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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4.29 패배와 5.6 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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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문재인, 4.29 패배와 5.6 패배 [주간 프레시안 뷰] "문재인, 안 싸우면 또 진다"
문재인이 죄인인가요?

어쩌면 이런 항변을 하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4.29 재보선 패배 이후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연일 언론지면을 통해 난타를 당하고 있습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번 주는 피하고 싶었습니다.

지난 6일 국회 상황을 보면서 안타깝게도 다시 한 번 문재인 대표의 '문제'에 대해 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4.29 재보선의 패배보다 더 크고 아픈 것은 야당 대표로 협상한 내용이 뒤집어지는 6일 밤의 조용하고 무기력한 패배일지도 모릅니다.

4.29 재보선, 선거가 발생하게 된 경위와 의석 수만 놓고 보면 의미가 큰 선거는 아니었습니다. 국회의원 4석이 달린 선거를 졌다고 당장 "대표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는 과한 것임에 분명합니다. 이런 목소리는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의 "국민은 야권 분열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로 정리가 된 듯합니다. 이희호 이사장은 4일과 6일 자신을 찾은 문재인 대표와 천정배 의원 모두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패배 자체가 아니라 '패배에 익숙하다'는 게 야당의 문제입니다. 현 시점에서 위험하다고 느껴지는 건 이 고질적인 문제가 "이기는 정당"을 호기롭게 표방하고 나온 '문재인의 문제'로 치환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4.29 재보선 이후 정국이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2012년 대선자금과 연루된 의혹까지 제기된 '성완종 리스트'로 남미로 도망치듯 순방을 떠났고, 돌아와 몸져누웠던 박근혜 대통령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6일 TV로 생중계되기 때문에 '규제 개혁 쇼'라고 비판 받아 온 '규제개혁장관회의'를 세 번째로 열고 "우리 정치가 국민을 위한 정치로 거듭 나야 한다"고 국회를 질타하고 나섰습니다.

같은 날 국무회의에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이 통과됐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밝히고 그 책임을 묻기 위한 철저한 진상조사는 대통령과 정부가 국민 앞에서 스스로 한 약속"이라며 "쓰레기 시행령을 폐기하라"고 즉각 반대하고 나섰지만, 박근혜 정부가 이 목소리를 수용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앞서 지난 1일과 2일 있었던 세월호 집회에서 박근혜 정부는 시행령 폐기를 주장하는 시민들과 유가족을 향해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를 쏘는 익숙한 광경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날 저녁, 국회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박상옥 대법관의 인준안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에 이은 새누리당의 단독 표결로 통과됐습니다. 또 여야 대표가 지난 2일 합의했던 공무원연금 개편안은 청와대의 반대 때문에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모든 게 박근혜 대통령의 뜻대로 관철됐습니다. 4.29 재보선일까지도 앓아누웠던 박근혜 대통령의 '자리'가 민망할 정도의 결과입니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호칭답게 박 대통령은 '승리' 그 자체가 아니라 '승리 이후'를 이용할 줄 아는 정치인이라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용적으로 보면, 5월 6일 일사천리로 이뤄진 일들이 더 뼈아픈 패배임에 분명합니다. 세월호 진상규명은 한 발짝 뒷전으로 밀렸고, 이를 원하는 유가족과 시민들에게 최루액 물대포는 한 발짝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던 수사 검사 출신인 박상옥 후보자가 대법관으로 탄생했습니다. 그것도 사상 초유의 여당 단독 표결을 통해서 말입니다. "19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은폐·축소하는 데 협력 순응한 검사가 6월항쟁으로 탄생한 민주헌법 하의 대법관이 되는 절대 안 될 일"(서울중앙지법 박노수 판사)이 일어난 것입니다. 더욱이 박상옥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해 "물고문은 혼자도 할 수 있다", "지시에 따라 했을 뿐이다"라고 답변하는 등 반성하는 태도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인준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일이 벌어진 책임에서 새정치연합이, 문재인 대표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공무원연금 개편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한 이유는 단순합니다. 새누리당이 2일 있었던 여야 대표 합의를 뒤집었고, 그 배후엔 박근혜 대통령이 있습니다. '비박계'인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가 6일 오전 비공개로 열린 당 의원총회에서 청와대와 박 대통령을 향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지만, 결국 꼬리를 내리고 문재인 대표를 배신했습니다. 왜? 박근혜는 이겼고, 문재인은 졌기 때문입니다. 야박하지만, 이런 게 정치 아닙니까.

그래도 아직 문재인 대표에겐 시간과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건, 이겨야 비로소 문재인의 것이 됩니다. 내년 4월까지 선거가 없는데 어떻게 이기냐고요? 5월 6일 일어났던 엄청난 정치적 결정들이 4.29 재보선 패배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결과였나요? 이런 익숙한 변명을 되풀이 한다면, '익숙한 패배'는 문재인의 것이 될 것입니다.

▲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연합뉴스
문재인은 싸워야 합니다. 박근혜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익숙한 것들과 싸워야 합니다. '비선 정치'라는 비판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던져봐야 합니다. '계파 정치'라는 비난을 새누리당에 던지기 전에 자당을 돌아봐야 합니다. 4.29 재보선을 앞두고 '친노'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문재인 대표는 엉뚱하게 '동교동계'를 끌어들여 물타기를 했습니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국민들과 야권 지지자들이 보기엔 '기득권 나눠먹기' 아닌가요? 7일 원내대표 선거를 앞두고 풍문으로 들여오는 얘기도 이런 '자리 나눠먹기'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원내대표는 비노를 주고, 수석부대표를 친노가 차지하려 한다는 얘기가 자자합니다.

국민들이 익히 아는 모습을 탈피하지 못한다면, 문재인은 박근혜에게 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지난 대선과 4.29 재보선에서 졌습니다. 5월 6일과 같은 일상적인 패배가 반복된다면, 문재인, 또 그가 대표로 있는 새정치연합은 내년 총선과 그 다음해 대선에서도 이길 수 없습니다.

문재인 대표의 '운명'이자 '정치적 멘토'인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 말이 떠오릅니다. 노 전 대통령은 기득권 타파를 통한 정치의 정상성 회복을 정권의 중요한 목표로 삼았습니다. 노 전 대통령 스스로가 대통령이 가진 제왕적 권력 중 상당 부분을 내려놓고 '탈권위'를 실천했습니다. 그런 노 전 대통령이 이런 시도에 대해 "새 시대의 맏형이 되고 싶었지만 구시대의 막내가 될 것 같다"고 스스로 평가 내린 적이 있습니다. 문 대표에게 묻고 싶습니다. 박종철 고문 은폐 사건의 수사 검사가 대법관이 되는 현실에서 노 전 대통령이 '구시대의 막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다행인 것은 문재인 대표에겐 당 안팎에 일상의 크고 중요한 싸움이 남아 있습니다. 4.29 재보선에 이은 패배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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