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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을오토텍 노조 파괴 '용병'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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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을오토텍 노조 파괴 '용병'들은 누구인가? [강수돌 칼럼] '더이상 아니오!'라고 말해야 한다
이미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간 메르스 사태, 그리고 갈라진 논바닥에 소방 호스로 물주기 이벤트까지 연출하고 있는 대통령 동향 등,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다양한 사건과 사고 뒤로 노동의 세계에서는 더욱 심각한 일이 진행되고 있다. 충남 아산시에 있는 갑을오토텍에서 폭력적 노조 파괴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지난 4월 특별근로감독과 압수수색을 실시한 노동부는 이 회사에서 다양한 범법 사실을 발견하고도 상응한 조치를 않았다. 또 경찰과 검찰은 노사의 단체협상과 단체행동 과정에서 사측의 노골적 폭력 행위에 대해 수수방관하고 있어, 도대체 이것이 '법치국가'인가 하는 회의를 낳는다. 한국의 법치란 권력 남용 예방용이 아니라 민중 저항 통제용에 불과하다.


나는 이번 갑을오토텍 사태를 단순한 노조 폭력 사태 또는 단지 예외적 기업 사례로만 보아선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최소한 1987년 이후 급성장한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자본과 권력의 체계적 대응 과정이라는 큰 맥락에서 보아야 하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민주노조운동을 괴멸시키기 위한 자본과 권력의 폭력적 본질이 갈수록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국면의 일부라고 파악해야 한다.


우선, 갑을오토텍이란 회사는 어떤 곳인가? 이 회사의 뿌리는 1962년 현대양행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9년부터 열교환기 생산을 시작했다. 자동차에 필요한 라디에이터 내지 에어컨(공기조절장치)을 만든다. 그간 40년 이상의 혁신과 기술 개발로 국내외에서 비교적 탄탄한 위상을 갖게 된 중견기업이다(자본금 약 450억 원, 직원 약 600명). 1980년엔 만도기계로 개칭했고, 1993년에 아산공장이 준공되었다. IMF 때인 1999년엔 만도공조로 재탄생했고 2001-2년엔 중국 공장들도 세웠다. 2003년엔 위니아만도로 재개칭했으며 2004년 미국 모딘코리아를 거쳐 2009년 말부터 갑을오토텍이란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회사는 공식적으로 "변화, 혁신 및 도전의 열정으로 회사를 운영할 것"이라 선언한 바 있다.

문제는 실제 기업운영, 특히 인사노무 내지 노사관계에서는 결코 기술 혁신과 같은 혁신 정신으로 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폭력 사태, 그리고 그것을 준비하기까지의 과정들을 보면 결코 '미래지향적인 혁신'이 아니라 대단히 '퇴행적인 고질병'을 앓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것은 회사의 성장과 발전에 가장 기초가 되는 인간 노동에 대해 이를 존중하고 명실상부 동반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억압과 착취의 대상, 감시와 통제의 대상으로만 보고 있기 때문이다.

ⓒ금속노조 충남지부

실제로, 갑을오토텍에서는 2015년 6월 들어, 그간 노사 임금교섭이 진행되다 노사 간 더 이상 의견 일치 가능성이 없자 민주노조가 합법 절차를 거쳐 전면 파업이라는 적법한 쟁의행위에 돌입했다. 노사가 임금교섭을 개시한 지 두 달째, 10번째 교섭 절차가 진행되도록 사측은 교섭에 나오지 않거나 교섭안을 내지 않고 회피해 왔다. 정당한 이유 없이 교섭을 해태하는 것은 노동법에서 부당노동행위로 위법이다. 그래서 민주노조(금속노조) 산하인 갑을오토텍 지회는 5월 29일 올해 임금교섭 관련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했고 그 결과 투표인원 대비 96.19%의 찬성률로 파업이 가결됐다. 충남지방노동위원회는 6월 1일 '조정 중지' 결정을 내려 갑을오토텍지회는 합법적인 쟁의권을 확보했다. 그렇게 파업이 진행되던 중 (복수노조가 가능한 상황을 이용하여 회사의 지원에 의해 이미 3월 12일에 만들어진) 기업노조 구성원 50여 명이 폭력 사태를 일으켰다. 즉, 이들은 6월 17일 민주노조의 파업 집회 현장에서 부착 선전물 등을 일방 훼손하며 연좌 농성 등 합법적 쟁의행위를 과격하게 방해했다. 나아가 민주노조원 20여 명을 집단 폭행했다. 그런데 이들은 단순히 회사를 걱정하는 일반 직원들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민주노조 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용병으로 채용된 신입사원들이란 점에서 기존의 모습과 다른 차원을 보여준다. 과연 이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회사는 2014년 말에 전체 기능직의 10%가 넘는 60여 명을 무더기 채용했다. 현재 신입사원 중 53명이 2015년 3월에 설립된 어용적 기업노조의 조합원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에 따르면, 민주노조인 전국금속노조 갑을오토텍 지회를 파괴할 목적으로 전직 경찰과 특전사 출신, 회사 용역 출신이 조직적으로 채용되었다. '기존 노조를 파괴하기 위한 조직적 위장취업'인 셈이다. 노동자 측 김상은 변호사에 따르면, "기업노조의 핵심인물인 김모 씨 등 18명은 이미 2014년 10월~11월경 갑을오토텍 계열사인 동국실업에 위장 취업했고, 이 가운데 2명이 노사 교섭시 사용자측 위원으로 참여했다." 이들이 다시금 갑을오토텍에서 기업노조의 주축을 이루며 민주노조 파괴 용병이 되고 있다.

민주노조에 따르면, 사측은 정식 직급체계와 별도로 이들 신입사원 60명을 3집단으로 구분, 차등 관리한다. 즉, 팀장급 20명에겐 연봉 5000만원, 조장급 20명에겐 연봉 4000만원을, 그리고 그 중 가장 핵심적 역할을 하는 김모 씨에겐 팀장보다 훨씬 많은 급여를 지급한다. 이들의 신입사원임에도 급여 수준이 원래 갑을오토텍 신입사원의 경우(연봉 약 3100만 원)보다 훨씬 많다. 노동수행으로 버는 돈보다 노동탄압으로 버는 돈이 더 많은 역설적 현상이다.


나아가 6월 17일 당일, 현장에 있던 14개 중대 병력의 경찰들도 기업노조원들의 노골적 폭력을 행사하는 '현행범'을 체포하지 않고 수수방관했다. 즉, 경찰은 사측이 기업노조 사무실인 경비실(!) 2층의 유리창 파손 등 시설보호 요청을 하는 바람에 현장에 있었지만, 불법 폭력을 막지 않고 오히려 당일 집회에 연대 차원에서 참여한 노동 활동가들의 정문 출입을 막았다. 경찰이 기본적인 직무유기를 함과 동시에 민주노조 말살 과정에서 회사와 공범 역할을 적극 수행한 셈이다. 이렇게 하라고 국민이 혈세를 내는 것은 아닐 터인데도 말이다.


<미디어충청> 정재은 기자에 따르면, 갑을오토텍 기업노조는, 그 이후인 6월 21일 새벽 5시경 기숙사에서 나와 회사 정문에 모여 공장 진입을 시도했다. 전직 경찰과 특전사 출신 등으로 위장취업 의혹을 받고 있는 이들 기업노조원 45명 정도가 (마치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때처럼) 모두 잠든 '일요일 새벽'에 생산라인이 멈춰있는 시각에 출근해 (저항하는 노동자들에 맞서서) 공장을 돌리겠다고 작정을 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애국가를 부른 뒤 (파업 노동자를 해산시키기 위해) 각목을 들고 공장 진입을 시도했는데, 그 과정에서 경찰과 격렬한 충돌도 일어났다. 경찰의 폭력 방조 책임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대응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들 중 한 명이 경찰과 충돌해 심하게 다치기도 했다. 요컨대, 현재 갑을오토텍 생산 현장에서는 자본 이윤 진영과 노동 인권 진영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것은 마치 해방 직후, 진보적인 전평(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1945. 11.) 중심의 노동운동을 깨기 위해 당시 깡패들 중심으로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한국노총의 기원)이 급조되었던 역사(1946. 3.)를 상기시킨다. 세계사가 그러하듯, 자본운동과 노동운동은 숙명적으로 계급투쟁을 수행하는 경향이 있다.

이 모든 상황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들이 단순한 개별 사례나 예외적 사례가 아니라 민주노동운동이라는 큰 흐름을 자본과 권력에 유리하게 돌려놓기 위한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공격 시나리오의 한 단면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생각해보면, 1980년대 이후의 노동운동은 해방 이후 억압되었던 인권과 노동권, 즉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집합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거대한 흐름으로 발전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7-9월의 노동자대투쟁도 그런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고, 그 이후 1989년 전교조 건설, 1990년 전노협 건설, 대노협(대기업노조협의회) 건설, 업종별, 지역별 노조협의회 건설, 그리고 마침내 1995년의 민주노총 건설은 한국의 역사에서 노동의 역사라는 새로운 결을 새기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 이후 한편으로는 2000년 민주노동당, 2011년 통합진보당으로 상징되는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물결, 다른 편으로는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전교조, 대학노조, 보건노조, 공공노조 등 산별 노조의 건설 물결이 민주노동운동을 주도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들은 자본과 정권에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1996년 말에 노동법 및 안기부법 날치기를 했고, 마침내 1997년 말 '외환위기'를 빌미로 노동배제적인 구조조정을 거세게 강행해온 것이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의 김대중 정부, 2003년부터 2007년까지의 노무현 정부조차 한편에서는 참된 민주주의 구현에 대한 개념과 전략의 부재, 다른 편에서는 그를 실행하기 위한 전사회적 힘의 결집 실패로 인해, 노동 및 민중배제적인 정치경제 체제를 극복하지 못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조차 자본과 권력에게는 노동탄압과 기득권 수호를 위한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을 뿐이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자본과 정권이 민주노동운동을 탄압하는 방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잠시 살필 필요가 있다. 박정희 및 전두환 정권에서는 공안 및 정보기관을 통해 극소수의 주동자만 가두거나 죽이는 방법을 썼다면, 1987년 대투쟁 이후 노태우나 김영삼 정부에서는 주모급만이 아니라 일반 활동가들도 대거 탄압함과 동시에 선진화, 세계화 등 논리를 빙자하여 노동운동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무력화하려 들었다. 한편, 비교적 민주화 정권이라 할 수 있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조차 IMF 식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정면 승부를 걸지 않고 오히려 노동운동가들을 업무방해죄 및 손배가압류 등 법적 장치를 통해 경제적 억압을 하는 방식으로 다스리는 경향이 강했다. 이 시기에 정리해고제, 비정규직 법안, 노조전임자 임금 금지, 그리고 복수노조 법안 등이 차곡차곡 실행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그 이후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복수노조제를 악용, '기존 단협 파기, 민주노조 파업유도, 직장폐쇄, 불법처벌, 용역깡패 투입, 어용노조 설립, 민주노조 말살'이라는 시나리오를 통해 쌍용차, 유성, 발레오전조, 상신브레이크, SJM, 만도 등에서 민주노동운동을 억압했다. '창조컨설팅'의 도움으로 유성기업이나 SJM 등에서 노조 파괴 공작이 폭로된 것은 가장 대표적이다.


최근 갑을오토텍은 그보다 한 걸음 더 교묘하게 나간다. '창조경제'와 '창조컨설팅'이 맞물리면서 정권의 파쇼적 특성이 드러나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회사는 아예 조직적으로 경찰이나 특전사 출신, 용역 깡패들을 정식 직원으로 채용한 뒤, 이들 중심으로 기업노조를 만들고 이들이 기존 민주노조를 박살내도록 만들고 있다. 요컨대, 이윤추구 본능 앞에서 사회적 책임을 가볍게 방기한 자본과 권력의 본질이 유감없이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즉 이제 자본은 기존 시나리오 대신 복수노조 제도를 악용, '노조파괴 의지와 능력을 가진 신규 직원 채용, 기업노조 설립, 노노 갈등 조장, 폭력적 민주노조 파괴, 산업평화 수립'이라는 새로운 시나리오를 가동하고 있다. 요컨대, 자본과 정권의 기득권 추구를 위한 노동통제 전략이 굴하지 않는 노동저항 앞에서 혁신적 진화가 아니라 '퇴행적 진화'를 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다시 한 번 물어야 한다. 우리가 경제 발전 내지 성장을 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떻게 발전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발전과 성장의 바탕인 인간 노동을 이렇게 짓밟고 만들어진 부가 과연 떳떳할 것인가? 이런 식으로 해서 온 사회가 더 행복해질 수 있는가?


이런 기본적 질문을 망각하고 오로지 노동, 오로지 이윤만 추구한 결과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멀리 갈 것도 없이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이 바로 그 결과 중 일부이다. 대통령과 국회는 있으되 백성을 위한 정치는 없고, 세월호 같은 참사나 메르스 같은 질병 사태는 터지되, 조직적 무책임만 확인된다. 좌절과 절망만 커지는 까닭이다. 평소에 작은 문제부터 예리하게 짚어내고 상호 개방적 대화와 토론을 통해 더 나은 방식을 찾아가는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과정, 건강한 삶의 과정이 부재한 까닭이다. 그런 내실 있는 성숙이 아니라 오로지 외형적 성장에만 치중하는 겉치레 식 성공 철학이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비참함과 스트레스, 우울함과 무력감, 무의미와 공허감을 불렀다고 본다.


지금부터라도 자본과 권력, 기업과 정부는 '국민 행복'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그간의 노동배제적인 전략과 전술을 모두 철회하고 노동존중의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동안 야당이나 국회, 심지어 민주 정부들조차 자본의 이윤 추구 자체를 막기는커녕 돕고 있다는 점이 명확히 드러났다. (위에 있는) 저들이 그럴 의지가 없다면 (아래로부터) 민중적인 압력을 만들어가야 한다. 물론, 현장 노동자들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리지 않고, 남성과 여성, 생산직과 관리직을 가리지 않고 단결된 투쟁을 해야 하지만, 특히 언론, 교육, 종교 분야의 지식인들이 더 올바른 관점으로 확실히 깨어나야 한다. 한편, 생산자들의 파업 투쟁도 중요하지만, 일반 시민들의 불매 운동 등 소비자 투쟁도 거세게 일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사회적 무책임으로 뭉친 악덕 기업을 퇴출시키는 길이다. 즉, 이것이 시민운동과 (노동억압과 소외, 차별에 저항하는) 노동운동이 활기차게 연대할 수 있는 길이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나은 경제, 더 좋은 사회가 가능해지고 따라서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여기서도 진실로 통한다. 그냥 기다리거나 남이 해주기만 바란다면 점점 더 구렁텅이로 빠진다.

그래서 지금까지 두려움에 젖어 침묵하거나 방관해온 대다수 시민이나 노동하는 대중들도 우리가 직접 경험하는 불편한 현실에 대해 '더 이상 아니오!'라고 말하기 시작해야 한다. 노조 금지나 파괴를 전제로 한 기업 활동은 지구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것이 바람직한 세계화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은 바람은 우리 모두의 소망이 아니던가? 그런 마음을 가진 이들이 서로 손잡고 한 걸음씩 전진하는 것, 즉 '깨어 있는 민초들의 생동하는 연대'야말로 곧 인권과 평화, 삶의 질과 민주주의의 토대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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