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협상, 우왕좌왕 박근혜 정부
2006년 2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개시 선언 이후 2013년 3월 발효될 때까지 7년이 걸렸습니다. 2007년 4월 타결 이후에 미국의 재협상 요구를 거쳐 7월에 체결이 됐지만 또 다시 미국의 요구로 쇠고기와 자동차에 대한 재재협상이 벌어졌죠. 첫 번째 재협상은 미국 정부의 요구, 두 번째는 의회의 요구에 의한 재협상이었던 셈입니다.
파란만장했던 한미 FTA의 역사는 <프레시안>에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당시 <프레시안>은 한미 FTA의 쟁점을 낱낱이 소개하고 정부의 오류를 지적하는 포털 사이트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한미 FTA 뜯어보기' 연재는 무려 544회나 계속됐습니다. 한국 언론 사상 최장의 연재가 아니었을까요?) (☞관련 기사 : 노무현-이명박은 어떻게 한미 FTA를 추진했나)
TPP 관련 자료(정부와 비판자들의 논의)를 훑어보니, 위 기사에 나오는 한미 FTA 7년의 과정이 그대로 반복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가 2007년 3월, 한미 FTA 타결 직전에 쓴 글은, 미국과 협상을 벌인 현재의 TPP 11개국에도 그대로 적용될 겁니다. (☞관련 기사 : "盧대통령의 유유자적은 무지일까 오기일까")
한미 FTA는 한국과 미국, 두 나라 간의 협상이었지만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는 12개 정부 수반의 서명(체결)과 12개 의회의 비준을 받아야 하는 일입니다. 아직 협정문이 작성도 되지 않았는데 일국의 부총리가 어떻게든 TPP에 가입할 거라고 선언한다거나, 한미 FTA 선점 효과(그런 건 없었거나 미미했다고 이미 판명이 났지만)가 사라졌다느니, 호들갑을 떨 일이 아닙니다. 시간은 충분합니다.
TPP 타결을 계기로 우선 격변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 우리의 외교 안보 전략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부터 논의하는 게 순서겠죠. 다음으론 현재의 FTA 경쟁이 한국과 세계 경제에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합니다.
첫째, 단도직입으로 말해서 우리는 중국 포위망에 합류해야 할까요? 위의 제 글에도 나오듯이 이미 10년 전에도 미국의 대아시아 전략은 미국의 가치와 FTA를 아시아 국가들이 받아들이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2008년 금융 위기와 중국의 약진은 이런 성격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었죠.
"95%의 잠재적 고객이 우리 국경 밖에 살고 있는데 우리는 중국과 같은 나라가 글로벌 경제의 규칙을 쓰게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 규칙을 써서 미국 상품의 새로운 시장을 열어야 합니다. (…) 미국의 가치를 반영하고 우리 노동자들에게 공정한 몫을 보장하는 협정을…"
TPP 타결 직후 오바마 대통령의 성명입니다. 우리가 이런 구도에 들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한중 FTA를 서둘러 발효시킨다고 해서 우리가 미국의 전략을 거부한 게 될까요? 아무런 방향도 없이 하염없는 외줄 타기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요?
둘째, '경쟁적 자유화(competitive liberalization)'로 요약되는 미국의 FTA 전략이 과연 세계 경제의 회복,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도움이 될까요? 경쟁적 자유화는 죄수의 딜레마를 응용한 전략입니다. 미국과 FTA를 맺은 나라에게 관세 특혜를 주어, 너도 나도 미국과 FTA를 맺게 하겠다는 거죠.
한미 FTA 때 우리 정부의 선전을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정부는 첫째, 외국이 미국과 FTA를 맺기 전에 우리가 시장을 선점하자(광개토 대왕이 등장했죠). 둘째, 우리는 FTA 후진국이므로 빨리 따라잡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외국이 FTA를 맺지 않으면 우리가 먼저 해야 하고, 맺으면 바로 우리도 따라서 해야 한다는 얘기니까 다른 나라가 어떤 전략을 취하든 우리는 무조건 FTA를 맺어야 한다는 겁니다.
한국이 하면 다른 나라도 따라서 맺게 되겠죠. 결국 미국의 의도대로 모든 나라가 미국과 FTA를 맺게 되면 각국이 노렸던 관세 인하의 효과는 사라지게 됩니다. 반면 모든 나라의 지적 재산권, 서비스, 투자 관련 국내 법률은 미국식으로 바뀌어서 (한미 FTA 결과 우리는 150여 개의 우리 법령을 개정해야 했죠)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다자간 협상에서 얻을 수 없었던 이익을 누리게 됩니다. 공기업의 민영화와 규제 완화가 그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방적인 결과가 나올까요? 사교육 역시 죄수의 딜레마에 속합니다. 모두 똑같은 사교육을 하면 등수에는 아무런 영향도 못 미치겠죠. 하지만 현실에선, 서울대 입학생의 구성에서 바로 알 수 있듯이 부잣집 아이들이 일방적인 승자가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미국식 FTA는 결국 미국의 제약 산업, 자동차 산업, 다국적 농업 기업(agribusiness), 할리우드 자본의 승리만 보장합니다.
결국 시장 만능주의, 특히 투자자의 권리 보장이 전 세계 경제의 규칙이 되고, 각국의 공공 정책이나 사회 복지 시스템은 무력해집니다. 제가 한미 FTA 4대 독소 조항이라고 불렀던 네거티브 방식 서비스 시장 개방(개방 예외에 합의한 목록을 빼고는 전부 개방한다), 현재 유보에 대한 래칫 조항 적용(한 번 개방한 서비스 분야는 되돌릴 수 없다), 미래의 최혜국 대우(다른 나라에 더 좋은 조건을 허용하면 한미 FTA에도 적용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투자자-국가 분쟁 처리(ISDS, 한미 FTA 때 ISD라고 불렀던 것)'는 미국이 다른 나라의 국가 주권, 공공성을 파괴하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우리의 살 길은 이 두 문제를 동시에 극복하는 방향이어야 할 겁니다. 저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새로운 공간, 즉 남북한과 일본, 러시아와 아세안, 나아가 인도를 포괄하는 제3지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양대 강국이 제3지대에 경쟁적으로 더 나은 조건을 제공하는 상황을 만들어서 결국 경제와 안보의 공동체로 나아가는 그림이죠. 하지만 이런 커다란 구상이야말로 전 국민이 토론에 참여해서 결정해야 할 일입니다. 큰 나라 눈치나 보고 있어서는 우리가 실 길을 찾기 어렵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처지에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만, 세계 전체의 관점에서 봐도 TPP와 같은 미국식 FTA가 WTO를 대체하면 결국 세계적 불평등의 심화와 침체의 장기화를 불러올 겁니다.)
한미 FTA와 비교해서 무엇이 달라졌을까?
2007년 4월 한미 FTA 타결 때부터 따지면 이번의 TPP 타결은 8년의 간격이 있습니다. 앞으로 협정문이 공개되면 무엇이 그대로이고 무엇이 바뀌었는지 정확히 확인할 수 있겠죠. 하지만 현재까지 흘러나온 자료로도 어느 정도 방향을 짐작할 수는 있습니다.
TPP 협상은 한미 FTA 때보다 더 한 비밀주의 때문에 내용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각국 정부의 성격이나 반대 운동이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한미 FTA와 마찬가지로 본문에 "투명성"과 "정해진 절차(due process)"라는 단어가 곳곳에 나타나고 있지만 TPP 협상만큼 투명성과 민주주의적 절차가 완전히 무시된 경우는 앞으로도 찾기 힘들 겁니다. 오죽 했으면 미 상원의 보고서 제목이 "깜깜이 협상(Blind Agreement)"이었을까요? 하지만 대강의 얼개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CRS(미의회조사국) 리포트를 참조할 수 있습니다. (☞관련 자료 : )
오바마 정부는 TPP를 "21세기형 모델"이라고 이름 지어서 "황금의 표준(gold standard)"으로 명명한 한미 FTA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즉 그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앞에서 얘기한 미국식 FTA의 특징을 더 강화했을 겁니다. CRS 보고서에도 한미 FTA와 비교하는 구절이 자주 나옵니다.
1) 서비스 시장의 네거티브 리스트 개방은 동일합니다. 현재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유형의 서비스는 특별히 제외하지 않는 한, 자동적으로 개방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특히 보고서는 한미 FTA를 들어 특송 사업을 개방할 때, 우체국의 독점력이 부당하게 행사되어서는 안 되며 우체국 내에서 특송 사업에 교차보조금을 주어서도 안 된다고 명시했습니다. 또 통신 산업을 별도 챕터로 만들어서 한미 FTA와 마찬가지로 외국인 투자를 허용하도록 했습니다.
2) 서비스 산업의 특성상 서비스 챕터는 투자와 지적 재산권 챕터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고, 특히 TPP에서는 "규제의 일관성(regulative coherence)"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서비스 산업은 아시다시피 규제 산업인데 TPP와 국내 규제의 일관성을 확보하는 절차가 더 들어갔다는 얘기죠. 협정문에서 꼭 확인해야 할 사항입니다.
3) 금융 서비스는 국내에 들어온 공급자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개방하고, 국경을 넘는 서비스 공급(지점이 상대국에 없는 경우)은 포지티브 방식으로 개방하되, 한미 FTA에서 허용한 특정 은행과 보험 서비스 이상의 개방이 논의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역시 한미 FTA를 들어 우체국 보험과 같은 공기업의 보험 사업은 금융 당국(한국의 금융위원회)의 규제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한미 FTA에서 허용한 회계 정보와 인적 정보의 해외 전자 송출도 논란이 되었다고 하니 그 결과를 확인해야 합니다.
4) 정부 조달 시장의 개방은 WTO의 GPA(정부 조달 협정)를 적용하는데 123명의 미국 의원들은 미국의 "미국 상품 사기(Buy America)" 정책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정부 조달 챕터를 빼라고 요구했습니다. 미국 주 정부의 조달 시장을 주 정부의 선택에 맡기는 걸 넘어서(즉 미국 주 정부는 이 챕터의 수용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아예 연방 정부의 정책에도 협정을 적용하지 말라는 이 요구가 협정문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5) 위생 검역 기준 분쟁(바로 광우병을 걱정한 쇠고기를 둘러싼 분쟁이 여기에 속하죠)은 "협의 메커니즘(consultative mechanism, 전문가들의 협의에 의한 해결)"과 "신속 대응 메커니즘(rapid-response mechanism, 농산물의 특성상 신속한 해결을 요하는 경우)"을 두고 있는데 이에 더해서 별도의 분쟁 처리 절차를 두기로 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유형의 분쟁을 어떤 절차에 의해 해결하도록 했는지 눈여겨봐야 합니다. 물론 농산물 수출 국가에게 유리하게 절차를 만들 텐데, 미국은 설탕이나 유제품에선 수입 국가이므로 뭔가 특별한 조항을 포함시켰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6) 담배 회사나 지역구 의원의 태도를 보면 담배에 대한 국내 규제에 TPP를 적용하는 조항은 매우 제한적이거나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7) 지적 재산권 챕터에서는 "상업적 수준의(on a commercial scale)" "의도적인(willful)" 상표 침해, 모조품(짝퉁), 저작권 도용(copyright piracy)에 대해 형사 처벌을 할 것인가가 논란이 되었습니다. 이 "상업적 수준"에 직접적이거나 금전적인 이익이 없는 경우, 예컨대 파일 공유도 포함되고, 의도와 관계없는 모조품 수입과 포장에 대한 형사 처벌과 극장에서의 캠코딩에 대한 형사 처벌도 들어가야 한다고 미국은 주장했습니다. 이들 조항은 WTO의 TRIPs나 WIPO 협약보다 더 엄격합니다. 한미 FTA에도 비슷한 내용이 들어 있는데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8) 특허권에는 한미 FTA에 포함되지 않은 항목들도 들어갔습니다. 식물과 동물, 진단, 처방, 수술 방식도 특허의 대상이 됐고, 기존 상품의 효과성이 나아지지 않아도 기존 상품의 새로운 형태나 사용법도 특허를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즉 새로운 수술 기법도 특허료를 내야 한다는 얘기고 마지막은 이른바 특허의 무한연장(evergreening)에 이용될 수 있는 조항입니다.
8) 의약품 분야는 강한 지적 재산권이 적용된 한미 FTA 조항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좀 더 관대한 "5월 10일 합의(May 10th agreement)" 조항(콜롬비아, 파나마, 페루 FTA)을 적용할지가 논란이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듯이 특허 기간 연장, 특허-허가 연계, 자료 독점권의 문제죠.
특히 TPP에서는 생물 약제(biologics, 생물에서 추출한 의약 제재)의 특허 기간을 두고 논란이 일었는데 미국의 12년, 오스트레일리아 등의 5년이 맞서, 결국 8년으로 절충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미 FTA는 없었던 항목입니다.
9) 의약품 가격 산정은 기본적으로 한미 FTA의 규정을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뉴질랜드 등이 자국의 의약품 산정 기준을 변화시키려면 이에 상응하게 메디케이드와 같은 주정부의 약값 산정 방식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 국가의 주장이 힘을 발휘했다면 TPP의 약값 산정 기준은 더 약화되었을지도(즉 제네릭 약값이 더 많이 반영되었는지도) 모릅니다.
10) 한미 FTA에서 논란이 되지 않았던 "무역 비밀(trade secret)" 조항이 추가됐습니다. 상대국에게 무역 비밀의 절도에 대한 형사 처벌 제도를 만들라는 겁니다.
11) "경쟁력과 글로벌 공급 연쇄(global supply chains)"에 대한 챕터가 추가됐습니다. 예컨대 자동차는 부품이 2~3만 개가 되기 때문에 그 "공급 연쇄"에는 여러 나라의 부품이 개입되겠죠. TPP 가입국과 미가입국의 부품이 모두 들어가는 경우 원산지 규정은 매우 복잡할 수밖에 없습니다. 2~3개 국가가 아닌 12개국이 동시에 체결하는 협상에선 어떤 기준으로 특혜를 줄 것인지가 핵심 쟁점이 됩니다. 미국은 이 챕터에서 섬유-의류의 얀포워드(원사가 어느 나라 것인가에 따른 원산지 규정, 예컨대 베트남에서 생산한 티셔츠의 원사가 중국제이면 TPP 관세 특혜를 받을 수 없죠)에 더해서 생산 단계별 원산지 규정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동차와 섬유-의류 분야에서 특히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항목입니다.
원산지 규정 외에도 각종 표준의 조화, 무역 촉진에 적합한 하부 구조(도로나 철도), 통관 절차의 간소화 등이 이 챕터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2) 투자와 관련해서는 한미 FTA의 투자자-국가 분쟁 처리(ISDS) 조항이 그대로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미-오스트레일리아 FTA에서 ISDS를 제외했던 오스트레일리아가 강하게 반대했을 텐데, 이 부분이 어떤 방식으로 처리되었는지(예컨대 오스트레일리아의 농산물 개방 요구를 받아들였는지, 아니면 ISDS를 약화시키거나 보완했는지) 보아야 합니다.
또 하나의 쟁점은 자본 유출에 대한 국가의 규제 범위에 관한 것입니다. 이 항목은 아르헨티나의 ISDS 소송과 관련이 있죠. 위기 시에 국가가 자본 유출을 어떤 조건에서 어느 정도나 규제할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물론 미국은 완전히 자유로운 자본 유출을 주장했죠. 다만 금융 위기와 관련해서 IMF가 단기적인 자본 통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했기에 어떤 방식으로 합의가 이뤄졌는지 주목해야 합니다.
13) TPP에는 "국가 소유 기업(SOE, State-Owned Enterprise)" 챕터가 추가되었습니다. 12개 국가 중 베트남처럼 공기업의 비중이 큰 나라가 직접적인 대상이지만 장차 한국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조항입니다. 원칙은 이들 국가 소유 기업이 '불공정한 경쟁 우위'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만 국가 소유 기업의 정의, 불공정의 정의 등 논란의 소지가 많은 부분입니다. 공기업 민영화나 규제 완화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고 장차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챕터입니다.
14) "중소기업" 챕터가 추가되었습니다. 중소기업이 협정을 이용하여 수출을 늘리기 위한 챕터라고 규정되어 있습니다만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노동이나 환경 분야처럼 오바마 정부의 생색내기용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15) 이외에도 밝혀지지 않은 부속 협정(side agreement)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컨대 미 의회에서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환율 문제가 그렇습니다.
(☞관련 기사 : )
16) TPP는 "살아있는 협정(Living Agreement)"입니다. 즉 새로운 멤버를 받아들일 수도 있고 새로운 이슈를 추가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협상 중에 캐나다, 일본, 멕시코가 추가로 들어갔습니다. 한국은 유력한 추가 멤버인데 협정 체결 후, 그러나 발효 전에 들어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추가의 조건이나 절차는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한미 FTA 때의 4대 선결 조건과 같이, 각국 정부 및 대기업의 관심사를 먼저 수용해야 협상이 시작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이상의 제한적인 정보에 비춰 보더라도, TPP는 거의 모든 면에서 한미 FTA+입니다. 여러 나라가 참여하면 미국 외의 나라에게 불리한 일반 구조는 약화될 법 한데, 현재까지의 정보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쟁점에 관해서는 협정문이 확정된 이후에 논의해도 전혀 늦지 않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인 한국의 외교 안보 전략에 관한 논의는 지금 시작해도 이미 늦었습니다. 너무나 빠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TPP 12개국 중 10개국과 이미 FTA를 맺은 상태입니다. 만일 무역 수지에 관한 얘기라면 일본을 제외하곤 큰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미국 무역대표부의 공식 문서가 밝히고 있듯이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과 WTO 등 다자 규범에 대한 영향(미 정부는 TPP를 WTO 라운드의 표준으로 삼을 생각입니다)이라는 점에서 TPP는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틀에 의해 한국이 나갈 방향이 정해진다면 앞으로 우리의 내부 개혁은 별 의미가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TPP를 어떻게 보고, 우리는 어떤 대응을 해야 할지에 관해서는 앞으로 더 많이 다룰 수밖에 없을 겁니다.
현존하는 최고의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최대의 영향력을 가진 프란치스코 교황이 TPP에 관해서 뭐라고 했는지를 인용하는 것으로 긴 글을 마치겠습니다. 이 인용문은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에 관해서 등대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스티글리츠는 TPP가 환태평양동반자협정이 아니라 "환태평양 동반자 위장(Trans-pacific Partnership Charade)"이라고 말합니다. 협정이 아니라 위장이라는 거죠. 특히 투자자-국가 분쟁 처리(ISDS)는 기업의 국가 인수나 다름없다고 갈파합니다. (☞관련 기사 : , )
교황도 두 번에 걸쳐서 TPP에 관한 언급을 했습니다. 특히 교황은 의약품의 지적 재산권 강화, 그리고 역시 투자자-국가 분쟁 처리(ISDS) 절차는 새로운 식민주의라고 규정합니다. 교황은 이러한 새로운 독재에 대해 맞서 싸우라고 얘기했죠. 가만히 있는 것은 불의와 공모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씀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관련 기사 : , )
우리 스스로 또 다시 국가 주권을 포기하고, 현재의 불평등 심화에 따른 아이들의 "헬조선"비명을 방치해야 할까요? 오로지 그 길로 매진하도록 하는 TPP에 꼭 가입을 해야 할까요? 아니면 다른 무역 규범을 모색해야 할까요? 우리가 동아시아에 있다는 것은 새로운 규범을 만들 기회를 갖고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