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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체제의 비결, 껌값도 안 되는 책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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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체제의 비결, 껌값도 안 되는 책값 [쿠바, 지구의 국경을 산책하다 ⑤]
눈이 먼 노인이 신문을 팔고 있다. 신문은 어디에나 있다. 오비스포 거리에서도, 카피톨리오 앞에서도, 차이나타운에서도 초라한 옷차림의 늙은 사람은 신문을 본다. 주간지도 있고, 일간지도 있다. 청소년을 위한 신문도, 노동자를 위한 신문도 있다. 모두 정부의 기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류는 다양하다.

신문팔이 노인이 말을 건다. "당신은 신문을 읽지 않나요?" 신문 한부에 10세우페(약 400원)를 달라고 한다. "10세우페는 무슨, 신문 한부에 1세우페(약 40원)면 족하지요." 옆에 있던 사람이 대꾸한다. 그러자 신문팔이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이봐요 선생님, 이 관광객이 저에게 10세우페를 꺼내 주려 하는 것을 방해하지 말아 주세요.

눈이 먼 사람이 파는 신문을 샀다. 그도 읽을 수는 없을 것이고, 너도 읽을 수 없다. 노인은 돈을 눈 앞에 가까이 댄 후 웃으며 좋은 여행을 하라고 손을 흔든다. 주식 시세도 없는 신문이다. 부동산 정보도 없고, 대출 금리가 낮아졌다는 소식도 없는 놈의 신문이다. 대기업 총수가 저지른 비리 소식도 없고, 신제품이 개발됐다는 소식도 없고, 글로벌 시대에 국경을 넘는 자유로운 저관세 무역으로 미국산 체리 600그램을 1만 원에 사던 사람들이 드디어 6700원에 사게 됐다는, 그런 흔하디 흔한 내용 하나 없는 신문이다. 걸그룹의 데뷔 소식도 없고, 관음증을 자극하는 뮤직 비즈니스의 뒷이야기도 없는 놈의, 그런 놈의 신문인데, 사람들은 곳곳에서 신문을 움켜쥐고, 그것을 노려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가끔은 젊은 신문 배달부를 본 적도 있다. 이른 아침 바다가 내다보이는 민박집 창가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이고, 커피를 한잔 마시고 있으면 자전거를 탄 신문배달부가 앞집 아파트의 3층 베란다에 정확히 신문을 던져 넣는 것이다.

ⓒ프레시안(박세열)

너는 신문을 끼고 쿠바노들이 가는 식당에서 샌드위치(빵+고기가 전부다)와 소다수(환타 맛)를 사먹었고(약 10세우페, 400원), 포풀라르 담배를 5갑(하나에 7세우페, 280원)이나 샀다. 책방을 네 군데 들렀다. 놀라운 것은 책값이 엄청나게 싸다는 것. 카툰집 두 권을 샀는데 한권에 5세우페(200원) 씩이고, 어린이 동화 책을 샀는데, 8세우페(320원)다. 만화책 몇 권을 샀는데 역시 대부분 우리 돈으로 250원~500원 사이다. 스페인어로 된 정치 전문 서적도 우리 돈 1000원을 넘지 않는다. 진열이 잘 돼 있는 국영 책방에는 일하는 사람이 4명 쯤 있는 것 같은데, 두 명이 한 짝이다. 책을 골라 계산대에 가니 여성 점원이 턱짓을 하며 맞은편에 있는 또 다른 여성 점원을 가리킨다. 맞은 편의 점원은 간단한 서식의 종이 카드 책자를 앞에 놓고 앉아 있다. 책을 내미니 카드에 뭔가를 적은 후 찢어서 내게 내민다. 카드에는 책 이름, 권 수, 그리고 가격 등을 적어내려 간다. 너는 마치 의사에게 알 수 없는 무늬가 적힌 처방전을 받아들 듯 받는다. 이 카드와 함께 내가 고른 책을 카운터로 들고 가면 그때 계산이 이뤄진다. 어떤 목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책방 카운터에 총 2명이 고용된 셈이다. 네게 처방전을 내려 준 점원은 다소곳이 앉아 있다. 병원 소독약 냄새처럼 잉크냄새 풍기는 책방 속에서 혁명 관련 서적들을 팔며 자리를 지킨다. 월급은 500 세우페(2만 원 정도) 정도 될까. 점원들은 퇴근 후 국영 배급소에 들러 배급표를 보여주고 달걀과 빵을 받아서 집에 갈 것이다. 배급은 점차 줄고 있지만, 그래도 삶을 유지하는 데 한몫을 한다.

그런데 다른 세계는 바로 옆에 있다. 오비스포의 고급 식당가에 가면 책 10권짜리 가격의 음식을 팔고, 100권짜리 술을 판다. 그리고 신문 1000부 짜리 계산서를 받아든다. 관광객을 위한 것이다. 물론 내국인도 사 먹을 수 있다. 단, 돈이 있다면. 아바나 거리, 특히 관광객이 많은 올드 아바나 거리나 베다도 아바나 리브레 호텔을 중심으로 동서로 곧게 뻗어 있는 23번가 젊은이들은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일자리를 찾기에 혈안이 돼 있다. 호객 행위를 하거나, 시가를 팔거나, 살사 클럽을 소개해주겠다고 너와 같은 외국인들만 보면 말을 붙이기에 정신이 없다. 어딜 가나 젊은이들이다. 간혹 넉살 좋은 노인들을 만날 수 있긴 하지만.

모험심에 의한 것인가, 아니면 돈에 대한 욕망 때문인가. 알 수 없는 어떤 화려함에 대한 동경 때문인가. 관광객을 상대하는 젊은이들은 책방 여성 종업원이 받는 한 달 봉급의 두 배 정도를 하루에 벌어들인다. 그 돈으로 여자친구와 함께 말레콘 인근 고급 카페테리아에서 샌드위치와 맥주를 사 먹겠지. 돈이 없기 때문에 돈을 벌기 쉽다. 돈 버는 데 모두가 달려들지는 않기 때문에 돈을 벌기 쉽다. 그렇다고 그들이 부자는 아니다. 남들보다 에어콘을 쉽게 살 수 있고, 남들보다 좋은 버터를 쉽게 살 수 있다. 남들보다 좋은 우유를 매일 마실 수 있고, 남들보다 좋은 빵을 매일 씹을 수 있다.

ⓒ프레시안(박세열)

그러나 쿠바에는 아직 화려한 쇼비즈니스도, 청담동 귀족 클럽도 없다. 그냥 단지, 조금 더 잘 먹고, 잘 살고자 하는 욕망들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축적하지 못하고, 또 축적하지 않는다. 축적된 부를 쓰면서 살기에 쿠바는 적당하지 않다. 그래도 한 달에 100만 원 버는 사람이 10억 자산가에서 집세로 50만 원씩 바치면서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보석을 사고, 골프를 치고, 하룻밤 술값으로 수백만 원을 쓰고도 월수입 잔고가 수천만 원씩 쌓이는 사람들에게 500만 원의 수입 중 모은 300만 원의 월세를 꼬박꼬박 합법의 이름으로 상납하는 세상과도 다르다. 부의 축적을 목적으로 하는 자들이 생기면, 쿠바의 미래는 아마도 예측가능하게 될 것이다. 축적은 더 이상 경제가 아니다. 그것은 곧 착취를 부르고, 다른 이들이 기회를 빼앗는 행위가 된다. 물론 최근에는 세우세와 세우페 경제가 불안해, 달러와 유로를 쌓아놓는 집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달러와 유로의 가치가 높아지면 그들의 얼굴엔 미소가 번지겠지.

신문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다루지 않는 것 같았다. 저 다른 세상이 퍼져 나가는 것을 억제하는 도구들로 보인다. 언제나 신문은 그런 것이었다. 사람들에게 우리 시스템이 아직 공고하다는 것을 알리고, 믿음을 갖게 하고, 값 싼 욕망의 경험보다, 도덕적으로 고결한 경험들을 제안한다. 지구의 국경 밖. 책값은 왜 싼가. 책이 다양하진 않다. 체 게바라나 피델, 혹은 혁명에 관한 책들, 베네수엘라 관련 책들을 포함해 북미와 남미의 정치, 경제 관련 서적이 서점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것 같다. 나머지 절반은 철학과 문학 등과 관련된 책이다. 젊은 사람들이 책방을 드나드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언제나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빵 하나 가격으로 책을 사 볼 수 있을 것이다. 신문이 권하는, 정부가 권하는 좋은 사상을 내면화하고 체화하는데 신문과 책처럼 좋은 도구가 없다. 신문과 책은 쿠바의 시스템을 공고하게 하는 수단이므로, 그것은 거의 공짜로 뿌려져야 한다. 쿠바 사람들은 책을 사고자 하면 밥값도 안 되는 돈으로 여러 권을 살 수 있다. 이것이 쿠바가 체제를 돈독하게 하는 비결일 수 있겠다.

ⓒ프레시안(박세열)


ⓒ프레시안(박세열)

쿠바에는 언론의 자유가 없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자유주의 체제의 언론이라고 해서 공정한 것은 아니다. 자유주의 체제의 언론은 불공정한 게임을 공정하게 보이도록 한다. 우리의 시스템은, 쿠바와 마찬가지로 그런 믿음을 확고히 해줌으로써 굴러간다. 누가 신문을 먹여 살리는가. 신문은 간혹 시스템을 흐리는 사람들을 골라내 시쳇말로 조진다. 그리고 너에게 말한다. 우리 시스템은 안전하다고. 시스템을 파괴하려는 자들을 솎아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그러면서 수백억을 빼돌린 기업가의 집행유예와 70만 원을 훔친 노동자의 징역형을 동일한 비중으로 보도하면서. 그러나 너는 쿠바와 너의 고국이 닮아 있다는 것을 외면할 것이다. 너는 눈 먼 노인이 파는 신문을 읽는 사람들을 본다. 아바나에서, 그리고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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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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