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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미국 버리고 중국 품에 안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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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미국 버리고 중국 품에 안기나?

[강준영의 차이나 브리핑] 시진핑의 영국 단독 방문

중국 최고 지도자 시진핑 국가주석이 오늘(19일)부터 영국을 국빈 방문한다. 중국은 이미 2004년 영국과 외교적 수사로는 최고 단계라 할 수 있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 중국 정부는 10년 만에 이뤄진 이번 국빈 방문이 영국만을 대상으로 한 '단독 방문'임을 강조했다.

작년 7월 시진핑 국가주석이 한국을 '단독' 방문해 답보 상태였던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가속화하고 한-미-일 삼각 공조의 틀을 이완시키려는 노력을 시도했던 것처럼, 이번 영국 방문도 숨겨져 있는 전략적 의미가 상당하다.

중-영 관계는 역사의 패러독스

영국이란 존재는 중국에게 있어 뼈아픈 역사의 일단이자 긴 시련의 시발점이었다. 1840년, 당시 세계 제1의 초강대국 영국은 청조(淸朝)를 상대로 아편전쟁(雅片戰爭)을 일으켰다. 마약 밀무역을 정당한 행정력을 발휘해 단속한 것에 앙심을 품고 벌인 세계사에서 가장 더러운 전쟁 중 하나로 꼽히는 전쟁이다.

중국은 치욕스러운 패배와 함께 어쩔 수 없이 문호를 개방했고, 영국의 요구를 전부 수락하면서 체결된 난징(南京) 조약은 서구 제국주의 열강이 중국을 침탈하는데 죄책감을 덜어주는 표본이 되었다.

중국은 속수무책으로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에 유린당하면서 이후 100여 년간 '아시아의 병자(東亞病夫)'로 전락했다. 이러한 오욕의 역사를 뒤로 하고 국력이 완전히 역전된 상황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영국을 방문하는 것이다.

유럽에 눈독 들여온 중국

통합적 시너지 확보를 위해 단일 시장 및 공동체 결성에 관심을 가졌던 유럽은, 1952년 유럽석탄철강연맹(European Steel and Coal Community) 결성을 계기로 오늘날의 유럽공동체로 진화해 왔다. 유럽연합(EU)은 이미 세계의 3대 경제 권역으로 자리 잡았고, 막강한 경제력을 갖고 있는 유럽을 중국은 오래 전부터 주목해 왔다.

중국과 EU는 이미 1975년 5월에 정식 외교 관계를 맺었으며 늘 인권, 민주, 자유 등 소위 인류의 보편 가치를 둘러싼 현실적, 잠재적 갈등 소지를 갖고 있음에도 2003년에 '전면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양자 관계를 격상시켰다.

주지하다시피, 영국은 EU에서 매우 특수한 지위를 갖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현재까지 영국은 유럽 지역에서 미국의 맹방으로 포지셔닝(positioning)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누려왔다. 국제 문제가 발생하면 언제나 미국 편에 섰다. 반면에 유럽 통합 과정을 주도한 프랑스 및 독일과는 유럽에서의 주도적 지위를 둘러싸고 힘겨운 싸움을 벌여 왔다.

영국은 세계적 금융 강국의 지위 유지에 부심하면서 단일 통화인 유로화도 쓰지 않고 여전히 자국 화폐인 파운드화를 사용한다. 영국의 입장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EU 체제에 그대로 순응할 경우, 그동안 유럽에서 누렸던 주도권과 발언권을 잃게 된다는 불안감 때문이리라.

따라서 유럽 통합을 통해 미국과 세력 균형을 이루려는 프랑스, 독일 중심의 EU와 달리 영국은 늘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고 따르는 최상급 동맹으로 미국의 충실한 파트너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중국의 입장에서는 EU의 완전한 통합에 장애물 역할을 하고 있는 영국의 선택이 호재로 둔갑한다.

영국은 중국의 유럽 공략을 위한 전략적 카드

흥미로운 것은 EU 내에서 이러한 특수 지위를 갖고 있는 영국이 2015년 3월, 미국의 만류에도 무릅쓰고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제일 먼저 가입을 신청하고 20개 유럽 국가의 AIIB 가입을 선도함으로써 중국의 금융굴기에 큰 몫을 했다는 점이다.

유럽의 다른 국가들이 중국과의 새로운 관계 설정에 부담을 느끼면서 주저하고 있을 때 영국은 과감하게 중국의 경제적 부상을 최대한 이용 새로운 '황금 시대(Golden Age)'를 열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은 것이다.

중국은 중국의 부상을 위협으로 인식하지 않는, 그리고 유럽에서 미국의 전략 센터 역할을 해 왔던 영국이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적극 활용할 것이다.

중국의 인민폐 국제화에 일조를 하게 될 50억 위안 규모의 인민폐 국채 발행을 통한 최초의 위안화 역외 펀드 시장 개설도 매우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중국도 고속철 건설 및 핵발전소 건설 등을 위해 영국에 수십조 원에 달하는 투자를 하기로 했다. 이는 제조업 강국 중국과 금융 강국 영국의 결합이라는 모델로 중국이 경제력을 무기로 다양한 루트의 유럽 공략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한 예다.

물론 영국 내에서 자국의 중국 접근에 대해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친중 노선의 선봉에 서 있는 재정부장 조지 오스본(George Osborne)이 중국의 경제력에 미혹되어 인권과 자유 등의 보편 가치를 저버리고 중국의 '경제적 포로'가 되려 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또 미국과의 관계 설정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계속 나오고 있다.

중국의 굴기를 견제하려는 미국과 영국의 특수 관계를 고려할 때 영국은 중국에게 있어 너무도 매력적인 파트너다. 향후 EU 외교에 있어 프랑스, 독일 등과의 관계 설정에도 새로운 전략 공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시진핑의 영국 '단독 방문'은 하나의 신호탄이다. 바야흐로 중국식 유럽 공략이 시작된 것이다. 유럽에서의 주도권을 둘러싼 미중 간의 각축이 서서히 꿈틀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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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중국학과 교수이며,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및 중국 문제 시사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중화민국 국립정치대 동아연구소에서 현대 중국정치경제학을 전공해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에 관한 100여 편의 연구 논문과 <한 권으로 이해하는 중국>, <중국의 정체성>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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