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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복지 낭비 걱정할 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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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지금이 복지 낭비 걱정할 때인가?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복지재정 효율화, 증세 없는 복지의 다른 이름

정부는 지난 1일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복지재정 효율화 추진방안'을 내놓았다. 정보시스템을 통한 누수 차단, 부적정 수급 근절, 유사·중복 사업 정비, 재정 절감 인프라 강화 등을 통해 총 3.1조 원(중앙정부 1.8조 원, 지방정부 1.3조 원)의 복지지출을 절감하겠다는 내용이다. 행정자치부는 바로 다음 날 '복지재정 효율화 지방 지원단'을 꾸리고 지자체 복지재정 효율화 성과를 점검 및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성과가 우수한 자치단체와 공무원에게는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복지지출 확대와 복지의 지속가능성 문제

정부는 '복지지출 효율화'를 추진하는 이유로 복지지출 확대와 세수 부족 추세로 인해 복지의 지속가능성 우려가 증가하고 있다고 언급한다. 정확한 지적이다. '지출 확대' 보다 '세수 부족'에 초점을 맞춘다면 말이다.

우선 지출 확대를 살펴보자. 한국의 GDP 대비 복지비는 지난 2000년 4% 수준에서 2012년 9%, 2014년에는 10%를 넘어섰다. 상당히 빠른 증가세다. 이 같은 지출 증가의 많은 부분은 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 변화에 기인한다.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은 2000년 7.2%에서 2014년 12.7%로 약 1.7배로 증가했으며, 이는 자연스럽게 노후소득보장과 건강보장부담의 증가로 이어졌다. 2008년 도입된 노인장기요양보험도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사회적 필요를 반영한 것이었다.

복지지출 증가의 또 다른 원인은 무상급식, 보육지원, 기초연금 등 보편적 복지제도의 도입이다. 이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부터 불어온 시민의 복지 열망이 반영된 것이었다. 보수정당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마저 보육, 건강, 연금 등에서 대선공약을 내걸어야 했을 만큼 복지에 대한 요구가 거세게 제기됐고, 이것이 제도화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복지지출은 충분한 수준이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복지지출의 부족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2014년 기준 한국의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은 10.4%로 같은 해 수치가 발표된 OECD 28개국 중 가장 낮다. 2012년을 기준으로 최저생계비 이하의 절대 빈곤율은 6%이고 중위소득의 50% 이하의 상대 빈곤율은 12%인데,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2.7%에 불과하다.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정부는 기초생활보장법을 뜯어고치고 '세 모녀 법'이라 선전하지만, 실제 빈곤 사각지대를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관련 기사 : "송파 세 모녀는 탈락하는 '세 모녀 법'?). 아직도 빈곤한 이들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에 충분한 지출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복지 지속가능성이 문제가 되는 까닭?

그 원인은 지출이 아닌 수입에 있다. 한국의 2013년 기준 국민부담률은 24.3%로 OECD 평균 34.1%에 크게 못 미쳐 조사대상 30개국 중 28위에 머물렀다. 사회복지비 지출 수준과 부담 수준이 비슷하게 낮다. 저부담-저복지 상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황은 지속될 수 없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구 고령화는 단시간 내에 바뀌기 어려운 지출 증가 요인이며, 경제 수준에 맞는 복지를 갖추라는 국민들의 요구도 계속될 것이다. 이런 추세를 반영해 정부 여당 일각에서도 중부담-중복지론이 나오고 있다. 지출 증가가 불가피하다면 수입도 증가시켜 균형을 맞출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복지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정책 대안은 지출 효율화보다는 수입 증가, 즉 증세로부터 찾는 것이 옳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줄기차게 '증세 없는 복지'를 외치고 있고, 그러다 보니 지출 효율화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정부 지출 구조조정과 지하경제 양성화를 핵심으로 지난 2013년 발표한 '공약 가계부'가 그랬고, 이번에 나온 '복지재정 효율화 추진방안'이 그렇다.

복지재정 효율화, 오히려 복지를 위협한다

물론 전반적인 복지지출 부족 속에서도 부분적인 비효율은 있을 수 있다. 만약 정부가 내놓은 복지재정 효율화 방안이 이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면 명분은 있다. 더구나 절감된 비용은 전액 복지에 재투자한다고 하니, 그렇게만 본다면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의 복지재정 효율화 추진방안에 대한 설명을 살펴보면 많은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일례로 정부는 의료비 이용 합리화 방안이라며 '의료급여 장기 입원자 관리 강화'를 내세웠다. 의료급여수급자가 장기 입원하는 경우 외래 진료 시 제공되는 본인부담금(연 7만2000원)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의료급여 수급자는 일반인과 달리 복합적 질병을 가지고 있어, 입원 중에도 다른 질병에 대한 처치를 해야 한다. 정부의 방안은 이를 외면한 것이다.

▲ 정부가 '의료급여 장기 입원자 관리 강화'를 내세우며 장기 입원하는 의료 수급자 지원금을 끊기로 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그 외에도 유사·중복사업 정비 대상으로 국가사업과 유사한 지방정부 사업을 지목한 것도 지방정부의 자율성을 훼손할 뿐 아니라, 가뜩이나 중앙정부 사업에 대한 매칭 펀드 부담으로 축소된 지역 자체복지사업을 더욱 위축시킬 것이다. 복지재정 효율화와 별다른 연관성이 없는데도 끼워 넣은 지방교육재정 교부금 절감 방안은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을 둘러싸고 벌어진 중앙정부와 지방교육청 간의 갈등을 겨냥한 몽니 부리기의 인상마저 준다.

더욱 심각한 것은 복지재정 효율화의 목표로 3.1조 원이라는 구체적인 금액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 공무원들에게는 사실상 비용절감액이 구체적 목표로 제시된 것이다. 이는 성과를 내기 위한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는 '부정수급'을 막는다는 취지로 복지지원이 절실한 계층을 사각지대로 내모는 '부당 탈락'을 초래할 것이다. '복지지출 효율화'라는 그럴싸한 목표가 빈곤한 이들에게는 생존권의 위협이 될 수 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마구잡이 탈락…행복e음의 악몽

이 같은 우려가 지나친 것일까? 우리는 이미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지난 2010년 개통된 사회복지통합관리망(행복e음)의 사례다. 사회복지통합관리망은 지자체·복지사업별로 따로 관리하던 복지업무를 개인·가구별로 통합 관리함으로써 민원인에게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도입되었다.

행복e음의 도입과 함께 정부는 대대적으로 확인조사를 벌였다. 새정치연합 이언주 의원실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3년까지 20만1987명이 수급 중지 통보를 받았으며, 2011년부터 3년간 본인과 부양의무자의 소득·재산이 파악돼 급여가 감소한 경우도 74만7176명이나 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감소로 이어졌는데, 제도 도입 이후 거의 매해 증가하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수와 수급률은 2010년부터 감소하여 현재는 3%에도 미치지 못한다.

▲ 연도별 기초생활 수급자 수와 수급률(단위: 천 명, %). 출처: 통계청. ⓒ남재욱

문제는 이와 같은 수급자 관리가 빈곤한 사람들을 복지 사각지대로 방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의원이 밝힌 자료에 의하면, 2011년 수급 탈락한 8만4908명 중 10명 중 7명은 빈곤층으로 나타났다. 같은 당 김성주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2010년 이후 4년 6개월간 자살한 수급자가 1238명에 달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행복e음이 도입된 후 부양의무자가 실제로 부양을 하고 있는지 등 수급자들의 현실을 살피기보다, 통합전산망에 들어있는 전산상 자료만을 근거로 무차별 탈락과 급여 삭감을 감행하고 있어서 수급자들이 스스로 생명을 끊는 상황에까지 내몰리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행복e음은 사회복지행정을 효율화한다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우리 사회의 가장 빈곤한 이들을 구석으로 몰아넣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복지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는 제도를 잘못된 방식으로 운영하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행복e음과 달리, 정부의 이번 복지재정 효율화 방안은 더욱 명시적으로 빈곤한 이들에 대한 복지 삭감을 겨냥하고 있다. 이전보다 더욱 큰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할 수밖에 없다.

복지재정 해법은 조세정의와 사회복지세 도입

복지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에서는 얼마 되지 않는 지출을 쥐어짜는 것이 아니라, 수입을 증가시키는 것이 정상적인 방법이다. 게다가 지금 정부가 추진하려는 방식의 지출 효율화는 우리 사회의 가장 어려운 사람들의 처지를 더 어렵게 만들 위험이 크다.

현 정부가 끝끝내 '증세'를 외면하고 다른 방법을 찾는 까닭은 근본적으로 복지를 통한 재분배가 커지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소득에 따라 세금을 내고, 그 세금으로 필요한 복지를 받는다면 부유층은 결국 손해를 본다. 그래서 줄기차게 복지를 '가난한 사람만을 위한 것'으로 한정하고자 한다. 이런 관점에서 증세, 특히 복지를 위한 증세는 선택할 방법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충분한 해결책이 되기도 어려운 공약가계부니 복지재정 효율화니 하는 방법들만 내놓고 있다.

따라서 복지재정 효율화라는 의심스러운 정책에 대한 최선의 대답은 '복지증세를 통한 책임 있는 복지 확대'가 된다. 인구구조의 변화, 경제 수준에 맞는 복지 요구라는 사회적 필요에 응답하여,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복지 혜택을 제공하되 그에 맞는 재원조달 방안을 제시하면 된다. 각자가 소득에 따라 세금이나 사회보험료를 내고, 이를 재원으로 필요한 복지를 제공하면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없을 뿐 아니라 점점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양극화도 완화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복지 증세 방안이 중요하다. 지난해 말 연말정산 파동에서 본 것처럼 아직도 우리 사회의 조세불신은 심각하기 때문이다. 부자는 안 내는데 나는 내는 것 같고, 국가가 내가 낸 세금을 제대로 쓴다는 믿음도 없다. 따라서 복지 증세는 조세정의를 바로잡고, 증세가 복지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줄 방법이 되어야 한다. 조세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소득세·법인세 감면을 축소하며, 재정 지출을 개혁하는 등의 조세정의를 확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사회복지 목적세 형태로 증세를 추진한다면 복지재정 확대뿐만 아니라 사회적 연대성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증세와 복지를 짝으로 한 증세 정치, 복지 정치가 긴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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