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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에 질려 허겁지겁 키보드를 두드리는 이 남자…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③] 서평가의 불안
불안. 우리 시대를 딱 한 마디로 규정하는 단어입니다.

10대는 대학에 못 갈까 봐, 혹은 '왕따'가 될까 봐 불안합니다. 20대는 취직을 못 할까 봐 불안합니다. 30대는 전세가 오를까 봐 혹은 월세로 전환될까 봐 불안합니다. 40대는 언제 직장에서 쫓겨날지 몰라서 혹은 자신의 삶의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릴까 봐 불안합니다. 50대는 눈앞으로 다가온 은퇴 후의 수십 년이 불안합니다. 60대 이상은 그냥 모든 게 불안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불안과 함께 살아갑니다. 하지만 정작 그 불안을 정면으로 직시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남다르게 불안을 드러내는 사람은 '불안증'을 비롯한 별의별 병명의 정신 질환으로 판정되어 '비정상'으로 낙인이 찍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는 불안과 함께 살아가면서도 내색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죠.

스콧 스토셀은 달랐습니다.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홍한별 옮김, 반비 펴냄)는 평생 불안증과 함께 살아온 저자가 자신의 삶을 수시로 옥죄는 불안의 정체를 찾아 헤맨 여정의 기록입니다. 불안증이 도져서 엉망이 된 저자의 결혼식에서 시작된 그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결국 내 옆에 똬리를 틀고 있는 불안을 직시하게 됩니다.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는 불안을 없애는 방법을 말하는 책이 아닙니다. 우리는 결국 불안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죠. 하지만 그 불안이 야기하는 수많은 고통을 덜어낼 수는 있습니다. 따로 또 같이. 이 책은 '불안'을 다루지만 결국은 '희망'을 얘기합니다. <프레시안>이 10월에 함께 읽을 책으로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를 고른 것도 이 때문입니다.

<프레시안>은 반비 출판사와 함께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를 먼저 읽은 독후감을 소개합니다. 세 번째 독후감의 주인공은 서평가 금정연 씨입니다. 그는 이 책을 읽으며 평생 불안과 함께 살아간 저자에게 깊이 공감합니다. 왜냐하면, 그 역시 이 책을 불안과 함께 읽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그 사정은 이렇습니다.

파일럿의 가장 큰 불안은 비행기가 추락하면 어떡하나 하는 것이다. 알코올을 많이 하는 사람의 가장 큰 불안은 알코올 중독자가 되면 어떡하나 하는 것이다. 그러나 파일럿은 실제로 비행기를 추락시킴으로써, 알코올을 많이 하는 사람은 실제로 알코올 중독자가 됨으로써 그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고흐가 왜 귀를 잘랐는지 아는가>(무라카미 류 지음, 권남희 옮김, 창공사 펴냄), 260쪽)

서평가도 마찬가지다. 그의 가장 큰 불안은 원고 마감 시한을 지키지 못하는 것. 때로는 불안에 시달리느라 마감 시간이 다 되도록 한 글자도 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실은 늘 그렇다. 이래서야 직업인이라고 할 수 없다. 어른도 아니다. 창백해진 얼굴로 자기혐오에 시달리던 그는 하릴없이 국어사전에 '마감 시한'을 검색해본다. 그리고 사색이 된다.


언제부터 국어사전에 인공지능이 탑재된 거지? 설마 독심술? 하지만 한가한 궁금증에 몰두할 시간은 없다. "자기의 생각이나 행위에 대해 스스로 비판"할 시간도 없기는 마찬가지다. 정말이지 시간은 언제나 없다. 그렇지만 모든 일에는 적당한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를 짓누르는 마감 공포증에서 벗어나 원고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마감 시간을 어겨야만 하는 것이다.

땡, 데드라인을 넘기자마자 제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으로 돌아온 그는 겁에 질려 허겁지겁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바로 이렇게.

"온갖 진부하고 상투적인 표현들이('놓칠 수 없는 책'이니 '페이지마다 되새길 만한 것이 있다'느니 '무엇 무엇을 다룬 무슨 장이 특히 중요하다'느니) 자석을 따라 움직이는 쇳가루처럼 척척 제자리로 뛰어든다." ('어느 서평자의 고백', <나는 왜 쓰는가>(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한겨레출판 펴냄), 285쪽)

▲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스콧 스토셀 지음, 홍한별 옮김, 반비 펴냄). ⓒ반비
크거나 작은 불안과 함께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스콧 스토셀의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는 '놓칠 수 없는 책'이다. 30년 넘게 각종 불안 장애에 시달려온 자신의 이력과 불안을 둘러싼 인류의 문화사 그리고 불안을 바라보는 현대 정신의학의 다양한(때론 상충되는) 관점에 이르기까지 불안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망라하는 그의 책에는 "페이지마다 되새길 만한 것이 있다."

저자는 솔직하고 담백한 태도로 일관하며 유머를 잃지 않지만 때론 그 사실이 독서를 방해하기도 한다. 불안을 대하는 그와 나의 태도를 서로 비교하게 되는 것이다. 이어지는 것은 불안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과 자의식, 슬픔과 수치 그리고 불안이다. 어쨌거나 불안을 다룬 책이다. 평균 이상의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면 책을 읽는 동안 저자의 불안에 자기 자신의 불안이 겹치는 이중의 불안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마찬가지다(나는 방금 한 문장에 불안이라는 단어를 네 번이나 썼고 그것이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분명 쉽지 않은 경험이다. 하지만 그럴 만한 가치는 있다. 해외 평단이 지적하는 것처럼 이 책은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일종의 자가 치유 매뉴얼이고, 따라서 그와 함께 통과해야만 하는 기나긴 불안의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구원과 회복력을 다룬 마지막 장이 특히 중요하다.'

그렇지만 나는 이 자리에서 이 책의 내용을 시시콜콜 요약하거나 설명하지는 않을 것이다. 서평가를 옴짝달싹 못하게 괴롭히는 두 번째 불안. 그것은 자신이 다루는 책의 내용을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것이다. 그것이 서평가의 의무(라고들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 초조해진다. 하지만 이래서야 글을 쓸 수가 없다. 별 수 없지. 나는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그리고 이미 늦어버린 마감을 지키기 위해) 서평가의 의무를 저버리는 편을 택하기로 한다.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 편을.

초조해하는 성격. 대중 연설을 두려워함. 일을 미루는 성향. 강박적인 손 씻기. 배 속 상태에 지나치게 몰두함. 끝없이 스스로를 비판함. 좋은 직업이 있는데도 자존감이 부족함. 속은 고통으로 요동치는데도 겉으로는 침착하고 밝은 척 처신하는 능력. 더 활달하고 침착한 아내에게 정서적 실질적으로 의존함. (370쪽)

불안과 관련된 자료들을 모으던 스토셀은 외증조부에 대한 기록을 발견한다. 체스터 핸퍼드는 학자로서 오랫동안 하버드 대학교에서 학생처장을 맡았고 지방 자치 정부에 관한 중요한 학술 연구를 남겼으며 존 F. 케네디와 수십 년 동안 친분을 나누기도 했다. 한 마디로 훌륭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평생 불안과 우울에 시달렸으며 전기 충격 치료를 수차례 받았고 생애 마지막 기간 동안에는 자기 침실에서 몸을 웅크리며 울면서 지냈던 불안장애 환자이기도 했다. 스토셀은 모종의 불편함을 느끼며 외증조부에 대한 기록을 읽어나간다.

"그는 지난 가을에 엄청난 양의 책을 읽었다. 하지만 자료들을 정리해 강의로 구성할 수 없을까 봐 걱정하기 시작했다." "다른 교수들이 자기보다 더 낫고 자기는 괜찮은 강의를 할 만큼 대단한 학자가 못된다고 생각했다." "짜임새 있게 창의적으로 일하지 못해서 매우 괴로워했다. 불안에 압도당했다. 무척 우울해했고 가끔 울기도 했다." "스스로 느끼는 무능함과 열등감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1947년 체스터는 자기가 사기꾼이며 학생들에게 흥미롭고 설득력 있는 강의를 들려줄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는 자기에게 지속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불안하고 초조해했다." "체스터는 만성피로를 느꼈다." "그는 자의식이 지나치게 강하고 자기비판이 심하며 매우 열심히 일하는데도 일이 밀리는 타입이다." "극심한 불안, 그리고 불안과 우울에 대한 수치감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등등.

스토셀이 그런 것처럼 나 또한 체스터 핸퍼드의 기록에서 나의 어두운 면을 본다. 당신 또한 불안에 시달리는 운 나쁜 자유기고가라면 같은 것을 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하버드 대학교의 정치학과 교수가 아니다. 우리가 모종의 불편함을 느낀다면 아마 그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스토셀이 느끼는 불편함에는 절박한 이유가 있다. 그는 생각한다. 만약 불안이 유전된다면 나도 결국에는 방에 틀어박혀 끝없이 울고 덜덜 떠는 꼴이 되지 않을까? 내 아이들 앞에도 같은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면 어떡하지? 인간의 운명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거라면 나라는 존재에게는, 인간 개개인에게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불안은 인간 경험의 복잡다단한 특징이며 어느 하나의 유전자로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사실은 그도 안다. 어쨌거나 불안을 다룬 수많은 책을 읽은 것이다. 하지만 불안은 앎으로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W 박사가 충고한다. 중요한 건 회복 탄력성과 수용력이라고. 그것을 적절하게 사용하며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라고.

"당신한테는 장애가 있지요. 불안장애요." W 박사가 말한다. "그래도 버텨나가고 있고, 내 생각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잘 살고 있다고 봐요. 나는 아직도 당신이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전에라도, 당신이 그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었는지를 인식할 필요가 있어요. 자신을 좀 더 높게 평가해야 해요." (434쪽)

과연. 스토셀은 어쩌면 이 책(<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을 마무리하고 출판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수치와 공포를 세상에 인정하는 것이 자신에게 힘을 주고 불안을 덜어줄지도 모르겠다고 쓰며 책을 마무리한다. 나는 그가 그랬으면 좋겠다.

어느덧 이 글 또한 마무리 할 시간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서평가를 괴롭히는 세 번째 불안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시간에 쫓겨 재미도 의미도 없는 글을 쓰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굳이 설명을 늘어놓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보시다시피 나는 그런 글을 썼고, 이제는 지긋지긋한 불안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시간이다. 그것이 내가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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