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마을공동체 만들기 10년, 성미산 마을을 위협하는 것
정말 느닷없는 일이었다. 개인으로는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누가 알았겠는가? 내가 만든 결과물이 나를 옥죌 줄이야.
'작은 나무 카페'가 들어서 있는 건물(서울시 마포구 성산동)은 2012년부터 매매가 시도됐다. 건물주가 원했던 평당 2500만 원이 정말 터무니없는 가격이라고 생각했었다. 당시 주변 시세는 평당 2000만 원을 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건물은 쉽게 팔리지 않았다.
그래도 언젠가 건물은 팔릴 거라 여겼고, 그렇다면 우리가 직접 사면 어떨까도 생각했었다. 그러던 가운데 이 건물을 사겠다는 동네 사람이 있어 2014년 초 건물주에게 매매의사가 있는지 의사타진을 했다. 작은 나무 카페는 성미산 마을에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자리이기에 무리해서라도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그때 건물주는 무슨 생각인지 당장에는 매매의사 없으니, 맘 편히 장사하라고 대답했다. 그 뒤 생각이 바뀌면 연락 달라고 했으나, 2014년 6월 건물주로부터 건물 매매를 통보받았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새로운 건물주는 2015년 7월 9일까지 임대기간을 인정하니 이전 임대조건대로 1년 영업하고, 그 뒤 명도 이전하라는 내용의 통보를 했다.
주변 임대조건을 현재 작은 나무 카페의 조건과 비교해보면, 임대료가 크게 올라 이전이 어려운 현실이다. 월세는 약 2배 넘게 폭등했고, 권리금도 올랐다. 원래 이곳은 상권이 발달한 지역이 아니다. 그러던 곳에 마을기업이 하나 둘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성미산 마을의 주요 활동이 이뤄지다 보니 다른 여러 종류의 업종들도 대체로 견딜 만한 곳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작은 나무 카페가 지금과 같은 마을 카페로 운영해온 지 8년이 됐다. 마을공동체 분야에서 마을기업의 모델로 인정받고 있다.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기 이전부터 200여 명 조합원들의 출자금으로 카페를 설립하고 운영해 왔다. 마을카 페로서 이익이 남지 않아도 아이들을 위해 유기농 아이스크림을 판매하고, 마을에서 크고 작은 문화행사·회의·연락과 물건을 맡기는 곳 같은, 그야말로 마을사랑방 기능을 톡톡히 해 왔다. 그런데 얼굴 한 번 보지 않았던 낯선 사람이 건물을 소유하게 됐고, 8년 동안 마을 사람들의 기억과 추억이 녹아 있는 장소는 순식간에 사라질 위기에 놓인 것이다.
임차인, 전국 모든 소상인들의 공통 문제
어떻게 해야 하나. 일단 버티기로 했다. 이런 상황은 법이고 뭐고 사람이 사는 근원인 윤리에 맞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부동산을 직접 소유하고 있지 않으면 무슨 일이든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똑같다. 우리 활동의 결과물을 스스로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2015년 7월 9일이 임대 계약 만료일이었고, 카페를 비워야 하는 날이었다. 이달 대책위원회를 만들고 기자회견을 했다. 그리고 주변 상가들을 돌면서 서명을 받았다. 임대차보호법에 권리금이 합법화되었으니 이를 함께 알리기도 했다. 놀랍게도 거의 대부분 가게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동참해 주었다. 내친김에 좀 더 강하게 가보기로 했다. 서울시 임대차조정위원회에 조정 신청을 했다. 몇 차례 조정위원회가 열렸고, 임대 기간을 2년 정도 연장할 것으로 보인다. 2015년 8월 말 현재 아직 협의하고 있다.
그 사이에 '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들의 모임(맘상모)'에도 가입해 소상인들끼리 연대하기로 했다. 이 문제는 성미산 마을만의 것이 아니라, 전국 모든 소상인들의 공통 문제였다. 마을공동체건, 골목상권이건, 아님 '핫 플레이스'로 이른바 '뜬 상권'이든 그곳에서 장사하는 모든 소상인들은 대부분 임차인이다. 자기 소유 부동산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은 이미 소상인 테두리에서 벗어나 있다.
가수 싸이와 테이크아웃드로잉 카페
소상인 처지가 똑같은 건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 카페 사례를 보면 된다. 그야말로 더 잔혹사다. 이곳은 가수 싸이가 소유한 건물이라는 것 때문에 유명해졌다. 애초에 이곳은 장사가 잘 안되는 곳이었다. 미술작가들이 예술 감수성(미술관이자 서점이고 예술가들 작업공간이자 전시공간인 장소)으로 이곳을 꾸몄고, 열심히 활동해 한남동 명소가 되었다. 영화 <건축학개론>에도 나오면서 더 큰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건물주가 몇 번 바뀌었다. 그러면서 최초에 계약했던 나름 '착한' 건물주와 맺었던 '임차인이 원하면 해마다 계약을 연장할 수 있다'는 계약 내용은 사라져 버렸다. 참고로 당시 건물주는 일본인이었다. 일본은 세입자의 권리를 무제한 보장하는 나라이다. 이것은 나중에 법원에서도 인정하지 않았다. 기가 찰 노릇이다.
마지막 건물주 싸이는 외국에 있고 바빠서 그런지 직접 나서지 않았고, 성과에 과잉 의욕을 가진 변호사가 법에 따라 착착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명도와 관련한 소송이 따라붙었다. 처음에는 싸이 측이 유리했으나, 그쪽의 사소한 실수(재판 출석 공문을 엉뚱한 곳으로 보내 임차인이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진행된 것) 때문에 임차인이 유리하게 판결이 났다. 일이 이렇게 되자, 싸이 측이 무리수를 두기 시작했다. 용역을 채용해 버린 것이다. 당연히 폭력 상황이 만들어지고 사람이 다치는 일도 벌어졌다. 여론이 나빠지자 싸이의 기획사인 YG 양현석 대표가 중재에 나섰다. 한 달 동안 협상 끝에 양측이 합의에 이르렀다. 일이 마무리되는 듯 보였으나, 그 뒤로도 여러 고발이 있었고, 최근까지 진행되고 있다.
법리적인 옳고 그름을 떠나 우리 사회는 강고한 '지대 자본주의' 사회임을 실감하게 된다. 개인 소유라는 명목으로 지주에게는 관대하고, 상권을 형성했던 권리에는 엄격하다. 똑같은 소유이지만 소유의 내용과 방식에 차등을 두고 있다. 지주는 부동산 소유에 대한 정당한 지대를 받으면 된다. 상권이 만들어지고 장사가 잘되는 것은 오로지 상인이 만들어낸 것이다. 따라서 상인이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을 나라밖에서는 충분히 보장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그 장사할 수 있는 권리를 거의 인정하고 있지 않다. 이것이 문제이다. 부동산 소유자에게 모든 것을 귀속시키는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 이는 어떤 이유로 인해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현상을 말한다. 작은 나무 카페나 테이크아웃드로잉 경우처럼 새로운 건물주가 비싼 값으로 부동산을 산 이유도 지가 상승으로 인한 시세 차익을 바라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의 뿌리는 부동산 값이 올라 생긴 시세 차익에 있다.
지속가능발전구역, 성동구 지역공동체에서 싹트다
서울시 성동구에서는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조례를 만들었다. '성동구 지역공동체 상호협력과 지속가능발전구역 지정에 관한 조례'가 바로 그것. 핵심 내용은 특정 지역의 지속가능발전을 위해 건물주들이 임대기간을 최대한 늘린다든지, 임대료를 크게 올리지 않는다는 '자율상생협약'을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조례 내용과 방식은 좀 더 복잡하나 지역상권의 상황과 맞지 않게 임대료가 급격히 오르는 문제를 막아보겠다는 것이다. 물론 한계는 있다. 상위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움직임이다. 그러나 법과 제도 변화의 어려움을 생각한다면 작은 물꼬가 터졌다고 봐야 한다.
중세시대에는 봉건영주와 지주들이 땅을 소유하고 있었다. 당시 시각으로는 이른바 '장사치'들에 해당한 신흥 부르주아지들은 땅이 없었다. 지대는 사업 이윤을 침해하는 주요한 요소였다. 이것이 18세기 부르주아지들이 그렇게 혁명적이었던 이유이다. 오늘날 자본가들은 이 지대와 이윤이 충돌하는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했다. 본인들이 스스로 땅을 소유해 버리는 것이다. 중규모, 대규모 자본은 모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사업을 통해 돈을 벌면 제일 처음으로 하는 일이 건물을 사는 일이다. 오늘날 소상인·소규모 자본의 기준점은 본인들이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느냐 없느냐이다.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모든 자들은 모두 똑같다. 이러한 소유 구조가 법과 제도를 더욱더 기형으로 만들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나? 법과 제도를 바꾸려는 노력과 동시에 소유를 주장할 수 있는 내용을 확대하고 그것을 우리가 직접 소유해야 한다. 상인은 스스로 노력한 결과물로 형성된 상권이라는 자산을 소유해야 하고, 마을은 자신의 활동의 결과물을 유지 강화하기 위해 모든 공간을 최대한 직접 소유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개인이 소유하기 어렵다면 협력해 공동으로 소유해야 한다. 이를 확대해 지역의 공동자산을 형성하고, 독자 소유 영역을 넓혀 가야 한다. 앞으로 마을 활동은 그러한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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