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와 불확실성
2010년부터 매년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는 "불확실성 하의 (미미한) 회복세"를 점쳤지만 결국은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언젠가 소개해 드린 아래 [그림 1]을 보면 매년 분기별 전망이 점점 떨어져서 연간으로는 1%포인트 가량 실제와 괴리된 것으로 드러났죠.
그 동안 경제의 불확실성으로 거론되던 단골 항목들은 유럽 재정 위기의 진행, 중국의 경제 전망, 그리고 지난 2년은 미국의 금리 인상 여부입니다. 이 중 앞의 두 항목은 (패닉 상태는 아니지만) 더 불안해졌고, 그 여파로 미국 금리 인상은 일단 늦춰졌습니다.
지난 9월 16일 OECD는 '중간 경제 전망(Interim Economic Outlook, 국제기구들은 위 그림처럼 분기마다 전망치를 수정하는데 이를 중간 보고서라고 부릅니다)'을 발표했는데 제목이 "수수께끼와 불확실성(Puzzles and Uncertainties)"입니다. (☞관련 자료 : )
요약하자면 1) 2015년에도 장기 평균치 이하의 경제 성장을 할 것이고 1인당 세계 GDP로 치면 5년 연속 하락이다. 2) 중국의 수입 수요 하락으로 브라질과 러시아 등 거대 신흥 경제가 깊은 침체에 빠졌다. 3) 앞으로의 위험 요소는 중국의 예상 외의 경기 하락, 미국의 첫 번째 금리 인상 시점에 발생할 수 있는 금융 혼란, 신흥 경제의 채무로 인한 금융 쇼크다. 4) 이에 따라 각국의 투자 성장률이 떨어져서 앞으로 잠재 성장률은 더 떨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보고서는 사상 최저의 금리에 더해서 유가 하락이라는 호조건에도 선진국 경제가 회복되지 않는 수수께끼에 대해서 민간 부문의 부채 부담이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곤 앞으로 핵심 수수께끼가 중국의 성장률이 될 거라고 했습니다.
상당한 과잉 설비에 시달리고 있는 중화학공업을 어떻게 구조 조정할 것인가, 부동산 투자와 실물 투자의 부진을 중국 정부의 확장 정책이 흡수할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이라는 거죠. 특히 지표상으로 중국의 수입 증가율이 0% 가까이 떨어지고 있는데도 GDP가 유지될 수 있을 것인지가 수수께끼라는 겁니다.
OECD는 중국의 성장률이 앞으로 2년 동안 2%포인트 떨어지고(즉 5%까지 떨어지면) 금융 쇼크까지 겹칠 때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을 추정했습니다([그림 2]).
이 추정에 따르면 그런 일이 발생할 경우, 당사자인 중국의 성장률은 추가로 1%포인트 이상 떨어지고 일본은 0.5%포인트 이상, 세계 전체 역시 0.5%포인트 정도 성장률이 하락합니다. 일본보다 훨씬 많이 중국 경제에 노출되어 있는 한국이 받을 영향은 0.5%포인트에서 1%포인트 사이일 거라고 짐작할 수 있겠죠.
OECD는 현재 세계 경제의 가장 큰 "불확실성"은 거대 신흥 경제권의 금융 불안이라고 지적합니다. 1980년대에 빈번했던 중남미 금융 위기와 1997년의 동아시아 금융 위기가 재현될 수도 있다는 얘기죠.
이런 수수께끼와 불확실성을 고려해서 OECD는 금년 세계 경제 성장률을 3.0%(6월에 비해 0.1%포인트 축소), 내년도 성장률을 3.6%(-0.2%포인트)로 전망했습니다. 하지만 [그림 1]을 고려해 보면 이 수치도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위기 앞에서 머리를 땅에 박다
중국, 브라질, 러시아만 문제가 아닙니다.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동남아 국가들의 위기도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2013년 한국의 대 아세안 수출이 전체의 14.7%를 차지했고 직접 투자 등 금융 연관도 상당하니까요.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의 위기에 취약한 것으로 알려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타이)의 금융 상황을 점검하고 이들 국가의 외환 위기가 우리나라의 성장률을 0.5%포인트에서 1.3%포인트까지 끌어내릴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관련 자료 : )
분석 대상과 기법이 서로 다른 추계치를 단순 합계하면 절대 안 됩니다만, 중국의 경제 성장률 하락, 그리고 이에 따른 동남아의 경제 위기가 어우러져서 한국의 경제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건 분명합니다.
이런 충격을 고려하지 않고 현재의 추세만 점검해 보더라도 한국 경제는 빠른 속도로 나빠지고 있습니다. 9월 23일 국제금융센터 등의 정보를 종합하면 해외 투자은행(IB) 들은 최근 잇따라 한국 경제 전망을 평균 0.8%포인트 정도 하향 조정했습니다.
독일 데카뱅크의 2.1%를 필두로, 노무라, IHS이코노믹스, ANZ은행, 웰스 파고는 2.2%, 모건스탠리와 무디스, 독일코메즈방크는 2.3%로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떨어뜨렸죠. 정부의 추경이 효과를 발휘하더라도 2% 중반을 달성하기 어려울 겁니다.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 때였다면 "나라가 망했다"는 소리가 나올 만한 수치입니다. (☞관련 기사 : )
장두노미
그러나 우리의 대통령은 "이제 지나친 비관과 비판의 늪에서 빠져나와 경제 체질을 바꾸고 혁신을 이뤄 제2의 도약을 이뤄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9월 2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한 말입니다.
박 대통령은 이런 장담의 근거도 제시했는데요. 첫째, 스탠더드앤푸어스(S&P)의 국가 신용 등급 상향 조정, OECD 4위의 경제 성장률, 지난 5년 중 최고치를 기록한 국민소득 증가율, 낮은 국가 채무 비율을 들었습니다. <조선일보> 말마따나 "일각에서 제기하는 경제 실패론과 경제 위기론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한 셈"입니다. (☞관련 기사 : )
아시다시피 OECD는 선진국 클럽이고 한국에 비해 성장률이 낮게 마련입니다. 2008년 이전엔 우리의 경제 성장률이 두 배가 넘었으니까요. 거기서 4위라는 게 그리 자랑스러운 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 순위도 틀렸습니다. 2014년 경제 성장률을 보면 룩셈부르크 5.6%, 아일랜드 4.8%, 헝가리 3.6%, 폴란드 3.4%, 대한민국 3.3%로 5위니까요. (☞관련 자료 : )
뭐 4위나 5위나 별 의미 없는 수치니까 조작을 한 건 아니겠지만 대통령이 말하는 국제 수치가 이렇게 틀린다는 건, 비서실로선 목숨이 왔다 갔다 할 만한 문제입니다. 지난 8월 14일 편지에서 추신으로 말씀드린 것처럼 이런 엉터리 수치가 대통령 입에서 나온 건 처음이 아닙니다. 그 때는 조작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사안이었죠. (☞관련 기사 : '중국 쇼크'라고요?)
요즘 국민소득 증가율이 GDP에 비해 높아진 건 유가 하락 등 대외 거래가 유리해졌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기간 동안 가장 높은 수치를 달성했다는 게 과연 자랑일까요? 국가 채무 비율이 낮은 건 사실입니다만 그건 전임 정부들의 업적이고 대통령이라면 이 정부 들어서 빠른 속도로 그 수치가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걱정해야겠죠.
마지막으로 S&P의 신용 평가가 과연 그리 대단한 건지도 의문입니다. 1995년 S&P는 우리나라 신용 등급을 A+(긍정적)에서 AA-로 올렸다가 2년 만인 1997년 8월에 A+로 한 단계 다시 내렸죠. 그리곤 12월까지 넉 달 동안 무려 열 단계나 아래인 B+(투기 등급)으로 떨어뜨렸습니다. 안이하게 예측하고 있다가 신용 등급을 갑자기 떨어뜨려서 외국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게 한 거죠. 이렇게 사태를 악화시킨 건 지난 글로벌 금융 위기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해서 G20에서 국제 신용 평가 제도의 개혁을 논의하기도 했죠.
도대체 이런 것들을 근거라고 들고 나오는 대통령이나, 또 그걸 반박이라고 보도하는 언론이나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수치를 틀리거나 조작한 비서관들, 관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심기가 뒤틀리면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고, 한번 미운 털이 박히면 어떻게든 보복을 하는 대통령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집니다. 현재는 "경제 위기가 아니라 제2의 도약기"라는 말이 금과옥조가 되었을 테고 위기의 징후는 절대로 보고되지 않을 겁니다. 결국 현실이 이런 믿음을 부정할 때 대통령은 또 남 탓을 할 겁니다. '노동 개혁 5대 법안'에 대해 "이 법안들이 국회를 통과해야만 노사정 합의도 완성이 된다"는 대통령 말씀이 실현되지 않아서 경제에 문제가 생긴 거라고 하겠죠. 도대체 "장두노미"의 타조와 뭐가 다른 걸까요?
귀향 길, 애써 밝은 얼굴을 지으려는 조합원들게 이런 속상한 편지를 보내게 됐습니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세상이 어떻더라도 가족, 이웃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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