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대 진보 정치'를 주장하며 작년 정의당 대표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킨 조성주 미래정치센터 소장을 11일 오후 만났다. 조 소장은 진보 정치에서도 "세대 교체는 필요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하지만 "인위적 '물갈이'가 아니라 (새로운 세대) 자신들의 힘으로 싸워서 교체시키는 것이 조직에 더 건전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자리 내놔라'가 아니라 힘을 길러서 기성 세대와 겨루겠다는 말이다.
조 소장이 이번 총선을 "당의 리더십을 만드는 선거"로 규정한 것도 그래서다. 이는 그가 지역구 출마가 아니라 비례대표 경선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쉬운 선택'이라는 비난을 감수하고도, 차기 국회에서 원내에 들어가 정의당 지도부에 참여하는 것이 진보 정당의 세대 교체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내년 7월에 또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것"이라며 "국회의원이 돼서 '2세대 진보정치인'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 우리 당 내에서 세대 교체를 하는 것이 목표"라고 선언했다.
정의당, 나아가 진보 정치 진영 내부적으로는 '새로운 리더십을 만드는 선거'라면, 한국 사회 전체를 놓고 봤을 때에는 이번 총선에서 '노동 중심의 경제 민주화'가 주요 의제가 돼야 한다고 조 소장은 주장한다. 이는 정의당이 더민주, 국민의당 등 다른 야권 정당들과 차별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진보 정당이 왜 한국 정치에 중요한지를 선명하게 드러내면서 선거를 치를 필요가 있다"며 그는 '노동'과 '사회 안전망'을 중점 의제로 제시했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같은 주제가 선거의 전장(戰場)이 돼야 한다는 것.
그 연장선상에서, 정의당이 원내 3당 지위를 국민의당에 내주기는 했지만 "진보 정당은 종류가 다른 정당"이라고 조 소장은 강조한다. "국민의당이 양당 체제에 도전하는 3당일 수는 있어도, (정체성은) 기존 양당 체제 안에 있고 이념적으로 새누리와 더민주 사이에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꼭 그래서는 아니겠지만, 최근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대표가 자신을 버니 샌더스 미 상원의원에 비긴 데 대해 그는 "샌더스를 전혀 모르시는 것 같다"며 "샌더스 자서전을 꼭 읽어보시라고 말하고 싶다"고 꼬집기도 했다.
다만 국민의당이 호남이라는 지역적 기반을 뚫어낸 점에 대해서는 "나름의 사회적 기반을 갖췄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조 소장은 평가했다. 그는 최근의 '영남 패권주의' 논쟁이 전개되는 양상을 언급하며 "야권 지지자들이 국민의당이 가진 에너지를 그냥 조롱하고 비난하면서 압사시키는 게 과연 한국 정치에 좋은 것일까"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야권 연대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심상정 대표와는 생각이 좀 다르다"며 야권 연대를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강요하는 것은 "야권 판(版) 공포 정치"라고 비판했다. 그는 '정의당이 고춧가루 뿌려서 (더민주 혹은 국민의당 후보가) 새누리당에 졌다'는 이유로 욕을 먹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며 "총선 결과에 정의당의 존립이 좌우된다고 보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의석 수가 지금보다 줄어든다 해도, 자신감 있게 총선을 치르면 2018년, 2020년에 더 큰 기회가 올 것"이라며 "과감하게 도전할 필요가 있다"고 장담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免费阅读).
프레시안 : 비례대표로 출마 선언을 했다. 일각에선 인지도 있는 후보가 너무 '쉬운 선택'을 한 것 아니냐고 비판하는데?
조성주 : 인지도가 있는 인물은 지역에 나가야 한다는 얘기가 많은 게 사실이다. 저 또한 그런 면에서 비례대표 출마가 쉬운 선택으로 비칠까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비례대표 출마라고 쉬운 길인 것만은 아니다. 외려 더욱 확실하게 자기 비전과, 한 지역을 넘어선 당 전체의 비전을 이야기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그런 점에서 어깨가 무겁다.
이번에 원내에 들어가는 의원들은 사실상 차기 원내지도부, 즉 당 지도부가 될 거라는 점에서도 비례대표 출마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정의당에 이번 총선은 국회의원 한 명을 만드는 선거가 아니라 당의 리더십을 만드는 선거다. 그렇다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제가 비례로 나가는 게 맞지 않을까.
정의당 후보로서 어차피 지역구에서 승부보기 힘든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총선 공간에서 '싸우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로 들어가서 변화를 위해 진짜 싸움을 하고 싶다. 당 대표 경선 후 많은 당원들을 지역을 돌며 만나 보았는데, 생각보다는 '지역구 출마보다 비례 출마가 더 좋겠다'는 의견을 많이 듣기도 했다.
프레시안 : 당 대표 선거 때 했던 '2세대 정치' 이야기의 연장이라는 건가? 다른 정당에서도 '물갈이'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정의당도 필요하지는 않은가?
조성주 : 물갈이란 표현에 좀 제가 거부감이 있긴 한데, 세대 교체는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그런 인위적인 물갈이는 건강하지 못하다. 그보다 자기(새 세대)들의 힘으로 싸워서 교체를 이루는 게 더 조직에 건전할 거 같다. '내놔라'가 아니라 힘을 길러 교체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총선 출마 선언문을 쓰며 '새로운 출마 선언문'이라는 얘기를 했다. 사실 중의적 표현이었다. 심상정 대표의 임기가 끝나는 2017년 7월, 또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것이다. 그 의미도 이번 출마 선언문에 담고자 했다.
지난번 당 대표 선거에 나왔을 때 많은 분들이 조성주라는 사람의 참신성 등을 인정했지만 안정적 리더십을 인정하지 않았다. 국회 경험이 없고, 그러다 보니 총선이란 큰 전쟁을 앞둔 당을 이끌 리더십은 허락하지 것이다.
그러니 저에게 부족한 것,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2세대 진보정치인'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 우리 내의 세대 교체를 이루는 게 제 목표다. 지난 당 대표 선거 이후 나와 정치관이나 진보 정치에 대한 생각이 가까운 젊은 당원들을 전국을 돌며 많이 만났다. 이들 중 일부는 2018년 지방선거 출마 또한 염두에 두고 있는데 이들을 최대한 당선시키는 게 제 소명이기도 하다.
"야권 연대, 심상정과 생각 달라…잘 싸워서 먹는 욕은 먹어도 된다"
프레시안 : 과거 새정치민주연합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나뉘면서 정의당으로선 총선을 치르기 더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평도 있다. 실제로 최근 지지율이 3~4%대로 가라앉았다.
조성주 : 겉에서 보면 지금 정의당은 제3당의 지위를 잃어버린 듯하다. '양당 체제를 깨겠다'는 건 전통적으로 진보 정당이 하던 얘기인데 이걸 국민의당이 매일 얘기하고도 있다. 그러나 국민의당과 진보 정당은 종류가 다른 정당이다. 국민의당은 이념적으로는 더민주와 새누리 사이에 있는 기존 양당 체제 안에 있는 정당이라고 본다. 지금 일어난 현상은 양당 체제의 변화가 아니라 그 체제 안에서의 재배열에 불과하다. 이는 돌이켜보면 선거를 앞두고 매번 있었던 일이다.
정의당은 훨씬 자신감 있게 선거를 치러야 한다고 본다. 진보 정당이 왜 한국 정치에 중요한지, 사회경제적으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인 '시장을 대하는 태도' 등을 노동을 중심으로 명확히 보여주며 선거를 치러야 한다고 본다. 지난 3년 동안 어려운 길을 오다 보니 '이번 선거에서 결실을 맺어야 한다'는 내부의 요구가 있는 거 같은데, 저는 좀 과감하게 도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번 총선 결과로 정의당의 존립이 좌우되지는 않는다. 혹여 의석 수가 지금보다 줄어들더라도 자신감 있게만 치르면 2018년과 2020년에 더 큰 기회가 올 거다. 그때야말로 양당 정치를 조율하고 조정할 수 있는 힘이 생길 거다.
조성주 :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반(反)새누리당 야권 연대'라는 것은 사회에 뿌리내린 지점이 없다. 일종의 '야권판 공포 정치'다. 새누리당이 북한, 경제 위기를 활용해 공포 정치를 잘 하는데, 야권 판(版) 공포 정치도 있다. 그게 '반새누리 연대'라고 본다. 사회의 어떤 지점에도 뿌리를 내리지 않는 것이고, 선거 시기에 실리를 추구하는 측면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프레시안 : 하지만 1·2위 후보의 표 격차보다 정의당 후보가 더 많은 표를 얻어 가면, 특히 다른 야당 후보가 2위를 했을 경우에 욕을 많이 먹을 텐데? (웃음)
조성주 : 그렇게 먹는 욕은 먹어도 된다고 본다. 지금의 정의당은 더 많은 '스피커'를 배치해서 당을 알려야 한다. 그래야 진보정당이 성장한다.
프레시안 : 정책 연대는 가능한 것 아닌가?
조성주 : 정책 관련 연대는 저는 더민주나 국민의당, 심지어 새누리당과도 할 수 있다. 정책 연대는 오히려 더 많이 과감하게 교차해서 할 필요가 있다.
"안철수, 샌더스 전혀 모르는 것 같아…하지만 安신당이 가지는 의미는 있다"
프레시안 :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자신을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선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에 빗대 구설수에 올랐다. 진보 정당의 후보로서 안 대표의 '샌더스' 발언을 어떻게 봤나.
조성주 : 음…. 샌더스를 전혀 공부 안 하신 것 같다. (웃음) 샌더스를 아마 전혀 모르시는 거 같은데, 제가 샌더스의 공식 자서전인 <버니 샌더스의 정치 혁명>(원더박스 펴냄) 한국판 추천사를 썼다. 샌더스는 한국의 정치인들에게 알려진 것보다 훨씬 현실주의자고 날카로운 사람이다. 안 대표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시라고 말하고 싶다.
다만 이런 얘기를 좀 하고 싶다. 국민의당이 우왕좌왕하는 것에 대해서 냉정하게 평가하고 비판할 지점이 많다고는 본다. 그런데 지금 국민의당이나 안철수 대표롤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몰아붙이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국민의당이 호남을 뚫고 올라왔다는 점에서다.
국민의당 탄생이 양당 체제 안에서의 재배열이고, 이런 3당의 출현은 앞서서도 있었다고 했는데 하나 다른 게 있다면 바로 '호남'이다. 호남은 '분열은 필패'라고 생각이 강했고 그래서 늘 전략적 투표를 해왔다. 그런데 이런 정서를 뚫고 야권 내 분열을 이뤘다. 다른 정당이 무시하고 조롱할 일이 아니다.
최근 '영남 패권주의'라는 것을 주제로 지식인들이 논쟁을 벌이던데 전 좀 와닿지 않았다. 호남은 지역주의가 아니라 차별의 문제로 봐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당은 그런 지역을 기반으로 하게 됐다. 국민의당이 잘 한다면, 그 에너지를 가지고 기존 양당 체제를 깨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고 보여진다.
"왜 진보정당인가? 우리는 '종류가 다른 정당'이다"
프레시안 : 앞서 야권 연대 이야기를 하면서 '노동을 중심으로 시장을 대하는 태도를 명확히 보여야 한다'고 했다. 그게 어떤 건가.
조성주 : 노동의 '시민권'을 요구하고 인정하는 문제다. 다른 정당들이 얘기하듯, 경제 민주화는 중요하다. 그런데 경제 민주화의 핵심은. 다수가 노동자인 '경제 시민'에게 정당한 권력이 제대로 부여되는 것이다.
가령 정치 민주화를 하면 권력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1인 1표, 직선제 등이 이루어지지 않나. 또 정당 설립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 같은 것들이 뒤따른다. 그런데 경제 민주화를 말하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 대기업-중소기업 간 관계만 나온다. 경제 '시민'은 없는 것이다.
경제 민주화 논의를 하며 '노사 공동 결정 제도' 같은 것이 왜 중요하게 안 다뤄지는지 알 수 없다. 노동조합의 경영 참여나 노동자의 실질적 시민권 획득이란 것이 '공정한 원·하청관계' 같은 것보다 더 경제 민주주의에 가까운 개념이라고 본다.
요즘 국민의당도 '공정 성장' 이런 것을 강조하는데, 이와 차별성을 보일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거다. 더불어민주당도 노동조합들과 일을 많이 하고는 있지만, 노조를 '이익 집단'이나 민원 기구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노동 시민권 행사를 위한 사회적 결사체로서의 노동조합, 그런 노조의 경영 참여, 노동자의 실질적 시민권 획득, 노조 미가입자나 가입하지 못한 이들의 시민권 행사 방법과 같은 이야기가 진보에서 나와야 한다. 이런 것이 '진보판 경제 민주화'이다.
프레시안 : 설 연휴가 지나며 개성공단 문제가 갑자기 메인 이슈가 됐다. 야권 정당들의 대응이 좀 갈리는 듯 보이는 부분도 있다. 최소 대응하며 원래 가지고 있던 선거 전략을 유지하는 게 맞을까, 적극 대응하는 게 맞을까? 야권 입장에서는 유리한 이슈가 아니지 않은가?
조성주 : 분단 문제에 대해 보수·진보 차이가 없이 수렴돼 있다가 개성공단 정도에서야 이슈가 된 거 같다. 이런 쟁점은 나쁘지 않다. 물러설 게 아니라, 최소대응할 게 아니라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군사적 긴장 상태에 대한 공방은 늘상 있었지만, 어떻게 평화를 만들 것이냐에 대핸 고민은 진보도 보수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개성공단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평화를 만들 거냐 하는 문제다. 그런 '평화 이슈'는 훨씬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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