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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 변호사는 '소송문학'의 선구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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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 변호사는 '소송문학'의 선구자인가" [기고] 테이크아웃드로잉은 하나의 전선이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정부 지원금으로 운영되는 여타 문화공간과는 다르다. 재정자립을 위해 카페 형태를 빌린 미술관이다. 음료와 간식을 팔아 얻은 이익으로 예술인에게 두 달간 레지던시 공간을 내어준다. 입주 작가를 모집할 때면 수백 명의 예술인이 지원서를 보낸다. '드로잉'은 작업의 초안을 의미한다. 이름에 내포된 정체성처럼 입주 작가의 작업은 카페를 방문한 손님에게 실시간으로 공개된다. 입주 작가가 '드로잉' 운영진과 기획한 전시에는 보통 수백 명 이상이 관람한다. 입주 작가와 함께 특별한 음료를 만드는 등 '드로잉'은 이색적인 맛집으로 금세 입소문이 난다. 유명 영화의 촬영지로 알려진 이후 한남동의 명소로 자리매김해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드로잉'의 운영진은 모두 현대미술을 전공한 미술가이기도 하다. 그만큼 인테리어부터 시작해 운영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과거 목욕탕과 불고기집으로 쓰이던 공간이 지역 명소로 탈바꿈할 줄 누가 짐작할 수 있었을까. 그 공은 모두 운영진과 입주 작가, 그리고 손님에게 있다. 건물의 가치는 건물주가 아닌 이용자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싸이는 건물을 사들인 이후로 두 배 가까운 시세차익으로도 부족한지 '드로잉'을 내쫓고 대기업 프랜차이즈 카페를 들이려 한다. 싸이는 변호사를 앞세워 소송을 남발하며 '드로잉'을 괴롭힌다.

'드로잉'은 건물주 싸이라는 '재난'을 맞닥뜨린 이후로 지금까지도 수많은 손님이 떠나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심정적으로 '드로잉'을 지지하더라도 언제든 용역이 유리를 깨부수고 집기를 들어낼지 모르는 공간을 방문하기란 실로 두려운 일이다. 싸이의 변호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소장을 통해 드로잉이 부당하다 주장한다. 사실 더욱이 부당한 건 건물주의 불로소득과 변호사의 소송남발이다.

▲ 지난해 9월, 카페 '드로잉' 기자회견에 참석한 단편선 씨가 YG 사옥 앞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허환주)

싸이의 변호사, 우리는 그를 변호사 J라고 지칭한다. 변호사 J는 '드로잉' 운영진을 유명 연예인에게 돈을 뜯어내려는 파렴치한으로 묘사한다. 다만 남의 일이 아니기에 연대하는 예술인과 시민을 모욕하는 일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의 소장은 하나하나가 한 편의 소설이며, 소송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선구자라 표할만하다. 문학적 성취는 차치하더라도 그 다작만큼은 인정해줄 법하다. 재난은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공분은 또 다른 연대를 낳는다. 아래 지난 18일 '드로잉'에서 열린 '소송문학 합평회'에서 낭독한 소장 중 발췌한 문장을 소개한다. 소장에는 싸이 변호사가 '드로잉'을 상대로 소송을 건 이유가 낱낱이 적혀 있다.

"원고들(드로잉 운영진)은 절대 '사과와 위로'만 원하는 것이 아니고, 기존에 합의되었다고 주장하는 3억5000만 원의 합의금이 성에 차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자신들을 도와준 맘상모와 자칭 예술가들에게 돈을 주고 나면(경찰에 따르면 맘상모는 위와 같이 명도집행을 막아주는 대가로 합의금액의 일부를 받는다고 합니다), 위 3억5000만 원이 적게만 느껴질 것이었습니다."

“재판을 진행하는 판사는 법정에서 앉아 있었지만, 휴식을 즐기는 사람처럼 의자를 뒤로 제친 채 마치 원고의 주장에는 무관심한 표정으로 반쯤 누워 있었다."

이쯤에서 소송문학 합평회의 제목을 언급할까 한다. '부끄러움은 왜 읽는 이의 몫인가'. 사과와 위로만 원하는 것이 아니란 건 결국 변호사 J의 추측에 불과하며, 기존에 합의된 금액이라는 3억5000만 원도 '드로잉'이 주장한 바 없다. 맘상모에 돈을 준다는 내용은 '경찰에 따르면'이라는 단서를 남기며 오류의 책임을 공권력에 떠넘긴다. (아래는 당시 낭독회 영상이다. 정용택 감독이 촬영 및 편집했다.)


'드로잉'과 연대한 디자이너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소송에서 패소하자, 판사의 자세를 묘사하며 판결을 내린 판사를 적나라하게 비난한다. 읽는 이로서는 기가 막힐 따름이다. '드로잉' 운영진과 연대한 예술인은 이 같은 소장을 수백 장씩 받아가며 법적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소장을 법적 책임을 물기보다는 감정의 해소를 위해 쓰는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학술 용어가 주목받고 있다. 이는 세입자로 대변되는 원주민 또는 예술인 등이 일궈놓은 공간을 자본에 빼앗기는 일이 숱하게 벌어지는 현실을 방증한다. 재주를 부린 곰 대신 돈을 갈취하는 거로도 모자라 무대마저 팔아치우는 것이다. '드로잉'이 건물주 싸이에 의해 쫓겨난다면 이 같은 흐름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 분명하다. '드로잉'은 하나의 섬이 아닌 물러날 수 없는 전선인 셈이다. 예술인과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시민들이 모이는 까닭이고, 떠나지 않는 까닭이다. 싸이와 변호사 J는 소장에서 드러나듯 돈으로만 사는 관계 외에는 무지한 모양이다. '드로잉'과 운명을 함께하는 사람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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