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2016~17년, '붕괴·새 시작'의 기점 될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2016~17년, '붕괴·새 시작'의 기점 될까? [기고] '정권교체' 아니라 '사회교체' '세력교체'를 해야 한다
2016~2017년은 의회권력과 행정권력이 선거를 통해 교체되는 시기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통상적 절차 이상의 중요한 의미가 있다. 지금의 정치적 시대 상황을 한마디로 규정하면 '삶을 바꿔야겠다는 대중의 강렬한 열망'이다. 더 이상 이대로는 살 수 없다는 고통스러운 절규, 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요구, 세력(리더십)을 교체해야겠다는 문제의식이다. 이런 열망들은 십수 년 전부터 발아되고, 축적되고, 내재화되어 온 것들이다. 이는 2016~2017년을 대중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체제 전환의 발판으로 삼을 것을 요구한다.

이 속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은 '보수우위 구도의 점진적 소멸'이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한국사회를 '보수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규정해 왔다. 야권의 정치인들은 그 같은 규정을 방패막이로 삼아 그 속에 안주해 왔다. 필자가 이미 수년 전부터 주장해 온 바지만, 다시 한 번 말하자면 그 같은 담론은 즉각 폐기되어야 한다. 국가기구, 언론, 재정기반, 지지층의 조직화 상태 등에서 한국사회의 지형이 보수 쪽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대중의 마음이 오히려 그 반대로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대중은 지금까지의 보수패권의 통치로는 대한민국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다. 국가주권 하나 감당하지 못하고 자신을 끊임없이 비하하면서 강한 것에 재빠르게 굴종하는 사대성, 기득권의 독식에만 몰두하면서 국가공동체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쏟아본 적이 없는 천민성, 자신은 법과 규칙을 적당히 뭉개면서 약자에게는 법을 내세워 호통치는 배타성, 보수의 이런 핵심적 특징들은 대중의 변화 열망과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보수=부패, 진보=무능'이라는 경험칙도 이미 깨졌다. 이명박의 국민성공시대, 박근혜의 국민행복시대가 말짱 거짓과 기만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대중은 몸서리치게 경험하고 있다. 그럼에도 보수=부패, 진보=무능이라는 프레임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은 여당과 야당의 권력기술의 차이 때문이다.

바로 이 같은 시대 구조의 흐름은 선거정치의 공간에서 보수와 진보의 역학구도를 지속적으로 변화시켜 왔다. 진보가 유능한 것은 아니지만, 보수 가치에 대한 회의와 변화에 대한 강한 열망은 보수와 진보가 선거공간에서 거의 대등한 일대일 대결구도를 형성할 수 있게 만들었다. 1997년 최초 집권 때는 보수 대 진보가 '6:4' 정도의 구도였고 집권을 위해 DJP연대라는 변칙이 불가피했으나 오늘날에는 적어도 '5:5구도'에 가깝게 바뀌었다. 물론 야권정당의 취약과 무능으로 인해 '5:5구도'가 중대선거이거나 바람이 불 때만 형성되고 일상적 시기에는 잠복하는 약점이 있지만 말이다.

아래 표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2010년 지방선거 이후 지금까지 중대선거의 공간에서 진보적 가치와 의제가 지배적 이슈가 되고, 양대 진영 간 득표율이 지속적으로 일대일 구도를 재현하고 있는 현상은 정치지형이 '더 이상 기울어진 운동장'으로만 파악할 수 없음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2016~2017년은 보수 리더십이 고갈되는 시기이다. 보수진영은 민주정부에 대한 대중의 실망감을 활용하여 과거 보수정권에 대한 향수를 복제해냄으로써 이명박-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리더십을 창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런 복제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두 번에 걸친 복제가 대중에게 매우 실망스러운 결과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보수진영은 당분간 집권을 위한 새로운 국민적 리더십을 재생산해는 데 커다란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우리는 2016~2017년을 '권력교체'라는 통상적 절차의 의미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대중의 열망을 정확히 실현해내고 시대정신을 구현해 내는 체제전환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얼마 전 카이스트(KAIST) 주최 토론회에서 박성원 박사가 발표한 20~34세 청년층 대상 설문조사 결과에 나왔듯이, 2016~2017년은 "붕괴, 새로운 시작"의 기점이 되어야 한다.

새정치연합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

그동안 보수패권에 대한 대중의 회의와 불신은 대안세력에 대한 모색으로 끊임없이 표출되어 왔다. 대중의 요구가 반사적으로 표출되어 온 대상은 일차적으로 새정치연합으로 대표되는 제1야당 세력이다. 새누리당을 제외하고 국가를 맡길 수 있는 유일한 현실적 대안이었기 때문에 대중은 반복적으로 열망을 투사해 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같은 기대는 번번이 실망과 좌절로 귀결되어 왔다.

특히 2012년 대선 이후 새정치연합(민주당)은 정체와 퇴행의 길을 걸어왔다. 김한길-안철수 대표체제는 '중도·보수적 외연의 확대'를 지향하는 정치노선을 채택했다. "민생을 지향하는 새로운 노선"이라는 수사가 포장지로 입혀졌다. 그러나 그들은 대중이 겪는 고통스러운 현실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지 않았다. 스스로가 천명한 '거짓 대 약속'의 구도는 온데간데없이 실종되고 말았다. 박근혜 정권의 기초선거 공천폐지의 약속 파기는 물론이고, 경제민주화 공약의 후퇴, 세제개편의 졸속 추진, 원‧하청관계에 대한 개혁의 부진, 무늬와 실질이 괴리된 이상한 공기업 개혁 등 거짓된 약속들과 치열하게 싸우지 않았다. 오직 공천의 사유화와 장난질, 그리고 재보선 참패라는 앙상한 결과만 남게 되었다.

그 후 문재인 대표 체제가 출범했다. 다소의 변화가 기대될 만도 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표 체제의 지도노선 역시 김한길-안철수 지도부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지금 문재인 지도부는 '경제정당'과 '안보정당'을 두 축으로 한 정치노선을 천명하고 있다. 두 축의 조합은 다분히 문재인 대표의 집권전략의 성격을 암시하고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중도주의로의 선회'이자, '정권교체를 위한 보수층의 비토 회피전략'이라고 읽힌다.

'경제정당'으로의 정체성 전환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그것은 구호와 이벤트로 되는 것이 아니다. 첫째, '어떤' 경제정당이냐는 것이다. 경제를 강조한다고 모두 선이 아니다. 과거 독재정권들, 민주화 이후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는 경제와 민생을 핑계로 민주주의를 탄압하거나 후퇴시켰다. 야권진영에서도 과거 열린우리당이나 안철수‧김한길 대표체제가 중도실용이라는 이름으로 개혁적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만들다가 침몰하고 말았다. 경제정당론이 진정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두 가지 선결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하나는 과거 민주정부 시기 양극화를 심화시킨 데 대해 분명한 반성의 과정이 전제되어야 하며, 가깝게는 현재까지도 새정치연합이 경제이슈를 다루는 데 왜 번번이 실패하고 있는지 확실하게 규명되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경제정당'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세우고 주도할 수 있는 인적 역량, 즉 전략그룹과 전문가집단을 당의 중심에 포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보스와 계파에 충성하는 당의 지배구조를 바꿔 대중의 삶의 현장 속에서 이슈를 만드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게 체질과 구조를 혁신한다는 중대한 전환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의 새 지도부가 그런 선결조건을 갖추기 위해 모종의 노력을 하고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과거 참여정부 시절 재벌과 관료집단 그리고 신자유주의에 경도되어 끌려갔던 일에 대해서 명확한 반성을 한 적이 있는지 기억나는 게 없다. 지난 대선 때도 '박정희냐 노무현이냐'로 논쟁구도를 만들고 자기들의 가치를 고수하는 데 급급했었다는 기억이 남는다.

지금도 새정치연합은 전세대란, 담뱃값인상, 가계부채, 노동시장구조개선, 무상급식중단 등의 이슈를 다룸에 있어서 왜 그렇게 자신들의 태도가 불투명하고 무능한지, 왜 그렇게 서민의 삶을 보호하려는 의지가 없어 보이는지 전혀 해명하지 않는다. 경제정당을 제대로 하기 위해 당의 체질과 인적 자원을 대대적으로 혁신하겠다는 의지를 찾아보기는 더욱 어렵다. 오히려 계파 간 갈등을 관리하기 위해 소지역주의를 내세워 지분을 요구하는 당내 구세력들에게 구차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모양새다.

새 대표체제의 정치노선을 더 예민하게 드러내는 부분은 '경제정당'보다 오히려 '안보정당'일는지 모른다. 집권전략의 핵심은 사실상 여기에 있다고 봐야 한다. 그것은 '지난 대선에서 집토끼의 지지는 매우 견고하지만 보수층의 비토가 더 컸기 때문에 집권에 실패했다'는 내부 평가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만약 이런 판단이 연계되어 있다면 새 지도부는 정치‧안보이슈는 물론이고 경제이슈까지를 포함해서 어떤 이슈에 대해서도 결코 무리수를 두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보수층에게 '비토'당할 건수를 만들지 않고 그들을 달래는 일을 중심선으로 해서 움직여 나가게 될 것이다. 실제로 요즘 문재인 대표의 행보는 이런 해석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최근 4.29재보선 과정에서 야권진영의 자중지란이 심화된 것도 궁극적으로 새정치연합 지도부의 전략과 관리방식이 자초한 결과였다. 일차적으로는 엉뚱한 곳에 전선을 쳤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실정을 규탄하고 민생이슈를 점화시켜 선명한 정치구도를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당의 원로와 구세력 그리고 지도부를 총출동시켜 집 나간 옛 동지를 제압하러 다녔다. 애초 극복해야 할 대상을 분명히 하지 않고, 가치노선을 선명하게 만들지 않았으며, 내부 반란을 진압하고 텃밭을 사수하는 데 전력을 투입했다. 오로지 전패 모면, 텃밭 사수의 방어적 전략운영은 야권내부의 이전투구와 자중지란을 심화시켰다. 비록 최근의 성완종 스캔들이 새정치연합의 숨통을 틔워주었지만, 그 같은 내생적 약점은 총선 같은 큰 선거에서 커다란 후과로 나타날 개연성이 크다.

정권교체의 담론을 경계한다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2016~2017년의 여정에서 우리는 '정권교체' 담론의 함정에 빠지는 것을 무엇보다 경계해야 한다. '정권교체' 담론은 진보-야권진영의 정체성을 혼란에 빠뜨리고 자중지란으로 몰고 가는 치명적 독이 될 수 있다. 정권교체 담론은 양면적 가치를 갖고 있다. '정권교체를 위해서라면 독사과라도 먹겠다'는 태도가 특히 위험하다. 보수층의 비토를 회피하는 것이 정권교체의 핵심전략이 된다면 정권교체 자체도 위험해질 수 있다.

최근 문재인 대표가 보여준 행보는 불길한 전조이다. 이승만-박정희 묘소참배, 조선일보 방상훈 회장을 조용히 만난 것, 천안함 관련 발언, 그리고 성완종 파문에 대한 다분히 의도적인 것 같은 미지근한 대응 태도는 정권장악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독배를 들지도 모르겠다는 의구심이 생기게 한다.

천안함 관련 발언만 해도 그렇다. '진실'을 규명하는 차원에서 합리적 의심의 권리가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헌법의 가치와 명백히 조화되는 것임을 이야기하는 대신에 수구세력들의 '종북몰이'와 색깔론을 회피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단언컨대 종북몰이는 결코 적당히 회피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며, 그럴수록 더욱 옥죄어 오는 족쇄와 같은 것이다. 종북몰이는 비록 어렵고 힘들지라도 원칙을 지키며 싸워야 하는 대상이다. 종북몰이는 한갓 사이비 이념을 빙자한 권력게임에 불과해서 그 자체로 반경제-반민생적이기 때문이다.

지금 새정치연합 안에는 '안보는 보수, 경제는 중도, 사회는 진보'라는 말 틀을 무의식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정치노선과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인데, 이런 태도는 정권교체 국면에서 새누리당이 언제든지 선점하고 들어올 수 있는 야권의 아킬레스건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 새정치연합의 모든 부류들은 친노, 비노, 486 할 것 없이 중도주의의 늪에 빠져있다.

다시 말하면 2016~2017년 우리의 목표는 정권교체가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특권·배제·불통의 사회질서 아래 만성적 불안과 존엄 상실을 겪으며 살아가는 국민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사회체제를 바꾸겠다는 '사회교체'의 명확한 비전과 메시지를 만들어가야 한다. 나아가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정치패러다임의 혁명을 지향해야 한다. 사회교체를 주도할 '세력교체'를 요구해야 한다. 기성 정치의 배타적 독과점체제를 허물고, 진보-야권진영 스스로는 수명을 다한 기존의 이념, 정치노선, 조직노선, 대중노선의 전면적 혁신을 추진해야 한다.

국민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않고 정권교체만을 말하는 것은 엘리트들의 권력게임에 지나지 않는다. 새누리당은 부자들의 돈벌이를 돕는 일에만 혈안이고 사회적 약자에게 '가만있어라!'고 윽박지르며 대중을 이간질하는 데 골몰한다. 새정치연합은 이를 정치적으로 이슈화시키지도 못하고 있고, 그럴 의지도 박약해 보인다. 우리는 이를 뛰어넘는 대중의 목소리, 주장, 담론을 만들어 우뚝 세워내야 한다. 그것은 '원하라' '말하라' '움직여라' '바꿔라' '얻어라'이다. "삶을 바꾸자!" "사회를 바꾸자!" "세력을 교체하자!"

'사회교체' '세력교체'를 위한 혁신기지를 건설해야 한다

야권-진보진영의 혁신기지를 건설해야 한다. 혁신기지는 우리의 삶을 바꾸고, 사회를 변혁하고, 세력을 교체하고자 하는 개인, 그룹, 세력들이 모인 정치적 연대체이다. 우리에게 혁신이란 우로 가느냐, 아니면 좌로 가느냐의 논쟁을 뛰어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발상 자체가 진영논리에 갇힌 사고이기 때문이다.

혁신기지는 한편에서는 낡은 진보의 전투적 운동주의와 이념적 진영주의를 극복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낡은 중도의 몰가치적이고 기회주의적 태도를 극복하여, '소통·공유·참여에 입각한 새로운 공동체의 가치'를 실현해 나가는 것이다. 혁신주의자들의 가치 기준은 오직 불합리한 독과점과 배제와 불통의 악습과 비타협적으로 투쟁함으로써 노동과 생명가치의 존엄을 드높이고 상식과 정의에 반하는 특권과 권위주의를 추방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철저히 국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는 문제해결능력을 중시하는 정치활동을 지향하는 것이다.

혁신주체의 형성을 위한 조건이 어느 때보다 열악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변화의 전야는 오히려 고요한 법이다. "역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지금, 우리는 바른 선택을 할 수 있고 역경들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만약 당신들이 제가 느끼는 긴박함을 느끼고 있다면, 조국은 그 약속대로 쇄신되고 길고 긴 정치적 암흑에서 벗어나 보다 밝은 빛을 맞이할 것입니다."라는 오바마 연설문의 한 구절처럼, 비록 소수일지라도 올바른 목표와 전략을 갖고 있다면 세상을 바꿔낼 수 있다. 몇 년 전 <나꼼수>가 수백만 명의 대중을 동원할 때 그들은 불과 수 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이 좀 더 올바른 비전과 정교한 정치전략을 갖고 있었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변했을 것이다.

야권-진보진영의 혁신기지는 두 가지 목표를 수행해야 한다. 하나는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 그리고 수구세력들에게 제대로 싸움을 걸어야 한다. 말로만의 경제‧민생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대중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을 요구해야 한다. 대중의 삶을 변화시키는 이슈와 의제들을 만들어 던지고, 이를 통해 강력한 대결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새정치연합이 못하는 일을 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혁신기지는 단순히 '야권교체'를 요구하는 수준을 뛰어넘어야 한다.

다음으로 야권-진보진영 내부의 질서를 재편‧혁신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지금 시점에서 야권 재편은 한국정치 나아가 한국사회를 변화시키는 출발점이자 핵심고리이다. 지금 여권에는 그런 동력이 없는 반면, 야권에는 상대적이지만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는 여권에 비해 야권이 지닌 중요한 자산이다. 야권 재편을 둘러싼 치열한 내부 담론투쟁과 정치경쟁은 2016~2017년 중대선거 공간에서 야권이 의제, 이슈, 매스컴의 헤드라인을 점거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안철수 후보 사이의 후보단일화 논쟁이 어떻게 그런 효과를 창출했는지 경험한 바 있다. 이번 재보선에서도 아무런 뉴스거리가 되지 않던 광주 서을 선거가 천정배의 출마로 치열한 경쟁선거가 되면서 언론의 조명을 받는 것은 긍정적 현상이다. 분열-통합담론은 기득권자의 프레임이며, 그것으로는 야권이 결코 진정한 혁신과 수권 대안 세력으로 거듭나는 길이 될 수 없다. 내부 경쟁체제를 만들고 국민들의 역동적 참여를 야권으로 끌어들여서 그 정치경쟁에서 살아남은 세력이 야권 전체를 대표하여 총선과 대선으로 가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게 해서 '세력교체'의 시동을 걸어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특징의 하나는 야권진영 내에 체제전환의 담론투쟁이 죽어있다는 것이다. 2010년 지방선거를 전후해서 2012년 총선과 대선국면으로 이어지면서 활화산처럼 솟구쳐 올랐던 보편복지, 경제민주화, '안철수현상' 등의 정치담론이 지금은 전혀 활성화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정치담론이 황무지상태인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는 진보-야권진영의 창조적 파괴와 재편을 위한 동력이 심하게 고갈되고, 그나마 남은 동력들도 기성 야권정당의 공고한 기득권질서 아래에 단단히 억압되어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따라서 진보-야권진영에 창조적 파괴의 동력이 작동해야 한다. 기성 야권정당이 대중의 엄청난 불신을 받고 있으면서도 대단히 견고한 카르텔을 이뤄 새로운 가치와 인적 자원의 유통을 가로막고 있는 이 현실구조를 타파해야 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원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2-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