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대통령의 시간>을 읽으며 내놓은 총평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화제다. 퇴임한 지 2년 만에 이런 회고록을 냈다는 것 자체도 놀랍지만, 그 내용이 황당해서 그렇다. 누군가는 이를 '공상과학소설'로, 또 누군가는 이를 '공소장에 앞선 피의자 조서'로 표현하기도 했다.
<프레시안>은 이 회고록이 어느 정도 진실인지, 어디까지 우리가 믿을 수 있는지, 어떤 부분이 잘못됐는지, 조금 더 세밀하게 접근해보기로 했다. 대통령 회고록이 갖는 무게 때문이다. 이 회고록과 무관하게 <프레시안>은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와 함께 지난해부터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대한 자체적인 검증 작업을 벌여왔다. 그 작업을 묶어서 낸 책이 <MB의 비용>이다.
'MB의 시간과 비용'이라는 기획은 철저하게 이명박 정부의 정책 평가를 위한 기획이다. 회고록 중 크게 논란이 된 한미 쇠고기 협상, 대북 관계, 외교 안보 문제, 4대강 사업 평가 등에 대해 전문가와 함께 조목조목 따져봤다. 많은 독자들을 대신해 <대통령의 시간>을 낱낱이 해체 재구성해 보고자 한다. 전편에 이어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과의 대화 두 번째 꼭지를 싣는다. 편집자
프레시안 : 천안함 부분과 관련해 이야기를 해보자. 이명박 대통령은 "상황실로 가면서 '북한이 일을 저지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뇌리를 스쳤다"고 했다. 처음 보고받자마자 즉각적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김종대 : 그런데 보자. 천안함 침몰이 3월 26일이었다. 그리고 3월 31일에 이 전 대통령이 백령도를 방문한다. 이 때 김성찬 당시 해군참모총장이 독도함에서 이 전 대통령을 맞이하는데 여기에서 최초로 어뢰 발언이 나온다. 그 순간 이 전 대통령 얼굴이 뻣뻣하게 굳는다. '쓸데 없는 말을 한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4월 1일, 한나라당의 남미특사단이 청와대를 예방한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말을 한다. '내가 배를 만들어봐서 안다. 파도에도 배가 부러진다'고 했다. 그런데 격실이 많은 군함은 그렇지 않다. 일반 배와 달리 부러지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발언이 언론에 나온다. 그리고 4월 4일 김태영 당시 국방부장관이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어뢰 가능성을 얘기하는데 황급히 청와대에서 쪽지가 날아온다.
듣도보도 못한 파도설, 메모 해프닝, 이런 것을 보면 이 전 대통령과 청와대는 '예단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그 다음에 김태효 전 비서관이 뭐라고 인터뷰를 했느냐, 예비역 장성들이 북한 어뢰로 몰아가는데 큰일 날 사람들이라고 한다. 나중에 아니라고 밝혀지면 어떻게 할거냐라는 식으로 계속 견제한다. 그러나 당시 <조선일보>는 이미 어뢰설을 굳히고 있었다. 결국 어뢰라는 정황이 위로도 보고가 안됐고, 밖으로도 안 나갔던 것이다. 더 기가 막힌 게, 청와대는 기뢰설을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청와대는 기뢰 전문가를 합동조사단원으로 참여시킨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보면 북한의 어뢰가 아니길 바랐던 것이 아닌가. 당시 청와대 직원을 만났는데, (어뢰를 주장했는데) 어뢰가 아니라면 국제 사회에 문제가 된다며 군이 앞서가는 것을 견제하더라.
프레시안 : 청와대의 이런 행동은 당시에 합리적으로 보였다.
김종대 : 그렇다. 틀린 게 아니다. 다만 이 회고록에서는 증거만 없었을 뿐이지, 어뢰라는 말을 심중에 갖고도 얘기를 못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도 사실과 다른 게 아닌가.
프레시안 :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이 전 대통령은, 천안함 사건에도 불구하고 북한 신의주 일대에 대규모 수해 피해가 발생했을 때 쌀을 지원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것이 연평도 포격으로 돌아왔다는 취지로 기술하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주장
천안함 폭침이 일어나고 6개월 뒤인 2010년 9월, 북한 신의주 일대에 대규모 수해 피해가 발생했다. 우리 정부는 수해 피해 복구를 위해 쌀 5000톤과 컵라면 300만 개 등을 북한에 지원했다.(…) 이로써 인도적인 지원 품목마저도 군대와 엘리트 계층의 결속에 활용하는 북한 정권과의 진정한 대화는 지난한 과제임이 분명했다. 2010년 11월 23일, 북한은 연평도의 우리 해병대 기지와 민간인 마을에 해안포와 곡사포로 추정되는 포탄을 발사했다. 나는 보고를 접하고 즉각 긴급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소집했다. 상황실로 향하면서 머릿속이 복잡했다. 6.25 이후 그때까지 남한의 본토가 공격받은 전례가 없었다. '북한이 전면전을 일으키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북한 정권이 무너질 것을 각오하고 전면전을 일으킬 용기는 없다고 생각됐다. 중국조차 그런 상황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기습 공격이라 생각하고 대응 방안을 고민하며 상황실에 도착했다. (<대통령의 시간> 346페이지)
김종대 : 이 전 대통령 회고록에는 가장 핵심적인 사실이 다 누락됐다. 3월에 천안함 사건이 벌어지고, 그 직후 5.24조치가 발표된다. 여기에서부터 문제였다. 5.24 조치의 핵심 내용을 사람들이 남북교류를 끊어버린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군사적 조치였다. 앞으로 서해에서 북한 도발을 불용하겠다는 선언이 맨 앞에 나타난다. 이를 위해서 서해에서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실시할 것이고, 그래서 서해에 군사대비 태세를 가일층 강화한다는 것이 1번 내용이다. 북한 선박의 우리 해역 통과 금지를 선언했다. 바다에서 다 걸어잠그겠다. 도발 용납 안한다. 이것이었다. 그런데 연평도를 왜 허용했을까가 의문시된다. 실제로 5.24조치 발표 후, 이명박 정부는 '북한이 알아들었겠지' 해놓고, 그해 6월부터 11월까지 적어도 5개월 이상 군사 훈련을 중지해버렸다.
프레시안 : 그 이유는 무엇이었나?
김종대 : 만약 한미연합훈련을 5.24조치대로 한다면, 미군이 조지워싱턴 항공모함을 들여와야 한다. 그러면 중국이 반발해 미중 관계가 갈데까지 간다. 실제 조지워싱턴호가 들어오는 줄 알고 7월부터 중국이 심상치 않았다. 그래서 조지워싱턴호가 서해에 들어오면 살아있는 표적이 될 것이라고 외교부 브리핑을 하고, 환구시보는 군사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중국이 실탄 사격도 했다. 이때 미중 관계가 최고로 긴장됐다. 그런데 이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11월 10일로 예정된 G20 정상회의에 후진타오 전 주석이 반드시 와야 했다. 후 전 주석이 안 오면 체면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8월에 중국에서 통보가 왔다. 만약 조지워싱턴호가 서해에 들어오면 후 전 주석은 불참하겠다고 했다. 그 때부터 서해 훈련은 자취를 다 감춘다. 조지워싱턴호를 못 들어오게 한 것도 한국 정부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그리고 G20정상회담이 끝나면 그 때 들어오는 것으로 하자고 한다. 아주 얄팍한 계산이다. 그래서 조지워싱턴호가 당시 되돌아간다. 그런데 이 책에 보면 뭐라고 돼 있나. 원자바오를 만나서 11월 말에 (조지워싱턴호가) 들어오기로 된 것을 북한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주장
중국도 한미연합훈련을 반대하며 11월 27일 다이빙궈 국무위원을 급히 한국에 보냈다.(…) 이어 다이빙궈는 한미연합훈련이 전쟁으로 확전되지 않도록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다이빙궈에게 이야기했다.
"대통령이 되어 중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한미 관계가 한중 관계의 발전을 가로막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한국과 미국은 동맹 관계이지만 미국이 동북아 국가를 공격하겠다고 하면 우리는 반대할 것입니다. 북한의 도발이 없었다면 조지워싱턴호가 서해에 들어오는 것도 반대했을 것입니다.' (<대통령의 시간> 283페이지)
그래서 11월 말에 들어오기로 돼 있는데 공교룝게도 G20정상회의와 11월 말 사이에 연평도 포격이 있었다. 그래서 원자바오를 만나서 이 전 대통령이 '연평도 포격 봤지 않느냐. 그래서 우리가 할수없이 불렀다. 고로 이것은 방어적 성격이다'라는 취지로 말한다. 그런데 연평도 포격 때문에 들어온 게 아니다. 한미 두 나라 사이에서 11월 말에 들어오기로 이미 합의가 돼 있었던 것이었다. 이것도 거짓말이다. 정상적으로 들어왔는데 연평도를 핑계로 삼은 것이다.
연평도 포격이 왜 일어났느냐. 11월까지 5개월 이상 서해에서 모든 군사 훈련을 중지했다가 호국훈련 마지막 날, 다섯달 치 실사격을 엄청나게 했다. 북한에 간 메시지는 '도발'이었다. 그래서 북한이 대응을 한 것이다. 평소와 달랐으니까. 그래서 사건이 커진 것이다. 연평도 포격이 왜 일어났느냐, 천안함 이후, 이 전 대통령이 말한대로 안했기 때문에 그랬다. 군이 마지막에 엄청난 실사격 훈련을 갑자기 하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이다. 호국훈련도 10월에 하던 것을 G20 정상회의 이후인 11월에 한 것이다. 그것도 대규모로 실시했다. 사실 군대는 하던대로 한 것이다. 따져보면 5.24 이후부터 11월까지 서해는 군사대비 태세가 완전히 해제돼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강화시켜서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때마침 조지워싱턴호가 들어오기로 돼 있어서 그 명분을 연평도로 바꿨고 조지워싱턴호가 오는 것에 대한 중국의 반발을 무마할 수 있었다. 이게 진실이다. 우리 군사 대비태세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이 부분을 누락했다.
한민구 합참의장 직전 합참의장이 이상의 전 합참의장이다. 이 분의 인터뷰가 실린 지난해 <신동아>를 보면 대청해전 직후 대통령에게 전화를 받았다는 한 요인의 증언이 나온다. "승리에 대해 칭찬해주실 줄 알았는데, 대통령은 그 승리로 인해 3차 남북정상회담이 무산될 가능성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하셨다. 화까지 낸 것은 아니지만, '왜 그렇게 강하게 대응했느냐'며 매우 서운해했다. 말씀을 다 한 다음에도 미진한 감정이 남았는지, 계속 혀를 차며 전화를 끊지 않았다. 전화 통화라 직접 얼굴을 뵐 수는 없었지만 남북정상회담이 무산될 수 있음을 무척 안타까워하는 느낌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남북 접촉이 싱가포르에서 10월에 있었고, 대청해전이 11월에 있었다. 그러면서 이상의 의장이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 군사 훈련할 때 대통령도 같이 해야 한다고.
이상의 전 합참의장 인터뷰
"대통령 처지에서 가장 리스크가 적은 것은 무엇이겠는가. 적 어뢰가 천안함을 격침했다고 하면 정상회담을 추진해온 그로서는 큰 위기에 직면한다. 피로골절로 부러졌다고 하면, '같은 연수(年數)의 초계함이 작전 중인데 왜 천안함만 부러지는가'라는 논란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회수하지 못한 기뢰가 터졌다고 한다면 큰 부담을 받지 않을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도 다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기대가 대통령을, 국가를 책임진 사람이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wishful thinking(소망적 사고)' 쪽으로 유도했다고 본다.'
"우리 군은 '허상(虛像)' 위에서 훈련한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보복이나 반격작전을 승인했다고 보고 연습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대통령은 그 작전을 승인해주지 않으니,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다. 대통령이 승인해줄 것으로 치고 하는 '했다 치고 작전'만큼 허망한 것도 없다. 대통령과 측근들이 항시 군사훈련에서 배제되는 것이 큰 문제다. 키리졸브 등 큰 훈련에 참가해보면 그들은 자신들이 유사시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하지 않고 남북정상회담 같은 허황된 목표만 내세우니, 우리 군은 무력한 대응으로 이어지는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신동아> 2014년 8월호)
본인이 데리고 있던 합참의장들한테서 다 반박당하고 있다. 이런 면들을 종합해 보면 천안함, 연평도 관련 기술은 기만의 연속이다. 일부에서는 팩트가 안 맞는다. 일단은 안보를 표방해 놓고 자기의 비겁함을 북한의 악마성에 전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이 그처럼 악마라면 왜 군사대비가 그 모양인가. 우리 군사대비 태세가 잘못돼 일어난 게 원인이 절반 이상이다. 끊임없이 청와대는 군인들의 발목을 잡고, 군인들 말에 딴지를 걸고, 그리고 엉뚱한 지시를 했다. 그런 게 자기가 데리고 있던 부하들에 의해 밝혀진 것이다. 이 전 대통령에게 얘기하고 싶다. 천안함, 연평도 부분은 차라리 쓰지 말지 그랬나? 왜 써서 매를 벌고 있나.
확전 자제 발언, 끝까지 우기는 이명박
이명박 전 대통령 주장
상황실 TV를 보니 실제로 그런 엉뚱한 보도(대통령 초기 메시지로 확전 자제)가 자막으로 나오고 있었다. 황당한 생각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디서 저런 소리가 나온 거죠? 하지도 않은 얘기가 왜 뉴스에 나와요? 누가 저런 말을 언론에 했어요? 지금 우리 민간인이 포격당했는데 확전을 걱정할 상황이에요?" 알고 보니 언론의 브리핑 요구가 빗발치는 상황에서 회의에 참석한 한 인사의 사견이 잘못 전달되어 언론에 나간 것이었다.
(…)
나중에 보니 군에서는 확전 자제라는 말을 '전면전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라'는 뜻으로 쓰고 있었다. 물론 한반도에 전면전이 발생하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 그러나 영토가 공격받는 상황에서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첫 메시지로는 부적절한 내용이었다. (<대통령의 시간> 347페이지)
김태영 전 국방부장관의 증언
(대통령은) 단호하지만 확전되지 않도록 하라는 걸 겸해서 (지시)말씀했다. 도발이 있을 때 가장 적합한 조치다.(김태영 당시 국방부 장관. 연평도 포격 다음 날인 11월 24일 국회 국방위에 출석한 자리에서 "대통령의 최초 지시가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한 대답.)
프레시안 : 연평도 포격 사건과 관련한 이 대통령의 말도 논란이 많다.
김종대 : 연평도 사건에 대해서는 MB가 퇴임 직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전투기를 동원해 응징하려 했는데 군이 반대해서 못했다'고 말했다. 당시 합참의장이 지금 국방부장관인 한민구 장관이다. 나중에 청문회에서 다 얘기했지만, 본인은 전투기 출격을 반대한 적이 없다고 한다. 지시도 안 받았기 때문에 반대한 적이 없다는 거다. 대통령은 군이 반대했다고 했는데, 합참의장을 경유하지 않는 군이 대한민국에 존재하나? 그러니 이 전 대통령 발언이 나오자 장군들이 발끈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당시 화상회의로 지시를 받았는데, 대통령 지시가 '단호하되 확전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확전 방지 발언은 그러면 이 전 대통령이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참모의 발언으로 나온다. 이 대목도 진실성이 없다. 유엔사 교전규칙 얘기는 더더욱 황당하다. 여기 보니, 본인이 확전 자제라는 말, 군에서 전면전으로 확대하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고 한다. 아니, 그러면 확전이 전면전으로 확전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여기에서 이 설명을 했다는 것은 어이없게도 확전의 뜻을 몰랐다는 것 아닌가. 348페이지를 보자. 자기 발언이 아닌데 자기 발언으로 확전 자제가 언론 보도로 나가 큰 후유증을 겪었는데, 나중에 보니, 군에서는 확전 자제라는 말을 전면전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라는 뜻으로 쓰고 있었다고 한다. 이 얘기를 왜 할까. 횡설수설이다. 본인이 끝까지 확전 자제는 남의 일이라고 우기고 있다. 아니 합참의장이 '확전자제'라고 대통령이 말하는 것을 분명히 들었다는데.
이명박 대통령의 주장
나는 다시 한번 확고한 대응을 강조했다.
"평상시 교전수칙을 잘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민간인에게 무차별 표격을 하는 상대에게는, 분명히 다시 이야기하지만 우리 영토와 국민에 대한 공격에는 교전수칙을 뛰어넘는 응징을 해야 합니다.'
한 의장은 2014년 6월 국방부장관 후보자로 국회 청문회에 나가 "당시 이 대통령은 '민간인이 희생된 사건인 만큼 4~5배의 강력한 대응을 하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밝혔다.(…) 확고한 대비책이 필요했다. 무엇보다도 수세적이고 소극적인 교전수칙과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의식이 문제라고 봤다. 나는 유엔군 사령부의 정전시 교전수칙을 개정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지시했다. (<대통령의 시간> 349페이지)
프레시안 : 유엔사의 교전규칙 문제는 어떤 것인가.
김종대 : (이 전 대통령이 쓴 단어 중에) 교전수칙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잘못된 것 같다. 오기다. 교전수칙과 교전규칙을 혼용하는데, 두 단어를 헷갈리고 있다, 당시 문제됐던 것은 유엔사 정전시 교전규칙이다. 항공기 동원은 미국의 협조를 받아야 하고, 어떤 도발이 있을 때 동일 무기로 2~3배 응징한다는 것이다. 비례성, 충분성이 명시된 것인데, 하나 더 하면 신속성이다. 이것은 확전 방지 규범이다. 동종의 무기와 동량의 응징을 표방한다. 그런데 교전수칙 얘기를 한다. 이건 교전규칙과 무관하다. 교전수칙은 일선 부대 전술 행동과 관련해 지휘관이 일일이 통제할 수 없을 때 사전에 하달한 수칙이다. 그런데, 당시에는 직접 지휘를 했으니, 교전수칙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다음날 11월 24일 이 전 대통령의 지시가 나온다. 교전규칙을 개정하라고 한다. 이 얘기가 왜 나오나.
여기에서 무지가 드러난다. 당시 논란이 된 것은 함포나 전투기를 지원할 수 없다는 데서 생겼다. 미군 통제를 받아야 되고 그렇게 되면 확전이 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교전규칙보다 더 우위의 권한은 대통령의 국군 통수권이다. 교전규칙이 (확전 방지 목적으로 돼 있어) 그렇다고 해도, 대통령이 결심하면 국가 주권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이 논란이 일주일간 지속됐다. 그래서 당시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이 11월 30일에 국방장관에게 편지를 보낸다. 한국 정부가 자꾸 우리에게 물어보고 전투기를 발진한다 만다 하는데, 우리에게 물어보지 말라. 한국 정부 고유 권한이다. 이것은 대통령에게 잔소리를 들은 한민구 당시 합참의장이 주한미군 사령관에게 질의서를 보낸 데 대한 답변이었다. 쏠까요, 말까요, 물어보지 말고 한국 정부가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교전규칙은 이미 사문화된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 대통령까지 헷갈려한다. 이 책에서는 엉뚱하게 내용을 있는 그대로 쓰지 못하고 웬 교전수칙을 말하나?
프레시안 : 교전수칙이고, 교전규칙이고 따질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
김종대 : 그렇다. 원래 서북해역에 대한 우리 방어의 규범은 국지도발계획이다. 여기에 다 응징하도록 돼 있다. 거듭 말하지만 교전 규칙이나 수칙은, 평소 국가 전쟁지도본부가 현장 군사력을 통제하기 어려운 긴급한 상황에서 일일이 쏘라, 말라, 상부에 물어보지 말고 현장 지휘관이 제대로 대응하라고 사전에 준 안내 지침이다. 그런데 당시는 화상회의로 (대통령에 의한 지시가) 다 되고 있었기 때문에 교전 수칙이든 규칙이든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바둑을 두는데 상대에게 왜 변칙(대통령 직접 지휘)으로 두느냐면서 정석(교전수칙)대로 둬라, 이렇게 말할 수 있나. 그런데 이 시기에 교전규칙같은 것을 논의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 얘기를 속 빼고 '참모가 메시지를 잘못 전달했다. 그리고 나는 단호하게 하라고 했는데 당시 장관이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이 얘기만 하는 것이다.
이게 왜 지금 필요한 얘기인가. 정작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위기 시에 대통령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국가 위기 관리 과정에서 어떤 의견들이 테이블에 오르고, 어떻게 합리적으로 걸정되는지 등에 관한 것들이다. 교전수칙 얘기는, 어른들끼리 모여 얘기하는데 중학교 참고서를 가지고 와서 논의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일선 중령들이 논의해야 할 일들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이 얘기를 논의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된다. 게다가 사실 관계도 다 누락돼 있다. 국방장관 합참의장, 대통령이 모여서 교전규칙, 수칙 따지고 있었다는 게 말이 되나. 이걸 무지하다고 해야 할지, 무능력하다고 해야 할지.
프레시안 : 확전 자제 발언을 시인했다면, 뒤에 나오는 모든 논란이 필요 없었을텐데.
김종대 : 스타인 브루너라는 학자가 사이버네틱스라는 모델을 개발하면서 위기 관리의 최악의 상황은 바로 '소신없는 사고'라고 말했다. 이도 저도 아닌 소신 없는 사고. 이 사람이 교전수칙 얘기하면 '어, 그렇게 해', 저 사람이 딴 얘기하면 또 '어 그렇게 해'라고 하는 것 같다. 누가 보고했느냐에 따라, 그때 그때 참모에 따라 아젠다가 바뀌는 것이다. 체계적 사고가 아니다. 지금 회고록의 연평도 포격 사건 부분은 사건의 본질과 전혀 상관없는 말을 기술하고 있는 셈이다. 그마저도 참모들의 잘못된 보좌 때문으로 되어 있다. 퇴임 당시 밝힌 말에 이 회고록을 연결시켜보면 한마디로 이거다. '저요?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안보를 중시한다는 보수 정권에서 말이다. 나는 이렇게 황당무계한 위기 관리는 처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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