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69)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국내 보수언론들에 의해 "불평등이 성장의 동력"이라는 이론을 주장한 학자로 둔갑해 소개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국내에도 출간된 <위대한 탈출 : 불평등은 어떻게 성장을 촉진시키나>라는 디턴 교수의 저서가 그 이론을 담은 책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 책에는 소득 불평등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지 간단명료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제시돼 있다. 다음은 이 대목이 담긴 원문의 주요 내용을 번역한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정치적 평등은 항상 경제적 불평등의 위협 아래에 놓여있다. 경제적 불평등이 점점 심해질수록,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은 더욱 커진다.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지면, 삶의 질은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는다.
부자들은 정부가 제공하는 교육과 의료복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들이 모든 국민이 이용하는 건강보험을 지지하거나, 부실한 공교육에 대해 걱정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부자들은 수익을 제약하는 어떠한 금융 규제에도 반대한다. 주택담보대출 상환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돕거나, 약탈적 대출과 허위과장 광고, 심지어 반복되는 금융위기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규제라도 말이다.
극도의 불평등에 대한 우려는 결코 부자들을 부러워해서 하는 게 아니다. 상위 소득의 급증은 부자 이외의 모든 사람들의 삶의 질에 대한 위협이 된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디턴 교수가 불평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전제조건
12일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난 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도 디턴 교수는 현재는 불평등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디턴 교수는 "지나친 불평등은 공공서비스를 붕괴시키고,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등 여러 가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가 불평등이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인정한 것은 어디까지나 "성공적인 기업가 정신에 따른 성장의 부산물"일 때였다. 또한 개발도상국에서 성장으로 불평등이 심해지기는 하지만 절대 빈곤 자체를 줄이는 성과를 거둔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그는 "성공이 불평등을 가져온다고 해서, 성공을 막아서는 안될 것"이라고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부연설명했다.
하지만 개발도상국의 성장 전략이 빈곤 감소의 성과를 거두기 위한 전제 조건도 분명히 했다. 디턴 교수는 "국민을 위한 공공서비스와 보호를 제공하지 못하는 정부가 빈곤과 수탈을 벗어나지 못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라면서 "효율적인 정부가 없는 나라에서는 빈곤을 없애기 위해 필요한 성장을 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디턴 교수가 대중적인 관심을 끌었던 또다른 연구로는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답을 찾는 것이었다. 이 연구는 노벨경제학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과 함께 미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였는데, 연간 소득 7만5000달러(약 8600만 원)가 넘으면 더 행복하다는 증거가 없으며, 반대로 그 이하에서는 소득이 적을수록 심리적인 고통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디턴 교수는 일부 저소득 국가 국민들이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국가의 국민보다 행복하다는 답변이 많은 조사에 대해 "그 나라에서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사람들만 조사해서 생긴 오류"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디턴 교수는 경제학자들이 경제정책이 경제에 미치는 거시적 효과 연구에 치중할 때, 개인들의 소득과 소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미시적인 효과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의 개척자로 평가받고 있다. 노벨경제학상 선정 이유도 "소비와 소득에 대한 디턴의 연구가 제시한 통찰은 현대 거시경제 연구에 대한 지속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