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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노동 사회, 네 가지가 변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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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죽음 노동 사회, 네 가지가 변해야 산다"

[인터뷰]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공동대표

하루에 5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나라. OECD 국가 중 산재 사망률 1위인 나라. 요즘 유행하는 '헬조선' 대한민국을 일컫는 말이다. 대부분 노동자는 작업현장에서 추락해서, 끼여서 죽는다. 일명 '재래형' 죽음이다. 이러한 죽음은 대부분 하청노동의 몫이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죽음은 비슷한 유형으로 지속해서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정작 사람들은 이들의 죽음에 무감각하다. 개인 실수로 여기든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한다. 일하다 한두 명 죽는 게 대수냐는 반응이다.

하지만 해외만 해도 사람이 일하다 죽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선진국 반열에 오른 나라일수록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다는 사실은 희귀한 일이다. 국내 건설업의 경우, 사망 재해는 인구 10만 명당 19.6명인 반면 영국은 사망 재해가 2.1명에 불과하다.

유독 한국만 이런 구조가 이어져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인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공동대표는 "지금의 현상은 IMF 때 만들어진 시스템이 지속해서 유지돼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래는 그와의 인터뷰 전문.

ⓒ프레시안(최형락)

"먹을거리는 살려야 한다는 합의가 죽음의 구조 불러왔다"

프레시안 : 하루에 5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다. 대부분 하청노동자, 즉 비정규직들이다. 이런 구조가 고착화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상윤 : 조선업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겠다. 1970년대 초창기만 해도 떠돌이 노동자들이 조선소에서 일했다. 이는 당시 모든 제조업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당시만 해도 정규직, 비정규직 개념이 없었다. 일용직을 고용해도 돌아가는 구조였다. 하지만, 1980년대 경제가 고성장하면서 숙련노동자에 대한 요구가 조선업 내에서도 생겨났다. 한국 조선업이 세계시장에서 편입되면서부터였다. 고숙련 노동자가 담보되지 않으면 선박 수주를 못하게 됐다.

프레시안 : 세계 조선업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기술력이 뛰어나야 하기 때문이지 않겠나. 선박을 만드는 일은 1~2년 숙련된 노동자로는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상윤 : 그래서 대부분 노동자가 정규직화되면서 숙련노동자 그룹이 형성됐다. 그러나 이는 1990년대 들어 떠오른 경쟁국, 즉 중국에 의해 흔들리게 됐다. 저임금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 조선업과의 가격경쟁 속에서 한국 조선업이 취할 수 있는 방향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인력을 구조조정하거나 인건비를 내리는 방식이다. 가격경쟁에 맞불을 놓는 식이다. 두 번째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기술력을 담보로 하는 품질경쟁으로 방향을 돌리는 것이다.

프레시안 : 현재 상황을 보면 두 번째 방식은 취하지 못했던 듯하다.

이상윤 : 맞다. 마침 1997년 IMF가 터졌다. 그러면서 자연히 첫 번째 방식을 선택했다. 대규모 구조조정이 발생했고, 그 빈 공간은 비정규직으로 채워졌다. 그 선택에 따른 결과물이 지금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IMF의 외압만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는 이해하기 어렵다. IMF체제를 차라리 한국산업의 체질을 개선하는 계기로 만들 수 있지 않았나. 왜 그런 판단을 했다고 생각하나.

이상윤 : 전체적으로 큰 흐름에서 보면, 한국은 자동차, 조선, 반도체 등 제조업으로 먹고 산 지 오래됐다. IMF 당시만 해도 한국경제를 살린다는 철강조차 뒤떨어지고 있는 구조다. 물론 밥벌이로는 유효했다. 하지만 이것이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의문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부는 글로벌 시장에서 고부가가치로 승부하는 것보다는 인건비 절감이나 산재사고 위험을 외부화하는 것 등으로 산업성장을 지속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프레시안 : 산재사고를 외부화한다는 것은 비정규직에게 위험한 일을 시킨다는 의미인가. 그렇게 하는 게 산업성장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

이상윤 : 환경파괴, 노동자 건강 이상 등을 철저히 외부화하면서 성장 드라이브를 가속하는 것이다. 그러한 피해는 보이지 않게 관리하는 전략을 택했다. 한마디로 신경 쓰지 않는 전략을 취한 셈이다.

프레시안 : 그러한 선택을 한 게 정부였다고는 하지만 일반적인 정서도 깔렸었다고 생각한다.

이상윤 : 맞다. 사회구성원의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먹을거리는 살려야 한다'는 합의다. 결과만 보면 사회 불평등을 확대하는 사회전략이었다. 조선업만이 아닌 전반적인 한국 산업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 선택의 후폭풍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한국은 독특한 구조를 가진 나라"

프레시안 : 그런 합의가 지금의 구조를 만들었고, 하루에 5명이 일하다 죽어도 '어쩔 수 없는 일'로 넘어가는 사회인식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인가.

이상윤 : 이 프레임에는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있다.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라는.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 내러티브(narrative)로 보면 그렇다. '국가는 발전해야 하고 발전하려면 누군가 희생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안타깝지만 희생에 눈을 돌리면 우리는 발전 못 한다'. 이런 식이다.

프레시안 : '죽음'이 일반화돼 있는 것도 이를 고착화하는 요소로 작용하는 듯하다. 실제 산업재해 사망 사건 관련 기사를 쓰면 클릭수는 잘 나오지 않는다. 사람들 관심이 없다는 의미다.

이상윤 : 사람들은 아픈 일이 많을수록 무감각해지는 심리가 있다. 이것이 대중 심리로 자리 잡은 셈이다.

프레시안 : 해외와 비교해보면 한국의 산재율은 무척 높다. 그 이유는 앞에서 말한 구조적 문제가 크게 작용하는 듯하다. 하지만 해외와 국내의 여러 제반 조건과 산업구조 등을 면밀히 살펴보지 않고 단순 도식으로 한국의 산재율이 해외보다 높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듯하다.

이상윤 : 맞다. 일부 외국 국가와 우리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첫째는 산업구조가 다르면 비교하기 어렵다. 가장 사망 재해가 자주 발생하는 곳은 광업과 농업이다. 그다음이 건설업, 제조업이다. 당연히 재해 발생률이 높은 산업 비중이 작고 서비스업 비중이 높으면 사망 재해는 줄어든다.

산재율이 낮은 선진국의 경우, 산재 발생률이 높은 산업을 자기네들이 직접 담당하다가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동남아시아, 중국 등으로 외주화했다. 노동조합이 그런 산업에 자국민을 노동자로 일하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부분이 산업재해율을 낮춘 효과가 있다. 그렇기에 일률적인 비교는 위험하다.

그럼에도 한국적 특수성이 있다. OECD 국가 중 한국과 산업구조가 비슷한 나라를 비교했을 때, 우리가 특수한 조건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자동차 공장은 세계 곳곳에 있지만 한국의 경우, 노동시간이 장시간이라 과로사 등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독특한 구조다. 지금 일어나는 산업재해를 단순히 산업구조의 문제라고만 하는 것은 변명이다.

ⓒ매일노동뉴스(정기훈)

"유럽도 지난한 과정에서 인식의 변화가 있었다"

프레시안 : 반면, 유럽 선진국에서는 우리와는 달리 사람이 일하다 죽는 것을 매우 이례적인 일로 생각한다.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 관련해서 이를 바라보는 문화가 우리와는 다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상윤 : 역사적 맥락으로 설명하면 유럽 선진국의 경우, 지난한 역사 과정에서 인식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 문제의 경우, 유럽 선진국은 노조가 조직되고 활동하는 초창기인 1800년대 초반에는 중요한 문제였다. 당시 많은 노동자가 일하다 죽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조가 힘이 없다 보니 이를 공론화하지 못했다. 그러나 노조가 강력하게 조직되면서 이는 사회적 문제가 됐다.

사회학적 지표로는 '노조 조직률'과 '진보정당의 힘'이다. 이것이 한 사회가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각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다. 이 두 가지가 클수록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가 공손해지고 작으면 반대가 된다.

아직 우리는 그런 단계가 아니다. 우린 압축성장을 하면서 경제는 빨리 성장했지만, 유럽 선진국이 달성한 다른 과제들, 즉 정치적인 부분에서의 성숙성, 그리고 노동조합의 강화 등은 더디게, 지난하게 진척됐다. 결국, 이 둘의 괴리가 커져 현재 유럽 선진국들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과 갈등이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프레시안 : 유럽 선진국보다 한국의 산업재해 관련 규제나 처벌조항은 매우 강하다고 들었다.

이상윤 : 한국 정부는 노동자 안전, 건강 관련 한국의 규제가 매우 강하다고 한다. 실제 법으로만 보면 이는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유럽 일부 나라는 법으로 그것을 규제하지 않아도 오랜 관습, 사회적 합의가 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기업 행위 자체를 하기 힘들어진다. 실제 유럽에서 사측이 노동자를 고용할 때 △임금 잘 줄 것 △생명, 건강은 침해하지 않을 것은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의무사항이다. 이 두 가지에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북유럽 기업인 등에 물어보면 이해를 못 한다. 회사 경영한다는 사람도 '당신네는 어떻게 산재사고 사망 없이 경영하느냐'라고 하면 '한국은 그게 왜 안 되느냐'라고 한다. 그 이유는 문화적, 역사적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쪽에서는 법으로 강제하지 않아도 사회적 담론으로 이것을 막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기업이 발전하려면 노동자가 희생해야 한다는 전근대적인 생각이 유지되면서 지금의 산재사망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프레시안 : 한국 산업 구조가 이런 상황이지만 정부와 여당은 젊은이들에게 공장에 들어가서 일하라고 이야기한다. 배가 불러서 일을 안 한다는 식으로 말한다. 하지만 일하다 죽을 수도 있는 구조 속에서 청년들이 그런 일자리를 택할 리 만무하다.

이상윤 : 지속해서 위험하고 지저분하고 임금 낮은 일자리를 유지해나가면서 그 일자리에서 일을 안 한다고 뭐라 할 수는 없다. 지금의 구조로는 일자리도 유지할 수 없고, 산업기반도 허물어진다. 일자리를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만드느냐가 국가적 과제가 돼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임금과 안전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지켜지는 일자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우리보다 먼저 발전한 북유럽, 독일 등은 그 과정을 거치면서 제조업 일자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그러면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만들었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이상윤 : 결국은 기업이 압박을 받아야 한다. 생각건대 기업이 압박받는 것은 네 가지 정도다. 첫째 △숙련노동자를 구하기 어렵게 될 경우 △산재 관련 경제적 손실이 클 경우 △사회적 여론이 안 좋아질 경우 △노동조합이 문제를 제기할 경우 등이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이 네 가지 조건이 우리나라에 형성돼 있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이를 통해 기업을, 그리고 정부를 압박해서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프레시안 : 오랜 시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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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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