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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에 간다고? 거기 사회주의 국가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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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쿠바에 간다고? 거기 사회주의 국가 아냐?" [쿠바, 지구의 국경을 산책하다 ①]
왜 쿠바야? 치안은 괜찮아? 위험하지 않아? 거기 사회주의 국가 아니야?

쿠바에 가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당신들은 여러 질문을 받을 겁니다. 답변을 드리자면, 사회주의 국가 맞고요, 치안은 좋습니다. 뭔가 부족하지만, 없는 것은 없고요, 되는 것은 없지만, 안 되는 것도 없습니다.

쿠바, 지구의 주거침입자, 지구의 작고 예쁜 흉터같은 섬나라.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 한국 대사관이 없는 곳, 미지의 세계. 어떤 사람에겐 마지막 남은 블루오션이고, 최후의 골드러시에 대한 기대감이 있는 곳, 또 다른 사람에겐 자본주의 플랜B에 대한 영감을 떠올리거나, 달러와 석유 이후의 삶에 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곳.

혁명, 체 게바라, 피델 카스트로, 열대, 야자수, 카리브해, 살사, 룸바, 재즈, 발레,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럼, 모히토, 담배, 시가, 설탕, 해적, 신대륙, 노인과 바다, 헤밍웨이, 의사, 유기농업, 보트피플, 말레콘, 올드 아바나.

2008년에 이 곳에 온 후 7년 반 만입니다. 7년 반 만에 이 곳에 와 처음 놀란 것은 별로 변한 게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과 외교관계는 이제 막 정상화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물결이 쓸고 갔다거나, 개방, 혹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거나 하는 것은 레토릭일 뿐인 것 같고요, 1980년대 말 소련 붕괴와 1990년대 초 동구권 몰락의 모습을 상상한다면, 그것도 맞지 않습니다.

2014년 12월 19일 버락 오바마와 라울 카스트로가 국교 정상화를 선언했죠. 1959년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혁명 이후 위태롭게 유지돼 왔던 오랜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겠다는 겁니다.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7년 반 전만 해도 쿠바와 미국 간 관계가 이렇게 빨리 좋아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었습니다. 2006년 형 피델 카스트로부터 실권을 넘겨받은 라울 카스트로의 개혁 정책이 시작되고, 2008년 부시 정권이 오바마 정권으로 바뀌면서 부분적 제제 완화 조치 등이 신호를 주긴 했지만, 관계 개선의 속도는 꽤 빠른 것 같습니다. 물론 최근 변화의 가장 큰 요인은 꽉 막힌 쿠바 경제 문제, 그에 따른 대중의 불만을 풀어주기 위한 쿠바 정부의 어쩔 수 없는 선택들이었겠죠.

여하튼 7년 반 전에 보낸, 쿠바에서의 짧은 1주일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쿠바에 갈 수 있는 길이 조금쯤은 더 넓어진 셈인데,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방도가 없었습니다.

ⓒ프레시안(박세열)
ⓒ프레시안(박세열)

7년 반이 지났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 변화는 더딘 것 같았습니다. 여전히 외국인은 쿠바 안에서 장사하기 어렵고, 맥주 값은 여전히 1세우세였습니다. 음식 가격은 조금 오른 것 같았지만, (쿠바 사람 입장에선 두세배 올랐을 겁니다. 상대적 물가 체감도는 높을 것인데요, 그래도 아직 전국민 식량 배급 체계는, 많이 부족하더라도 견고합니다.) 달러와 유로가 쿠바인의 삶 속으로 파고든 계기가 됐던 관광 산업이 활황을 맞이하고 있는 것을 상기해보면, 쿠바 정부는 비교적 물가 관리를 잘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빈부 격차는 늘고 있지만, 관광산업 증진에 따른 어쩔 수 없는 부작용인 것 같습니다. 외국 자본은 쿠바의 담벼락을 넘을 수 없고, 민간 영역이 확대됐다고는 하지만 중앙 권력은 여전히, 매우 힘이 셉니다. 다만 라이프 스타일이 상당히 변한 것 같습니다. 즉 시스템의 변화보다는, 외래 문물의 급격한 유입, (어느나라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새로운 세대의 등장 탓이 크다고 보여집니다. 사회적으로 체제 교체가 아니라 세대 교체가 이뤄지고 있다고 할까요? 피델과 라울은 나이가 많습니다. 쿠바 국내외의 많은 사람들이 카스트로 형제 이후 체제를 말하고 있는데, 언젠가는 그것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혁명 이후 세대로 권력이 서서히 이양된다면, 젊은이들이 권력을 잡게 된다면 어떻게 변할까요. 쿠바가 어떤 변화를 겪게 될지 그 방향을 예측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확실히, 섣부른 판단은 금물입니다.

역시 변화는 더딘 것 같습니다. 풀어야 할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이죠. 분단 70년을 맞은 우리 상황을 조금만 떠올려보면, 56년간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짐작할 수 있겠죠. 지난 7월 20일 미국 대사관이 문을 다시 열었습니다. 당시 미 대사관(옛 미국 이익대표부) 앞 ‘반제국주의 광장’에는 피델의 생일을 알리는 깃발 수백개가 펄럭였다고 합니다. 미 대사관 앞 광장의 이름은 ‘반제국주의광장’입니다. 재밌죠? 이 광장에 솟아 있는 수많은 깃대들은 미국 이익대표부의 선전판을 가리는 용도로 도입됐다고 합니다. 그것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셈인데요, 일종의 대쿠바 심리전에 대항한 쿠바의 방어벽인 셈이죠. 미국은 여전히 혁명 전 자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있고, 쿠바는 미국의 금수조치로 인한 피해 보상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겉으론 해빙 무드지만, 물밑에서 벌어지는 자존심 대결은 팽팽합니다.

차근차근 쿠바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을 텐데요, 그에 앞서 쿠바 여행에 앞서 준비할 것들을 먼저 알려드리죠. 쿠바에 가는 방법은 있습니다. 그것도 꽤 쉽습니다. 먼저 우리 세계와 잠시 떨어져 있어도 괜찮은지, 스스로 한번 생각해보세요. 인터넷도, SNS도, TV도 포기할 수 있나요? 정말? 쿠바로 가는 입장권을 끊는다는 건 여러 가지를 포기할 수 있다는 각오를 다졌다는 걸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잠시 전혀 다른 세계를 여행하는 겁니다. 미국도, 유럽도, 아프리카도, 남미도 아닌 ‘쿠바’라는 외계의 섬을 걷게 됩니다. 이를테면 저녁에 친구를 만나기 위해 ‘7시 반에 미국 대사관 앞에서 만나’라고 약속을 해야 합니다. 인터넷을 정말 하고 싶다면 카드를 구입해 인터넷이 되는 호텔 로비로 들어가야 합니다. 식민지 풍의 오래된 유산 사이를 걷다가 마음에 드는 가게에 들어가 시원한 쿠바 맥주를 마셔도 좋겠지요. 햇볕 쨍한 창문에서 쿠바 거리를 보면서 얼음을 두어개 동동 띄운 맥주를 옆에 두고 글을 쓰는 기분도 꽤나 좋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셨다면 전화를 들고 쿠바 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곳에 문의하세요. 혹은 직접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시거나요. 쿠바에 가기 위해서는 특별한 비자(관광비자)가 필요합니다. 일종의 입장권인데, 들어갈 때 반쪽을 내고, 나올 때 다른 반쪽을 냅니다. 쿠바행 비행기표에는 이 입장권의 값이 포함돼 있습니다. 준비가 됐나요? 이제 당신은 새로운 세계로 진입합니다.

특파원 르포르타주가 신문 1면을 연이어 장식하던 때 쯤, 쿠바행 비행기를 알아봤습니다. 성수기만 피한다면, 조금은 저렴한 가격으로 항공권을 장만할 수 있어요. 저렴한 표를 장만했다면 배낭을 꾸릴 준비를 하세요. 가벼운 옷가지 몇 개면 됩니다. 글을 쓰신다면 노트북, 카메라 정도가 필요하겠죠. 시집 몇 권과 쿠바와 관련된 책 두어권을 챙깁니다. 친절한 사람들과 아름다운 거리를 만날 준비를 합니다. 이제 출발합니다. 조금만 참으면 됩니다. 서울에서 출발해서 도쿄, 토론토를 거쳐 쿠바로 들어갑니다. 비행시간은 17시간 10분 정도, 공항에서 갈아타는 시간을 합하면, 21시간 정도 걸리는군요. 감수합시다. 변비만 주의하시면 됩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면 서울에서 캐나다 직항을 타고, 쿠바로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프레시안(박세열)
ⓒ프레시안(박세열)

아바나 공항에 도착했어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흘러들어오는 담배 냄새. 쿠바에 온 것을 실감하는 시간입니다. 그렇습니다. 여기는 담배와 럼, 혁명의 나라 쿠바입니다. 여행사나 인터넷을 통하면 미리 숙소를 예약할 수 있어요. 보통 카사 파르티쿨라르를 예약합니다. 특별한 집이라는 말인데, 우리로 치면 민박이라 부를 수 있겠네요. 국가가 엄격히 통제하는 터라, 가격은 대개 정가제입니다. 몇 달러 차이가 나는 방들이 있겠지만, 그 정도 수준일 뿐이고, 최소한 바가지는 쓰지 않을 겁니다. 자, 당신은 이제 노곤한 몸을 눕히고, 잠을 청합니다. 고생했다. 이제 쿠바야.

카리브해에 배 모양으로 둥둥 떠 있는 쿠바호에 잠시 탑승해봅시다. 카스트로는 쿠바 인민들에게 실제로 ‘우리는 한 배를 탔다’는 비유를 종종 했다고 하죠. 그래서 카스트로의 수많은 별명 중 하나가 ‘사무장’입니다. 밤을 세우면서 얘기할 수 있습니다. 아바나가 어떤 곳인지. 그들의 정치와 제도, 사회적 관습과 문화, 음식과 술, 담배와 혁명, 음악과 춤, 예술과 삶, 그리고 세계와 인간에 대해 마음 맞는 친구들과 끊임없이 쿠바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제가 여러분에게 소개하는 것은 모두 익명의 친구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제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입니다. 저에게 이야기해 준 사람들을 익명으로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제 이야기가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들릴 수도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거짓말을 하거나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진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순이라 알고 있는 일들이 즐겁게 벌어지는 곳, 쿠바입니다.

마지막으로 쿠바 여행을 위한 팁 한 가지. 쿠바는 이중 화폐 시스템입니다. CUC와 CUP. CUC는 세우세, 쿡 등으로 불리는데요, 외국인용 태환 페소입니다. CUP는 세우페, 혹은 쿱으로 불리는데, 내국인용 페소입니다. 과거에는 두 화폐의 사용이 엄격히 분리 돼 있었는데, 지금은 둘 다 자유롭게 사용되는 것 같더군요. 1세우세에 24세우페 환율이 적용됩니다. 1세우세는 1달러인데, 10% 정도의 패널티(환전 수수료)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상 1세우세에 1.1달러가 되는 거죠. 이 때문에 유로나 캐나다 달러를 들고 들어가는 게 손해를 덜 보는 길입니다. 호텔, 고급 식당 등에서는 세우세가 주로 사용되고, 콜렉티보 택시를 타거나 저렴한 식당에서는 세우페도 받습니다. 관광업이 발달하면서 쿠바는 세우세를 도입했는데요, 이중 화폐 시스템은 쿠바의 빈부 격차를 벌이는 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관광업에 종사하며 세우세를 만지는 사람들은 일반 국민들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게 되겠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쿠바 정부는 골머리를 앓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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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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