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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우리는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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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우리는 할 수 있다" [나라 밖 이야기] 스페인의 변화,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가해자들의 땅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은 모든 역사에서 가해자들은 사회적 발언의 힘을 가지고 기득권을 누린다. 그들이 누리는 기득권은 다시 그들의 사회적 발언력을 높인다. 그들은 어디서나 세속적으로 말해 "잘 먹고 잘산다". 그런 가해자들에게 희생된 사람들은 자신의 억울한 죽음의 사연조차 말할 수 없고 살아남아도 숨죽여 지내야 하며 따라서 기득권과는 애당초 인연이 없다. 정의는 말로만 존재할 뿐이다. 잘못된 역사를 청산하려면 우선 사회적 발언력을 가지고 있고 기득권을 누리는 가해자들이 천수를 누리고 무덤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 긴 기다림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기득권의 재생산 구조에 의해 가해자들의 자식 세대들도 사회적 발언력을 가지게 되는데 그 힘을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과업을 방해하는 쪽으로 행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스페인 얘기를 하려다가 딴소리를 꺼내고 말았다.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던 쓸쓸한 상념이 작용한 탓이다. 과문의 탓일까, 나는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민간인 학살을 사주하거나 실행에 옮긴 가해자들, 80년의 광주에서의 학살자들을 포함하여, 70~80년대에 중앙정보부, 보안사와 남영동 등 온갖 수사기관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졌던 고문 행위를 사주하거나 실행에 옮긴 자들 중에서 죽음을 앞두고 참회하면서 용서를 구한 인물에 관해 들어본 적이 없다. 그중에는 종교인들도 적지 않을 터인데 놀라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음의 순간에 이르면 하염없이 초라해지고 순수해지는 게 인간의 본모습이라고 하는데, 어찌 이 땅에서는 그런 인간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일까. '가해'라는 괴물이 먼지처럼 이 사회에 떠다니면서 구성원들의 인성에 침입한 탓일까? 그래야 죽은 뒤에도 안락을 누리며 잘살 수 있다고 유혹하면서?

▲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포데모스 대표. ⓒAP=연합뉴스

마드리드 길에서 퇴출될 프랑코의 망령들

스페인에서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의 40년간의 길고 엄중한 독재가 마감된 것은 그가 죽은 1975년의 일이었다. 그 뒤 다시 4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의 길에는 프랑코의 부하 장군들의 이름이 올라 있다. 세종로, 을지로, 백범로처럼 길 이름에 그 나라에 공이 많거나 유명한 인물의 이름을 붙이는 건 유럽 나라들에서 흔한 일이다. 가령 <레미제라블>을 쓴 빅토르 위고는 프랑스의 거의 모든 도시에서 그 이름의 거리를 만날 수 있을 정도다. 1936년 프랑코의 무리들이 쿠데타로 스페인의 제2공화국을 무너뜨렸을 때 그 주역의 하나였던 몰라(Mola)장군, 3000명에서 5000명의 말라가(Malaga) 피난민들에게 폭탄 세례를 퍼부어 죽인 프란시스코 이글레시아스라는 인물, '바다호스'의 도살자로 불리며 역시 쿠데타의 주역인 후안 야구에 비양코 등이 프랑코가 죽은 지 40년이 지난 오늘까지 마드리드의 길 이름에 새겨지는 영광을 누리고 있다. 프랑코가 죽은 뒤 민주화가 되었다고 하나 우파 정치 세력인 인민당이 계속 마드리드 시의 권력을 장악해 왔기 때문이다. 쿠데타 패당들의 이름들을 퇴출시키고 다른 이름으로 명명해야 한다는 공화주의자들의 자손들의 요구에 대해 마드리드 시의 집권 우파는 "오래된 상처를 건드리면 안 된다"면서 반대해 왔다.

마침내 프랑코가 죽은 지 41년이 지난 2016년 하반기에 서른 개의 마드리드 길 이름을 바꿀 수 있게 된 것은 마드리드 시의 정치 권력 구성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 조치는 3년 전 "분노하라!"의 구호로 시작하여 정당으로 탈바꿈한 포데모스("우리는 할 수 있다")의 지지를 받아 지난해 6월부터 마드리드 시정을 맡게 된 "마드리드, 지금부터"라는 시민 플랫폼이 사회당과 새로운 중도 정당의 찬성표를 얻어 실행에 옮길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대해 마드리드시의 우파 인민당 대변인은 "보복 행위"이고 "화해의 정신에 반한다"고 비판했는데, 마드리드 시의 문화 담당관은 "기억 말살, 포기와 처벌 면제"를 마감하는 일이라고 응수했다. 마드리드 길에서 사라질 프랑코의 망령 대신 올라갈 이름은 마드리드 한 대학의 '20세기 역사 기념' 교수진에 의해 선정될 예정인데, 지금까지 길 이름에 거의 오르지 못한 여성들과 마드리드 건설에 공이 있는 현장 활동가들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

나는 그녀를 80년대 중반에 파리에서 만났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에서 일하고 있던 그녀는 내 또래였는데 스페인 출신 망명자 부모 아래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나를 찾은 것은 전두환 정권 아래 한국의 정치 상황과 양심수에 관한 얘기를 듣기 위해서였는데, 내가 망명자 처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가 프랑스에서 세상을 떠난 자신의 부모 얘기를 꺼냈다.

프랑코 무리에게 쫓겨 스페인의 공화주의자들, 아나키스트들과 사회주의자들 약 2만 명이 피레네 산맥 너머 프랑스 땅에서 난민처를 구했다. 아직 난민을 위한 국제협약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한 때였다. 그들은 열악한 조건과 환경 속에서 수용소 생활을 한 뒤 막노동 등으로 생계를 이어 가야 했다. 세월이 속절없이 흘렀듯이 그들 또한 속절없이 늙어 갔고, 하나, 둘 프랑스 땅에서 세상을 떠났다. 40년간 지속된 프랑코의 독재…. 끝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그들은 하얗게 센 머리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 인생은 실패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평온히 눈을 감을 것이다."

나는 때때로 이 말을 되씹곤 한다. 그런데 왜일까, 프랑스에서 망명생활을 할 때보다 귀국 후 이명박 정권에 이어 박근혜 정권에서 이 말을 더 자주 되뇌게 되었다. 그들이 불렀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가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다만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몹시 '슬픈 노래'라는 것을! 프랑코 무리들이 살아서 호의호식하고 죽은 뒤에도 마드리드 길에서 칭송받는 영예를 누리는 동안 그들은 남의 땅에서 온갖 고생을 해야 했고 잊혀진 채 죽어 갔다. 그들에게 혼령이 있다면 이제 마드리드를 배회하면서 조금은 위안을 얻을까?

민주주의의 경계

누구였던가, 민주주의에는 완성이라는 게 없다고 말한 이가. 우리가 다가가면 저 멀리 물러나는 것이 민주주의의 경계라는 것이다. 40년 독재의 프랑코가 죽은 지 40년이 지나서야 마드리드 길에서 프랑코의 망령들을 물리칠 수 있게 된 과정도 민주화라는 것은 민주주의의 완성이 우리 앞에 끝없이 남겨지는 과제라는 점을 웅변하고 있다.

"분노하라!"의 구호 등과 함께 고양된 시민 의식은 스페인의 정치 지형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프랑코가 죽은 뒤 40년 동안 양대 정당으로 국가 권력을 주고받으며 정치적 기득권을 누려 온 우파 인민당과 사회당은 2015년 12월 20일에 치러진 의회선거에서 둘이 합쳐 과반을 겨우 넘길 정도로 후퇴했다. 총 350석 중 인민당이 123석, 사회당이 90석을 얻었을 뿐이고, 3년 전까지 이름도 없던 포데모스당이 69석으로 일약 제3당이 되었고, 40석을 얻은 중도의 '시민'당이 그 뒤를 이었다. 포데모스당의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대표가 만 36세의 정치학자 출신이며, 변호사 출신인 시민당의 알베르토 리베라 대표가 32세라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이를테면, 스페인은 지금 젊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중이다. 마드리드의 길에서 프랑코의 망령들을 쫓아낸 것도 바로 이 바람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원고를 쓰는 시점까지 스페인은 내각을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의회 의석의 과반을 차지할 수 있는 정당 간 연합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총선을 다시 치르게 될 수도 있을 만큼 안개 정국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르몽드>는 사설을 통하여 프랑스인들이 스페인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역사와 관련된 것만 보더라도 일본군 위안부와 역사교과서 국정화라는 당면 문제를 눈앞에 두고 있는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가해자들의 뻔뻔한 유린을 끝장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의 '나라 밖 이야기'는 <작은책>과 필자의 동의를 받아, 한 달에 한 번 <프레시안>에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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