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수소 폭탄이라고 주장하는 4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규탄 받아 마땅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신년사를 통해 남북 관계 개선과 통일에 우호적인 분위기 조성을 강조해놓고선 5일 만에 핵실험을 강행하고 말았다.
이번 실험은 과거 세 차례의 사례와는 사뭇 다르다. 우선 사전 예고 없이 기습적으로 실시했다. 그 패턴도 다르다. 과거에는 '북한의 로켓 발사→미국 주도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응→북한의 핵실험'이라는 양상을 보였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바로 핵실험으로 갔다. 아울러 과거에는 어떤 종류의 핵실험인지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수소 폭탄 실험이라고 주장한다.
정말 수소 폭탄 실험인지는 알 수 없다. 원자 폭탄을 터뜨려 놓고 허풍을 떠는 것일 수도 있고, 중수소나 삼중수소를 원자 폭탄에 넣어 폭발력을 높이는 증폭형 핵무기 실험일 수도 있다. 물론 진짜 수소 폭탄 실험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상세히 다뤄보기로 한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핵이나 병진 노선을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과 언론들은 중국과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의식한 것이라는 해석을 쏟아냈다. 그런데 북한은 이러한 분석을 비웃기라도 하듯, 핵실험을, 그것도 '슈퍼 폭탄'이라고 불리는 수소 폭탄을 실험했다고 주장한다. 왜일까?
대미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것일까? 적어도 당분간은 아니다. 오히려 이번 핵실험은 북한이 대미 '협상력'보다는 '억제력'을 높이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북한이 당 창건 70주년을 전후해 장거리 로켓 발사를 자제하면서 평화 체제 협상을 제안한 것은 일종의 양수겸장(兩手兼將)이었다. 미국이 북한의 제안을 수용하면 평화 체제를 공론화할 수 있고, 거부하면 핵실험의 구실로 삼으려고 했던 것이다.
북-중 관계는 어떨까? 북한은 정부 성명에서 핵실험이 "누구도 시비할 수 없는 정정당당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중국한테 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건 북한이 중국과의 관계가 상당 기간 악화되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마이 웨이'를 가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번 핵실험에 담긴 핵심적인 의미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북한식의 '양탄일성'(兩彈一星, 원자 폭탄과 수소 폭탄 그리고 인공위성을 의미함)을 조속히 완성하겠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북한이 과거와는 달리 핵실험의 종류가 수소 폭탄이라고 밝힌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얼핏 보면 이번 핵실험은 경제와 인민을 앞세웠던 김정은의 신년사와 모순된다. 그러나 신년사와 핵실험은 고도의 연속 선상에 있다. '핵 억제력을 조속히 완성해 경제 발전과 인민 생활에 힘쓰자'는 병진 노선의 핵심 논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 보유 동기의 핵심은 '안보의 경제성'에 있다. 북한은 한미 동맹에 비해 군사력이 크게 뒤지고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려왔다. 이에 따라 북한은 결정적인 한방을 갖고 안보 문제를 해결하고선 군사비 부담을 줄여 경제 강국 건설에 매진하고자 한다. 실제로 북한이 2013년 4월에 제정한 '핵 억제력에 관한 법'에는 핵무기 보유 목적에 경제 건설과 인민 생활 향상이 명시되어 있다.
이러한 노선이 성공할 것인가를 예단하긴 어렵다. 일단 지난 3년 동안은 부분적으로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핵과 미사일 능력은 비약적으로 늘어났고 경제 사정도 완만하게 좋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이는 미국 주도의 대북 제제와 국제적 고립, 북-중 관계 및 남북 관계의 악화 등 '경제 발전에 불리한 대외 환경'에서 이뤄진 것이다.
이번 핵실험은 이러한 자신감의 반영이자 대외 환경 개선보다는 병진 노선을 계속 가겠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다. 아마도 5월 당 대회를 앞둔 김정은의 머릿속에는 북한식 양탄일성의 완성을 선언하면서 본격적인 경제 발전과 인민 생활 향상을 공언하는 것으로 가득할 것이다. 양탄일성을 찬양하면서 이를 개혁 개방의 근거로 삼았던 덩샤오핑(鄧小平)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이러한 김정은의 북한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 것인가는 다음 글에서 다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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