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한반도 곳곳 조용한 시한폭탄, 지금도 재깍재깍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한반도 곳곳 조용한 시한폭탄, 지금도 재깍재깍 [구보타 쇼크 10년, 한일 석면 문제 대해부 ⑧]
일제의 한국 침탈로 시작된 한국의 석면 문제

한국의 석면 문제는 일제의 대한제국 침탈과 궤를 같이 한다. 1910년 일찌감치 한반도를 집어삼킨 일본 제국주의는 1930년대 후반 중일 전쟁에 이어 제2차 세계 대전에 뛰어들면서 한반도 곳곳에서 전쟁, 전략 물자로 엄청난 가치를 지닌 석면 광물을 캐내기 위한 치밀한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당시 석면 광산에서 일했거나 광산 인근에 거주했던 많은 조선인들의 폐에는 죽음의 먼지가 가득 쌓였다. 하지만 단 한명의 예외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무엇 때문에 죽는지 잘 모른 채 그냥 폐병, 암, 결핵 등으로만 알고 세상을 떠났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1945년 일제 패망 뒤 석면 광산 문이 닫히자 광산 일을 잠시 접었다가 1960년대 후반부터 재가동에 들어간 광산에서 다시 석면을 캐거나 가공하는 일을 했다. 그리고 2000년대 후반 비로소 자신들이 앓는 병이 석면 먼지에 다량 노출돼 걸린 석면폐증과 악성중피종, 폐암 등임을 알게 됐다.

일제가 석면 재앙의 씨를 뿌렸고 그 뒤 196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한 이른바 ‘조국 근대화’의 일환으로 널리 사용된 석면 제품과 석면 제품 생산 공장 가동 등으로 한국의 석면 문제가 시한폭탄이 돼 우리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1980년대 중반 이미 석면 위험성 경고

석면이 심각한 건강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경고는 선진국에서 1960~70년대부터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 중반부터 일부 언론의 간헐적 보도와 석면 책 발간(<석면 공해 : 조용한 시한폭탄>(안종주 편저, 1988년)) 등을 통해 석면이 지닌 위험성에 대한 엄중한 경고가 있었으나 세간의 이목을 끌지 못했다. 오히려 그 뒤에도 석면 제품 사용은 더욱 더 늘어나기만 했고 정부가 앞장서 석면 제품 사용을 권장하기까지 했다.

1993년 석면으로 인한 악성중피종 환자가 우리나라에서도 공식 산재 환자로 처음 인정되고 유럽 등에서 석면 사용 규제와 석면 사용 금지 조치를 잇달아 선포하면서 우리나라도 1990년대 후반부터 석면 사용 규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5년 일본에서 구보타 쇼크라는 이름의 환경성 석면 질환 문제가 발생하자 정부는 2009년에는 산업안전보건법을 대폭 고쳐 사실상 석면 사용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다.

이 법에 따라 석면 건물 해체 때에는 건축 자재에 대해 석면 함유 여부를 사전 조사토록 의무화했고 석면 건물로 확인될 경우에는 엄격한 석면 비산 방지 조치를 한 뒤 공사를 하도록 했다. 하지만 재건축이나 재개발 현장에서 석면 건물을 마구 허물어 인근 주민들의 불안이 가중되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졌다.

짧은 기간에 석면 안전 관리 제도와 법 정비한 편

지하철 석면 사용과 뿜칠 석면 제거 문제와 석면 건물 해체 문제, 그리고 옛 석면 광산 및 석면 공장 인근 주민들의 잇따른 석면 질환 발병 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정부는 서둘러 2011년 석면피해구제법, 2012년 석면안전관리법을 차례로 제정해 시행에 들어갔다.

우리 사회는 석면 문제가 불거진 뒤 비교적 짧은 기간에 석면 관리 제도를 정비하고 관련 법 제정을 통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석면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 석면 문제에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는 국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제도를 제대로 쫓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석면 해체 업체와 석면 감리, 석면 함유 가능 물질 관리, 자연 발생 석면 지역 안전 관리 등을 둘러싸고 행정의 미숙함이 드러나고 있다. 지역 주민과 정부, 지역주민과 석면 지역 개발 업체(기관) 간 갈등과 분쟁도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이밖에도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에 산재한 노후 석면 슬레이트 안전 관리와 해체 제거, 재건축 재개발 등 때 석면이 사용된 건물에 대한 안전 철거, 학교, 학원을 비롯한 다중 이용 시설과 공공건물 내 쓰인 석면 자재를 안전하게 관리하는 문제, 옛 석면 광산의 친환경적 복원 문제 또한 우리가 하루빨리 해결해야 할 석면 현안이다.

지질학적으로 석면이 발달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 즉 자연 발생 석면 지역에 대한 관리는 우리나라의 경우 그 어느 선진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법으로 잘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석면안전관리법에 따른 석면 안전 관리 대상 지역은 전국적으로 매우 넓게 분포돼 있고 그 시행을 둘러싸고 지역 주민과 정부, 지역 주민 간 이견과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곳이 여럿 된다.

▲ 옛 석면 광산 터에 대규모 매립지를 개발하려는 것에 맞서 충청남도 청양군 강정리 마을 주민들이 마을회관에 펼침막 등을 내걸며 반대하고 있다. ⓒ안종주

석면 지역 개발 놓고 주민과의 갈등 홍성과 청양에서 본격화

가장 대표적인 것이 충남 홍성군 광천읍과 청양군 비봉면 강정리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주민 간, 주민과 지방자치단체, 업체 간 분쟁이다.

홍성군에서는 한국철도시설공단 쪽이 장항선 2단계 개량 공사의 하나로 이 지역에 고속철도를 설치하기로 문제가 불거졌다. 석면이 발달한 이 지역을 터널 굴착 또는 암반 절개 등의 공법으로 공사를 벌이기로 하면서 석면 비산을 최소화할 수 있는 노선과 공법을 요구하는 주민과 공단 쪽이 마찰을 빚고 있다.

청양군에서는 석면 광산이 있었던 바로 그 자리에 청양군이 민간 업체에 건설 폐기물 중간 처리업 허가를 내줘 오랫동안 이 업체가 영업을 해오다 업체 쪽이 최근 다시 이곳을 산업체에서 나오는 일반 폐기물을 처리하는 돔형 최종 매립지로 대규모 개발하겠다고 해 관청과 지역 주민과 4년째 마찰을 빚고 있다. 현재 주민들은 줄기차게 반대 시위 등을 벌이고 있고 행정 소송이 청양군과 개발 업체 사이에서 진행 중이다.

정부는 3~4년 전부터 한국광해관리공단을 앞세워 옛 석면 광산 지역과 그 인근 석면 오염 지역을 대상으로 대규모 복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복원 과정에서 친환경 복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거나 주민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채 막무가내 복원을 한다는 민원이 끊이질 않고 있다. 수천억 원의 비용을 쏟아 부으면서도 주민들이 만족해하지 않고 오히려 정부를 비난하는 일이 날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어 복원사업이 외려 석면안전 관리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석면 슬레이트 문제는 196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 잉태된 것으로 현재 전국에 130만 동이 넘는 가옥이나 축사, 창고 등이 20~50년 된 낡은 석면 슬레이트 지붕으로 돼 있다. 이를 이른 시일 안에 안전하게 해체, 제거하는 것이 전 국민의 관심사이자 한국 사회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현안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슬레이트를 철거하고 새로운 지붕과 건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 필요성을 알면서도 정부의 철거 지원이 매우 더디게 이루어지고 있다. 국가 차원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전곡리 옛 석면 광산. 현재 복원이 진행 중이며 이곳에서 나온 석면 암석을 복원 사업장 밖 도로 위에 수천 톤을 옮겨놓아 새로운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안종주

석면 피해 구제, 환자 간 차별 놓고 불만

이뿐만 아니라 석면안전관리법과 산업안전보건법 등에 따라 대규모 석면 건물 철거 때에는 반드시 감리인을 두어 안전한 철거가 이루어지도록, 다시 말해 환경 중으로 석면 먼지가 비산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는 잘 갖추어져 있지만 현실에서는 관리와 감시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 새로운 감리 제도는 형식적으로 이루어져 감리인들이 해체, 철거 업체나 석면 조사 분석 업체의 방패막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석면 건물 해체, 철거를 제대로 관리, 감독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나타내는 석면 전문가들도 많다.

이와 함께 석면이 대량 사용된 건물, 특히 공공건물과 다중 이용 시설,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많이 이용하는 장소에서는 낡은 석면 건축 자재에서 날리는 석면 비산 위험이 큰 데도 이곳들이 안전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이용자들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석면 안전 관리뿐만 아니라 석면 피해를 입은 환자나 그 유가족에 대한 보상 문제도 환자 간 구제금 지급 형평성 등의 문제가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 2012년부터 석면 피해자에 대한 피해 구제가 이루어져 현재 석면폐증과 악성중피종, 석면에 의한 폐암, 미만성 흉막비후 환자들에게 1000만~4000만 원 가량의 의료비와 생활비, 장의비 등을 지급하고 있다. 그 대상자는 이미 1500명을 훌쩍 넘어 섰다.

문제는 석면폐증 환자와 악성중피종 환자 간뿐만 아니라 석면폐증 환자 사이에서도 등급 간 피해 구제금과 구제 기간이 크게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또 올해부터 석면폐증 1등급에 대해서는 피해 구제 기간을 대폭 늘려주었으나 2~3등급 석면폐 환자들에게는 여전히 2년이 지나면 요양 생활 수당 지급을 중단해 이들 대상자들이 거센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석면 문제를 주마간산 격으로 대충 훑어보았다. 이밖에도 크고 작은 여러 문제가 쌓여 있다. 석면이 폐 속에 쌓여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되는 것처럼 이들 문제 또한 이른 시일 안에 우리 사회가 해결하지 못할 경우 어느 날 갑자기 어떻게 폭발할지 아무도 모른다. 한국의 석면 문제는 특정 지역의 특정 주민 또는 노동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관심 가져야 할 사안임이 분명하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원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