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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결국 '그렉시던트'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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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결국 '그렉시던트'로 가나 [분석] '민간 디폴트' 막아준 ECB 빚도 못 갚으면?

그리스가 유로화를 쓰는 통화 동맹에 가입한 지 15년 만에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 금융을 기한 내에 갚지 못하며 국가 부도를 맞았다. 유로화 통화 동맹이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경고는 끊이지 않았지만, 유로존 통화 동맹국 중 국가 부도를 맞은 최초의 사건이 실제로 벌어졌다는 점에서 국제적으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리스가 6월말까지 기한 내에 상환하지 못한 금액(약 2조 원)은 1945년 시작된 IMF 구제 금융 채무 불이행 중 최대 규모이며, IMF 창립 회원국이자 유로존 회원국 나라의 채무 불이행이라는 점에서도 상징성이 크다.

이번 그리스 국가 부도는 일시적인 해프닝에 그칠 수 없다. 그리스 현정부가 "유럽 채권단의 긴축안을 받아들일지 말지 오는 5일 국민 투표로 결정해 달라"는 방식으로 기습 제안하면서 유럽 채권단과 정면 대결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채권단은 그리스의 좌파연합정권이 "배 째라" 작전으로 나오고 있다면서 기존의 모든 협상안을 철회한 상태다.

그리스 국민은 다시 어떤 조건의 구제 금융안이 나올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국민 투표에 임하게 되기 때문에, 유럽 채권단은 그리스 정부의 국민 투표는 사실상 '유로존 탈퇴를 원하냐 아니냐"를 선택하라는 국민 협박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노골적으로 국민 투표에서 긴축안을 '부결'시켜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리스 국민이 긴축안을 거부하면 치프라스 정권의 축출을 원하는 유럽 채권단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막기 위한 협상을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국민 투표 기습 제안이 나오기 전까지 여론 조사로는 '유로존 잔류'를 원하는 국민이 60% 가까이 되었다. 하지만 국민 투표 제안 이후 여론은 흔들리고 있다.


▲그리스 시민들이 유럽채권단의 가혹한 긴축안을 두고 오는 5일 국민투표에서 부결시키자는 '반대'의 의미를 뜻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국민 투표 제안 이후 여론 역전


1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그리스 일간지 <에피메리아톤신탁톤>의 여론 조사 결과 응답자의 54%가 채권단안에 반대를 찍겠다고 답했다. 찬성에 표를 던지겠다는 응답자는 33%에 그쳤다. 이번 조사는 여론 조사 기관 '프로라타'가 지난달 28~30일 그리스인 1200명을 상대로 실시했다.

미국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미칠 경제적 영향에도 우려를 표시하지만, 더 깊은 관심은 그리스가 나토 동맹국으로 러시아와 손을 잡는 사태에 더 큰 걱정을 하고 있다.

1일 <뉴욕타임스>는 "나토는 합의제로 운영되는데 그리스가 다른 나토 회원국들과 경제적으로 결속되지 못한 상황이 되면 가뜩이나 러시아와의 긴장이 고조되고 중동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미국의 외교 정책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그리스의 IMF 채무 상환 시한인 6월30일 오후 6시(현지 시간)가 몇 시간 앞으로 다가오자 "해법을 찾아보라고 유럽의 지도자들에게 말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제이컵 루 재무장관도 유럽의 입장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네덜란드, 이탈리아, 프랑스 등의 재무장관과 수십 차례 통화하며 설득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루 장관은 "그리스가 통화 동맹에 남을 수 있는 실용적인 협상안을 도출할 것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의 중재 노력에도 그리스의 디폴트를 피하지 못했다.

그리스가 IMF 채무를 갚지 못한 것을 놓고 IMF 측은 아직 민간 채권단의 채무를 갚지 못한 것이라면서 본격적인 디폴트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이미 '디폴트'로 받아들이고 있다.

20일 ECB 빚 4조5000억 원 갚을 수 있을까


이제 관건은 그리스 은행들의 '인공호흡기' 역할을 하고 있는 유럽중앙은행(ECB)의 긴급 유동성 지원(ELA)이 계속될지 여부다. 시장에서는 IMF의 채무 불이행이 발생해도 ECB의 긴급 유동성 지원이 끊어지지 않으면 그리스 경제는 연명해나갈 수 있다는 관측이 많다.

하지만 국민 투표에서 유럽 채권단이 요구하는 가혹한 긴축안이 부결되고, 오는 20일 그리스가 ECB에서 빌린 4조5000억 원대의 빚을 갚지 못하게 되면 민간 채권단의 생명줄인 긴급 유동성 지원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된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ECB가 자기네 빚도 갚지 못하는 그리스를 위해 계속 지원할 명분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스가 민간 채권단의 연쇄 부도를 의미하는 본격적인 디폴트에 빠지게 되면 그렉시트(그리스의 자발적인 유로존 탈퇴)가 아니어도 그렉시던트(사고처럼 닥치는 유로존 탈퇴)가 불가피한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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