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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소관계'로 전락한 진보, 추악한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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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소관계'로 전락한 진보, 추악한 민낯 [표동협의 정치 픽션] 그들의 '침묵의 연대'

깊은 절망감. 최근 '민족문학'으로 대표되는 진보문학계의 '거두'이자 우리 사회의 '어른'으로 추앙받는 분이 자신이 만들고 가꾼 출판사에서 책을 낸 작가의 표절 의혹에 대응하는 태도를 보고 느낀 감정이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신 이 어른께서 가장 최근 밝힌 입장은 표절 의혹에 대해 "소설가를 매장하려는 움직임"이라고 단정했다. 처음부터 '악의', 내지는 '정치적 목적'을 갖고 접근했다는 규정이다. 이 어르신의 말씀대로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지켜봐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런 불온한 의문은 머릿속에서 쉽게 떠나지 않는다. 표절이 거론된 그 작가가 수백만 권의 판매고를 기록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었다면?

절망감을 주는 사건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새정치연합의 윤리심판원이 딸 채용 청탁 전화를 건 의원을 징계하지 않았다. 이유는 '징계 사유가 발생한 날로부터 2년이 경과하면 징계하지 못한다'는 당규 때문. 징계 시효 만료일에서 이틀이 지났다는 이유로 '각하' 결정을 내렸다.

이 사건에 대해서도 불온한 의구심이 든다. 딸 채용 청탁 전화를 건 사실을 인정한 의원이 당내 최대 계파로 분류되며, 대표와도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면?

'세대 담론'이란 진부한 틀 거리를 끄집어내고 싶지는 않지만, 현재 소위 진보진영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희망이나 미래 따위를 얘기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고상하게 말할 생각이 없고, 우리 사회는 '절벽'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권력과 부, 그리고 명예는 극히 소수에게만 나눠졌다. 급속한 고도성장 시기를 지나 급속하게 저성장 시기로 접어들자, 권력과 부는 '합법적'이고도 '정당'하게 가족 안에서만 내리 물림 된다. 2세 대통령인 박근혜와 3세 경영권 세습이 진행되고 있는 이재용이 '가계 내 권력과 부의 세습'의 상징적 인물이다. 대다수의 40대가 이미 기업에서 '퇴직'해야할 나이로 여겨지고 있는 반면, 현 정부 핵심 인사들은 칠순을 훌쩍 넘어섰고 재벌 회장에겐 누구도 나이를 묻지 않는다.

정치, 경제적인 '힘'의 배분은 그것이 가진 속성 때문이라고 핑계라도 댈 수 있다. 그런데 그 사회의 '정신'이며 '가치'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문화와 예술, 학문의 영역에서도 동일한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떤 위안도 떠올릴 수 없게 한다. 현 권력자가 원하는 자에게만 권력과 명예가 넘겨진다. 이 세습의 정당성을 의심하는 이들에겐 '정치꾼', '모략가'라는 멍에가 씌워진다.

정치, 경제, 문화, 학문 등 이 사회의 모든 영역의 권력자들은 촘촘히 '그물망화' 되어 있고,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과 노선의 문제는 출신 가문 내지는 취향의 반영으로 치환됐다. (이익을 나누기 위한) 친소관계 이상의 의미는 탈각된 지 오래다. (현재 여당과 야당의 계파 구분을 보라. 모두 특정인과의 친소 관계에 기반하고 있다. 계파 간의 정치적 입장의 차이를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인식하지 못한다.)

앞에서 거론한 두 개의 사건이 바로 '인간관계로 전락한 진보'의 민낯을 보여준다. 진보진영에게만 엄격한 도덕을 요구하는 게 (정치적으로) 부당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보수진영은 '이익을 공유하는 집단'이라는 의미로 전락했다. 그 대척점에 선 진보진영이 차별과 우위를 주장하기 위해선 '가치를 공유하는 집단'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가치는 진실, 정의, 평등, 평화 등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것들이어야 한다. 자신들이 내세운 가치와 도덕률의 우월함을 정치적 무기로 삼았던 진보가 친소관계로 전락하는 순간, 이익을 공유하는 '마이너리그'일뿐이다.

'절벽' 아래의 대중들은 선거를 통해 민의를 표출할 권리가 있지만, 이미 선거에 나선 정치인들은 '나'의 정치적 이해를 대변하기엔 너무 동떨어진 사람들이다.

마치 신분제 사회로 돌아간 듯한 대한민국에서 '금수저' 물고 태어나지 못한 이들이 느끼는 건 절망과 분노뿐이다. 많은 이들이 이미 마음속에선 죽창을 수십 번도 더 들었겠지만, 마음을 뚫고 나오지 않는 한, 인간관계로 똘똘 뭉친 저들의 조용한 침묵의 연대를 깨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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