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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 유일한 강제 이산의 땅,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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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 유일한 강제 이산의 땅, 한반도 [한반도 브리핑]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결국 남북관계에 달렸다
금강산에 슬픔이 흘러넘쳤다. 눈물의 색깔은 다양하다. 죽기 전에 보는구나 감격해서 울고,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노모가 안타까워 울고, 얼굴에 드리운 세월이 야속해서 운다. 65년 동안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가슴속에서 꺼내 보던 소년과 소녀는 어디 갔는가? 한시도 잊은 적이 없는 새색시 또한 어디로 갔는가? 당신도 늙고 나는 더 늙었구나.

가슴속의 말이 슬픈 눈물이 되어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100 가지의 사연에 100 가지의 슬픔이 담겼다. 짧은 2박 3일이 지나고 이제 헤어져야 한다. 차창을 사이에 두고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별이 이루어진다. "만나서 반가웠어요. 저승에서 다시 만나요"

만남은 또 다른 이별

이제 봤으니 여한이 없다고 말하지만 속 마음이 어디 그런가? 보름달이 뜨면 서로 달을 보면서 안부를 묻자고 했지만 그런다고 허전함이 달래지겠는가?

▲ 제20차 이산가족 상봉 마지막 날, 버스를 타고 다니는 남한 가족들을 향해 인사하는 북한 가족들 ⓒ프레시안(이재호)

"아버지 130살까지 살아 계세요. 그때까지야 통일이 되겠지요" 그렇게 말을 하지만 지나간 세월뿐만 아니라 지나갈 세월도 야속하기만 하다. 지척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더 이상 만날 수 없고 편지를 써도 부칠 수 없고 전화통화도 어려운 현실이 말이 되는가?

며칠이 지나면 만나기 전보다 훨씬 가슴이 아파 올 것이다. 다른 사람이 "그래도 당신들은 만나기라도 했으니" 하지만, 만남 이후의 고통도 만만치 많다. 조금 지나면 차라리 만나지 말 것을 하며 후회한다. 한번 보면 또 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데 그렇게 할 수 없는 현실이 훨씬 참기 어려운 고통이다.

이산, 가족의 흩어짐은 우리만 겪는 고통은 아니다. 다만 농경민족이라 이산의 슬픔이 더하다고 한다. 헤어짐은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전쟁과 분단이 남긴 상처다. 이렇게 오랜 세월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비극은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동서독만 하더라도 분단의 과정이 다르고 이산가족의 규모도 우리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적다. 동서독은 이미 1960년대부터 이산가족의 방문이 이루어졌고, 서신과 전화 그리고 나중에는 영구적인 이주도 허용되었다.

분단의 땅 카슈미르는 서로의 이산가족을 실은 평화의 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이산가족을 대상으로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와 인도령 카슈미르 사이의 교역을 허용하기도 했다. 분단국가 키프로스는 통일문제에 대한 이견이 크지만, 자유왕래가 이루어진 지 10년이 넘었다. 누구든지 신분증을 보여주고 경계를 넘나든다. 중국과 대만의 양안 관계에서 친척방문이 허용된 것은 벌써 25년이 넘었다. 한반도는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은 아니지만 유일한 강제 이산의 땅이다.

인도주의를 넘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상투적인 대답이지만 남북관계가 포괄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은 인도주의고, 정치군사 상황과 분리해서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물론 인도주의를 앞세워 만남을 시작할 수 있다. 1971년 한국전쟁 이후 첫 번째 남북 만남이 바로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이었다.

그러나 인도적 현안의 해결은 관계의 성격을 반영한다. 1985년의 일회적인 고향방문단 교류를 제외하고 상봉이 정례화한 것은 바로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다. 이명박 정부 이후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이산가족 상봉도 중단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다. 관계가 좋을 때 자주 만났고 관계가 악화되면 만나지 못했다.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사실이다.

이산가족 문제가 갖는 특수성은 시간이다. 적십자사에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한 13만여 명 중에서 지금까지 겨우 2200여 명 만났다. 벌써 6만여 명이 이승에서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살아있는 6만 7000여 명 중 80대가 절반을 넘는다. 어렵게 상봉자에 당첨되었지만 상봉 일을 며칠 앞두고 돌아가신 안타까운 사연도 적지 않다. 생존자들은 점점 더 빨리 줄어들 것이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고령의 이산가족을 더 많이 더 자주 만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남북한의 신뢰를 쌓아야 한다. 원론적인 말일지 몰라도 그렇게 하지 않고 다른 해법은 없다.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의지는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와 비례한다. 남북관계 개선 의지가 없으면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의지도 없는 것이다.

또한 상봉자들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서신 교환이라도 하게 하자.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손자 손녀의 사진을 늙은 부모에게 보내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상봉을 했으니 어디 사는지를 알 것 아닌가? 서신 교환을 하는데 기술적인 문제는 없다. 남북 당국의 신뢰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한번 만난 사람들은 또 만나야 한다. 지금 금강산에는 완공되자마자 폐가가 된 이산가족면회소가 있다. 먼지를 털고 깨어진 창문을 다시 달고 가구를 들여놓으면 한번 만난 이산가족들이 언제든지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있는 상시적인 면회소가 된다. 원래 그렇게 하려고 예산을 들여 만든 것이다.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새로운 이산가족도 만나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유형의 이산가족들도 존재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바로 2만 8000명의 탈북자다. 정치적인 이유든 혹은 경제적 이유든 아니면 다른 이유든 떠나온 사연은 다양하지만 그들 역시 이산가족이다. 그들 역시 고향 땅에 헤어진 부모가 있고 형제가 있고 자식이 있다. 헤어진 가족은 다시 만나야 한다. 핏줄은 정치보다 강하다. 남북관계가 달라지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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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철
김연철 인제대학교 통일학부 교수는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에서 활동했으며 2004년 7월부터 2006년 1월까지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역임했습니다. 저서로 <냉전의 추억>, <북한경제개혁연구>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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