히 공화당이 주도한 의회가 정경유착의 주범이란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전희경 : 증권화 현상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박영철 : 경제의 증권화는 한 나라의 금융 상품 유동성이 대폭 팽창된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주식이나 채권, 외환 등에서 파생한 여러 상품을 만들어 냄으로써 금융 산업의 유동성이 급속도로 팽창한다는 얘기입니다. 극단적인 예로, 2007년 초반에 한 배우의 장래 30년 영화 수입을 바탕으로 파생상품을 만든 예가 있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2007년 9월 리먼브라더스 파산 전에 글자 그대로 무엇이든 증권화가 가능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전희경 : 구체적으로 월스트리트의 경제적 위력이 실물경제의 그것에 비해 어떻게 훨씬 급격히 성장할 수 있었는지요?

박영철 : 월스트리트는 금융 산업, 금융 섹터, 금융 자본주의와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금융 산업이란 단어를 쓰겠습니다. 한국에서는 '금융 보험업'이라고 합니다.

우선 1980년에는 세계 실물경제(GDP)와 세계 금융자본이 비슷했습니다. 1990년대부터 세계 금융자본의 규모가 급속도로 커졌습니다. 1990년에 이미 세계 금융자본이 43조 달러, GDP가 21.5조 달러로 금융자본이 실물경제의 두 배가 됐습니다. 2010년에는 3배, 2014년에는 3배가 훨씬 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여기서 강조할 사항은 세계 금융자본의 통계를 잡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2010년 말의 세계 금융자본 180조 달러에는 매우 중요한 다음 3가지 금융자본이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보험 자본, 은행의 개인 중소기업 대출, 그리고 엄청난 액수의 파생상품이 빠져 있습니다.

<표 2> 세계 금융 자산(단위 : 1조 달러)

(**) 파생상품은 자본 조달 행위가 아니어서 세계 금융 자산에 포함되지 않는다. (자료 : The Guide to Financial Markets, IMF)


전희경 : 말씀하신 파생상품이 바로 2007년 9월에 당시 미국 4위의 대형 투자회사 리먼브라더스 파산을 불러온 금융 상품이지요?

박영철 : 맞습니다. 그 규모가 아직도 엄청납니다. 미국에서만 2012년에 '명목 파생상품'의 액수가 633조 달러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시장에서 거래되는 총 파생상품 액수는 이보다 훨씬 적은 25조 달러로 알려져 있습니다. 2007∼2008년 세계 금융위기 후 도입된 여러 규제 조치의 결과입니다.

'공짜 점심' 즐기며 실물경제 발목 잡는 월스트리트

전희경 : 지금까지 말씀하신 미국 경제의 금융화가 오늘날 월스트리트를 세계 금융시장의 심장부로 올려놓았군요. 그런데 이처럼 막대한 경제력을 가진 경제 주체의 경제 성장에 대한 기여와 평등한 소득 분배 역할, 자원 배분의 효율성 등에 대한 회의와 반발이 번지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박영철 : 2007∼2008년 금융 위기와 '대침체'를 거치면서 경제학자들을 필두로 월스트리트의 경제적 존립 이유에 대한 연구 논문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월스트리트 개혁론자로는 우선 뉴욕대의 토마스 필리폰(Thomas Philippon) 교수와 버지니아대의 아리엘 레셰프(Ariell Reshef) 교수, 루즈벨트대의 오즈거 오랑가지(Ozgur Orhangazi) 교수, 프린스턴대의 버튼 맬키엘(Burton Malkiel) 교수 등이 있습니다. 미국 정계에서는 아직 미약한 소수 의견이지만, 상원의원인 엘리자베스 워렌(Elizabeth Warren)과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가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미국 연준 의장 재닛 옐런이 대학 금융 교육의 다변화를 주장하고 있고, 미디어에서는 딜런 래티건(Dylan Ratigan)이 <욕심쟁이들(Greedy Bastard$)>라는 책을 쓰고 특히 헤지펀드 관리자 등을 질책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주장을 제가 보는 중요성의 순서로 정리해 봤습니다.

<표 3> 월스트리트의 경제적 가치에 대해 비판적인 연구 결과

(자료 : NYU의 Thomas Philippon and UVA의 Ariell Reshef)


전희경 : <표 3>에 나오는 비난 논리가 무섭게 들리는군요. 가장 심각한 문제 두서너 개만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박영철 : 우선 첫 번째 연구 결과부터 설명드리겠습니다. GDP 비중(%)으로 본 미국의 금융 산업은 지난 50년간 두 배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30년 동안 미국 금융 산업의 성장률은 GDP 성장률의 6배였습니다. 문제는 금융 산업의 덩치가 너무 커지는 경우 오히려 실물경제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IMF 경제학자들은 "미국 등 몇 나라에서는 금융 산업의 덩치가 너무 커져서 경제 성장을 둔화시킨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전희경 : 제 생각에는 두 번째 주장, 즉 '월스트리트는 실물경제 성장에 도움이 안된다'가 잘 안 다가옵니다.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박영철 : 적절한 지적입니다. 금융 산업의 존재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금 여유가 있는 투자자의 자금을 성장과 이윤, 고용을 창출하기 위해 사업을 하는 기업가에게 중개해주는 것 아닙니까? 이 금융 중개로 인해 경제가 성장하고 고용이 창출되고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의 구매력이 늘어나서 소비가 증가하고, 이 같은 순기능을 돕는 역할이 바로 금융 산업의 존재 이유가 아닌가요?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1) 금융산업은 우선 '희소 자원 배분의 원칙'을 어기고 있습니다. 지난 20여 년간 월스트리트는 미국의 엘리트 계급을 싹쓸이해 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젊은 정예 부대의 생산성이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젊은이의 생산성보다 높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하버드대학과 시카고대학 교수의 놀라운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연구 개발 분야의 연구원이 창출하는 1달러는 다른 분야에 5달러 가치의 파급 효과를 미치는데, 금융 산업의 노동자가 버는 1달러는 다른 분야에 60센트 손실을 끼친다고 합니다. 이들 금융 산업의 젊은 엘리트들이 다른 생산 분야, 예컨대 공학 산업, 의료, 제조업 등에서 실제로 부가가치를 창출했다면 이들의 실물경제에 대한 공헌은 크게 상승했을 거라는 얘기입니다. 요약하면 '희소 자원의 낭비'라는 결론입니다.

2) 금융 산업은 소위 주주 가치 우선주의로 인해 투자 전략 왜곡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금융 산업의 투자 목적은 단기간에 최대의 이윤을 창출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이들 투자 정책의 방향이나 투자 기간에 대한 진지한 전략 수립이 불가능합니다. 이것을 초단기 정책이라고 합니다.

3) 금융 산업의 이윤은 대부분 생산의 부가가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임대, 즉 돈놀이에서 발생하는 '공짜 점심' 성격이 짙습니다. 실물경제 성장에 도움이 안되는 이유입니다.

4) 금융 산업은 실물경제에 대한 투자를 감소시킵니다. 엄청난 액수의 자금이 생산적 투자 대신에 금융 산업으로 흡수됩니다. 매해 약 6350억 달러가 생산적 투자에서 금융자본으로 빠져나간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5) 금융 산업은 GDP의 8.3%(2013년)를 차지합니다. 그런데 이들의 이윤은 전 기업 이윤의 40% 이상입니다. 실물경제의 투자 가용 자금이 그만치 줄어든다는 말입니다.

소득 불평등 악화시키는 미국 금융 산업

전희경 : 놀라운 사실들이군요. 요즘 한국에서도 뜨거운 감자가 '소득 양극화' 문제인데, 금융 산업이 어떻게 미국의 소득 불평등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는 말씀인가요?

박영철 : 두 가지 측면에서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금융 산업과 다른 산업 간의 소득 양극화 문제이고 하나는 금융 산업 내 소득 양극화 문제입니다.

필리폰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1980년대까지는 금융 산업과 다른 산업 간의 소득 격차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금융 산업 평균 소득이 1981년에 5만 달러(현재 10만 달러 상당)였다가 2013년에는 35만 달러로 껑충 뛰었다고 합니다. 이 액수는 다른 산업의 임금보다 50∼70% 높은 수준입니다. 그리고 미국의 최상위 0.1% 소득자 중에서 5명에 한 명꼴로 금융 산업 고위 임원이거나 헤지펀드 관리자라 합니다. 따라서 금융 산업 내 소득 양극화도 심한 편입니다.

왜 이토록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금융 산업의 소득은 대부분 중개 수수료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수수료 비중이 1920년대와 같습니다. IT 기술 진보 및 신종 기법과 신종 상품의 출현으로 중개 효율성이 엄청나게 증가했는데도 중개 비용은 조금도 감소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심지어 헤지펀드 관리자의 경우 매해 자기가 관리하는 총 금융자본의 2%를 보수로 받고 그해 창출한 자본 증식의 20%를 취하고 있습니다. 물론 손실이 나도 그에 대한 처벌이나 벌금은 없습니다.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교수에 의하면 2013년에 헤지펀드 관리자 8명이 각각 약 10억 달러(1조1000억 원) 상당의 수입을 올렸다고 합니다. 무슨 대가로 이 엄청난 보수를 받았을까요? 소득 0.1%의 부자들과 투기꾼들을 위해 돈놀이를 한 대가로 받는 일종의 지대(Rent)입니다. 필리폰 교수와 레셰프 교수는 공동 논문에서 금융 산업의 소득이 미국 일반 경제의 소득 분배에 끼치는 영향을 심도 있게 다룬 후, 선진국 중에서 최악이라는 모욕을 받고 있는 미국의 소득 불평등을 금융 산업이 더 악화시킨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 시가총액이 전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 2007년 시가총액 비중은 GDP의 53.0%였는데, 금융 위기가 발생한 이후인 2011년에는 이 비중이 32.7%로 낮아졌다. (출처 : //research.stlouisfed.org)


월스트리트 개혁 방향

전희경 : 놀랍네요. 끝으로 질문 하나만 더 하겠습니다. 금융 산업의 문제점이 노출된 이 시점에서 학계나 경제계, 정치계와 시민 사회에서 개혁 요구가 빗발칠 것 같은데 어떤가요?

박영철 : 구체적인 개혁 요구와 관련해 세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개혁 요구로 2년여 전의 '월스트리트 점령(Occupy Wall Street)'의 시민 데모를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 아시다시피 "1% 대 99%"의 투쟁은 몇 개월 후 그 동력을 잃고 맙니다. 조직과 돈이 없어 이 운동이 현재 수면 아래에 있다고 합니다만, 저는 월스트리트의 탐욕과 사회 평등에 대한 미국 시민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하고 이 문제에 대한 시민의 의식화 수준이 낮은 것이 가장 큰 실패 요인이라고 봅니다.

두 번째 예로, 며칠 전 오바마 행정부가 제출한 2015년 예산안에 담긴 내용입니다. 그 안에 부자들과 대형 은행들의 세금 인상안이 포함된 것이 조그만, 그러나 구체적인 월스트리트 개혁의 현실적인 표본이라고 봅니다. 문제는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이 이 조세 인상을 '분배주의자의 질투의 표현'이라며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 번째 예는 지난해 12월 미국 의회에서 2010년 통과된 은행 개혁법인 프랭크 도드법(Frank-Dodd Act)의 핵심인 은행의 유보율 규정이 물타기 작전으로 매우 약화된 사실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공화당이 주도하는 미국 의회는 월스트리트 개혁 요구를 집요하게 저지하고 있습니다.

전희경 : 좀 더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차원에서 월스트리트 개혁 요구의 핵심 방향을 말씀해 주십시오.

박영철 : 큰 흐름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1) 금융 산업의 덩치를 적절한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 반대로 실물경제의 생산 투자와 고용 창출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2) 금융 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물론 금융 산업의 효율성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 3) 금융 산업의 현재 임금 구조를 개선해 더 평등한 소득 분배를 성취해야 한다. 4) '번영 공유'의 원칙에 맞는 조세 개혁을 해야 한다. 5) 금융 산업의 고위직 임명과 관련해 일종의 자격증(Licensing)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6) 대학의 금융 재정 과목에 다양성을 더 폭넓게 도입해야 한다. 7) 월스트리트와 미국 정계의 정경유착을 단절해야 한다.

전희경 : 월스트리트 개혁을 위해 앞으로 할 일이 막중하군요. 어려운 숙제를 독자들에게 남기면서 인터뷰를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오랜 시간 수고하셨습니다.

박영철 : 질문으로 터뷰를 마치고 싶습니다. 201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는 유진 파머, 라스 피터 핸슨, 그리고 로버트 실러 교수입니다. 이들 중 파머와 실러의 증권 시장에 대한 견해는 극과 극입니다. "증권 시장은 참여자들의 가장 합리적인 투자 결정의 결과"라고 보는 파머 교수는 효율적 시장(Efficient Market) 이론의 대표이고, "증권 시장은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실러 교수는 비합리적 시장(Irrational Market) 이론의 대표입니다. 상반되는 주장을 펼치는 경제학자들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택한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언제, 어떻게 금융 시장이 효과적으로 정보를 반영할 수 있는지는 미래 연구의 몫이라는 뜻일까요 아니면 예측은 불가능하다는 뜻일까요?

박영철 전 교수는 벨기에 루뱅 가톨릭 대학에서 국제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원광대에서 은퇴한 후 개인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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