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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의 슬픈 코미디, 혁신은 늙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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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야당의 슬픈 코미디, 혁신은 늙어간다 [기자의 눈] 혁신안 뒤집자는 게 혁신인가?
장면 1. '민주당의 집권을 위한 모임(민집모)', '정치혁신을 위한 2020 모임(2020모임)' 등 새정치민주연합 비주류 의원 10여 명이 15일 문재인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다음 날 한다고 예고했다. 지난 13일 여론조사 기관 한국갤럽의 정례 조사에서 문 대표의 호남 지지율이 5%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보다 낮게 나온 것을 문제 삼을 것으로 알려졌다. 김동철, 유성엽, 최원식, 문병호, 황주홍 의원 등이 주축이 됐다. 주로 문 대표 사퇴와 조기 선대위 구성을 요구하는 이들이다.

예고한 16일이 됐는데, 갑자기 기자회견이 취소됐다. 문 대표에게 시간을 더 주겠다는 것이 이유라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이날 리얼미터에서 문 대표의 호남 지지율이 21%로 나왔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 여론조사 결과가 기자회견 취소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기자회견을 예고한 것부터 코미디였다. 언론에 슬쩍 흘리는 방식을 사용했다. 비겁한 짓이다.

장면 2. 새정치민주연합 전·현직 의원들로 이뤄진 '통합행동'이 16일 성명을 냈다. 박영선, 조정식, 민병두, 정성호 의원, 김부겸, 송영길, 정장선, 김영춘 전 의원 등 8명의 명의였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문재인·안철수(문·안) 협력을 기초로 '세대혁신비상기구(비상기구)'를 구성해 야권통합을 이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성명서 내용이 이상하다. "세대혁신 비상 기구는 당내 통합을 기초로 전당대회 방식 등을 포함한 범야권 통합을 이뤄내"야 한다고 했다. 지도부를 뽑는 조기 전당대회를 열어야 한다는 것인지, 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알고 보니 통합행동 8명 사이에서조차 조기 전당대회와 관련해 의견이 합의되지 않았다고 한다. '통합행동의 통합을 위한 행동'이 먼저 필요할 것 같다. 매우 불성실하고 무성의한 성명서다.

지난 수개월에 거쳐 이런 식의 모임들은 급조됐다가 흐지부지됐고, 그 와중에 수많은 성명서는 공해처럼 당내를 떠돌았다. 그런데 정작 유권자들은 이들이 누구인지, 무엇을 목적으로 모였는지 알 수가 없다.

이른바 '비노'의 대표 주자 두 명은 어떤가. 박지원 의원은 연일 문 대표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주된 이유로 문 대표의 인기가 낮다는 점을 든다. 친노 세력으로는 확장성이 약해 결과적으로 투표장에 야권 지지자와 중도층을 끌어올 수 없다는 것이다. 상황 인식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지만, 고장 난 라디오도 계속 틀어대면 지겨운 법이다. 이제 새정치연합 안에서는 '대표 사퇴론' 주장은 기삿거리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안철수 의원은 문 대표 체제 하에서 나온 혁신안을 '뒷북 비판'하면서, 오히려 혁신 이미지를 부각시킬 기회를 놓쳐버렸다. 사실상 실기한 것이다. 유권자는 뒤늦게 안 대표의 혁신안과 문 대표의 혁신안을 구분해야 하는 피로감을 떠안아야 했다.

ⓒ문재인 의원실

결국 혁신안 뒤집는 게 비주류의 목적

조기 전당대회, 조기 선대위, 비상기구, 헷갈린다. 좋게 말하면 백가쟁명인데, 이른바 '비주류'가 요구하는 것은 딱 하나다. 혁신안을 뒤집겠다는 것이다.

열 차례의 혁신안 중 이들이 관심 있어 하는 것은 마지막, 10차 혁신안이다. 공천 룰 문제다. 심사 결과 평가가 낮은 하위 20%의 현역 의원의 목을 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여성 공천을 늘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발탁하고 청년들을 위한 문을 더 열겠다는 방안 등이 담겨 있는 이 공천 혁신안은 전문가들도 인정하듯 잘 뽑힌 안이다. 전략공천 기준도 보다 명확하게 다듬었다. 논리적으로 썩 괜찮은 안이었기 때문에 비주류도 그 내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누구도 혁신안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표의 거취 문제가 대신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스스로 혁신안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묵히고 있다. 느린 혁신, 늙은 혁신은 대중들에게 충격을 줄 수 없다. 혁신은 피 튀기는 것인데, 피를 보기도 전에 이들은 번지르르한 말로 혁신 집행권을 차지하려 지저분한 성명서들을 남발한다.

그나마 통합행동은 성명서라도 냈지, 언론에 '문재인 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한다고 슬그머니 흘린 후 이를 철회하는 짓은 슬픈 코미디에 가깝다. 면면을 보면 주로 호남 현역 의원들이 많은데, 17일 <중앙일보> 여론조사에 따르면 새정치연합 지지자들의 80% 이상이 호남 물갈이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다. 이는 '반 혁신 세력'이 누구인지 조금 더 명확하게 보여준다.

혁신안 뒤집기가 목적이라는 혐의는 구체성을 띠고 있다. 국정교과서 파문과 예산안 정국으로 시끄러운 와중에 느닷없이 열린 '오픈프라이머리' 의원총회는 비주류가 원하는 게 뭔지 잘 보여준다. 오픈프라이머리는 혁신안을 사실상 백지화하겠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미 낡았다. 이미 새누리당을 한 차례 휩쓴 안이고, '정치 생명을 걸었다'는 김무성 대표의 패배가 확실시되고 있는 그런 안이다. 그런 안을 논의하고자 모인 의총은 초라하게 끝냈다. 일부 언론은 이를 '비노계의 반란'으로 이름 붙인 모양인데, 사실 정치부 기자들의 관심조차 못 끈 해프닝으로 끝나 버렸다. 지리멸렬이다. 결국 현역 의원은 자신들 밥그릇 싸움에 당력을 소진하고 있는 셈이다.

국민은 국회의원을 필요로 한다. 다만 그것이 꼭 당신일 필요는 없다.

문재인은 단 한 번이라도 제 살을 깎아 본 적이 있는가

야권이 지리멸렬한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과 관련해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인사는 물론 문재인 대표다. 문 대표의 리더십 부재가 야권을 비극으로 몰아넣고 있다. 정청래 의원 막말 파동 등 고비고비마다 문 대표는 자기희생의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비주류의 둔탁하고 지저분한 투쟁을 방기했다. 제 살을 깎아냄으로써 결연한 모습을 보여줘야 할 텐데, 그런 기미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유권자는 지쳐간다.

지금 야당에 필요한 것은 대여 투쟁도, 말의 성찬도 아니다. 친문이든 반문이든, 주류든 비주류든 자기희생이다. 희생 없는 야당에 관심을 둬 줄 유권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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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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