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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에 맞서 '성전' 벌이는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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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에 맞서 '성전' 벌이는 박근혜 [시사통] 12월 9일 이슈독털

박근혜 대통령이 잇따라 여당을 압박하고 야당을 윽박지르는 것에 대해 선거전략이라는 해석과 정치적 알리바이 확보전략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내년 총선에서 일 안 하는 국회에 대한 심판론을 부추기려 한다는 것이고, 어둡게 전망되는 내년 경제 상황의 책임을 정치권에 떠넘기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해석을 청취한 소감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차라리 이 해석이 맞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위의 두 해석은 공통점을 깔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이 계산적으로 나온다는 판단을 공히 깔고 있습니다. '차라리'를 읇조리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박 대통령이 정말 계산적으로 여당을 압박하고 야당을 윽박지르는 것이라면, '오히려' 최소한의 여지는 있습니다. 정책 현안을 두고 협상하고 소통할 여지가 손톱만큼은 있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박 대통령은 계산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진심으로 말하는 겁니다.

계산기 두드리는 사람은 퇴로를 닫아버리지 않습니다. 소통하려는 사람은 상대를 규정하지 않습니다. 박 대통령은 어떨까요? 정반대입니다. '선거에서의 심판'을 여러 차례 언급했습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의 전투 모드를 분명히 보였습니다. 상대에 대해서는 딱지를 붙였습니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에게는 '배신자' 딱지를, 새누리당 내 삐딱한 의원들에게는 '진실하지 못한 자' 딱지를, 야당에게는 '위선 집단' 딱지를 붙였습니다. '악'으로 규정한 겁니다. 상대를 '악'으로 규정한 후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사람이 무슨 잔머리를 굴리고, 뭘 주고받는단 말입니까?

박 대통령은 '소명'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헌신'하려 합니다.

자기 스스로 말하지 않았습니까? '국가와 결혼했다'고요. 박 대통령은 자신을 '호민관' 또는 '국민의 후견인'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박 대통령에게 제1의 가치는 '국민을 위해서'입니다. 3권분립이니, 국회의 정부 견제기능이니 하는 말들은 부차적입니다. 분립과 견제는 '국민을 위한 정치'가 작동되는 조건 하에서만 부분적으로 용인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국민의 삶에서 분리된 것'이고 '국민으로부터 일탈한 것'이기에 '악'입니다.

'투쟁'은 최고 수준의 '헌신'입니다. 이 한 몸 불살라 '악'과 싸워 이기면 민생복리의 길이 열리기에 이보다 헌신적인 길은 없습니다. '악'과의 싸움에 지는 건 상상할 수 없기에 두려울 이유가 없고, 설령 패한다 하더라도 그건 순결한 자기희생이기에 두려움을 넘어섭니다.

정리해 볼까요? 박 대통령은 정치를 하는 게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정치가 아니라 통치를 한다고 하던데 통치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박 대통령은 '성전'을 벌이고 있는 겁니다. 조금만 더 가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데 '배신자', '진실하지 못한 자', '위선 집단'의 사악한 기운이 대열을 흐트러뜨리고 있기에, 십자군전쟁을 벌이는 중세 기사처럼 성스러운 칼을 휘두르고 있는 겁니다.

이쯤 되면 국민은 감동받아 눈물 흘려야 마땅할 텐데,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눈물 흘려도 그건 감동의 눈물이 아니라 분노의 눈물, 또는 캡사이신 맞고 흘리는 눈물입니다. 박 대통령은 헌신적인 사랑이라고 느끼는지 모르지만, 국민은 지독한 집착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설령 사랑이라 해도 반쪽짜리 사랑, 돈 잘 벌고 때깔 좋은 국민만 편애하는 절름발이 사랑이라고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절반의 국민 가슴에 피멍이 들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시사통> '이슈독털'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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