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는 대부분 초등학교가 4년제이다. 이곳을 졸업하면 학생들은 상급학교인 하우프트슐레(Hauptschule), 레알슐레(Realschule), 김나지움(Gymnasium) 등으로 나누어 진학하게 된다. 이 학교들은 우리의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합쳐놓은 곳으로, 하우프트슐레와 레알슐레는 우리의 실업학교에 해당하고 김나지움은 대학진학을 준비하는 인문학교인데, 그 비중은 각각 절반 정도이다.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칠 때쯤 교사들은 학생들이 어느 학교로 가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학부모들과 상담을 한다. 부모들은 대체로 교사의 의견에 따라 자기 아이의 진학을 결정한다. 예를 들어, 교사가 "당신의 아이는 건강하나 공부를 잘하는 편이 아니니 하우프트슐레로 가서 일찌감치 직업훈련을 받는 것이 좋겠다"라고 조언하면, 부모는 이를 수긍하고 그대로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보면서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먼저 독일의 부모들이 상급학교 진학문제에서 순순히 담임교사의 의견을 따른다고 하는데, 자기 아이의 장래를 결정지을 수도 있는 중차대한 문제에서 그렇게 한다는 것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만약 위와 같은 대화가 한국에서 있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아마도 그 교사는 무사하지 못하리라. 그 경우 한국 부모의 반응이 어떨지 쉽게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의문은 초등학교 4학년을 대상으로 진학하는 학교를 달리함으로써 그 아이의 미래를 그렇게 조기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다. 불과 10살 남짓한 나이에 진로를 결정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그런데 독일에서 이러한 제도가 시행되어 온 것이 벌써 수십 년째이니 반드시 잘못됐다고만 보기는 곤란하다. 이 두 가지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봄으로써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생각해 보겠다.
논의전개의 편의상 먼저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먼저 찾아보겠다. 독일에서는 초등학교 4년 과정이면 학생들의 학습능력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독일 철학자협회가 이 시스템을 옹호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학습능력이 뛰어난 학생들과 그렇지 못한 학생들 사이에 교육과정을 달리하는 것이 양측 모두에 더 유리하고, 교육의 공정성에 더 맞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나 자신의 개인적인 성향과 학습능력에 적합한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무시한 채 오랜 기간 함께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오히려 그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들이 뒤늦게 공부의 필요성을 깨달을 수도 있고, 실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그래서 독일에서도 이같은 조기 결정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학교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과 요구들이 계속해서 있어 왔다. 그에 따라 새로운 제도들이 만들어져 보강되고 있지만, 어쨌든 기존의 제도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보강된 시스템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논의하겠다.
상급학교 진학관련 조기 결정 문제는 이렇게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실생활에서도 어렵지 않게 경험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잘 아는 친구가 한국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방과 후 공부방을 하면서 느낀 점을 이야기해준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위의 논리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그는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는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데에는 굳이 4년까지도 필요치 않다는 것이었다. 한 달만 같이 공부해보면, 아이가 공부에 관심이 있는지 또는 소질이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바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우리의 중·고등학교 시절을 되돌아보면서 조금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독일식 진로방식이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독일의 부모들은 교사의 조언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부모들은 그 사실을 외면하고 싶고, 어떻게 해서든지 바꾸고 싶은 것이다. 상급학교 진학의 조기결정 문제는 결국 대학진학의 문제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차이가 존재하는 것일까?
이 차이가 나타나는 원인을 알게 되면, 첫 번째 의문에 대한 궁금증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에서는 부모가 자기 아이를 무작정 대학에 보내려고 하지 않고, 실업학교를 마치고 직업훈련을 받아서 적절한 직업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의 경우에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과외나 학원 등의 사교육을 통해서 반드시 대학에 보내려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양국의 대학졸업자 비율만 보아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독일은 그 비율이 30% 미만이지만, 우리는 70~80%에 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부모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대학 졸업장이 우리만큼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졸업장 없이도 직업을 얻는데 문제가 없고, 대체로 자신의 직업을 갖게 되면 그 사회에서 살아가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또 학벌이 아니라 자기가 가진 숙련기술이나 능력에 의해 임금이 결정되고, 자기가 속한 회사가 아니라 자기가 하는 일에 따라 급여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이 지켜진다는 말이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대학 졸업장이 없으면 사람 구실을 하기 힘들고, 비교적 직업의 귀천이 뚜렷한 편이며, 또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소속이 어디냐에 따라 급여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소속을 결정하는데 일반적으로 좋은 학벌이 결정적 요소가 된다. 쉽게 실업학교에 진학하라고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와 같은 요인들 외에 우리 사회가 독일과 달리 과도한 교육경쟁을 유발시키는 가장 큰 원인은 교육에서의 승자와 패자 사이의 과실 차이가 지나치게 크다는 점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급여차이는 적으면 2~3배에서 많으면 10배까지 이르는 것이 그 증거이다.
독일에서는 공부를 못해서 좋은 직업을 갖지 못하더라도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 별로 부족함이 없다. 그만큼 소득분배가 적절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대학 졸업장에 목을 매달 이유가 없다. 그 밖에도 독일에서 극심한 입시경쟁이 일어나지 않는 또 하나의 중요한 장치는 안정된 사회보장제도이다. 우리보다 높은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통해 사회구성원들 사이의 과도한 격차를 해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리의 경우에는 비정규직의 증가, 소득의 양극화 심화 등에 따라 구성원 간 격차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보다 더 극단적인 약육강식의 사회로 가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가운데 우리의 교육제도가 놓여 있다. 그런데 우리는 교육을 통해 이러한 상황을 알리고 그 문제점들을 해결하려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 아이가 그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승자가 될 것인가에만 골몰하고 있다.
매번 새로운 교육부 장관이 들어설 때마다 교육개혁을 말하지만, 수능제도 변경과 같이 대학입시제도를 개선하는 식의 개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예를 들어, 서울대가 100미터를 11초 이내에 달리는 학생을 뽑겠다고 하면, 대다수 부모들은 아이가 어렸을때부터 달리기 훈련을 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문제는 공정한 입시제도를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소정의 교육을 마친 이후 직업생활에서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하도록 급여 수준을 보장하는 것, 즉 지나치게 벌어지고 있는 직업 간 급여나 보상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부모들이 아이들을 굳이 대학에 보내기 위해 과도한 사교육을 받게 하면서 무한경쟁으로 내몰 필요가 없어지게 될 것이며, 그러면 불필요한 경쟁과 그에 따라 자살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학생들의 고통을 줄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싼 사교육, 인성 문제 등 산적한 우리의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사회경제적 시스템을 개혁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그 본질이 교육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받은 후에 이어지는 경제적, 사회적 격차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이러한 격차를 줄이는 것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교육은 정상화되기 어려울 것이다. 현재와 같은 무한경쟁의 정글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인성 교육이 가능하며, 정직해야 한다든가 자신의 개성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교육할 수 있겠는가?
다음 편부터는 유치원, 초등학교, 실업학교, 인문학교, 대학 등으로 나누어 독일의 교육에 대해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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