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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이러다간 재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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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이러다간 재앙이다" [한반도 브리핑] 남북 관계의 진일보를 위하여
광복 70주년을 보낸다. 동시에 분단 70년이 지나고 있다. 광복과 분단이 동행하는 것 자체가 한반도의 비극적 현실이다. 광복이 분단으로 이어진 것은 1945년 해방이 '주어진 해방'이었기 때문이다.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우리가 준비하고 쟁취한 것이 아니라 연합국에 의한 일본의 패전으로 갑자기 우리에게 해방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주어진 해방인 탓에 1945년의 해방은 '갈라진' 해방이었다. 우리는 일제 식민 지배로부터 벗어났다는 기쁨과 남북이 서로 갈라지는 설움을 동시에 맞아야만 했다. '일본군 무장 해제'라는 군사적 명분으로 시작된 분단은 우리 내부의 좌우익 갈등과 미-소 간의 냉전적 대결이 상호 상승 작용을 일으킴으로써 일시적 '갈라짐'이 아니라 남과 북에 각기 다른 체제와 정부가 수립되는 정치적 '분단'의 결과를 낳고 말았다.

광복이 분단을 낳으면서 남북 관계 70년은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남과 북은 정치·군사적으로 철저히 분단 체제를 강화해왔다. 상대를 정치적으로 부인하고 군사적으로 총칼을 겨눈 채 지금까지 정치적 대결과 군사적 대치는 약화되지 않고 있다. 남과 북의 구성원들마저 상대에 대한 반감과 적개심, 그리고 혐오와 피로감이 겹겹이 축적되고 있다.

▲ 지난 2010년 국방부는 천안함 사건에 따른 5.24 조치의 일환으로 대북 심리전 재개를 결정했다. 사진은 당시 중동부 전선을 지키는 백두산 부대 최전방 GOP 장병들이 확성기를 점검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분단 70년을 맞으면서 우리는 한반도 평화의 절박함과 취약성을 다시 한 번 목도했다. 한여름을 달구었던 휴전선에서의 급격한 긴장 고조와 단 며칠 만에 일촉즉발의 전쟁위기로 치닫는 상황을 실감하면서 지금 한반도는 한시라도 전쟁이 가능한 위험천만한 곳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확성기 방송과 비무장지대 포사격만으로도 우리가 북한군과 한미연합군의 전면전까지 감내하고 결심해야 하는 현실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통일은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우리의 준비가 잘돼서가 아니라 북한 요인으로 인해 통일이라는 기회의 창이 열리고 있다. 북한 내 시장은 이미 국가가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널리 확산됐다. 계획 경제는 시장 경제와 공존하거나 시장 경제로부터 지대(rent)를 얻지 않고서는 스스로 생존하기 힘들다. 고난의 행군 이후 스스로 자력갱생에 익숙한 '장마당 세대'는 이미 국가와 당에 의존하지 않는다. 최근 북한 경제의 상대적 호전을 배경으로 시장 세력과 권력 엘리트의 결합이 강고해지면서 경제적 이권을 둘러싼 권력 집단 내부의 균열 가능성이 배태되고 있다. 북한의 실질적 변화가 위아래로 지속되면서 북한 내부의 정치적 변동과 근본적 변화의 씨앗은 이미 뿌려지고 있는 셈이다.

북한발 통일의 기회가 점점 다가오는 현실에서 정작 우리의 통일 준비는 허망하거나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있다. 대통령이 통일 대박을 주장하고 정부가 통일준비위원회를 가동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통일은 전혀 실감 나지 않는다. 남북 관계 경색이 지속되고 군사적 긴장이 상존하는 지금의 한반도 현실에서 통일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북한 요인으로 통일의 기회가 갑자기 닥친다 하더라도 남북 관계 개선과 화해 협력 축적이 없는 통일은 우리에게 축복이 아니라 재앙일 수 있기 때문이다.

통일이 도둑같이 올 때 우리가 또다시 준비하지 못한다면, 주어진 해방이었기에 갈라진 해방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졌듯이 우리에게 통일은 대박이 아니라 재앙이 될 것이다. 화해 협력과 상호 이해를 통해 북한 주민의 마음을 사지 못한 채로 통일이라는 기회의 창이 열린다면 상호 불신과 증오와 갈등이 난무하는 매우 폭력적인 비평화적 통일을 겪게 될 것이고, 이는 곧 해방이 전쟁으로 이어진 과거의 경험을 또 한 번 되풀이하는 역사적 잘못이 될 것이다. 다가오는 통일을 평화로운 통일로 받아 안기 위해 지금이라도 우리는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하고 비가역적인 남북 관계 개선을 통해 오랜 기간의 일관된 화해 협력의 과정을 시작해야 한다.

남북 관계 70년 동안 때로는 대화와 교류도 있었고 일정한 합의도 존재했다. 냉전 시기에도 간헐적 대화와 합의가 도출됐지만, 지속적 실천은 보장되지 못했다. 1990년대 탈냉전 이후에는 기본합의서 채택과 경제 협력이 시작됐고 두 차례의 정상 회담이 성사되어 남북 관계는 화해와 협력이 일정하게 진전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이후 남북 관계는 정상 회담 이전으로 역진되었고 지금도 한반도는 대화와 협력보다는 갈등과 긴장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2000년 정상 회담 이후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등 대규모 경협이 시작되고 경의선·동해선이 연결되고 각 방면과 분야에서 사회 문화적 교류와 접촉이 지속되면서 수십 차례 다양한 당국 간 회담이 진행됐지만 정치적 쟁점과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면 하루아침에 남북 관계는 과거로 회귀하고 말았다.

결국 남북 관계는 경제 협력과 사회 문화적 교류가 진행된다고 해도, 본질적으로 정치적 대결과 군사적 대치라는 분단 체제의 근본 구조를 일정하게 해소해내지 못하면 언제라도 역행하거나 되돌려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치·군사적 대결을 완화해내지 못한다면 남북 관계는 가다 서기를 반복하게 되고 대화와 합의 역시 이행과 불이행의 답보 상태를 극복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 남북 고위급접촉 공동 보도문 발표에 합의한 이후 접촉 장소였던 판문점 평화의 집 회담장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는 김관진(오른쪽)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북한 황병서 총정치국장 ⓒ통일부

따라서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하고 역진 불가능한 남북관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군사적 긴장과 정치적 대결을 해소함으로써 한반도에 포괄적인 평화를 이루어내야 한다. 군사 안보적 차원에만 국한된 협의의 평화가 아니라 정치적 대결과 상호 갈등의 해소까지 포함하는 이른바 '포괄적 평화(comprehensive peace)'의 필요성이다. 정전 체제의 군사적 대치 대신 평화 체제의 안정적 평화를 정착시키고 분단 체제의 정치적 대결 대신 상호 이해와 공존의 정치적 평화를 증대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한반도에 '포괄적 평화'가 증진된다면 남북 관계는 화해 협력의 진전과 축적을 통해 평화로운 통일을 지향할 수 있을 것이다.

8.25 합의에 따라 다양한 수준의 남북 대화가 시작되는 경우에도 경제와 사회 문화 교류뿐만 아니라 지금 가장 절박한 정치적 대결과 군사적 대치를 완화하고 해소할 수 있는 정치 군사 의제까지 허심탄회하게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진지하고 전향적인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정치 군사적 대결의 해소 없는 평화는 불안정한 평화일 뿐이고, 평화가 수반되지 않는 '주어진' 통일은 우리에게 또다시 재앙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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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식
김근식 경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와 동 대학원 석·박사 학위를 받은 한국의 대표적인 남북관계 전문가입니다. 김 교수는 청와대 안보실 자문위원, 통일부 자문위원,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등을 역임했고 2007년 특별 수행원으로 남북정상회담에 참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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