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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를 어떻게 투기꾼으로 내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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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싸이를 어떻게 투기꾼으로 내모나?” [기고] ‘월드스타’ 싸이에게 보내는 초대장
초원을 누비던 가우초의 후예들은 축구를 즐겼다. 축구의 열기는 초원을 불태웠고, 마침내 세계를 휩쓸었다. 브라질은 1994년부터 무려 7년 동안 세계축구 1위를 고수했다. 그 시절 뒷골목 아이들의 십중팔구는 전혀 망설임 없이 자신의 꿈을 축구선수라고 밝혔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축구 열기도 삶의 고통에 화끈한 희열을 가져다주지는 못한 모양이다. 그들은 더욱 격렬한 무언가를 통해 고단하고 답답한 현실의 응어리를 풀고 싶었다. 그게 종합격투기였다. 피 터지게 두들겨 맞다가 피 터지게 두들겨 패는 경기를 통해 그들은 뜻밖의 위로를 받았다.

인생이 다 그런 거지, 이리저리 채이다가 종 치는 게 인생인 거지, 그런데 반전이 있어, 와우, 실바의 저 100만 불짜리 초크승, 엄청난 반전, 저게 인생이야! 그로부터 종합격투기는 역설의 스포츠로 브라질리언들의 가슴이 되었다. 아들을 낳으면 실바로 키우는 게 꿈이었다. 반더레이 실바, 앤더슨 실바, 안토니오 실바, 에릭 실바는 뒷골목 아이들의 꿈이 되었다. 지카바이러스 탓에 예전 같은 열기는 아닐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실바 같은 격투기 선수를 꿈꾼다.

체면을 날려버린 싸이의 '강남 스타일'

꿈은 우리에게도 있었다. 없는 게 나을 것 같은 국가로 인해 고통이 극에 달할수록 우리의 꿈이 소박해졌을 뿐이다. 고정적 수입이 보장된 직장을 갖고 싶고, 혼자 살 때보다 둘이 사는 게 더 낫다는 걸 확인하고 싶고, 아이를 낳아도 된다는 확신을 하고 싶고, 이게 아니면 이건 아니라고 화끈하게 말하고 싶은 세상에서 살고 싶은 꿈이다. '강남 스타일'의 가수 싸이가 그 꿈의 한 축이 되어준 건 아주 놀랍다. 뭐, 싸이처럼 월드스타가 되고 싶다는 말짱 황이 되는 꿈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저 소박한 꿈이나마 그가 풀 길을 열어줬다는 얘기다.

그게 뭐냐면 아무나 출 수 있는 말춤을 들고 나와 세계를 휩쓸어버린 반전의 꿈이다. 고통을 말해봐야 통하지 않고, 체면 때문에 더더욱 입조차 쉽게 열 수 없는 세상에서 그냥 내 것 그대로 내질러버렷! 그 같은 반전, 싸이의 말춤은 사는 게 고통스럽다면 눈치 보지 말고 내질러버릴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줬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오죽하면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듣고 나면 '음색이 독특해, 노래가 좋아, 심금을 울려'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게 아니라, '아휴, 속이 다 시원하네' 그런 반응이 주류를 이룰까. 여기까진 싸이 만세다.

▲ YG 사옥 앞에서 퍼포먼스 중인 신제현 작가. ⓒ프레시안(허환주)

그런 싸이가 3년여 전에 테이크아웃드로잉이 세 들어 있는 건물을 칠십 몇 억에 매입했다. 그 건물의 현시세는 130억 원을 호가한다. 돈만 놓고 보면 싸이의 노후는 벌써 완벽해졌다. 거의 60억 원에 이르는 불로소득을 불과 3년여 만에 올리든 말든 그게 문제될 것도 없다. 이 나라가 원래 그런 나라니까. 문제는 자신의 노후를 위해 누군가의 미래를 짓밟았다는 데에 있다. 싸이는 드로잉을 짓밟아도 처참히 짓밟았다. 아니다, 내 속의 고통과 응어리를 내질러버리도록 용기를 심어줬던 싸이가 절대 그럴 리가? 모든 게 싸이의 측근 탓일 거다.

싸이의 측근, 그들이 문제다. 그들은 드로잉이 원 건물주와 맺은 계약내용 같은 건 철저히 무시했다. 오로지 재건축을 빙자해 드로잉을 내쫓고자 했던 두 번째 건물주와의 계약내용만을 필승의 무기로 삼았다. 그들은 필승의 무기를 토대로 드로잉에 용역을 동원해 폭력을 불사했다. 소장과 가압류를 남발했고, 드로잉이 마치 떼쓰고 있는 양 여론을 호도하기도 했다. 내 속의 울화와 응어리와 체면을 내질러버릴 용기를 줬던 싸이가 맞나 싶을 지경이다. 아니 싸이의 측근들이 맞나싶을 지경이다. 그런 중에도 측근인 양현석이나 담당 변호사는 번번이 앞에서는 '원만한 협상'을 얘기해왔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측근들이 한 짓이니 당사자는 정작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싸이는 절대 용서할 수 없는 투기꾼이다. 하지만 어떻게 월드스타 싸이를 투기꾼으로 내몰 수 있단 말인가?

투기꾼이 아니라 우주스타 싸이를!

볼프강 괴테의 명언을 떠올리는 건 그래서이다. 마이스터의 입을 빌린 괴테의 명언을 보자.

"있는 그대로 사람을 받아들이는 건 그 사람을 더 나빠지게 만드는 겁니다. 그는 적어도 이래야 하는데, 라는 생각으로 대하면 그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게 되는 거죠."

월드스타 싸이는 우주스타로 커야 한다. 고작 투기꾼으로 전락해서는 안 되는 인물이다. 괴테의 명언에 따라 꼭 그렇게 믿고 싶기에 싸이에게 한 가지 제안한다. 마침 오는 2월20일 토요일엔 드로잉을 위한 엄청난 후원행사가 준비돼 있다. 말이 엄청날 뿐, 500명쯤 발길 하는 행사다보니 싸이의 눈에는 작은 행사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그 대단한 행사에 싸이를 초대한다. 공연도 있는 후원행사다보니 싸이의 공연까지 볼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하지만 어찌 그 같은 복을 기대하겠는가? 다만 그날의 행사장에서 드로잉 식구들에게 모욕을 안겨온 점을 사과한다면 그것으로 족하겠다. '원만한 합의'의 출발점이 되는 사과는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얘기다.

품을 넓혀 싸이가 정말 초대에 응한다면 드로잉 식구들 또한 한껏 예를 갖추겠다. 세계의 여론이 다시금 싸이에게 우호적일 수 있도록 한국에 나와 있는 굴지의 언론사 특파원들을 부르겠다. 그들에게 보도자료를 보내고 취재를 정중히 요청하겠다. 위대한 예술가는 위대한 반성에서 비롯된다. 이 나라의 권력자들처럼 똥을 뭉개듯 과를 뭉개려들면 냄새만 점점 피워댈 뿐이다.

반전과 자유분방함으로 세계를 휩쓴 싸이답게 오라, 테이크아웃드로잉으로! 그게 싸이가 원하는 제2의 도약이 될 것이고, 그게 드로잉의 원혐을 푸는 유일한 길이다. 이는 드로잉이 싸이와 같이 살겠다는 초대이며, 충분히 그럴 만한 자리가 되고도 남으리라 믿는다. 싸이는 투기꾼이 아니다. 싸이는 월드스타를 넘어 우주스타로 빛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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