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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경제학, 한국은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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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경제학, 한국은 글렀다! [프레시안 books] 이정전 <왜 우리는 정부에게 배반당할까?>
하는 일이 하는 일이다 보니, 몇 달 전부터 경제학계의 원로들을 찾아다니며 한국 경제의 길에 관해서 물어보고 있다. '한국 경제, 어디로 가야 하나?'

진단과 처방 혹은 대안은 서로 조금씩 다르고, 방점을 찍는 지점도 약간씩은 다르다. 그렇지만 한국 경제학계의 원로 등 주요 학자들이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지금 우리는 위기라는 점 그리고 그 해법은 정치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보수도 진보도 혹은 그 어느 쪽도 아니라고 할 정도로 순수하게 학계 활동만 했던 분도, 모두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을 한다. '한국 경제가 위기인데, 그 해법은 정치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 그 정도가 현재로서 여러 가지 생각들을 종합해본 간단한 결론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간단하지 않다. 좋은 정치는 좋은 경제보다 몇 배나 더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내가 지난 몇 달간 찾아다닌 사람 중에 경제학자 이정전이 있다. 그는 이미 정년에서 은퇴한 지 몇 년 된 학자다. 그렇지만 은퇴 이후에 더 활발하게 저술 활동을 하고 있고, 젊은 학자보다 더 적극적으로 최근의 경제 이론과 논의들을 소개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내가 그를 지켜본 지난 20여 년간, 그가 지금처럼 적극적으로 정치의 중요성을 얘기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그가 뒤늦게 정치의 중요성에 눈을 뜬 것인가, 아니면 그가 살았던 그의 생애 속에서 지금이 가장 위기라는 것일까?

절망의 경제학?

ⓒ반비
<왜 우리는 정부에게 배신당할까?>(반비, 2015년 3월 펴냄)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 독특한 경제학 책은 '민주주의를 위한 경제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녹색 경제'라는 대표적 열쇳말을 가지고 있는 경제학자가 썼을 것이라고 쉽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치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책에 등장하는 4대강과 관련된 에피소드 혹은 세월호 사건으로 인하여 느끼게 된 좌절감, 그런 것들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제목이기는 하다.

그런데 왜 하필 정부일까? 과연 우리는 정부에게 배신당한 것일까 아니면 '명품 정당'임을 자부하는 지금의 집권 여당, 새누리당에게 배신당한 것일까? 아니면 천막당사로 쓰러져가는 당을 대수선하고 그 당의 대표로 집권을 한 대통령에게 배신당한 것일까?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이런 질문들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책은 한국에서 벌어진 세 개의 실패를 다소간 이론적인 접근으로 전개해 나가고 있다. 시장이 실패하고, 정치가 실패하고 결국은 정부가 실패한다, 이런 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각각의 실패를 설명하는 방식은 다분히 이론적이다. 정치학에 적용된 경제학이라고 할 수 있는 신정치경제학이나 제임스 뷰캐넌 등의 지대 이론 같은 것들은 표준적인 경제학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이론들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런 이론들이 좌파들의 이론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전통적인 마르크스 정치경제학과 같은 비주류의 이론과는 정반대의 지독할 정도로 교조적이고 때때로 극우파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론들이 주로 이정전의 손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시장에 비추어볼 때, 정치는 너무 이상해, 행정은 비합리적이야, 이런 보수적 시장주의자들이 다룬 이론을 이정전은 맵시 있게 소개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버무려, 왜 때때로 시장이 실패하고 또 그 실패를 해소하기 위해 나선 정부도 실패하는지 설명한다.

결국 한 사회에서 상호 간에 긴장감이 사라지면 경제도 실패하고, 정치도 실패하고, 그런 기반 위에 정부는 부패하게 된다. 불행히도 지금의 한국이 딱 그런 경우이다. 위에다 물을 부우면 아래까지 내려가게 된다는 소위 낙수 효과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 경제 성장이 진행되더라도 일자리는 줄고, 사람들이 실제로 지출할 수 있는 돈은 더 적어진다. 최소한 외형적 지표상으로는 1인당 국민 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섰다고 하는데, 이걸 체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렇다면 누가 이러한 구조적 문제점을 시정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완화시킬 수 있겠는가? 전통적으로는 정부가 그 역할을 하는데, 정부는 대기업에 '포획'되기 쉬운 구조적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이정전은 소위 포획 이론을 동원하여 어떻게 정부가 대기업에 편향적인 정책들을 수행하게 되는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대리인' 모델을 통하여 국민들이 내세운 대리인 정치가 오히려 자신들의 주인에게 톡톡히 주인 노릇을 하게 되는지를 이론적으로 끌어낸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게임 이론과 심리학 실험 결과를 중간에 포진하면서 시장이나 정치와 같은 서로 다른 영역이 실패하게 되는 개연성을 강조하면서, 이 책은 점점 '아포칼립스', 일종의 묵시록적 구조를 향해나간다. 시장도 실패할 수 있고, 정치도 의사 결정 과정상 게임의 딜레마에 빠져서 실패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실패 메커니즘의 연장성에서 정부도 충분히 실패할 수 있다.

이 점점 더 나빠지는 묵시록 구조를 보면서, 이 모든 실패가 2015년, 한국에서 동시에 발현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론적 개연성이 있고, 경험적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것들이 동시에 발현될 필요까지는 없지 않은가?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하는데, 이정전식 전개에 의하면 엎치고, 덮치고 게다가 코까지 깨지고…그야말로 3중 콤보에 의한 경제의 총체적 난국이 노교수의 손에서 펼쳐진다. 게임에서 3단 콤보로 가격을 하면 정말 기분 좋지만, 반대로 그걸 한 번에 맞고 절반 넘게 남았던 에너지가 쭉 떨어져, 'KO!' 타이틀이 뜨는 것을 본 기분이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거나, 정치가 사람들의 뜻을 제대로 대변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정부가 전문가 관료주의로 최소한의 효율성이라도 담보하거나, 하여간 그 어느 것 하나라도 제대로 되면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런데 2015년이라는 이 공간에서 이 모든 것이 짜잔, 이렇게 기막히게 결합하여 최소한 절반 이상의 국민들이 곤경에 처하게 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최경환발 카지노 자본주의

최경환 부총리의 경제 운용을 '소득 주도형 성장'이라고 표현하는 언론이 있다. 경제학자들끼리는, '부채 주도형 성장'이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하는데, 어쨌든 국민 경제에 의미 있는 규모로 정부가 한 유일한 정책은 '빚내서 집 사라'이다. 그리고 혹시 중산층 정도로 운이 좋으면 '안심 전환 대출'로 그야말로 '로또' 수준의 혜택을 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확률적으로, 지금의 소득 수준과 집값을 고려하면 몇 십 년간의 순저축을 한 번에 부채로 안고 살 수밖에 없다. 집을 사야 할 사람도 혹은 이미 집을 산 사람도, 과연 이 정부 내에서 집값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조마조마하게 쳐다보면서 호가 시세를 쳐다볼 수밖에 없다.

내리면 내리는 대로 아우성이, 오르면 오르는 대로 아우성이 터져 나온다. '카지노 자본주의'라는 용어가 국제적으로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야말로 한국 경제가 '최경환발 카지노 자본주의'가 된 셈이다. 이게 시장의 실패인가, 정부의 실패인가 아니면 정치의 실패인가? 혹은 그 모든 것의 실패인가?

[프레시안 북스 지난 호 바로 가기]

"나는…믿어요!"

좀 더 나은 사회적 해법은 없을까? 혹은 좀 더 부드러운 정치 과정은 없을까? 아니면 좀 더 투명하고 개방적인 정부 과정이라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것일까? 이정전의 책은 이러한 서로 다른 층위의 과정을 국민 경제라는 하나의 틀 내에서 살펴볼 수 있게 도와준다. 자, 그렇다면 이 아우성 속에서 답은 없는가? 그가 제시한 희망을 재인용하여 보자.

"과거 큰 인기를 끈 '상도'라는 드라마에는 '장사는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벌기 위한 것이요, 장사의 목적은 이문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시장의 실패를 제어하기 위하여 강조된 정부도 실패한 지금, 한국에서 또 다른 해법이 등장할 수 있을까? 물론 당연히, 그런 희망도 없이 그가 이런 책을 썼을 리는 없다. 소설 <피터팬>을 읽어보신 분이라면, 원래 연극이었던 그 소설의 특징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요정 팅거벨이 죽어가고 있을 때 피터팬이 뭐라고 말했는가?

그 피터팬의 관객들에게 외친 대사와 '민주주의를 위한 경제학'이라는 책에서 이정전이 외치는 목소리가 겹쳐서 들린다. "나는…믿어요!"

*2010년 7월 31일 첫 호를 내고서 5년간 이어온 '프레시안 books'가 새 단장을 위해서 한두 달의 휴식 기간을 가집니다. 그간 '프레시안 books'는 심사숙고해서 선택한 좋은 책을 공들여 쓴 서평으로 독자에게 소개함으로써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프레시안 books'는 더 적극적으로 책을 매개로 한 소통에 나설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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