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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의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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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의 엽서 신영복 "오늘은 다만 내일을 기다리는 날"
1966년 이른 봄철 서울대학교 문학회의 초대를 받고 회원 20여 명과 함께 서오릉으로 한나절의 답청(踏靑)놀이에 섞이게 되었다.

불광동 시내버스 종점에서 서오릉까지는 걸어서 약 한 시간 길이다. 우리는 이 길을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나도 4, 5인으로 한 덩어리가 되어 학생들의 질문에 가볍게 대꾸하며 교외의 조춘(早春)에 전신을 풀어헤치고 민들레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걷고 있었는데, 우리 일행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 여섯 명의 꼬마 한 덩어리를 뒤늦게서야 깨닫게 되었다.

만일 이 꼬마들이 똑같은 교복이나 제복 같은 것을 입고 있었거나 조금이라도 더 똑똑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더라면 나는 좀더 일찍 이 동행인(?)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여남은 살의 이 아이들은 한마디로, 주변의 시골 풍경과 소달구지의 바퀴자욱이 두 줄로 패여 있는 그 황토길에 흡사하게 어울리는 차림들이었다.

모표도 달리지 않은 중학교 학생모를 쓴 녀석이 하나, 흰 운동모자를 쓴 녀석이 또 한 명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운동모자는 여러 번 빨래한 것으로 앞챙 속의 종이가 몇 군데로 밀리어 챙의 모양이 원형과 사뭇 달라졌을 뿐 아니라 이마 위로 힘없이 처져 있었다. 그나마 흙때가 묻어서 새하얗게 눈에 뜨이지도 않는 것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나의 시선을 붙잡은 것은 털실로 짠 스웨터였다. 낡은 털실 옷의 성한 부분을 실로 풀어서 그 실로 다시 짠 것이었다. 색깔도 무질서할 뿐 아니라 몸통의 색깔과 양팔의 색깔이 같지 않고 양팔 부분도 팔꿈치 아래는 다시 달아낸 것 같았다. 털스웨터의 녀석은 그래도 머리에 무슨 모자 비슷한 것을 뒤집어쓰기까지 했다.

- '청구회 추억'의 시작 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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