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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야권 불패' 관악을…"심판하자" 누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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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야권 불패' 관악을…"심판하자" 누구를? [현장] 4.29 재보선 D-1, 與 '지역 경제' vs. 野 '정권 심판'
야권의 텃밭. 새누리당의 무덤. 수도권의 호남. 서울 관악을 선거구를 수식해 온 이 관용어들에 금이 간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새누리당은 여전히 어색한 존재이나, 그 당의 후보는 '누구보다 이 동네 사람'이란 인증을 받은 분위기다. 지난 27년 내리 표를 몰아준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복잡복잡'한 마음은 "미워도 다시 한 번"이 아닌 "이번엔 여당 한 번"이란 표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정부·여당에 열광하는 이를 찾기 어려웠던 것만큼이나 '새누리당은 무조건 안 돼'라며 손사래를 치는 이도 찾기 어려웠다. 4.29 재보궐 선거 투표일을 하루 앞둔 28일, 관악을 지역 주민들이 보여준 모습은 그랬다. 문제는 결국 그 '균열'의 규모.

낙후한 지역 경제 파고드는 새누리당…"한 번 뽑아볼까"

민심을 가르는 이슈는 몇 가지로 요약됐다. 우선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각각 내세워 온 '야당 독주 중단론'과 '정권 교체론' 모두 제 나름대로 지역에 잘 먹혀든 모양새다.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힌 주민은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실망감을 앞세웠고, 새정치연합 정태호 후보나 무소속(국민모임) 정동영 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를 드러낸 이들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염증을 토로했다. 두 주장 모두 어느 쪽으로든 '선수 교체'를 뜻한다. 지금 이대로는 싫다는 정서다.

이는 28일 길거리 인터뷰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대학동 고시촌에서 미용실을 하는 김모(46·여성) 씨는 "근처 어른들이 여기서 20년 의원 한 그 양반한테 화가 많이 나 있다"면서 "정태호 후보가 혼자 오면 모를까 그 양반하고 손잡고 오면 골목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할 사장님들이 많다. 지난 세월 좋아진 것이 대체 무엇이 있느냐"고 말했다.

소선거구제로 바뀐 이후인 1988년 13대 총선부터 20년간 관악을 의원으로 활동한 이해찬 의원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낸 것이다. 수도권에서 가장 낙후한 지역이란 오명 속에 사는 관악 주민들은, 선거철을 맞아 지역 경제 정체의 원인을 '야당의 장기 집권'에서 찾고 있었다. 이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이 관악을 찾을 때마다 빼먹지 않고 쏟아냈던 구호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난 시간 대체 무엇이 달라졌느냐.'

이런 분위기는 자영업을 하고 있는 상권 인구에서 특히 많이 포착됐다. 20~30대 젊은 인구가 많아 야권 지지 분위기가 강할 거라 예상했던 고시촌에서도 장사를 하는 이들은 조심스레 '새누리당…'이라는 말을 적지 않게 꺼냈다. 약국을 하는 성모(50대 초반·남성) 씨는 "내가 이해찬 씨 처음에 의원 만들어줄 때도 함께했던 사람"이라면서도 "관악에서 야당이 너무 하니 발전이 안 된 것"이라고 토로했다. 연령층을 불문하고 상당수의 이들이 "여당이 하면 그래도 경전철이나 지하철 역이 들어설 가능성이 더 많지 않겠나"라고 되물었다.

사실 지역 경제 발전 정도가 지역구 의원 한 사람 손에 달린 것만은 아니다. 관악은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성장 동력인 거대 수출 제조업 공장들이 밀집한 지역도 아니고, 소비 규모와 부동산 거래가 활발한 부유층 밀집 지역도 아니다. 군사정부 시절부터 이 지역 저 지역에서 밀려난 도시 빈민층들이 달동네 판자촌을 이루고 살아온 지역이다. 그런 만큼이나 '지역 개발' 현안이 시간이 흐를 수록 중요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틈새를 새누리당이 잘 파고든 모양새다.

여기에 하나 더 얹어진 것은 두 야권 후보와 비교해 오신환 후보는 좀 더 '지역 일꾼' 이미지에 강하다는 점으로 보였다. 신대방 역 인근에서 만난 일용직 노동자 최모(50대 초반·남성) 씨는 "세 사람 중에 관악 사람은 오신환밖에 없는 거 아니야?"라고 말했고 작은 커피숍을 운영하는 김 씨 역시 "정동영 그 분은 이번에 부랴부랴 짐 싸오신 분이라 믿음이 안 간다. 오신환은 계속 여기서 나왔던 사람이라 지역에 관심이 확실히 있어 보이는데, 그런 사람이라면 한번쯤 새누리당이 돼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 4·29재보선 서울 관악을에 출마한 새누리당 오신환·새정치민주연합 정태호 후보 선거운동원들이 26일 서울 관악구 왕성교회 앞에서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더는 새누리당 정부 못 견디겠다…문재인 보고 정태호"

물론 전통적인 야권 지지층이 사라진 것은 아닌 만큼 '정권 교체'를 위해 새정치연합을 지지하겠다는 목소리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신림역 근처에서 만난 관악 토박이 오모(61·여성) 씨는 "정동영이 되느니 오신환이 되어야 한다"는 말로 정태호 후보에 대한 지지를 표시했다. "정동영 후보가 당선되면 내년 총선 때도 야권이 분열될 테고 그러면 진짜 새누리당이 당선될 수 있다"는 게 그 이유다. 오 씨는 "1년은 참아도 5년은 안 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했다.

'정권 교체'론은 오로지 새정치연합에만 유리한 프레임이다. 새누리당은 물론이거니와 '야권 교체'를 외치는 정동영 후보에게도 매우 공격적인 구호다. 특히나 호남 출신 유권자가 40%를 차지한다고 알려진 관악에서 정권 교체론은 새누리당의 지역 개발에 맞먹는 힘을 가질 터다. 동시에 전체 유권자(약22만여 명)의 45%가 20~30대인 '젊은 관악'에선 각종 차기 대권주자 여론조사에서 1등을 달리고 있는 '문재인 간판'이 강한 힘을 발휘하는 모습이었다.

신림역 인근에서 만난 한 대학원생(32세·여성)은 "더는 새누리당 정부를 못 견디겠는데 이길 수 있는 사람은 문재인밖에 없어 보인다"면서 "정태호는 잘 모르지만 문재인 보고 뽑을 생각"이라고 했다. 60대 중반의 한 남성 유권자도 "정권 교체를 하려면 당 대 당으로 붙어야지, 무소속은 안 된다. 나라 총리(이완구 총리)가 저 모양인데 정권부터 바꿔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권은 돌아가면서 해야 그런 부정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관악에서 가장 위력한 힘을 발휘하는 현안은 사법고시 존폐 문제다. 지역 경제 기반 상당 부분이 고시촌에 있는 터라, 사법고시 폐지로 고시촌이 사라지면 지역 경제에 절대적인 타격을 입힐 거란 우려는 누구에서나 발견됐다. 정태호 후보를 지지한다는 40대 초반의 한 남성도 "내심 마음은 2번이면서도, 노무현 정부 때 사법고시를 폐지했던 것 때문에 지역 자체가 위기로 빠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법 된다"는 주변 민심을 전했다.

이 때문에 빅3 후보는 너나없이 '사법고시 존치'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특히 정동영 후보는 지역 곳곳에 부착한 현수막에 '사법고시 존치를 당론으로 천명한다'고 못 박았다. 물론 모든 후보가 외치는 만큼 누구에게도 이와 관련한 표심이 집중되지는 않을 거란 관측도 나온다.

"여기 고시촌이 사라지면 지역 상권이 다 죽어요. 누가 되건 먹고 사는 문제에 제일 관심을 기울여줬으면 좋겠어요." 지지 후보를 밝힌 사람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이건 공통적으로 쏟아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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