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 항해권을 둘러싼 미중 간 군사 갈등 심화가 북한과 미국 간 관계 개선을 가져올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습니다. 피터 리라는 외교 전문가가 지난 27일 <아시아타임스>에 기고한 "북한 방정식을 재고함(Recalculating the North Korea equation)"이라는 글에서 이런 전망을 내놓았는데요. 그는 북한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동아시아 최후의 미개발 경제'라는 점에 있다면서, 미국이 중국에 앞서 이 경제적 전리품을 얻기 위해 북한과 화해를 시도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이제까지 미국은 '북핵 위협'을 이유로 미군을 동아시아에 주둔시켜 해왔습니다. 말하자면 북한은 미국의 대중국 군사포위망을 정당화 시켜주는 명분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중국이 최근 영국을 비롯해 독일, 프랑스 등 미국의 주요 유럽 동맹국들과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데 대한 대응책으로 북한을 미국 경제권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를 할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과연 미국이 북핵 보유를 용인한 채 북미 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을까요?
그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입니다. 하지만 급격한 세력 교체기에 접어든 지금, 각국의 국익 증진을 위한 움직임은 전혀 예상 밖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1970년대 초 미국이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차이나 카드'를 꺼내 들었듯이 중국 견제를 위한 '북한 카드'를 사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복잡하게 얽혀 돌아가는 동아시아 정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라는 점에서 그의 분석을 소개합니다.
미군 함정, 남중국해 중국 영해 진입
지난 27일 오전 미군 구축함 래슨호가 중국이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남중국해 인공섬의 12해리(22km) 안에 진입해 몇 시간 동안 항해했습니다. 미국은 (분쟁 해역 내 중국의 인공섬 건설에 대한) 강력한 항의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래슨호의 진입을 사전에 중국에 통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경거망동 하지 말고 공연히 평지풍파를 일으키지 말기 바란다"며 강력 비난했습니다. 양국의 해군작전본부장은 29일 이번 사태에 관한 화상회의를 가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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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이번 군사 도발은 최근 본격화되고 있는 중국의 대유럽 경제협력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합니다. 중국은 지난 3월 자국이 주도한 아시아인프라투자개발은행(AIIB)에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을 대거 참여시킨 데 이어 유럽 국가들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최근 런던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영국과 400억 파운드(약 70조 원)에 이르는 투자무역협정을 체결했습니다. 또한 29~30일 메르켈 독일 총리, 11월 2~3일에는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 예정돼 있습니다. 이들은 무려 3조6500억 달러의 외환보유고를 자랑하는 중국의 투자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막강한 경제력에 유럽 국가들이 끌려들어가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미군 함정의 남중국해 진입에는 미중 간 대결구도를 강화함으로써 동맹국의 이탈을 막으려는 속내가 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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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피터 리는 이번 미중 군사 갈등을 계기로 미국이 '북핵 위협론'이라는 낡은 명분을 던져버리고 북한을 자국 영향권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합니다. 오바마 정부 초기 중국 영향권에 있었던 버마를 끌어들인 데 이어 북한에 대해서도 같은 전략을 구사할 것이란 얘깁니다. 그는 미북 화해는 미국 전략가들의 오랜 구상이었으며 북한의 김정은 역시 북미 관계 정상화를 갈망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북한은 단 한 번도 중국의 위성 국가이었던 적이 없으며 단지 미국과 일본, 한국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을 이용해 왔지만, 궁극적으로는 북미 관계 정상화를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장성택 처형은 '대미 관계 개선' 메시지
중국통이었던 장성택을 처형한 것도 미국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밝히려는 김정은의 메시지였다는 게 피터 리의 해석입니다. 버마는 미-버마 관계 정상화에 앞서 중국이 지원하는 댐 건설사업을 취소하면서 대미 관계 개선 의지를 밝혔는데, 장성택 처형은 이 전략을 본뜬 것이라는 얘깁니다. 물론 장성택 처형은 북미 관계에 아무런 변화를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피터 리에 따르면, 중국은 김정은의 이러한 속내를 잘 알고 있으며, 북한이 미국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으로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할 때마다 내심 박수를 치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이 군사 도발을 할 때마다 중국은 대북 견제 역할을 도맡고 북한을 6자회담의 틀 안에 가두어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북한이 6자회담의 틀을 벗어나 다른 국가들과의 양자 관계를 통해 독자적으로 국제적 고립망을 벗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합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은 북한이 북미 관계 정상화를 고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김정은이 북핵문제에 대한 과감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쉽사리 핵협상에 나설 생각은 없습니다. 북한이 극적인 조치를 취할 때까지 북핵 문제 관리는 중국에 떠넘긴다는 게 미국의 전략입니다.
북핵의 최대 전략 목표는 대미국 아닌 대중국 억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미국의 북한 정권 교체(regime change) 시도에 대한 억제 수단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북핵 개발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중국에 대한 억지이며, 대부분의 언론은 이같은 점을 주목하지 않고 있다고는 그는 지적합니다.
중국은 북한의 경제, 전략적 가치에 커다란 이해관계를 갖고 있으며, 북한의 권력 승계 문제 등 유사시에 군사적 개입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는 한, 중국의 무력 개입도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북한은 동아시아 최후의 경제 노다지
피터 리에 따르면 북한이 주변국들에 대해 갖는 진정한 중요성은 핵무기 보유국이라는 점이 아니라 동아시아에 마지막으로 남겨진 미개발 경제 지역이라는 점입니다. 값싸고 유능한 노동력과 풍부한 지하자원, 그리고 러시아와 일본 및 서방 국가 간의 연결통로인 북한은 동아시아의 경제 개발에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얘깁니다.
20세기 전반 일본이 한반도를 거쳐 만주와 몽골 등에 거대한 제국경제권을 형성하는 데도 한반도는 핵심적 지역이었습니다. 북한이 동아시아 경제권에 통합될 경우 한국은 물론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의 투자가 쏟아져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죠. 바로 이러한 가능성이 러시아의 지원을 잃고, 중국이 한국에 경도되며,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끝없는 압박을 받으면서도 북한 엘리트들을 한데 뭉치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라는 겁니다. 북미 관계 정상화로 북한이 동아시아 경제권에 편입될 수 있다면 경제적 대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변 국가들도 북한의 동아시아 경제권 편입에 따른 경제적 이익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의 동아시아 경제권 편입을 누가 주도할 것인가가 중대한 문제가 됩니다. 피터 리에 따르면 중국은 이 문제를 제로섬의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중국의 주도로 그 과실을 차지하든가 아니면 북한이 미일 영향권 안에 들어가는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양자택일적 관계라는 겁니다. 피터 리에 따르면 현재 한국은 미국의 소망과는 반대로 중국에 기울어 있고, 중국과의 협조 하에 북한 정책을 조율하려 합니다. 한편 일본은 한국을 경쟁 상대로 여기고 있으며, 특히 남북한의 통일로 통일 한반도의 국력이 일본을 능가하게 되는 사태를 극력 경계하고 있습니다. 일본 역시 북한 문제를 한국과의 제로섬 게임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은 한반도 통일을 경계한다
지난 20일 한일 국방장관 회담에서 나카다니 겐 일본 방위성 장관이 한국의 영토는 남한에 국한되며 북한 유사시 일본군을 북한에 진입시키겠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 것은 바로 이러한 사태를 막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당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유사시 일본군의 북한 진입은 한국 정부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데 반해 일본은 "이 문제는 서울과 워싱턴, 도쿄가 협력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한 것은 이러한 일본의 속내를 드러낸 것입니다.
한마디로 한반도 통일의 가능성이 보일 경우 일본군이 일방적으로 북한에 진입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일본을 위협할 수 있는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무기를 회수한다는 명분으로 말입니다.
피터 리는 일본의 이러한 계획을 미국이나 한국이 지지할 가능성은 적으며, 결국 중국까지 포함하여 북한의 운명을 결정할 공동의 계획이 세워질 것으로 내다봅니다. 그러나 북한을 미국 영향권에 포함시키려는 미국의 구상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이 극히 적다는 점, 다른 하나는 미일 동맹 강화가 한반도 문제의 핵심 당사자인 한국을 중국 품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미국의 아시아 회귀와 미일 동맹 강화가 빚어낸 결과입니다.
'핵보유 북한'과 미국이 관계 정상화 할 수 있을까
과연 미국은 북핵 보유에도 불구하고 미북 관계를 정상화 할 수 있을까요? 피터 리는 미국이 인도의 경우처럼 핵무기 문제에 대해 창조적 모호성을 발휘해야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미국은 미-인도 관계 강화라는 지정학적 이익을 위해 인도의 핵무기 보유를 묵인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핵무기 철폐를 공언한 대가로 노벨상을 수상한 오바마가 이러한 전략을 수행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다음 정부에나 기대해볼 수 있다는 얘기죠.
언젠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프레시안> '정세 토크'에서 만일 미국이 북한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중국과의 지정학적 대결에서 중대한 우위를 점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중국 국경 부근까지 친미 세력이 들어서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북한의 핵무기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될 것입니다.
지난 15일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 강연에서 한미 동맹이 한반도 남쪽에서 많은 기적을 이끌어낸 것처럼 "이제 그 기적의 역사를 한반도 전역으로 확대해 나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습니다. 과연 한국과 미국의 정책당국자 간에 모종의 합의가 있었던 것일까요? 앞으로의 추이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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