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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조문', 박근혜-YS '악연'이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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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5분 조문', 박근혜-YS '악연'이 뭐길래? [기자의 눈] 한국 보수 정당의 희한한 아이러니
박근혜 대통령이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에 머문 시간은 약 5분이다. 23일 오후 2시 정각에 서울대 병원에 도착한 후 3층에 자리한 빈소를 찾은 시각이 오후 2시 1분. 박 대통령은 문상을 마치고 2시 6분에 나와 2시 7분에 병원을 떠났다. 청와대가 브리핑한 데 따르면 박 대통령은 "분향하고 영정 앞에 헌화를 한 후 잠시 묵념을 하고 차남 현철 씨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했고 "이어 가족실로 이동해 손명순 여사의 손을 잡고 애도의 뜻과 추모의 말씀을 전"했다. '5분 조문'에 방명록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박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의 거리는 딱 이 정도다. 무엇이 대통령을 이렇게 무심하게 행동하도록 만들었을까?

박 대통령처럼 과거에 얽매여 사는 이도 드물다. 박 대통령은 1998년 정치에 입문했다. 목적은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서였다. 본인이 본인 입으로 명확히 이야기한 사실이다. 과거 인터뷰를 통해 부친을 배신한 정치인들을 향해 독설을 쏟아붓기도 했고, 부친의 유신 철권 통치를 옹호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 부친의 대척점에 서 있던 게 김 전 대통령이다. 김 전 대통령은 박 대통령의 부친과의 관계에 있어 채권자다. 그것도 가장 강력한 채권자다. 김 전 대통령의 삶과 박 전 대통령의 삶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김 전 대통령은 박 대통령의 부친에 의해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기도 했고, 심지어 의원직 제명까지 당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김영삼 정부가 끝난 후 야당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김 전 대통령에게 빚이 없다고 느낄 것이다. 왜냐하면 박 대통령은 부친의 후광을 업고 대통령에 당선됐기 때문이다. 그런 박 대통령이 문민정부의 의미나 김 전 대통령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해봤을지는 의문이다.

아무리 빚이 없다고 하더라도 5분 조문은 너무 허망하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인식이나 역사적 평가를 떠나 한국 민주주의의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치고는 너무나 인색해서 그렇다.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에서 조문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김영삼과 박근혜, 물과 기름같은 삶

아마 생전의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이 죽을 힘을 다해 맞서 싸웠던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김 전 대통령은 누구보다 '역사 바로 세우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자신을, 국민을 탄압한 정권에게 정명(正名)을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필생의 과업이었다. 군사혁명을 5.16쿠데타로 교정했고, 1919년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재조명했다. 그런 김 전 대통령에게 박정희 복권 시도는 민주화를 정면으로 거스르려는 것처럼 보였을 수 있다.

퇴임 후인 1999년 박정희 재평가를 시도하던 김대중 정부를 향해 "박정희 정권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직 남았으며 결코 미화될 때가 아니다"라고 비판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200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 경선에서 김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손을 들어줬고, 지난 2010년에 친박을 이탈, 친이계의 품에 안겨 한나라당 원내대표에 오른 김무성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는 "쿠데타 세력이 제일 나쁘다고 생각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긴급조치로 국민들을 괴롭혔던 것을 다 잊어버린 것 같다"고 했다. '쿠데타 세력'에서 빠져나온 자신의 '정치적 아들' 김 대표를 응원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그리고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김 전 대통령은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을 해서는 안 된다. 역사의 흐름과 맞지 않는다"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이 생전에 아끼던 차남 현철 씨, 이명박 전 대통령 측근이었던 상도동계 핵심 김덕룡 전 의원은 문재인 대표 지지 선언을 한다.

김 전 대통령의 생각은 퇴임 후에도 변하지 않았었던 것 같다. 그런 김 전 대통령의 생각과 대척점에서 행동했던 사람이 바로 박 대통령이다. 그는 다른 의미에서 자신의 부친에게 '정명'을 돌려주고자 했다.

김 전 대통령의 평생의 삶을 박 대통령은 이해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이 청와대의 2인자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고 있을 때, 김 전 대통령은 의원직을 제명당하는 등 정권으로부터 고초를 겪었다. 1979년 부친이 유명을 달리한 후 박 대통령은 18년 동안 사실상 은둔 생활을 해야 했다.

박 대통령의 생각은 민주화 물결이 몰아치고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한 직후에 한 인터뷰를 통해 드러난다. 사실상 전두환 군부에 의해 정치활동을 금지당했던 그는 1989년 TV 인터뷰를 통해 "아버지가 물러나는데 국민이 저항을 한다구요? 왜?"라고 반문했고, "10년 동안 왜곡 일변도로 아버지와 아버지가 하신 일을 그저 깎아내리는 세월을 살아오셨기 때문에 그것만 보셔가지고 온통 국민이 아버지를 독재자로서 미워하고 그런 걸로 생각하고 계신 것 아니냐"고 인터뷰어를 향해 면박을 준다. 민주화의 담론이 팽창하던 공간 속에서도 그는 여전히 부친에 대한 복권을 주장하고 있었다.

1998년 이회창 전 총재에 의해 발탁, 보궐선거에서 야당 공천을 받아 정계에 입문한 박 대통령에게 문민정부를 포함한 18년은 정치적 암흑기였을 것이다.

박 대통령 만든 YS의 후예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가?

박근혜 정부 들어 역사의 아이러니가 표면화되고,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이 유독 많이 발생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우스갯소리로 김 전 대통령 서거가 온 국민에게 '강제 역사 교육'을 시키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다. '국정 교과서'를 밀어붙이고 박 전 대통령을 미화하는 데 힘을 쏟던 종합편성채널(종편)마저도 박정희 정권에 맞서 싸운 김 전 대통령의 삶을 특별 다큐멘터리로 구성해 주말새 방영하는 것을 보면 '올바른 역사 교육'은 지금 확실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정부를 거쳐 갔거나, 현직에 있는 10여 명의 장관은 5.16을 쿠데타로 부르지 못했다. 심지어 최근 김수남 검찰총장 후보자는 5.16이 쿠데타인지, 아닌지 개인적 의견을 표명할 수 없다고 했다. '정치적 중립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였다. 민주화의 1등공신이라 자처하는 YS의 후예들이 박정희 군사 독재를 미화한 뉴라이트 교과서를 옹호하고, 뉴라이트 학자들과 함께 '국정 교과서 추진'을 외치는 것은 난센스에 가깝다.

한국식 보수 정당의 창시자인 김 전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이 만든 정당을 완벽히 장악한 박 대통령의 물과 기름같은 삶, 그 공백을 메우는 것은 이런 아이러니와 난센스다.

박 대통령의 '5분 조문'은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현재 대통령의 모습과 YS의 긍정적 유산 사이에 거리는 먼 것 같다. 궁금하다. '정치적 아들'을 자처한 김무성 대표는 '정치적 아버지'의 빈소에서 YS의 삶을 어떻게 회상했을까? 이른바 '비박' 정치인으로 YS의 후예들인 이재오, 김문수, 정병국, 홍준표, 남경필 등 유력인사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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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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